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만들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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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혜로 만들어 가네; 은혜로만 들어가네

본문: 요한복음 15장 1-6절

찬송: 304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농부라고 부르시고,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고 정의하십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은혜로 만들어 가네"입니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우리 신앙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두 가지 깊은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통로는 오직 은혜뿐이라는 '은혜로만 들어가네'의 고백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격 없는 우리를 아름다운 열매 맺는 나무로 정성껏 빚으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은혜로 만들어 가네'의 고백입니다.
수십 년간 과수원을 일궈온 어느 노련한 농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농부는 초봄의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날카로운 가위를 들고 나무들 사이를 누빕니다. 겉보기에 튼실하고 멀쩡해 보이는 가지라도, 나무 전체의 영양분을 빼앗아 가기만 하고 정작 열매는 맺지 못하는 헛가지나 쓸모없는 가지를 가차 없이 잘라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때도 너무 많이 달린 작은 열매들을 과감히 속아주어야만, 남겨진 열매들이 비로소 햇살을 듬뿍 받아 크고 달콤하게 익어간다는 사실을 그는 평생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꾸만 내가 무엇을 대단하게 해서 열매를 만들어 농부에게 보여주려 하지만, 사실 열매는 가지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는 포도나무의 생명이 가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맺어주는 선물입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나를 증명하려 애쓰는 고단한 삶의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빚으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안에 머무는 참된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은혜로만 들어가네

우리의 구원은 신앙의 연수나 헌신의 크기에 비례하는 보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전적인 은혜의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포도나무가 어디에 심길지, 어떤 가지가 그 나무에 붙여질지는 오직 농부의 권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가지가 된 것은 우리가 나무를 선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자격 없는 우리를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강권적으로 접붙여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농촌에서 접붙이기를 해보신 성도님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야생 가지가 좋은 나무에 붙여지는 순간, 그 가지의 운명은 농부의 손에 의해 결정됩니다.
주님은 이어지는 3절에서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이 말씀이 선포된 시점은 제자들이 완벽한 삶을 살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뒤면 주님을 배반하고 도망칠 연약한 자들이었음에도, 주님은 그들이 '이미' 깨끗한 가지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행위가 깨끗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그 은혜가 그들을 덮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 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은혜의 문으로 들어간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지불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값 없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가 은연중에 내가 얼마나 교회를 오래 다녔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봉사했는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열심과 공로는 우리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꾸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의로움은 누더기 옷과 같아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결코 내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쌓아온 신앙의 연수나 헌신의 시간은 자랑의 제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오랜 세월 동안 배반하기 일쑤였던 우리를 끝까지 참아주시고, 여전히 나무에 붙어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내에 대한 감사의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의 문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공로를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 공로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은혜로만 들어가네"라는 이 고백이 우리 심령의 단단한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거나,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자책하며 위축되는 삶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도나무에 붙여주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이미 충분히 존귀하고 깨끗한 존재가 되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은혜로 만들어 가네

우리 인생의 참된 열매는 내가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력이 아니라, 주님 안에 평안히 머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빚어가시는 생명의 결과물입니다. 본문 4절과 5절에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강조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여기서 '거하다'는 뜻의 헬라어 '메노(μένω)'는 단순히 잠깐 들르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어떤 폭풍우 속에서도 끝까지 견디며 생명을 공유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가지가 해야 할 유일하고도 가장 위대한 과업은 나무 기둥에 단단히 붙어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스스로 수액을 짜내려고 애쓰거나 억지로 꽃을 피우려 소리 지르지 않습니다.
그저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나무의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풍성한 생명력이 자연스럽게 가지를 통해 흐르고, 때가 되면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가 '기쁨으로 가장한 의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교회 중직자인데, 남들이 보기에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어느덧 감사가 아닌 압박이 됩니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은 고단한 종교적 노동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누리는 깊은 안식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나의 작고 초라한 모습까지도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리는 신뢰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과 온전히 하나가 될 때, 우리 삶의 열매는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 가십니다.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내가 노력해서 짜내는 즙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막힘없이 흐를 때 맺어지는 자연스러운 삶의 향기입니다. 내가 맺으려 하면 시들지만, 주님이 맺게 하시면 영원히 빛나게 됩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 삶에 가지치기라는 아픈 과정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본문 2절에서 말씀하시는 '깨끗하게 하시는' 과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농촌에서 나무를 키울 때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은 공들여 키운 가지를 잘라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농부는 나무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좋은 열매를 위해 단호하게 그 가위를 듭니다.
우리 삶에 닥친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아픔도 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버리시는 신호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 있는 불필요한 자기 의와 세상적 욕심을 쳐내어, 우리를 가장 아름다운 은혜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농부의 세심한 사랑입니다. 헬라어 원어로 보면 이 '깨끗하게 함'은 곧 '성결'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주님이 나를 더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 가고 계시는구나"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은혜로 만들어 가네"라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의 순간에 더욱 주님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그 품 안에 평안히 머무는 머묾의 신비를 배웁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은혜로 만들어 가네(은혜로만 들어가네)"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유일한 근거는 나의 의로움이나 업적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값없는 은혜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맺는 모든 선한 행실과 인격의 변화 역시 나의 열심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열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불안함과 압박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주님께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가지는 열매를 맺기 위해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에 붙어 있기 때문에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복잡한 문제들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더 깊이 뿌리를 내리시길 바랍니다.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십시오.
그때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이 교회 공동체 속에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달콤하고 풍성한 은혜의 열매를 반드시 맺게 하실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만 들어가고, 오직 은혜로만 빚어져 가는 복된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본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마른 막대기와 같았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참포도나무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그동안 우리는 주님 안에 머무는 기쁨보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내 힘으로 열매를 만들어 나 자신을 증명하려 했던 교만과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은혜로만 들어가네"라는 고백처럼, 우리가 의인이 된 것은 오직 예수님의 속량함 때문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 앞에 겸손히 엎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은혜로 만들어 가네"라는 약속을 붙듭니다. 우리 삶에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가지치기의 아픔이 찾아올 때, 그것이 우리를 더 풍성하게 빚으시려는 농부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임을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님들의 삶의 무거운 짐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는 몸부림보다 주님 안에 평안히 머무는 안식을 먼저 회복하게 하시고, 그 거룩한 머묾 속에서 성령의 귀한 열매들이 자연스럽게 맺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한 주간도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가 참된 자유를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농부 되신 하나님과 참포도나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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