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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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참된 '부활의 신앙'은 내 삶의 소유권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놓는 '죽음'을 전제로 하며,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는 이웃을 향한 자발적인 '나눔'의 삶으로 열매 맺게 됩니다. (부활의 삶으로 나눔이 시작된다)
성경 본문: 사도행전 4장 23-37절

[서론: 닫혀버린 지갑, 그리고 생존을 위한 발버둥]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도 이 치열한 세상 속에서 버텨내시느라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침 일찍 지옥철에 몸을 싣고, 늦은 밤까지 야근과 학업, 그리고 취업을 위한 여러 스펙을 쌓느라 고군분투하는 여러분의 뒷모습을 볼 때면 목회자로서 깊은 연민과 긍휼을 느낍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특히 청년 세대를 지배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단연코 '생존(Survival)'일 것입니다. 경제 성장은 정체되었고,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는 극심한 불안감 속에서, 여러분은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남보다 우위를 점할 수 밖에 없는 가혹한 무한 경쟁의 트랙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청년 세대에 관한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청년들의 모든 행위는 일종의 '서바이벌 생존법'으로 간주된다고 합니다. 해고당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전세 대출의 이자를 감당하려는 발버둥, 이 모든 것이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위한 사투인 것입니다.
이런 가혹한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우리 마음속에는 어느새 단단하고 차가운 이기주의의 성벽이 쌓였습니다. "남보다 앞서야만 이기고,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정글의 법칙이 우리의 신앙마저 잠식해 버렸습니다. 내가 흘린 땀과 눈물로 쟁취한 결과물에 대해 강렬한 보상 심리를 갖게 되었고, 누군가에게 나의 소중한 시간, 나의 돈, 나의 에너지를 나누어 준다는 것은 곧 경쟁에서의 도태요, 나의 생존 기반을 무너뜨리는 끔찍한 위협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갑을 닫았습니다. 마음의 문도 닫았습니다. 구역 모임이나 공동체 안에서도 겉으로는 웃고 예배드리지만, 누군가의 깊은 아픔과 궁핍에 내 것을 내어주어 동참하는 것은 꺼립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당장 내 앞가림하기도 벅찬데 어떻게 남을 돕느냐고 항변합니다.
이런 여러분을 향해 오늘 제가 "형제 자매를 위해 나누며 삽시다. 좀 더 헌신합시다"라고 윤리적인 훈계를 하려고 한다면, 생존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여러분에게 그런 도덕적인 권면은 어쩌면 무책임한 폭력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4장의 초대교회 성도들 역시, 지금의 우리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처절하고 끔찍한 생존의 위협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장 내일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핍박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기꺼이 팔아서 나누었습니다. 오늘 이 성경의 증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기꺼이 팔아 서로 나눌 수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본론 1: 나눔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인간의 전적 타락과 죄성]

초대교회의 영광스러운 나눔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우리는 성경이 진단하는 우리의 뼈아픈 진실을 직면해야 합니다. 우리가 타인과 나누지 못하는 이유,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 통장 잔고가 부족해서입니까? 세상이 너무 팍팍해서입니까?
성경은 인간의 이 깊은 문제를 예리하게 통찰합니다. 우리가 나누지 못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우리의 내면이 '전적으로 타락(Total Depravity)'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순종하여 진노의 심판 아래 놓인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죄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이 무엇입니까? 존 칼빈은 그것을 '자기 사랑(Philautia)'이라고 불렀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이 앉으셔야 할 내 삶의 왕좌에 '나 자신'을 앉혀 놓았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관자요, 내 인생의 통제권자라는 교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의 내면에는 끔찍한 '결핍의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지시고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 고아가 된 우리는 스스로 창고를 가득 채워야만 살 수 있다고 발버둥 칩니다. 내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면 내가 굶어 죽을 것 같은 공포, 남을 돌보다가 나만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은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죄인들이 겪는 영적 질병의 증상입니다. 나의 돈, 나의 직장, 나의 학벌이 나를 구원해 줄 메시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구조적인 문제와 팍팍한 현실을 핑계 삼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철저히 나 자신만을 사랑하는 영적 이기주의자들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우리의 전적인 타락과 영적 무능력을 로마서 3장 10-12절을 통해 명확히 선언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또한 우리의 뼛속 깊이 박힌 이기심과 탐욕에 대해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로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창고를 헐고 더 크게 지어 평생 먹고 쉴 곡식과 물건을 가득 쌓아두려 했던 부자에게 하나님은 누가복음 12:20 에서라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선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나오는 농부 바흠의 이야기는 이러한 타락한 인간의 맹목적인 탐욕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밟고 돌아오는 모든 땅을 주겠다는 제안에, 그는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는 탐욕에 눈이 멀어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결국 해가 지는 순간 출발선에 도착했지만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고, 그가 최종적으로 차지한 땅은 결국 자신이 묻힐 2미터 남짓한 무덤뿐이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 어리석은 부자와 농부 같지 않습니까? 이 끈질긴 자기중심성, '나'라는 우상과 결핍의 두려움을 십자가 앞에 못 박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굳은 결심이나 결단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말씀을 따라 참된 나눔의 삶을 살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론 2: 부활의 주님과 연합할 때 결핍의 두려움이 깨어진다]

