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36-4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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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겟세마네 도착 상황 제자들 데리고 가는 장면 “깨어 있으라” 말씀 예수님의 고민과 슬픔 언급
여러분,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그곳에 가셔서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두 제자만 데리고 더 나아가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6:37–38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 후 예수님은 홀로 조금 더 나아가셔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장면을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심히 고민하며 슬퍼하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괴로워하시는 걸까요?
또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더 놀랍습니다.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분명히 고난을 피하고 싶다는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왜 예수님은 이 고난을 피하고 싶어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괴로워하셨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구합니다. 마태복음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 26: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4절 같은 말씀으로 기도 함.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보면 분명합니다. 예수님도 이 고난을 피하고 싶어하셨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같은 기도를 반복하셨습니다.
여기서 ‘잔’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게 되는 심판을 의미하며, 이 심판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한 대속적인 심판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곧 임박할 아버지의 심판을 두려워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간구를 올려드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잔’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게 되는 심판을 의미하며, 이 심판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한 대속적인 심판을 가리킵니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예수님께서 앞서 제자들이나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이 땅에 왔다고 친히 공개적으로 선포하셨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자신을 보내신 것이 이 때를 위함이며, 그 뜻은 이미 정해진 것이기에 불변한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미 예수님께 주어진 ‘잔’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뜻과는 달리 반드시 필연적으로 감당해야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고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잡히시기 직전에 와서야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하셨다는 것은, 결국 그 아버지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는지를 우리로 하여금 알 수 있게 함.
그래도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가 아닌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라는 기도를 합니다. 이미 아들을 향하신 아버지의 뜻은 하늘에서 확정되었고, 그 보내신 아들의 고난을 통해 성취되기 때문에.
이 성취를 통해 아버지의 거룩하신 이름과 영광이 드러나고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온전히 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결국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도 하나님 안에서 계획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자리,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고난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도 이미 창세전부터 확정된 뜻이기에,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돌아봐야 함.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내 감정과 두려움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2. 영적으로 깨어 기도합니다.
누가복음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마태복음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처절하게 부르짖으며 시험과 유혹을 이겨내시려고 계속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달리,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깨어있지 못하냐고 책망하실 정도로 계속 자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늘 기도하는 주기도문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시험의 한가운데서 직접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고난을 피하고 싶은 마음, 십자가를 감당하지 않으려는 선택,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싶은 유혹, 다시 말하면 십자가를 가지 않으려는 유혹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유혹과 싸우기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0: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이 말은 예수님의 고난을 그대로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에 동참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그들이 아무리 예수님의 제자라 할지라도, 고난이라는 시험과 유혹 속에 놓일 때 예수님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앞으로 실패가 계속 있을 것임을 암시적으로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26: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지금 이 상황은 시험의 순간입니다. 예수님께는 어떤 유혹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잠들었고, 나중에는 모두 도망가게 됩니다.
이 장면은 분명한 대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심으로 유혹을 이기셨고, 제자들은 잠듦으로 결국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내 삶 가운데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는 기도합니까, 아니면 먼저 제자들처럼 피하려 합니까?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유혹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유혹 앞에서 깨어 기도하며 순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3. 고난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를 가까이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까지 괴로워하셨을까요?
단순히 십자가의 고통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받게 될 아버지의 심판은 단순히 십자가 고난이라는 육체적 고통과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으로 보냄을 받아 자신이 십자가 고난의 죽음을 당할 것이지만, 3일만에 부활하게 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공생애 사역동안 육체의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까지 살리신 하나님 아들로서의 지위를 가지신 신적인 존재이십니다.
그러한 분이 육체적 고난과 죽음이 두려워서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아버지께 간절히 간구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불성설과 같은 말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시며 기도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심판이 영적인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짜 두려워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단절이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이 사망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과 영광 가운데 함께 계셨던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심판의 의미가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아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 아버지의 영광의 임재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도 깊이 알고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고난 앞에서 그렇게까지 괴로워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입니까?
예수님께 있어서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은 아버지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뜻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순종은 억지로 하는 순종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나오는 사랑의 순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난을 피하는 것보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선택하셨고, 고통을 피하는 것보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고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하나님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론
그리스도인이자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에게도 고난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우리 눈앞에 너무 크게 보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시험과 유혹이 함께 찾아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도 하나님 안에서 계획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자리,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고난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도 이미 창세전부터 확정된 뜻이기에,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돌아봐야 함.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자리에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깨어 기도하며,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고난은 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더 가까이 하는 통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은혜의 방편으로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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