고난과 복음

Understanding_Lee
주일예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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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로의 부름

시편 32:1–2 NKRV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본문

베드로전서 4:12–16 NKRV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서론 — "솔직히 손해 보는 것 같잖아요"

여러분, 솔직하게 한번 물어볼게요.
예수님 믿고 나서 오히려 더 불편해진 것들이 생겼죠?
급식 먹기 전에 기도했더니 옆에 친구가 이렇게 쳐다봐요. "야, 너 뭐야? 무슨 종교야?" 주일에 교회 간다고 하면 "일요일에 거길 왜 가? 같이 놀면 안 돼?" 나쁜 얘기 오가는 자리, 술 마시는 자리에서 빠지면 "얘 왜 이래, 진짜 재미없어."
그리고 학교에서 정직하게 살려고 하면 실제로 손해 볼 때가 있어요. 컨닝 안 하면 점수가 낮아지고, 거짓말 안 하면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애가 되고. 예배 드리고 기도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다 보면 친구들보다 어딘가 하나씩 더 포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마음 한쪽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예수 믿는 게 왜 이렇게 피곤하지? 차라리 그냥 편하게 살면 안 되나?"
오늘 저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고 싶어요. 그리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게 한국에서만, 지금 이 시대에만 있는 일이 아니에요. 2000년 역사 내내 반복되어 온 패턴이에요. 오늘 그 이유를, 그리고 그 고난 속에 감춰진 진짜 비밀을 함께 봐요.

📖 본론 1 — 역사가 증명하는 패턴: "왜 교회만..?"

오픈도어 선교회라는 단체가 있어요. 매년 전 세계에서 신앙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을 조사해서 발표하는 곳이에요. 그 통계를 보면 매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박해받는 종교가 기독교예요.
불교 때문에 죽었다는 뉴스는 잘 없어요. 힌두교를 믿는다고 직장을 잃었다는 얘기도 별로 없어요. 근데 기독교는 달라요. 역사를 펼쳐 보면 놀라운 패턴이 보여요.
첫 번째, 로마제국.
로마는 굉장히 관대한 나라였어요. 다신교 국가였기 때문에 어떤 종교든 다 허용했어요. 이집트 신도 되고, 그리스 신도 되고, 페르시아 신도 됐어요. 근데 기독교만 탄압했어요. 왜였을까요?
로마의 핵심 논리는 이거였어요. "황제가 주님이다. Caesar is Lord."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게 로마 제국의 질서였어요. 근데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아침 이렇게 고백했어요. "예수가 주님이다. Jesus is Lord."
이 두 문장은 절대로 공존할 수 없어요. 다른 종교들은 황제도 섬기고 자기 신도 섬겼어요. 그러면 로마가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기독교는 "No" 라고 했어요. 예수님 외에 다른 주님은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탄압이 시작된 거예요.
두 번째, 공산주의.
소련, 중국, 북한. 이 나라들은 다른 문화나 전통은 어느 정도 흡수하거나 이용했어요. 근데 교회만 골라서 파괴했어요. 왜였을까요?
공산주의의 논리는 이거예요. "국가가 최고다. 당이 최고다." 국민은 국가에 100% 충성해야 해요. 근데 그리스도인들은 뭐라고 하냐면 "하나님 나라가 먼저다" 라고 해요. 예수님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고 하셨잖아요. 공산당 입장에서 이게 가장 위험한 말이에요. 하나님께 먼저 충성하는 사람은 국가에 100% 복종하지 않거든요.
세 번째, 현대 한국 사회.
지금은 대놓고 죽이진 않아요.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작동해요. 현대 사회의 논리는 이거예요. "진리는 상대적이다. 네 진리가 내 진리보다 낫다고 하지 마라.""네 욕망에 솔직해라. 하고 싶은 거 해라."
근데 기독교는 뭐라고 하냐면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해요. 절대적인 진리를 선언하는 거예요. 그리고 절제하고, 희생하고, 정직하게 살라고 해요.
그러면 세상이 어떻게 반응하냐면 "너네만 옳다고 해? 꼰대 아니야?" 하는 거예요.
이 세 가지 역사에서 공통점이 보이나요?
"로마도, 공산주의도, 오늘 학교 친구도 — 기독교를 미워하는 이유는 같아요. 기독교가 세상의 논리에 'No'라고 말하기 때문이에요. 세상은 자기 논리를 거부하는 존재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친구한테 놀림받는 것, 로마에서 죽임당한 것, 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거예요.

📖 본론 2 —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셨다

이게 놀랍게도 예수님이 이미 예고하신 일이에요.
요한복음 15:18–19 NKRV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예수님은 이걸 이상한 일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이미 예고하셨어요. 왜냐면 세상의 작동 원리를 알고 계셨거든요.
세상은 자기 것을 사랑해요. 자기 편, 자기 논리, 자기 방식을 좋아해요. 그리스도인은 이미 세상 소속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세상이 이물질처럼 반응하는 거예요.
비유로 설명하면, 물에 기름 한 방울을 넣으면 어떻게 되나요? 안 섞이죠. 물이 기름을 밀어내요. 기름이 나쁜 게 아니에요. 성질이 다른 거예요.
여러분,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는 게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소속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놀림받는 게 패배의 신호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신호예요.

