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교 같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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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교 같은 믿음
제목: 아교 같은 믿음
본문: 사도행전 17:30-34
본문: 사도행전 17:30-34
찬송: 449장 예수 따라가며
찬송: 449장 예수 따라가며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어릴적 하의도 살 때 친구들과 함께 물가에 매여 있던 작은 쪽배에 올라타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작은 배에 앉아 있으면 친구들과 오대양을 다 배를 타고 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실컷 놀고 집으로 가기 위해 배를 육지에 묶어놓은 줄을 양손으로 꽉 잡고 힘껏 잡아당기면, 아주 묘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분명히 나는 가만히 있는 것 같은데, 저 멀리 있던 육지가 서서히 나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어린 마음에는 마치 제가 거대한 땅덩어리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실상은 땅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쪽배에 탄 제가 변하지 않는 육지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육지는 그 자리에 요지부동이었고, 움직인 것은 오직 저와 배뿐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내 형편 쪽으로, 내 계획 쪽으로 끌어당기려 합니다. 내 기도가 간절하면 하나님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참된 기도는 하나님을 내게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나를 변함없으신 하나님이라는 거대한 대륙으로 끌어당기는 과정입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며, 그분께 단단히 밀착되는 행위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아덴에서 겪은 일의 마지막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마지막 이야기는 아덴이라는 거대한 지성의 바다 한가운데서, 모두가 비웃으며 떠나갈 때 유독 주님이라는 대륙을 향해 밧줄을 잡아당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들이 가졌던 '아교 같은 믿음', 즉 기도를 통한 밀착의 신비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를 잇는 '영적 아교'
기도는 하나님과 나를 잇는 '영적 아교'
오늘 본문 34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가까이하여'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콜라오(κολλάω)'입니다.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아교로 물건을 단단히 붙이다' 혹은 '두 물체를 하나로 결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아덴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동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를 주님께 아교처럼 딱 붙여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아교의 아주 특별한 성질이 있습니다. 아교를 생각하면 강한 접착력을 먼저 떠 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아교는 전혀 다른 성질의 두 물질을 하나로 묶어, 전에는 없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점입니다. 평범한 돌가루가 아교를 만나면 수백 년을 가는 찬란한 단청이 되고 영원한 명화가 됩니다. 투박한 나무 조각들이 아교를 만나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이 됩니다. 돌가루나 나무 조각 그 자체로는 위대한 예술품이 될 수 없지만, 아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로 결합될 때 비로소 걸작품(Masterpiece)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기도는 무능력한 인간이라는 '흙'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생기'를 아교처럼 결합시킵니다. 보잘것없는 우리 인생이 기도로 주님과 밀착될 때, 우리는 더 이상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 닿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나를 바꾸어 하나님께 합당한 예술품으로 빚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교는 두 물체 사이에 이물질이 있으면 결코 붙지 않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죄의 먼지, 자기 의라는 이물질을 기도의 눈물로 닦아낼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과 단단히 결합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내 요구를 관철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 존재를 하나님의 심장에 아교처럼 붙여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명화로 만드는 신비로운 창조의 시간입니다. 기도의 아교가 마르지 않도록 날마다 무릎으로 주님께 밀착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밀착만이 주는 힘
기도의 밀착만이 주는 힘
사도 바울이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부활을 선포했을 때, 그 결과는 겉보기에 초라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은 바울을 조롱했고, 대다수의 사람은 "나중에 다시 듣겠다"며 자리를 떠났습니다. 아테네라는 거대한 도시 전체가 복음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차가운 조롱의 한복판에서 끝까지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레오바고 관리였던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인입니다.
두 사람이 남은 것은 단순히 바울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머문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밀착된 관계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시편 63편 8절에서 이 밀착의 신비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여기서 '가까이 따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크'인데, 이 역시 '아교처럼 착 달라붙다'는 뜻입니다. 주님께 아교처럼 밀착되어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것, 이것이 세상의 거센 압박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힘입니다.
깊은 바다 수천 미터 아래에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수압이 존재합니다. 단단한 무쇠로 만든 통도 순식간에 찌그러뜨릴 정도의 무시무시한 압력입니다. 그런데 신비하게도 그곳에 사는 심해어들은 그 압박 속에서도 찌그러지지 않고 유유히 헤엄칩니다. 그 비결은 그들의 가죽이 특별히 단단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그 몸속의 압력이 외부의 수압과 똑같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내부에서 밀어내는 힘이 밖에서 짓누르는 힘과 대등하게 맞서고 있기에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믿음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세상은 아덴의 조롱처럼 끊임없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네가 믿는 것이 진짜냐? 기도가 밥 먹여 주느냐?"라며 우리를 압박합니다. 이때 우리가 이 외부의 압력을 견디는 길은 내 의지를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로 주님께 밀착하여,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압력으로 내 내면을 꽉 채우는 것입니다. 기도가 깊어질 때, 우리 안에는 세상이 주는 조롱보다 더 큰 하나님의 평안이 차오릅니다. 밖에서 누르는 불신앙의 힘보다 안에서 밀어내는 은혜의 힘이 더 커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해집니다.
디오누시오와 다마리가 끝까지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남들보다 강철 같은 정신력을 가져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기도로 주님께 아교처럼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며 그분께 딱 붙어 있었기에, 아덴의 차가운 시선이라는 수압을 넉넉히 이겨낼 만큼의 내면의 힘을 소유했던 것입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꾸는 마법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나'를 만드는 능력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사랑하는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바울의 아덴 선교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로 주님께 밀착되었던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그 '소수'를 통해 아덴 교회가 세워졌고, 유럽 복음화의 불씨가 타올랐습니다. 하나님은 다수의 환호보다 주님께 아교처럼 붙어 있는 단 한 사람의 밀착된 영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우리는 쪽배에 탄 자들입니다. 인생이라는 바다는 늘 흔들리고 불안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는 대륙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제 기도의 밧줄을 힘껏 잡아당기십시오. 하나님을 내 뜻으로 끌어오려 애쓰는 수고를 멈추고, 나를 하나님의 거룩한 뜻으로 끌어당겨 밀착시키십시오. 서로 다른 성질의 흙과 생기가 만나 생명이 되듯,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이 기도의 아교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에 밀착될 때 여러분의 삶은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걸작품이 될 것입니다. 아교 같은 믿음으로 주님과 하나 되어, 어떤 수압과 역경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의 길을 걷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인생이라는 흔들리는 쪽배 위에서 늘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내 형편과 내 욕심 쪽으로 끌어당기려 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기도는 나를 하나님이라는 거대한 반석 위로 끌어당기는 밀착의 과정임을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사순절의 마지막을 보내며 우리의 기도가 더욱 단단한 아교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른다"고 고백했던 시인처럼, 우리 인생을 기도로 주님께 딱 붙여 주셔서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빚어 주시옵소서. 외부의 조롱과 압박이라는 수압이 우리를 짓누를 때마다, 기도로 주님께 밀착하여 내면의 평안과 능력으로 그 압력을 넉넉히 이겨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오른손에 붙들려 끝까지 견디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게 하옵소서.
아테네의 소수 신자들처럼,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가 주님께 밀착된 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의 능력으로 주님과 하나 되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하늘의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결코 놓지 않으시고 아교처럼 붙드시는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