그렇다면 이 끔찍한 죄의 사슬, 결코 나누지 못하게 만드는 생존의 두려움에서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사도들은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오. 본문 23절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의 최고 권력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풀려났습니다. 그들은 제사장들과 장로들로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목숨을 건 협박을 받았습니다. 이는 당장 밥줄이 끊기고 생명이 날아갈 수 있는 절대적인 생존의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풀려난 그들은 동료들에게 돌아가 무엇을 합니까? 은신처를 찾아 각자도생의 길을 떠났습니까? 아닙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위협하는 권력자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일심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살아남게 해달라는 구걸이 아니었습니다. 28절을 보면, 그들은 악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건조차도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한 것에 불과하다고 고백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신뢰했습니다. 온 세상이 핍박해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29절에 어떻게 기도합니까?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그들은 두려움에 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영적 야성을 구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십자가 앞에서 도망치던 겁쟁이들을 이토록 담대한 복음의 투사로 바꾸어 놓았을까요?
33절이 그 놀라운 해답을 줍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렇습니다. 그들 내면의 모든 두려움을 깨뜨린 폭발적인 능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 과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무참히 죽으실 때, 제자들은 자신들도 죽을까 봐 공포에 질려 도망쳤던 자들입니다. 자기 목숨 하나 건져보겠다고 스승을 배신했던 처절한 생존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덤을 찢고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 만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 그들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 재창조되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는 것은 곧 '죽음이 끝이 아니다'라는 우주적 진리를 목격한 것입니다. 내 고통과 아픔으로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 권세를 박살내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내 삶의 진정한 통치자이심을 깨달아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십자가에서 나의 죗값을 모두 치르시고 나를 의롭다 하신 주님, 그리고 부활하사 나의 참 생명이 되신 그분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믿음을 적용하십니다. 그 믿음이 적용되는 때는 언제일까요? 바로 내 인생에 칠흑같이 어두울 때, 죽음의 위기가 닥쳐올 그때 가장 어두운 그 때 부활의 주님이 찾아옵니다. 그 때 성령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되었을 때, 제자들의 심령 속에는 폭풍 같은 담대함이 임했습니다. 부활 생명에 참예한 자에게 세상 권력의 칼날이나 당장의 경제적 결핍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여러분의 삶에 왜 불안과 인색함이 지배합니까?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함을 구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죄된 본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에서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죄된 본성을 죽이시고 부활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말이죠.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피 흘리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과의 깊은 영적 연합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구합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죽고 부활의 주되시는 예수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이길 담대함이 솟아나는 비결이며, 나만을 위하던 움켜쥔 손이 펴지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일어나는 인격적인 기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납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했던 어떤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직 세상의 성공과 물질만을 좇아 살았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주식 투자로 전 재산을 잃고 감당하기 힘든 빚까지 지게 되자, 깊은 절망과 무기력감에 빠져 하나님과 가족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의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행 17:31)는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부활이라는 확고한 역사적 증거 앞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그녀는, 자신이 돈과 성공만을 우상으로 삼았던 끔찍한 죄인임을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이후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뒤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빚을 갚아나가는 팍팍한 현실은 그대로였지만, 원망과 이기심으로 가득 찼던 인격을 매일 철저히 십자가에 못 박고, 오히려 자신의 적은 월급을 쪼개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으로 변화되어 갔던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계신가요?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산다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주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론 3: 부활 생명의 가시적 증거, 참된 유무상통의 공동체]

