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_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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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대.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1장_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대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OiZJDeDMXZc
Transcript:
(00:01)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제1장.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사야 53장 1, 2절.
믿지 않는 세대.
이사야 53장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이 영광스러운 본문의 기록은 매우 우울한 논조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위대한 구속 사역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인간의 불신앙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이 위대한 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01:00)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이사야 53장 1절. 우리말 개혁 개정 성경에서 전한 것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원래 들려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이 단어가 소식, 보고 계시 등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2장 28절 이사야 28장 9절. 그러므로이 위대한 장의 첫 부분에 대한 정확한 번역은 우리가 들려준 것을 누가 믿었느냐입니다.이 이 진술은 이사야 52장의 내용인 좋은 소식이 전해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만찬하에 선포되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되리라는 예언과 54장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인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 행동의 전망 사이에 배치되기에는 문맥상 어울리지 않습니다.
(02:01) 그래서 어떻게 보면이 53장 전체가 이사야서의 일관된 문맥을 깨고 들어온 거대한 사비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이사야 53장 1절 상에서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는 물론 그의 시대에 하나님의 종들과 그의 시대 이전에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고 후대에 태어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물론 선지자가이 예언을 할 때 그가 염두해 둔 일차적인 청중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이 예언은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까지 전해졌고 이제이 예언에 우리 안에는 지금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도 들어갑니다.
(02:56)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바로이 부분을 인용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신의 시대의 사람들의 불신앙을 규탄합니다. 그리고 구원받는 길이 바로 복음을 듣고 믿는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한 것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이사야 자신을 비롯한 많은 선지자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던 하나님의 진리 바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 인류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그것을 들었습니다. 로마서 1장 2절, 사도행전 13장 23절. 그쪽에서 실시간으로 들어가는 데가 >>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끊임없이 >> 인간을 구속하여 창조의 목적에 부합한 삶으로 회복시키실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03:55) >> 그에게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생애와 역사는 그러한 구원의 시를 전해주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기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메시아를 전할 것이며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메시아의 소식을들을 것이나 >> 그 소식을 들어도 >>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 선지자의 시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메시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과의 화외도 없습니다. >>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성경을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유지해야 합니다.
(04:44)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를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 아멘. >>
그리스도 없이 기독교는 없다.
>> 네. 알겠습니다. >> 다른 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성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불교는 사과머니 없이도 종교로서 성립이 가능하고 이슬람교도 마음트 없이 성립할 수 있지만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처음부터 한 사람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셨고 인간은 누구이며 왜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한지 알리셨습니다.
(05:41)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한 구원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그분의 진노 아래 태어난 모든 인간들은 메시아이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구원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 사도행전 4장 12절. 따라서 그리스도를 어떤 분이라고 이해하는지에 의해, 그리고 그 이해가 그에게 어떤 믿음을 갖게 하였는지에 의해, 그의 신앙과 인생은 물론 영원을 향한 운명도 결정됩니다. 성경 어느 곳을 펼치더라도 성경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아무리 오래도록 교회를 다니고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면 당신의 신앙은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은 것입니다.이
(06:45)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 하나에 현세와 내세의 모든 운명이 달렸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과 가운데 사는 삶이 그 대답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에 있어서 이런 질문은 매우 사소한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는 그런 질문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한다면 성경은 여러분에게 그렇다면 당신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있어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나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의 주님이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면 성경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07:40)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다.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내가 당신에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어떻게 그분을 믿으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겠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은 개인은 물론 인류 전체의 행복을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을 고안해 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현대인의 지성을 거스르지 않고 불신앙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설시 복음을 전달하려고쓰는 시도들입니다. 때로는 이러한 시도들이 성공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08:32)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대신 복음의 내용을 대중화하는 방안을 구하 열심을내는 이유도 이때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두면 언젠가 그들의 마음에 미쳐 거부할 사이도 없이 십자가의 진리가 스며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쓴 약을 먹일 때 달콤한 꼬리나 설탕을 듬뿍 참가해서 함께 먹이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절실이 필요한 것은 진리의 쓴맛을 단맛으로 중화시켜 주는 실업이 아닙니다. 스디슨 진리 앞에 정직하게 설 수 있는 진지함입니다. 오늘날 조국 교회에서 선명한 십자가의 복음선포가 사라져 가는 것은 바로 복음 자체에 기린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그 복음을 대중화하려는 노력을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09:35) 그러나 자신들이 믿는 신앙의 내용을 대중화하려는 노력은 결국 자신도 스스로 무엇을 믿는지 모르는 처지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 선교를 위한 지름길이라 주장되던 모든 방법들은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교회의 선교를 주도하시는 분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이지만 그 복음을 듣는 영혼들을 구원하고 변화시키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며 성경이 말하는 메시아와 복음을 정직하게 가르칠 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정직한 복음에 응답할 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뿐입니다.
