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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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고난
예수의 고난
(슬라이드1)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고난주간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선생님들은 교회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기도 하고, 나를 구원하신 예수께 대해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기도 하면서 이 시기를 보냅니다. 그런데 솔직히, 여러분 고난주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예수께서 고난받으셨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의 고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의 고난이 나의 삶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줍니까? 오늘은 이것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메시지를 통해 삶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질문하겠습니다.(슬라이드2) ‘십자가’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이번에는 비슷하지만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슬라이드3) ‘온 세상을 구원한 메시야(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시 사람들은 어떤 것을 떠올렸을까요?
오늘 바울은 본문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려줍니다.(슬라이드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유대인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바울은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슬라이드5)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이방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
유대인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
(슬라이드6) 유대인에게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메시아에게 기대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크게는 두 가지로 나누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제가 몇 번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유대인들은 수백 년에 걸친 시간 동안 식민지 민족으로 살아왔습니다. 중간에 마카비우스라는 사람이 혁명을 일으켜서 하스몬 왕조라는 독립국가를 잠깐 이룬 적은 있지만, 곧 로마의 식민지로 다시 전락하고 말았어요. 그 말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의 가장 큰 덕목은, 유대인들의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셨던 약속, 다윗 왕족의 왕위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그 약속을 메시아가 성취할 것이다. 이것이 메시아에 대한 가장 큰 기대였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들어가실 때, 군중들은 환호했습니다. ‘드디어 메시아가 우리를 구원하러 들어오시는구나! 식민시 생활이 끝나겠구나!’ 그런데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군대를 소집한 후에 총독과 분봉왕을 몰아내고 유대인의 나라를 일으키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무기력할 정도로 붙잡히시고, 정치범이라는 억지 죄명을 뒤집어 쓰고 십자가에 달려서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했어요. 유대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를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2) 주후 1세기 유대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슬라이드7) 하나는 성전, 하나는 토라(율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서 망했구나. 율법을 엄격하게 지켜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야겠다.’ 이것이 바리새인을 비롯한 포로기 유대인들의 사고를 지배하던 중요한 생각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구원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어요. 야웨의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데, 이방인들은 율법을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스스로를 ‘율법을 완성하러 온 자’로 규정하셨습니다. 그런 분이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스스로 달리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율법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던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견딜 수 없는 걸림돌이었던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어리석어 보이는 것
이방인에게 어리석어 보이는 것
(슬라이드8) 그렇다면 예수의 십자가가 다른 한편으로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방인, 특히 헬라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신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헬라인은 도덕성을 딱히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람보다 뛰어난 존재로 여겨지는 신들조차 간음, 살인에 대해 굉장히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그리고 실제 사람들의 삶에서도 도덕성이 그 사람의 평판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이성이었습니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능한가? 이것이 그들의 사고에 핵심적인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공부를 열심히 안 해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유명한 고대 철학자들이 있지요? (슬라이드9)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 같은 메이저 철학자들 외에도, 헬라 그러니까 그리스에는 논리와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철학자들이 차고 넘쳤고, 이같은 사고는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문화 전파로 인해 유대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만연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구원했다고 하는 신을 숭배하는데, 그 신은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었다.’ 이 말을 들은 헬라인들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헬라 철학자 중에 켈수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요. “죽은 사람을 실재로 예배하는 자들” 실제가 아니라 실재입니다. 죽어서 사라진 사람을, 마치 살아있는 사람인양 숭배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조롱입니다. 이것이 예수에 대한 헬라인들의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그림 하나를 보겠습니다.(슬라이드10)
이 그림은 ‘알렉사메노스 낙서’라고 불리는 그림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당나귀를 숭배하는 남자가 보이시나요?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알렉사메노스가 (그의) 신을 숭배한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조롱, 그리고 예수에 대한 조롱이 이 낙서에 담겨있습니다. 이성과 논리로 세상의 가치를 판단했던 이방인들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슬라이드11) 하지만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에 대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자 하나님의 지혜’라고 합니다. 유대인과 헬라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인 너희는 이제 알아야 한다. 율법과 성전이 아니라, 저 십자가에 달린 무능해보이는 메시아가 바로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이다. 그리고 헬라인인 너희들도 이제 알아야 한다. 주님이라고 하는 자가 십자가에서 죽었고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아 보이지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지혜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우리가 믿는 분은, 우리가 만들어 낸 예수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수인 줄 믿습니다. 그분은 권력의 중심으로 가는 분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을 삶의 거처로 삼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메시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높은 위치에 올라가서, 유명해져서, 돈을 많이 벌어서, 그 다음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겠다.’ 예수께서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렇게 믿고 있다면, 그것은 진짜 예수가 아니라 여러분이 만들어 낸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예수 앞에 서게 된다면 제가 장담하는데 여러분은 예수께 이런 질문을 받을 겁니다. “니 누구? 나는 니 모르는데?”
또한 여러분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는 일들로 하나님을 종종 일하십니다. 이집트를 나오면서 홍해를 지날 때, 가나안에 들어가면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선봉대로 노래하는 찬양대를 세울 때. 모두가 ‘저런 뭐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지혜로 자신의 위대하심을 보이셨습니다. 그 연장선이자 정점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라는 수치를 통해 부활이라는 위대한 승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의 이성으로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신이라면 저는 그런 신을 믿지 않을 거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작은 신이라면 충분히 사람의 이성으로 대체 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슬라이드12)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예수가 정말로 어떤 분인지 다시 조명하라고 도전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각으로 가늠할 수 없는 분이시고, 우리가 ‘이건 좀 불편한 말씀인데?’하는 것들로 우리의 마음을 찔리게 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삶을 그분의 부르심 앞에 다시 발견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그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삶을 살게 하도록 초청하십니다. 여러분, 낮은 곳으로 갑시다. 변두리로 갑시다. 거기서 예수께서 사역하신 곳이고, 예수께서 계신 곳입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고난을 통해 승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설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예수께서 가신 길을 우리도 걷겠습니다 결단하는 시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기도
이렇게 기도합시다. 예수님, 당신이 어떤 분인지 내가 정말로 알기를 원합니다. 십자가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깨닫기를 원합니다. 낮은 곳으로 가는 것, 변두리로 가는 것, 이러한 것들이 나에게 불편한 마음을 주지만, 그것이 예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로 결정합니다. 나의 삶을 주의 뜻대로 다스려주십시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