초대교회 성도들이 합심하여 창조주께 부르짖었을 때, 모인 곳이 진동하며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은 그들에게 나타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기적은 바로 굳게 닫혀있던 지갑과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 기적이었습니다.
32절 말씀을 다 함께 보겠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부활의 생명과 성령의 불길이 임하자, 철옹성 같던 인간의 이기주의가 산산조각 났습니다. "내 것은 철저히 내 것"이라는 죄인들의 절대 명제가 붕괴되고,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요, 형제자매를 위한 것"이라는 거룩한 청지기 의식이 깨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외부에서 강제로 재산을 몰수한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목회자가 헌금을 강요해서 억지로 낸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지체라는 사실, 그 가슴 벅찬 '성도의 교제'를 깨달았기에 터져 나온 자발적이고 폭발적인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본문 36절과 37절에는 이 영광스러운 나눔을 삶으로 증명한 한 사람의 예화가 등장합니다. 바로 구브로에서 난 레위인 요셉, 사도들이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나바'라고 불렀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바나바는 바보여서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생명, 하늘의 썩지 않을 영원한 기업에 눈을 뜬 그는, 더 이상 이 땅의 유한한 물질에 자신의 안전과 소망을 걸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썩어질 것을 기꺼이 포기한 위대한 투자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지켜내기 위해 그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형제들과 나누는 헌신을 선택한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우리 삶에 어떤 기적을 낳는지 보여주는 스칸디나비아의 어부 페드로의 감동적인 실화가 있습니다. 페드로가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예기치 못한 끔찍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고 파도와 사투를 벌이며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자포자기할 즈음, 멀리서 붉은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육지가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사력을 다해 그 불빛을 향해 노를 저어 무사히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육지에 닿자마자 아내가 통곡하며 달려왔습니다. "여보, 내 실수로 우리 집이 다 불타버렸어요!" 그가 바다에서 보았던 생명의 불기둥은 바로 자신의 전 재산인 집이 활활 불타는 불길이었습니다. 그때 페드로는 아내를 끌어안으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여보, 고맙소. 당신 실수로 우리 집이 불탄 그 불길 덕분에 나와 아들이 방향을 찾고 살아 돌아올 수 있었소."
여러분, 이것이 바로 부활의 소망을 품은 자의 시선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내 소유가 불타고 내 소중한 재산을 이웃을 위해 내어주는 것이 절망이고 끔찍한 손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영생의 소망을 품은 사람에게는, 자신의 전 재산이 불타는 아픔조차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불기둥을 바라보며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썩어질 이 땅의 것에 집착하여 두려워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생명은 이처럼 우리의 닫힌 지갑을 열게 하고, 우리의 것을 기꺼이 형제자매와 통용하게 만드는 가장 위대한 동력입니다.

[결론: 이제 부활의 능력으로 물질과 시간을 나누는 바나바가 되십시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무한 경쟁의 정글 같은 세상 속에서, 내 밥그릇을 챙기지 않고 형제를 돌아본다는 것은 미련하고 도태되는 짓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당장 내일의 취업과 생존이 막막한데 누굴 돕느냐고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결코 생존주의라는 세상의 파도에 떠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내 결핍의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죄성을 회개하며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를 살리시기 위해 자기의 전부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사랑, 그리고 사망 권세를 산산이 부수고 일어나신 그 부활의 능력이 내 영혼을 덮어달라고 성령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고난 속에서 합심하여 기도했을 때 그곳이 진동하고 성령이 충만했던 것처럼, 오늘 이 시간 우리 청년 공동체가 함께 엎드려 부르짖을 때, 우리를 옥죄고 있는 생존주의의 사슬이 끊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내 통장의 물질이, 나의 스펙이, 나의 시간이 내 것이 아닙니다. 모두 주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여러분에게 도전합니다. 이 어둡고 팍팍한 시대, 외로움과 단절로 고통받는 청년의 때에 여러분이 바로 작은 '바나바'가 되어 주십시오. 돈이 부족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십시오. 낙심한 지체에게 위로의 메세지 보내는 시간, 누군가의 아픔을 들어주는 한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십시오. 순모임과 봉사팀 안에서 형제의 짐을 함께 짊어지는 헌신을 시작하십시오. 나의 직장 가정 함께하는 모든 곳에서 나눔의 삶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활의 신앙으로 굳게 무장하여, 두려움을 떨치고 기꺼이 서로를 돌아보며 나눌 때, 세상은 철저히 이기적인 여러분의 삶이 변화된 것을 보고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생명의 나눔, 기적 같은 성도의 교제가 저와 여러분의 삶, 그리고 우리 청년 공동체 안에 들불처럼 번져가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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