(10:27) 사람들이 그에 대하여 아멘이라고 답을 하든지 실소라고 거부하든지 그것은 그들의 몫입니다. 비록 거절당하는 복음과 그런 반응으로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에 대한 거룩한 아픔은 여전히 우리의 몫시지만 말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메시아의 거룩한 고난은 복음을 받아들으로써 자신의 선택됨을 입증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고 인생이 끝나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단 한이라도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메시아는 왜 오시아에 했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하는 질문 앞에서 진지해집니다.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가장 분명한 답이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11:20) 이 세상에 메시아가 왜 오셨습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는가? 선지자들이 외쳤던 바대로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살만의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누구이신가? 이미 구원을 얻은 사람들에게도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이것은 치명적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얻게 하는 지식을 주고 이미 구원을 얻은 사람들에게는 단지 구원얻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음 사실을 깨게 하기 때문입니다. 왜 인간들에게 메시아가 필요했으며 지금도 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 소망이 없는 존재인지를 말입니다.
(12:13)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이 질문에 대하여 이미 성경을 통해 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찬란한 영광이 드러난 오늘날과 같은 은혜의 시대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무관심 때문입니다. 현세와 내세에 처하게 될 자기 영혼의 운명에 대한 무관심이 구원받을 수 있는 복된 기회를 잃어버리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순간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영혼을 향하여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인생의 때를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잠시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즐거움과 고달픈 염려로 부질없이 흘려보냅니다.
(13:05) 그들은 구원의 희망을 스스로 버리고 하나님을 알고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지금 당장 진지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정직하고 명백한 증언에 귀기 기울이는 것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약속.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우리가 전한 것은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시종일관 계시하신 한 가지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했던 가장 커다란 약속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13:52)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자마자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가 타락으로 말미암는 형벌을 능가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가 이렇게든짐승를 살아 있는지니라가너수가 되게 하고 손도의 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손은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장 14절 15절 말씀을 을붙들 인류의 처음들은 여자의 후손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담은 그 예언이 분명하게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바로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은 타락과 심판의 상태에서 전창조시에 가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로
(15:00) 아갈 수 있게 해줄 구원에 대한 것임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비록 범죄하여 모든 인류의 불행의 씨앗이 되기는 하였지만 범죄한 후 메시아를 대망하는 구원 계시의 빛 아래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구원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는 계시의 빛 아메시아를 바라는 믿음으로 살아기 때문입니다. 이후 인간들은 제사제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구약의 제사 속에 죽어갔던 수많은 양과 짐승들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영원한 대속 재물로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높이 들렸던 노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알리는 표적이었습니다.
(15:52) 숙수기 21장 9절 요한복음 3장 14절 홍해가 갈라져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반석에서 샘이 나와 수많은 사람들이 물을 마시게 된 것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바라보는 표적들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7장 6절 고린도전서 10장 4절 율법의 수혜자인 모세가 들어가지 못한 약속의 땅을 모세보다 통설력이 미흡한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인도하여 들어간 것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승리를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 4장 28 4장 8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란만장한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정착하였을 때 그 땅 안에서 그들은 안식을 누렸습니다.
(16:41) 그 약속의 땅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원주민과 싸워 거둔 승리는 신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영적인 승리를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끊임없이 외쳤던 메시지도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경험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메시아는 끊임없이 증거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이 땅의 모든 백성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어 구원에 이르게 할 구원자이신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끊임없이 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전해진 메시아의 구원에 관한 소식을 믿은 사람은 지극히 소수였습니다.
