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의 의무와 공동체의 영광 2026 0323 롬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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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강함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약한 자의 짐을 지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 서론 — 새벽의 문을 두드리며
🌅 서론 — 새벽의 문을 두드리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에 나오셨습니다. 잠을 포기하고 이 자리에 나온 분들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새벽예배 나오면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찬양을 크게 하지?" "저분은 왜 기도를 저렇게 길게 해?" "저 집사님은 또 무릎을 왜 꿇지 않지?"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서로를 평가합니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봅니다. 오늘 바울은 말합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나'가 아닌 '우리'로 사는 법입니다.
📖 본문 배경 — 왜 바울은 이 말을 썼는가?
로마서 14-15장 의 배경을 잠깐 알아야 합니다.
로마 교회 안에는 두 그룹이 있었습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입니다.
강한 자는 구원의 확신이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음식 규정이나 절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신앙인들입니다. 반면 약한 자는 유대적 율법 전통에 여전히 민감한 신자들입니다.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어떤 날을 지켜야 하는지 늘 조심스러운 사람들입니다. 둘 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둘 다 진지하게 신앙생활합니다. 그러나 방식이 다릅니다. 그리고 갈등이 생겼습니다. 바울은 이 갈등을 향해 오늘 본문에서 결론적 처방을 내립니다.
💬 대지 1 — "기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
💬 대지 1 — "기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바울은 1절에서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 이것은 자기 학대가 아닙니다. 금욕주의도 아닙니다. 헬라어 원어를 보면 더 선명합니다.
ἀρέσκειν (아레스케인) — "기쁘게 하다, 환심을 사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종종 '사람의 환심을 구하는 것'에 부정적으로 사용됩니다. 갈라디아서 1:10 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다시 말해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는 것은 자기중심성을 내려놓으라는 말입니다. 강한 자가 빠지는 가장 큰 유혹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우월감입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자유롭다. 나는 저 사람보다 성숙하다." 이것이 공동체를 깨는 독입니다.
💬 청중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누군가보다 '더 성숙한 신앙인'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생각이 관계를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의 성숙은 자유로워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 자유의 목적지는 내 만족이 아닙니다. 이웃의 유익입니다.
📖 대지 2 — "그리스도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
📖 대지 2 — "그리스도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3절에서 가장 강력한 논거를 끌어옵니다. 예수님의 모범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영광 중에 계셨습니다. 천사들의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욕을 먹으셨습니다.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왜입니까?
바울은 시편 69:9절 을 인용합니다.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이것은 메시아 시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한 삶을 사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의 비방, 죄인들의 수치, 죄인들의 죽음을 담당하셨습니다. 여기서 '담당한다'는 단어를 보겠습니다.
βαστάζειν (바스타제인) — "짐을 지다, 운반하다"
이 단어는 갈라디아서 6:2 에도 나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의 모습에도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즉, 짐을 진다는 것은 예수님의 언어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지는 것. 이것이 십자가의 문법입니다.
한 예화를 드리겠습니다.
어느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이야기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어느 날 신입 단원이 들어왔습니다. 실력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베테랑 바이올리니스트는 짜증이 났습니다. 리허설 중 신입의 실수가 반복되자 그는 지휘자에게 소리쳤습니다. "저 사람 때문에 전체가 망가집니다!" 지휘자는 잠시 멈추더니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를 도우시오. 당신의 실력이 그를 위해 써질 때, 이 오케스트라가 비로소 완성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내가 강하다면, 그 강함은 약한 자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 대지 3 — 함께 한 목소리로 영광을 돌리다
🌟 대지 3 — 함께 한 목소리로 영광을 돌리다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5절에 아름다운 표현이 있습니다. "한마음과 한 입으로." 헬라어로 보면 더욱 감동적입니다.
ὁμοθυμαδὸν (호모뒤마돈) — "같은 열정으로, 한 마음으로"
이 단어는 사도행전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 강림 장면입니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사도행전 4장 성도들의 기도 장면입니다. "빌기를 같이 하여." 한마음은 획일성이 아닙니다. 같은 방향을 향한 다양한 열정의 연합입니다.
그리고 6절에 목적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공동체의 목적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 될 때,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완성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합창단이 있습니다. 소프라노만 있으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베이스만 있어도 부족합니다. 소프라노와 알토와 테너와 베이스가 함께 할 때, 화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이 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강한 자도 필요하고, 약한 자도 필요합니다. 오래된 성도도 필요하고, 새신자도 필요합니다. 활발한 사람도 조용한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 다양함이 모여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 대지 4 — 소망의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함
💎 대지 4 — 소망의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함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입니다. 13절은 기도입니다. 동시에 약속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헬라어 ἐλπίς (엘피스)는 단순한 희망이 아닙니다. '근거 있는 기대'입니다. 막연한 바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한 확실한 기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말씀을 약속으로 붙잡는 믿음으로 기대를 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주목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기쁨, 평강, 소망. 이 세 가지는 서로를 이어줍니다. 기쁨이 있는 곳에 평강이 오고, 평강이 있는 곳에 소망이 넘칩니다.
그리고 바울은 말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이것은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이 공동체를 붙들어 주십니다. 지금 혹시 공동체 안에서 상처가 있으십니까? 누군가와 마음이 멀어진 분이 계십니까? 오해가 쌓인 관계가 있습니까? 소망의 하나님이 오늘 새벽 이 기도를 들으십니다. 기쁨과 평강이 충만해지길 원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길 원하십니다.
🏁 결론 — 새벽에 결단하는 것
🏁 결론 — 새벽에 결단하는 것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첫째,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짐을 진다. 이것이 십자가의 문법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먼저 그렇게 사셨다. 우리는 그분을 따를 뿐입니다.
셋째, 우리가 하나 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내 만족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입니다.
오늘 새벽, 한 가지 결단을 하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판단했던 그 사람,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 형제자매를 위해 오늘 기도해 주십시오. 그것이 강한 자의 의무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