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나는 것이 유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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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찬송가: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전형상화 (말씀 강해)
다락방 강해가 이어집니다. 예수님이 다락방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다락방에서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나실 것과 그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것들을 말하는 것은 첫재, 내가 너희가 함께 있지 않기 때문이도 둘째, 이 일들이 일어난 후에 너희들이 내가 먼저 말한 이 들들 가운데 믿음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임을 밝히십니다.
1절은 그 목적을 다시 설명 하십니다. 너희가 실족하지 않기를 위해 말한다. 내가 떠나면 사람들이 너희를 유대인 총회에서 출교할 뿐만 아니라, 너희를 죽이는 박해도 일어날 것이다. 야고보가 실제로 제일 먼저 순교 합니다. (헤롯에게) 그리고 이 당시에도 이미 예수를 따르거나 그의 교훈을 전하는 유대인들은 출교를 당할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 이후에 이 일은 더욱 본격화가 됩니다.
믿는 도의 수장이 죽으면 무리는 흩어 집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때부터 선생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사회적 갈등은 발생합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나세렛 이단’이라고 불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독자적인 종교로 자리잡지 않았고 오직 유대교에서 파생된 이단으로 알려 졌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지중해 로마 제국 동지중해를 모두 선교하고 교회를 세운 후에도 여전 했습니다.
2절에 무릎을 치는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를 출교하고 죽인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목자인지 이리인지, 잘 구분 해야 합니다. 어떻게 가능 합니까? 말씀은 오직 말씀으로 분별 합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도 그리스도인은 말씀으로 분별 합니다. 교회안에서 삯군들과 이리들도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현혹하고 죽음으로 이끌어 갑니다. 이단은 모두 기독교 안에서 발생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열매를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고 사람을 세우는 열매로 이어지는지? 사람들을 갈라치고 낙심케 하는지 ? 그 기준으로 분별 하시면 됩니다. 마태복음 7:20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3절, 성부 아버지와 성자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 말이나 합니다. 4절은 다시 예수님이 가까운 장래에 벌어질 이들을 제자들에게 말하시는 이유를 다시 반복 해서 벌명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표정을 살펴보고 말을 이어갑니다. 근심과 두려움이 있으면 공동체에 질문이 없습니다. 5절 예수님은 제자들과 더 알려주고 더 비밀을 알려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보니 더 큰 비밀을 알려줘도 이들이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6절, 제자들인 이미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걱정+ 자신들의 앞날에 대한 걱정, 이런 것일 겁니다.
7절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비밀을 말씀 하십니다. 내가 지금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 이다. 이제 내가 십자가에 올라서 성부 아버지의 구속의 계획을 순종함으로 다 이룰 것인데 그 이후에는 이 구속의 완성을 이끌어 갈 성령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오실 것이다. 성령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이 보내는 것이기에 내가 아버지께로 가야만 그분이 너희에게로 오실 것이다. 그분이 오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 이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셔서 너희 가운데 거하시면 너희가 내가 하는 일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 일도 행할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유익 이다. 그리고 8절-11절 , 그가 오시면 이제 세상을 책망 하시는데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그렇게 하신다. 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이고 내가 너희와 함께 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의’인 나에 대하여 성령 하나님이 너희에게 기억나게 하고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리고 세상 임금 사탄은 자신이 승리한 것 처럼 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너희들을 쫒아내고 흩어 버리겠지만 그것이 그의 결정적인 패배요 심판이라는 것을 성령님이 드러낸신 것이다.
12절은 제자들의 상태를 예수님이 고려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을 관계라고 말합니다. 어떤 관계 상대를 나보다 높게 여기고, 상대를 위해 내가 더 내려놓는 것이 더 사랑하는 태도라고 합니다. 교회공동체에서는 많이 아는 사람이 더 고개를 숙이는 공동체 입니다. 상대방, 연약한 지체들을 배려 해야 합니다. 신학과 믿음의 진리를 대적하는 말이 아니라면 용납 하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감당 못할 말씀을 자제 하십니다. 그러나 13절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때는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이 자신을 부인하고 두려움에 다 도망 가지만 성령이 오시면 그들이 다시 모여 끝내는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갈 것이라는 것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우리도 이 믿음을 가지고 긍휼한 마음으로 연약한 지체들을 돌봐야 합니다. 14절 성령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가르치고 책망 하시고 착한 일을 시작하게 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우리를 견인하고 이루십니다. 요한복음 1:14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것을 성령님이 우리에게 이룹니다. 15절 말씀을 우리가 읽을 때 성령님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기억나게 하십니다.
형상화 (현실 연관성)
초대교회는 박해의 시대입니다. 사회에서 추방하거나 죽음에 이르는 박해는 그렇다고 초대교회 300년 내내 있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유대인 사회에서 추방했고 돌로 (율법)죽였습니다. 유대교 안에서의 분파 싸움으로 외부에 비쳤졌습니다. 이후로 로마 황제 네로시대부터 박해의 시대가 이어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천주교 박해가 대표적으로 목숨을 잃고 신앙을 지킨 선배들의 피 위에 오늘날 우리의 교회가 서있음을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민주공화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누리며 박해를 받지 않지만 복음은 언제나 세상에 위협적이 아니였던 적이 없었고, 세상에서 복음을 혐오하고 대적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자랑하고 부끄러워 하지 않은 것은 복음 =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환영받고 존귀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모든 믿는 이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은 세상 문화에서 받아 들이기에 불편합니다. 복음이 선포 되면 세상이 불편 하게 여깁니다. 오늘날 세상은 복음은 교회에서만 이야기 하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도 존중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오직 예수님에게만 진리가 있다고 편협하게 주장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문화적인 압력이 어찌보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오늘날 생각해볼 또 다른 점은 보혜사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승천 하시고 보혜사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다고 약속 하셨고 오순절을 통해 실현 되었음을 우리가 봅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이땅에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주가 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분명 성령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런데 그가 우리를 가르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기르치시는데 우리는 듣지를 않습니다. 교회는 성령 하나님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성화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날마다 조금씩 성취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말씀을 듣다 보면 믿음으로 구원 받고 이제는 우리가 그 은혜에 감사해서 열심을 내야 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불경건함과 불의함에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유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마치는 아주 오래된 패턴입니다. 영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주의 영이 계신곳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재형상화 (적용)
세상에서 복음이 환대받지 못하는 것은 복음의 특성 입니다. 들을귀 있는 자들만 듣고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배척받는 다면 오히려 우리는 복음을 제대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다시오심과 심판을 전하는 것입니다. 에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려운 상황을 미리 알리신 것 같이 우리도 복음이 세상에서 어떻게 인식 되고 있는지 잘 알고 놀라거나 두려워 하지 말고 전해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18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고린도전서 1:23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성령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을 듣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주시는데 가장 일상적으로 드러나시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입니다. 말씀하시고 거기 계시는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 이십니다. 히브리서 4:12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3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말씀을 읽을때 성령님이 빛으로 조명하여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령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 분의 말씀을 인정하고 듣지 않으면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이 새벽에 기도 하시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에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권면 드립니다. 기도 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