(17:32)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에서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라고 합니다. 이것은 메시아 예언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을 보여주는 동시에 후일 주님께서이 세상에 오셨을 때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우리의 불신앙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땅에 오셔도 세상은 그분을 믿지 아니할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세상이 예수를 거절함.
일차적으로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조상태대로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5절. 그런데 정작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로 오셨을 때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18:23) 요한복음 7장 7절 15장 24절.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하고 죄가이 세상에 들어오게 한 장본인이었던 아담과 하와를 비롯하여 그의 경건한 자손들이 기다리고 바라보며 환영하였던 메시아 오심의 기쁜 소식이 왜 당시에는철저히 거절당했을까요? 그 이유는 곧 오늘날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유를 이사야 선지자는 다소 엉뚱한 방식으로 밝힙니다. 그는 되묻습니다.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이사야 53장 1절 하. 우리말 개혁 계정 성경이 팔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부분의 히브리어 원어은 제로입니다.
(19:16) 팔혹은 어깨라는 의미를 가진이 단어는 때로는 힘, 권능, 능력 등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팔이 있다라는 표현은 곧 하나님의 능력 혹은 그분의 가호가 함께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신명기 33장 27절.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발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라는 질문인데 선지자가이 질문을 던지는 진의 실제로 구원의 권능이 누구에게 어떻게 나타났는지 궁금해서가 아닙니다. 구원에 있어서 여호와의 권능을 알아볼 자가 누구인가? 인간은 그 누구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20:07) 우리는 여기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세상의 죄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임을 알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 가운데에서 건지시기 위해 보내신 메시아를 보면서 사람들은 결코 그분이 자기들을 구원하실 능력을 진심으로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메시아로 오실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무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사야 53장 2절. 그분은 구원하시는 하나님 자신이셨으나 그런 영광을 입증할 만한 것이 그분의 외모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1:00) 그리하여 그분에게서 메시아로서의 영광을 발견한다는 것은 믿음의 눈을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어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 속에 실현되었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는 한 사람을이 세상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사람들의 눈에는 연약하고 초라한 한 사람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을 통해 구원의 위대한 계획은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물론이고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21:47)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그분을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한복음 1장 46절. 심지어 나사렛 사람들도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그분의 가족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분을 배척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7절.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분의 설교는 설교가 갖추어야 할 결정적인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혜와 능을 동반한 영향력 있는 설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렛 사람들은 단지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그들의 가족들을 잘 안다는 이유만으로 복음을 거절하였습니다.
(22:35) 그분이 전해 주시는 진리의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그분을 인간적으로 잘라 아는 것이 그들에게는 복음을 배척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지이 없니라 하시며 마가복음 6장 2절에서 4절 예수 그리스도께는 사람들의음을 받을 만한 가이나이 없었습니다.
(23:29)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대부분에 대하여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그분은 평범하게 성장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오늘날 마치 여느 죄인들 중 한 사람인 것처럼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로 걸어나가시는 모습을 보며 어느 누가 그분에게 온 인류의 구원이 달렸다고 생각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약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어떻게 경험하였습니까? 그들은 커다란 이적과 기사 속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여호와를 경험하였고 거기서 여호와의 권능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아마 이렇게 기도하며 메시아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여호와여 홍를 가르셨듯이 일찍이 열방이 본 적이 없는 이적과 기사와 능력을 하셔서 이방 족속들의 간담을 선하게 하소서 그들의 마음을 물같이 녹아내리게 하소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하여 어떻게 일하실지 그 구도를 이미 머릿속에 모두 짜놓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24:33) 그고 강하고 한통치자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는 그들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은 한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고운 모양도 없고 좋은 풍도 없으며 흠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인간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메시아의 이러한 출연은 성경에 이미 예고된 바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집착과 편견 때문에 그 예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연약한 외모 안에 숨겨진 위대한 구원의 능력을 볼 수 없었습니다.
(25:23) 요한복음 1장 45절 46절
자기 소견대로 판단함.
