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도의 숨이 막힐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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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s 8:26–27 NKRV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Intro

오늘 이 목요일 아침,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낍니다.
각자의 삶이 얼마나 빠듯하고 고단한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 바쁜 발걸음을 잠깐 멈추고,
내 이름이 아닌 누군가의 이름을 들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아파하는 지체들을 위해,
방황하는 다음세대를 위해,
북한 땅과 교회와 이 나라를 위해
기꺼이 기도의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사실 이 자리에 오시기까지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몸이 피곤하셨을 수도 있고,
어제도 오늘도 해결되지 않은 내 문제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신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 앞에 드리는 고백입니다.
'주님, 저는 오늘도 이 자리에 있겠습니다' 하는 고백.
그런데 솔직히 여쭤봐도 될까요?
이렇게 결단하고 기도의 자리에 앉았는데,
막상 눈을 감으면 막막해질 때가 있지 않으십니까?
누군가의 아픔이 너무 커서 어디서부터 기도해야 할지,
어떤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 그 순간.
가슴은 답답한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그 느낌.
'내가 더 뜨겁게, 더 오래, 더 유창하게 기도했더라면
저분이 낫지 않았을까.'
혹시 이런 무거운 마음이 드신 적 있으십니까?
오늘 로마서 8장은 바로
그 자리에 계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건네시는
가장 따뜻한 말씀입니다.

1.  우리의 연약함을 가장 잘 아시는 분

바울 사도는 26절에서 우리의 현실을
아주 솔직하게 들여다봅니다.
Romans 8:26 NKRV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우리'라는 말에 주목해 주십시오.
바울 자신도 포함입니다.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감옥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그 바울도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다가 말문이 막히는 것은,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사랑이 식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피조물인 우리가 가진
가장 자연스러운 한계입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의 흐름을 조금 더 넓게 보면,
바울은 이 말씀 앞에서 '현재의 고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탄식하고, 우리 자신도 탄식하는
그 현실 속에서 이 말씀이 나옵니다.
중보기도가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우리가 품고 기도하는 그 사람들의 고통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아픔을 끌어안으면
진짜로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환우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이 기도가 정말 하나님의 뜻에 맞는 건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끌어안고 기도하다가
오히려 내 마음이 먼저 무너져서
그냥 눈물만 흘리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중보의 자리에 선 우리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솔직한 고백을
부끄러운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내 한계를 인정하는 그 순간이
사실은 가장 정직한 기도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기도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그 부서진 마음, 말문이 막힌 탄식,
무릎 꿇은 그 자세 자체를 이미 다 보고 계십니다.

2.  성령님이 내 숨을 대신 쉬어주십니다

26절 하반절을 보겠습니다.
Romans 8:26 NKRV
…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병원 중환자실에 가보시면,
스스로 호흡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산소호흡기를 달아줍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정신 차리고 숨을 쉬어봐요'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조용히 기계를 연결해서 환자의 폐가 쉬지 못할 때
대신 숨을 불어넣어 줍니다.
오늘 이 말씀이 바로 그겁니다.
기도의 숨이 막힐 때,
성령께서 우리의 그 탄식을 붙들고
직접 하나님 앞에 가져가십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는 표현을
잠깐 더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깊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다가
말이 끊기는 그 자리에서,
성령님은 오히려 가장 깊은 차원의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언어가 멈추는 곳이
성령님의 기도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우리가 '아이고 주여…' 하는
그 한마디조차 성령님이 다 들으십니다.
이웃의 아픔을 붙들고 흘리는 눈물 한 방울,
다음세대를 생각하며 내뱉는 무거운 한숨도
성령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가 그 탄식을 품고 기도의 자리에 앉는 순간,
성령님이 그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가장 아름다운 기도로 올려드리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앉아 계신 분이 계시다면,
그분이 오히려 가장 깊은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그 침묵 속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기도의 숨이 막히는 그 자리에서,
성령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억지로 유창한 기도를 지어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할 말이 없으면 그냥 그 영혼을 마음에 품고
조용히 앉아 계셔도 됩니다.
그 침묵 속에서 성령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오히려 중보기도의 자리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기도를 잘하고 있다는 착각,
내가 기도했으니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기대,
이것들이 더 위험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유창함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통로로 삼으십니다.

3.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27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기도를 어떻게 받으시는지를 알려줍니다.
Romans 8:27 NKSV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솜씨를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기도의 분량을 재시는 분도 아닙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우리의 그 애타는 마음,
그 안타까움, 그 눈물.
그 마음이 이미 하나님의 마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마음을 살피신다'는 것은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지 모릅니다.
내가 오늘 기도를 잘 드렸는지,
충분히 오래 기도했는지,
올바른 언어로 기도했는지,
그것을 하나님이 채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 뒤에 있는 마음을 보십니다.
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낫게 되길 바라는 마음,
하나님이 함께하시길 바라는 그 마음.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혹 잘못된 방향으로 기도할 때도,
성령님은 그 기도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걸러서 올려드리십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연민이나 욕심의 찌꺼기들까지
다 정화해서 가장 깨끗한 기도로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조금 빗나가도,
성령님이 그것을 바로잡아
가장 완전한 방향으로 올려드리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든든한 보증입니까.
제가 청소년부 사역을 할 때 이야기를
잠깐 나눠도 될까요?
수험생들을 위한 기도회를 열면
아이들이 와서 기도를 받았습니다.
저는 사역자로서 최선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붙게 해주세요, 꿈을 펼치게 해주세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하고 삼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너무 무너졌습니다.
'내가 기도를 잘못한 건가. 내가 부족한 건가.'
그런데 그때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저는 제 기도가 뭔가를 바꿀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 아이의 대학 합격 여부가
내 기도의 품질에 달려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거였습니다.
그건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생각을 내려놓는 순간,
전혀 생각지 못한 기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 아이의 삶을 주님께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성장하게 하시고,
어떤 결과가 와도 하나님이 내 인생을
반드시 책임지신다는
믿음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게 제가 드린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이 저를 통해 드리신 기도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중보기도가 뭔지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품고 있는
기도 제목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떻게 기도해야 저 사람이 낫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이 상황이 풀리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영혼을 가슴에 품고 성령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님이 우리를 통로로 삼아
가장 완전한 기도를 드려주십니다.

Outro

오늘 이 자리에 오시면서
혹시 이런 마음을 품고 오셨나요?
'내가 더 뜨겁게 기도해야 저 환우가 낫겠지.
내가 더 오래 부르짖어야 교회가 바뀌겠지.'
그 마음, 지금 이 자리에서 다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은 딱 하나입니다.
우리 가슴에 품고 온 그 이름들,
그 얼굴들을 성령님께 조용히 건네드리는 것입니다.
할 말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눈물만 흘러도 괜찮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어도 괜찮습니다.
성령님이 이미 그 마음을 보고 계시고,
우리 안에서 가장 완전한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다.
중보기도는 내가 강해져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힘이 다 빠진 곳에서,
성령님의 크신 은혜 안에 조용히 기대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대는 것이
이미 가장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눈물만 흘리고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 눈물을 성령님이 이미 하나님께
올려드리셨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 저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품은 이 영혼들을
주님께 건네드립니다.
이 애타는 마음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나를 통로 삼으사 주님의 뜻대로 간구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두 손을 내려놓을 때,
성령의 기도가 우리 안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이 귀한 자리를 지켜주신
여러분과 함께 은혜 안에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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