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에서 생명으로 가는 부활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809 views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View more →
영생에 대한 문제는 복음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말씀하시던 예수께서는(19-23절) 자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궁극적인 문제는 바로 ‘영생’에 대한 것이다. 본문은 영생이란 어떤 것이며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영생을 얻은 결과는 무엇이며 영생을 얻는 시기는 언제인가에 대하여 언급하고 계신다. 이러한 말씀은 예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거하시기 위하여 하신 말씀이다. 상고해 보기로 하겠다.
1. 영생이란 무엇인가(영생의 본질)?
영생의 부활로 나오리라
가.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이 있다.
1) 영생이란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이다.
26절,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26절).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이란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을 말한다. 이 생명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어졌다(참조, ). 그러므로 이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주어진다.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은사다(참조, ). 영생이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참된 지식이며(참조, ) 영혼이 추구하고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의지다.
본문은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영생의 부활에 참여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동시에 심판의 주님도 되신다. 그러므로 심판을 피하고 영생의 부활에 참여하려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의 말씀이다.
2) 영생이란 영적이며 영원한 생명이다.
이 ‘생명’은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으로서 영적인 생명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이다(참조, ). 그러므로 또한 영원하다. 죽음이 없으므로 영원하며 끝이 없으므로 영원하다. 죽음에서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영원한 생명만이 영원히 지속될 가치가 있다. 영원한 생명은 죽음과 심판으로부터 분리된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이다. 단절이 없는 생명이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이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생명을 그 아들 예수님에게 주셨다. 따라서 예수님께 생명이 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다().
3) 영생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님께 속한 사람은 이미 생명을 가졌고 그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주님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현재)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완료)”라고 하셨다(24절). 예수님을 떠나서는 생명이 없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인간은 그의 영원한 생명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음으로써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과의 동화를 의미한다. 이처럼 영생은 하나님과 하나 된 생명이므로 자기 충족의 생명이다. 하나님과의 동화는 완전한 생명의 충족이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은 심판주도 되신다.
2.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이 있다.
27절,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6절,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영생을 주시는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심판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심판하는 권세도 주셨다. 여기서 ‘인자됨으로’라는 말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수님은 고난의 종(인자)으로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대속제물로 주셨다. 십자가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총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십자가가 심판의 상징이다.
본문은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영생의 부활에 참여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동시에 심판의 주님도 되신다. 그러므로 심판을 피하고 영생의 부활에 참여하려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의 말씀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을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하였다(). 또 그는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그 왼편에 두리라”고 하였다(). 주님은 구세주인 동시에 심판주이시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만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에서 흐트러진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된다. 그는 심판주도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심을 다해야 한다. 영적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생명을 그 아들 예수님에게 주셨다. 따라서 예수님께 생명이 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다().
3.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 속한 사람은 이미 생명을 가졌고 그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주님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현재)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완료)”라고 하셨다(24절). 예수님을 떠나서는 생명이 없다.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3. 예수님은 심판주도 되신다.
27절,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성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영생에 이르려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주님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다. 여기서 ‘듣고’(아쿠오)는 ‘순종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믿음에 앞서 ‘내 말을 듣고’를 강조한 것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이라야 구원받는 믿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여기서 말을 ‘듣고’(분사, 현재)는 말씀을 듣고 계속하여 묵상하며 삶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누가복음에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는 말씀을 듣고(분사, 현재) 행하는(분사, 현재) 사람이다. 그러나 흙 위에 집을 지은 자는 말씀을 듣고(분사, 과거) 행하지(분사, 과거) 않는 사람이라고 하였다(-49참조). 야고보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였다(). 진정한 믿음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영생을 주시는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심판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심판하는 권세도 주셨다. 여기서 ‘인자됨으로’라는 말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수님은 고난의 종(인자)으로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대속제물로 주셨다. 십자가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총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십자가가 심판의 상징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을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하였다(). 또 그는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그 왼편에 두리라”고 하였다(). 주님은 구세주인 동시에 심판주이시다.
4. 선한 일을 행하면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
29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만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에서 흐트러진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된다. 그는 심판주도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심을 다해야 한다. 영적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사람은 누구든지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말씀에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다(). 그런데 선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된다.
3.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생명의 부활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고, 심판의 부활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심판의 부활과 둘째 사망은 같은 것이다. 믿음을 지켜 둘째 사망의 해를 피해야 한다.
본문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분사) 자나 악을 행하는(분사) 자나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꾸준히 선을 행하는 사람과 지속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나타난다. 오직 부족한 것이 많을지라도 말씀에 따라 꾸준히 선을 행하는 믿음의 사람만이 생명의 부활로 나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성도가 누릴 영원한 안식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영생에 이르려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주님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다. 여기서 ‘듣고’(아쿠오)는 ‘순종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믿음에 앞서 ‘내 말을 듣고’를 강조한 것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이라야 구원받는 믿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여기서 말을 ‘듣고’(분사, 현재)는 말씀을 듣고 계속하여 묵상하며 삶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누가복음에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는 말씀을 듣고(분사, 현재) 행하는(분사, 현재) 사람이다. 그러나 흙 위에 집을 지은 자는 말씀을 듣고(분사, 과거) 행하지(분사, 과거) 않는 사람이라고 하였다(-49참조). 야고보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였다(). 진정한 믿음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이다.
영생을 얻는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25절).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는 때다. 영생은 사후에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 얻는 것이다. 이 영원한 생명은 거듭날 때 얻는다. 그러나 이 생명은 부활할 때 완성된다. 그것은 영적 생명이 물질적인 세계에서는 완성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4. 선한 일을 행하면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
29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사람은 누구든지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말씀에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다(). 그런데 선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된다.
1) 생명의 부활로 보상받음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28절) 가까워 온다고 하셨다. 즉 오늘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인정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은 현세에도 영생을 누리지만, 장차 무덤 속에서도 ‘선한 부활체’로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선한 일을 행한’(29절) 결과로 ‘선한 부활’을 얻게 된다고 했다. 즉 내세의 보상은 현세의 결과라는 의미이다. 이 말씀은 현세는 악하고 내세는 평화로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본주의 철학적 내세관을 책망하시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오늘 현세에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음성을 자신의 삶에 ‘절대적 음성’으로 여기고 순종하는 자가 내세에서도 의와 평강과 영광으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2) 심판의 부활로 보응 받음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29절) 나오리라는 이 말씀은 유대인이면 모두 내세에서는 무조건 심판받지 않는다고 여겼던 당시 신앙 풍조를 책망하신 것이다. 오늘 내가 진리를 사랑치 못하면 내일은 심판의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다.
생명의 부활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고, 심판의 부활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심판의 부활과 둘째 사망은 같은 것이다. 믿음을 지켜 둘째 사망의 해를 피해야 한다.
본문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분사) 자나 악을 행하는(분사) 자나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꾸준히 선을 행하는 사람과 지속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나타난다. 오직 부족한 것이 많을지라도 말씀에 따라 꾸준히 선을 행하는 믿음의 사람만이 생명의 부활로 나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성도가 누릴 영원한 안식이다. 오늘 이 부활절에 우리 성도들의 삶이 부활의 삶으로, 생명의 부활로 나아와서 이전보다 훨씬 더 나아지고, 기쁨으로 충만해진 삶을 살기를 축원한다. - 아 멘 - 
file:///C:\Users\sec\AppData\Local\Temp\Hnc\BinData\EMB00002fd06cf1.jpg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