누구나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피력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아라면이 세상에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어야만해. 교회는 이러저러 해야 하고 구원은 이러저러해야한 것이어야 해. 그들의 진술의 이면에는 항상 그들 나름의 집착과 편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실론을 유신론에 대한 한 편견이라고 보는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오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분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 그들의견 때문이라고 예고하였습니다.이 예고는 오늘날에도 정확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6:20)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발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라는 질문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연한 순과 같은 메시아의 육체 속에 감추어져 있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그러한 초라한 모습 속에서 메시아의 위대함을 발견하는 것은 육신의 목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게 되는 영적인 목으로 가능한 일임을 보여줍니다. 인간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세상이 기대하는 바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너무나 다르기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범죄함으로 영원한 죽음의 일은 우리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27:08)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관계 회복에 길을 여셨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인간들은 그 구원의 길에는 관무관심한 채 육신의 일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자신들의 육신의 행복을 위하여 어떤 도움이 되는지 계산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지 인간의 육신의 행복만을 위하여이 세상에 오신 것이었다면 베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많은 무리를 먹이신 후에 그 이적을 인하여 자기를 임금삼으려는 무리들을 도망치듯 피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15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토록 열렬하게 환영하던 인파가 왜 며칠 사이에 갑게 돌아서서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동참하였을까요? 그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이스라엘을 로마의 제에서 해방시켜줄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28:08) 마태복음 21장 9절 15절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그들의 기대와 전혀 다르게 타났습니다. 여기서 비롯된 실망은 예수님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고 결국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게 하였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기대를 따라 행동하셨다면 거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이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평화를 성취하셨습니다.
연약한 예수 안에 있는 구원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는데도 불구하고 실현된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것은 총과 칼 같은 무기들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뜨린 이기심과 적대감 때문입니다.
(29:09) 인류를 커다란 비국으로 몰아넣었던 제2차 세계대전도 알고 보면 열강들의 경제적인 이해가 충돌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발달한 공업 기술로 생산한 많은 소비제들을 다른 나라의 비싼 값으로 팔고 갑싼 노동력과 원자재들을 싼 값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추구한 패권주의의 충돌이 가져온 비극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 서로 무장을 해제하자. 적대국들이 서로 무기를 버리고 세월이 흐르면 전쟁을 하려고 해도 무기가 없어서 싸울 수 없는 세상이 오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모르는 데서 비롯된 환상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상 세상의 평화는 단 한 번도 무기 개발 포기 선언이나 국제 평화 조약을 통해 성취된 적이 없습니다.
(30:03) 세상의 전쟁이 그치지 않는 것은 대량살상 무기가 존재에서가 아니라 인간 본성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판단에는 연약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어리석고 실망스러운 방법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구원의 길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본질적인 변화를 통해서 변화된 세상을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어 해결하고자 하셨던 것은 바로 죄의 문제였습니다.이 이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조하게 오셨습니다. 영광과 능력을 버리시고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은 모습으로이 땅에 오셨습니다. 신성을 인성 아래 감추시고이 세상에 오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불행의 근본적인 원인인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셨습니다.
(31:02)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에 받쳐지던 재물이 사자같이 용맹스러운 맹수가 아니라 아무 힘도 없는 어린양이었던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이미 구약의 제사제도가 인간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실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 옛날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하여 들여지던 재물들은 특이하게 주목할 만한 아름다움이나 풍를 가진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비둘기, 양, 염소, 소등. 사람들이 끌고 가면 끌려가고 죽이면 죽임을 당하는 힘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의 모습, 예수 그리스도의 겉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기대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자신의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마음을 닿는 사람들의 결국은 사망입니다.
(32:03) 고린도서 4장 4절 계시록 21장 8절.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고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찬송하고 경배합니다. 그 힘 없어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모든 죄 가운데서 건져준 구속의 능력을 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무엇이라고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분을 연한 순각 말해도 우리는 그분을 통해 여호와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찬송할 것이며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다고 말해도 우리는 그분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노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편견 때문에 보지 못하는 연약한 예수 안에 감춰진 구원을 우리는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32:54) 외면당한 메시아.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였습니다. 그들은 왜 그리스도를 박하였을까요? 메시아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것이 없어 마음에 차지 않으면 그저 믿지 않으면될 일이었습니다. 그분이 연한순과 같아 믿음스럽지 못하다면 자기들의 인생을 의탁하지 않으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단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은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핍박했습니다. 인생은 단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든가 핍박하든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든가 부끄러워하든가 둘 중 하나이지 중간은 없습니다.
