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27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436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이 새벽 저희의 눈을 열어 주님의 전으로 이끌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의 소리가 잠잠한 이 새벽, 오직 하나님의 음성만 듣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셔셔,
이 새벽기도회를 통해 우리의 영혼이 새 힘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병상에서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베풀어 주옵소서
또한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마음속에 깊은 상처와 근심을 안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삶의 무게에 눌려 지쳐 있는 이들,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 있는 이들과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이들 곁에 함께 하여 주셔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느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아픈 몸에는 회복을, 지친 마음에는 위로를, 흔들리는 영혼에게는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또한 이 새벽 은혜를 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때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허락하신 그 삶의 터전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일천번제와 감사헌금을 올려 드립니다.
넉넉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신뢰해서 드리오니 이 예물 기쁘게 받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이 마음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그리고 이 예물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귀하게 쓰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어제 우리는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우리의 삶이 자연스럽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의지와 사랑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사랑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는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마음이 식어버리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결심이나 열심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이 지금도 우리르 붙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에 붙들린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는지,
그리고 그 변화된 사람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을 비난하는 거짓 교사들이 존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외모와 말 하는 것을 문제 삼으며 바울을 무시하였고, 심지어 바울이 미쳤다고 조롱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말솜씨를 기준으로 바울을 판단하면서 바울의 사도권을 무너뜨리려 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했던 성도들에게 의심을 받는 억울한 상황속에 있었습니다.
누가봐도 낙심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흔들리지 않고 11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여기서 두려우심으로 번역된 원어는 단순히 무서워 떠는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크심을 알기에 함부로 살 수 없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 앞에 반드시 서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경외심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 두려우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평가나 조롱에 자신의 삶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사람이 뭐라고 하느냐 보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떻게 서게 될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억울한 상황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 나갔습니다.
[본론 2: 나를 몰아가는 그리스도의 사랑 (쉬네케이)]
[본론 2: 나를 몰아가는 그리스도의 사랑 (쉬네케이)]
그리고 바울이 흔들림 없이 사역할 수 있었던 또하나의 이유가 14절에 나옵니다.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움직이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고백 한 것 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나 결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권하시도다'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사방에서 꽉 에워싸다', '한 방향으로 강하게 몰아가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거센 강물 한가운데 서 있으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물결이 흐르는 방향으로 떠밀려 가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의 삶이 이와 같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의 오해와 조롱 속에서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자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바울 자신의 인내심이 강해서도 아니고, 바울의 의지가 대단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사방에서 바울을 에워싸고, 붙들어서 복음을 전하는 자리로 끊임없이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결심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붙들고, 주님을 향해 살아가도록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린 사람에게는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7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피조물’은 단순히 고장 난 것을 고쳐 쓰는 수준이 아닙니다.
부분적으로 조금 나아진 정도가 아니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새롭게 창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분명한 변화는 바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입니다.
16절에서 바울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한다”고 말 합니다.
이전에는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보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는 기준이 그 사람이 돈이 많은지 적은지, 성공을 했는지 못했는지,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또 나에게 유익이 되는지 아닌지에 따라 사람을 평가 하였습니다.
바로 고린도 교회의 거짓 교사들이 바울을 판단했던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사람은 더 이상 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연약하고 부족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래서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존귀한 영혼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변화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린 사람이 갖게 되는 새로운 시선입니다.
이처럼 시선이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피조물에게 하나님은 한 가지 직분을 맡기십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런 이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화목이라는 단어는 원수 관계에 있던 두 사람이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끊어졌던 관계가 이어져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먼저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그 은혜를 경험한 우리가 세상으로 나아가 깨어진 관계를 이어주는 ‘화목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구약의 요셉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훗날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극심한 흉년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온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렸습니다.
요셉은 얼마든지 형들에게 복수할 수 있었습니다.
육신을 따라 판단했다면 형들은 원수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창세기 45장에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상처와 억울함이라는 세상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 원수 같았던 형들을 용서하고, 깨어진 가족을 다시 하나로 묶어내는 화목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피조물에게 맡겨진 삶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린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속에서 누군가를 요셉처럼 용서하고,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은 우리의 본성으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1절은 우리가 이 화목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분명한 근거를 보여줍니다.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죄를 전혀 알지 못하신 분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은 죄를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으신, 완전히 거룩하고 깨끗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죄 없으신 예수님을 우리를 대신하여 집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시고,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미시고 원수 되었던 괸계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은 우리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 사랑, 그 용서의 은혜를 깊이 깨달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를 붙들고 이끌어 갈 때, 우리는 비로소 먼저 화해를 청하는 사람, 화목을 이루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속으로 보내심을 받아, 깨어진 관계를 이어가는 화목의 사명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가족 가운데, 직장과 일터 가운데 아직도 껄끄럽고 깨어진 관계가 남아 있지는 않은지 한주간의 삶을 되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사람을 볼 때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시고,
나를 은혜의 자리로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내 죄를 대신 지신 예쉰ㅁ의 용서를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용서를 구하시고, 또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터전에서 우리가 화목을 이루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기뻐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진정한 화목의 도구로 쓰임 받는 복된 하루를 살아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사람을 용서하고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변화시키는 줄 믿사오니,
자격 없는 우리를 먼저 용서하시고 화복하게 하신 그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시선을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이 사랑하시는 존귀한 영혼으로 보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에게 맡겨주신 화목의 사명을 기억하게 하시고
깨어진 관계 속에서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미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사랑에 이끌려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화평이 흘러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