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26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12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이 새벽, 저희를 깨워 주님의 전으로 나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시작되는 이 시간에, 우리의 마음도 주님 앞에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저희의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분주했던 생각과 염려를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삶의 무게로 지쳐 있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몸과 마음이 아픈 성도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치유의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일들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을 향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삶의 모든 순간이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주님 앞에 드리는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을 드립니다.
이 헌금을 드리는 손길마다 주님을 향한 믿음과 감사가 담겨 있음을 아시오니,
그 중심을 기쁘게 받아 주시고, 드린 기도제목들을 주님의 때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물질이 아니라 마음을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시고,
이 헌신을 통해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심한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같은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았고, 이방인들에게 쫓겨 다녔고, 감옥에도 갇혔습니다.
또, 굶주렸고, 배가 부서져 바다에서 죽을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한편, 이 편지를 읽는 고린도 교회 안에는 당시 헬라 철학의 영향을 깊이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헬라 철학은 ‘영혼은 깨끗하고 좋은 것이지만, 몸은 더럽고 나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몸으로 짓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삶을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신앙을 가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상황속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처럼 한쪽에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잘못된 신앙 가운데 살아가는 상황 속에서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믿는 사람이 평생 붙잡아야 할 한 가지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땅에 살아가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그렇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삶의 동기가 잘 못되어 있으면 고난이 찾아올 때 쉽게 포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바울은 주님을 위해 살아갔지만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어떤 마음이었길래 끝까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바울은 지금 “차라리 이 몸을 벗고 주님과 함께 있고 싶다”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 고백은 매도 맞고, 배도 고프고, 감옥 생활도 너무 힘드니까 그냥 다 포기하고 싶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가 담대하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담대하다' 번역된 원어의 의미는 단순히 겁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확실한 근거가 있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앞 구절에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5:5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이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기 때문에, 바울은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죽음보다 더 큰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 몸을 벗고 나면, 사랑하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하게 된다는 확신이었습니다.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 형편이 어떤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와 함께 있는가'였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고 싶은 이유가 천국에 좋은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신 '주님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와 함께 있는 것", 이것이 바울이 가진 소망의 전부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 집사도 그러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어가는 그 끔찍한 순간에 스데반의 시선은 날아오는 돌이 아니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다는 소망이 스데반의 시선을 붙잡았을 때, 그는 자기를 치는 사람들까지 용서하며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힘에 부칠 때가 참 많습니다.
물질 때문에, 건강 때문에, 자녀 문제 때문에, 사람 관계 때문에 깊은 한숨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힘든 '상황'이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된 분명한 '소망'입니다.
"나는 결국, 나의 전부이신 주님과 영원히 함께하게 된다."
이 확신이 흔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버거운 오늘 하루를 넉넉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망을 분명히 가진 사람은 이 땅에서 사는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9절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 있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바울은 자신이 살아서 이 몸 안에 있든, 죽어서 주님 곁에 가든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힘쓴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힘쓴다'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 뜻이 아니라, '명예를 구하다, 야심을 갖다'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한 목표다"라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돈을 더 많이 버는 것,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이름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유일한 목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구원을 '따내기 위해서', 하나님께 점수를 쌓기 위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이렇게 사는 이유는 단 하나, 주님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9장을 보면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려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7년 동안 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7년의 시간을 창세기 29:20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그것은 짐이 되지 않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죄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그 하나님이 너무 좋기 때문에, 온 삶을 다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론 3 – 우리는 반드시 주님 앞에 섭니다 (10절)]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하는 또 하나의 분명한 이유가 10절에 나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성경은 "우리가 다 반드시 주님 앞에 선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아무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심판대'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내가 지은 잘못이 많은데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이 심판은 지옥에 떨어지느냐 마느냐를 가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로마서 8장 1절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10절에 '심판대'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베마(βῆμα)'입니다. 그런데 이 베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죄를 심문하는 법정의 심판대가 아닙니다.
당시 고린도 도시 한가운데 광장에는 높이 올라간 단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을 '베마'라고 불렀습니다.
이 베마는 재판관이 앉는 자리로 쓰이기도 했지만, 고린도에서 열리던 큰 운동 경기에서 이긴 선수에게 월계관을 씌워주고 상을 주는 '시상대'로도 쓰였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베마는 바로 이 시상대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그리스도의 베마 앞에 선다." 이 자리는 우리의 잘못을 하나하나 꺼내서 벌을 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몸을 입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위해 살아온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세상에서 얼마나 크고 대단한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며 살았는가"가 밝히 드러나는 시상대입니다.
[적용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오늘 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크고 대단한 일을 해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아주 단순합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양심을 지키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 화가 올라올 때 주님을 떠올리며 거친 말을 한 번 참고 부드럽게 넘기는 것. 가족에게 짜증 대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직장에서, 일터에서 내게 맡겨진 일을 대충하지 않고 성실하게 해내는 것. 그리고 오늘처럼 하루의 첫 시간을 떼어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시작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큰일을 해냈는지를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작은 일을 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했는가"를 보시는 분입니다.
바울도 스스로 영웅이 되거나 대단한 업적을 남기려고 살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고, 배신과 굶주림과 매 맞음 속에서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놓지 않았고,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기준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해야 하니까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잘 살아서 구원을 얻어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의 은혜로, 자격 없이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아는 사람, 정말로 십자가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이전과 똑같이 살 수 없습니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은 우리를 짓누르는 짐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삶의 방향입니다.
오늘 하루 세상으로 나가실 때, 바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어떤 선택의 순간이 오거든 이 한 가지만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이 말, 내가 지금 하려는 이 행동, 이것이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가?"
이 한 가지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우리의 하루를, 주님은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그 영광스러운 시상대 앞에 서는 날, 주님은 우리의 작고 평범했던 날들 속에 담긴 사랑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시고, 두 팔을 벌려 우리를 맞아주실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도 나의 작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의 방향을 다시 바로잡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왜 그렇게 살아가느냐를 보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의 목적이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게 하시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든 것들이
억지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힘들고 버거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의 시선이 상황이 아니라 주님께 향하게 하시고,
“주와 함께 있는 것”이 우리의 참된 소망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될 그날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작은 일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