📖 본론 3 — 사탄이 기독교만 집중 공격하는 이유

여기서 한 가지 더 깊이 들어가 볼게요.
사탄은 불교를 굳이 공격하지 않아요. 철학도 건드리지 않아요. 도덕도 문제삼지 않아요. 왜냐면 위협이 안 되니까요.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사탄의 권세는 그대로예요. 아무리 지혜롭게 생각해도 사탄의 권세는 무너지지 않아요. 그런데 단 하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만이 사탄의 권세를 실제로 무너뜨려요. 골로새서 2장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셨어요.
그래서 사탄이 집중 공격하는 거예요.
그리고 사탄은 꼭 거창한 방법만 쓰지 않아요. "교회 다니면 이상한 애" 라는 분위기 하나로도 신앙을 죽일 수 있거든요. 친구 눈치, 손해 보는 느낌, 피곤한 느낌 — 이게 작아 보여도 실제로 작동하는 공격이에요. 목표는 하나예요. 세상 논리에 'No'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을 침묵시키는 것.
비유로 말하면 — 경기장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선수가 있고, 계속 파울 당하는 선수가 있어요. 누가 더 위험한 선수예요? 파울 당하는 선수잖아요.
"여러분이 공격받는다는 건, 여러분이 위협적이라는 뜻이에요."

📖 본론 4 — 고난 속에서 오히려 예수님이 가장 깊이 만져진다 ⭐

자, 여기서 오늘 설교의 심장 부분이에요. 잘 들어주세요.
베드로전서 4장 13절이 이렇게 말해요.
베드로전서 4:13 NKRV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로마서 8장 17절은 이렇게 말해요.
로마서 8:17 NKRV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고난이 상속자의 증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하는 자리예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건 제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해요.
제가 가장 낮아졌을 때가 있었어요. 가장 어렵고, 핍박받고, 고난이 깊었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솔직히 그때가 제 삶에서 예수님을 가장 형식적으로 믿었던 때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그 고난의 시간에 예수님을 가장 깊이 의지하게 됐어요.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살기 위해 붙드는 신앙이 된 거예요.
그 자리에서 비로소 십자가가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실제가 됐어요. "아, 예수님이 이 고통을 나 때문에 감당하셨구나. 내 죄 때문에 이걸 당하셨구나." 고난을 겪어봐야 십자가가 진짜로 보이기 시작해요.
그리고 그 시간이 저를 바꿨어요. 사람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더 성숙해지고, 더 자유로워졌어요. 고난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의 신앙을 갖지 못했을 거예요.
또 하나 있어요.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요한복음 14:27 NKRV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문제가 없을 때만 작동해요. 근데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문제 한가운데서도 작동해요. 고난 속에서 경험하는 깊은 만족, 설명이 안 되는 평안 — 이걸 한 번 경험한 사람은 세상이 주는 위로로 돌아가지 못해요.
"고난은 우리를 세상에서 떼어내고, 예수님께 붙게 만드는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방법이에요."

📖 본론 5 — 하나님은 항상 채우셨다

그리고 한 가지 더요.
베드로전서 5:7 NKRV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저는 손해 보는 것 같은 삶을 살았어요. 세상 논리에 타협하지 않고 살다 보니 돌아오는 게 적을 때도 있었어요. 근데 돌아보면 항상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어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위로하셨고, 예상치 못한 길을 여셨어요.
여러분의 세대가 짊어진 불확실성이 얼마나 큰지 알아요. 직장이 불확실하고, 사역의 길이 안 보이고, 결혼도 자녀도 미래도 안개 속 같은 세대예요. 정말로 모든 게 흔들리는 것 같은 시대예요.
근데 이 말씀 들어보세요. 고난 속에서 예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그 불확실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요. 상황을 붙들고 있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에요. 상황은 흔들려도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시거든요.

📖 말씀 — 벧전 4:15-16, 4:14

그런데 여기서 성경은 중요한 구분을 해요.
베드로전서 4:15–16 NKRV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난이라고 다 같은 고난이 아니에요. 죄 때문에 받는 고난이 있어요. 내 잘못으로, 내 죄로 받는 고난. 이건 우리에게 부끄러운 고난이 되어야 해요.
그런데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 있어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 논리에 'No'라고 했기 때문에 받는 고난. 이 고난은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해요.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해요.
그러면 베드로전서 4장 14절이 이렇게 선언해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고난의 자리가 사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계시는 자리예요. 복 있는 자리예요.

결론 — 손해가 아니라 증거야

자, 오늘 말씀을 정리해볼게요.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건, 우리가 세상의 논리에 'No'라고 말하기 때문이에요. 2000년 역사가 이걸 증명해요. 로마도, 공산주의도, 오늘 학교 분위기도, 전부 같은 이유예요.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실제로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기 때문이에요. 공격받는다는 건 우리가 위협적이라는 뜻이에요.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십자가 앞에 서게 돼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걸 감당하셨다는 게 추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자리예요. 고난의 자리가 예수님을 가장 깊이 만나는 자리예요.
그리고 하나님은 항상 채우셨어요. 손해 보는 것 같은 삶에 부족함이 없으셨어요.
여러분, 이걸 뒤집어서 보면 이렇게 돼요.
“손해 보는 것 같은 그 순간이, 사실 여러분이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순간이에요."
지금 학교에서, 친구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어요? 그게 신호예요. 여러분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신호. 여러분의 소속이 다르다는 신호.
그리고 그 불편함의 자리에서 눈을 들어 십자가를 보세요. 예수님이 거기 계세요. 그분이 먼저 그 길을 걸으셨고, 그 길이 부활과 영광으로 이어졌어요. 우리의 고난도 그 길과 연결되어 있어요.
고난은 낭비가 아니에요. 고난은 예수님을 만나는 통로예요.
같이 기도할게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친구들이 학교에서, 친구 관계에서,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불편함과 손해를 주님이 아시는 줄 믿습니다. 그 고난이 낭비가 아니라, 주님과 더 깊이 연결되는 통로임을 믿음으로 붙들게 하소서. 고난의 자리에서 십자가를 보게 하시고, 영광의 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ord’s Prayers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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