(33:48) 만약 중립을 취할 수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리하였을 것입니다. 무관심할 수 있었다면 무관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항상 신성이 인성 아래 감추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여러 차례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요한복음 4장 46절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마가복음 2장 5절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도 하셨고 요한복음 11장 43절 귀신 들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구해주기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35절.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풍랑이는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마태복음 8장 26절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수만 명의 사람을 먹이는 이적을 베푸시기도 하셨습니다.
(34:45) 요한복음 6장 11절. 그런데 그런 놀라운 일들을 보았음에도 세상은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의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음속에 그린 거짓된 메시아 때문에 참된 구원자를 버렸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예수님이 자기들이 원하는 메시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번이 바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때였습니다. 마태복음 21장 9절. 그분이 입성하시면 이제 그 놀라운 권능으로 정계를 개편하시고 자신들이 미워하는 대적들을 멸하고 이스라엘을 굳게 세워 잃어버린 다 왕국의 영광을 다시 가져다 주시리라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35:32)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예수님께서 그들이 부르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외침에 별로 귀기울이지 않으셨던 것은 그들이 바라는 메시아일 수 없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종료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날을 외치던 그 사람들이 며칠 그분을 십자가에 못게 해달라고 외쳤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2절. 예수님께서 나눠 주시는 물고기와 보리떡을 받던 그 손으로 그분을 찾으며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찬송하던 그 입으로 그분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조롱했습니다. 그것이 이것이 세상이 메시아를 향하여 한 일이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무슨 나쁜 일을 행하셨습니까?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영광의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36:30)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가장 궁핍하고 연약한 모습으로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참 인간으로이 세상을 살아가며 인간이 겪는 모든 슬픔과 고난에 참하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이 사람들을 끌어들과 함께 먹고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시고 모든 것을 버리신 예수님을 향한 세상의 마지막 대접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었습니다. 골고다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분을 못박은 자들의 생명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은 자기의 일한 생명을스로인 사람들이었습니다.
(37:23) 5장 26절, 6장 33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세상이 행한 일은 멸시하고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시댁건 그리스도의 복음이 환영받는 때는 없었습니다. 십자가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저주와 모욕을 받았던 것처럼 지금도 복음은 거절당할뿐 아니라 멸시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낮아지심.
그러므로 우리는이 세상에서 복음 때문에 부당한 대접을 받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이 세상의 눈으로 흠무할 만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지 마십시오. 세상이 볼 때에 고운 풍채와 아름다운 모양을 갖춘 메시아를 찾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당장 여러분 앞에 나타나신다 할지라도 그분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38:2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 7절 그분의 외모에는 흠무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으나 우리는 개이치 않습니다. 그분은 하늘 영광을 버리고난 구유에 오셨지만 우리는 경배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단지 나사렛의 몫자라셨지만 우리는 그것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분의 철라한 인성 뒤에 감춰진 찬란한 신성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박해하고 멸시하는 그분을 인하여 우리가 지금 실제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까지 낮아지신 것은 모두 우리를 위해서였습니다.
(39:13)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었다면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처지를 절망적이라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해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빛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에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3장 10절에서 18절 말씀 이러한 악과 고통과 비참함의
(40:15) 상태로부터 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고통스럽게 살다가 영원한 형벌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스스로 낮아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연한 순과 같고 마른 뿌리와 같고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어야 했던 이유는 사실 그분 자신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그분은이 세상의 안목으로는 전혀 주목할 거리가 없는 모습으로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세상은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기에 그분을 싫어했습니다.
(41:04)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그렇게 오셔서 질고를 겪으셨기에 그분을 자랑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임을 당하셨기에 그분의 사랑에 감합니다. 우리는 연한숨 같은 주님 바른 땅에서 나온 뿌리와 같은 주님을 보며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습니다. 가망없는 죄인들인 우리 때문에 그분은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에 머리둘는 나그네와 같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58절.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죄 가운데서 멸망에 이르는 것을 두고볼 수 없으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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