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_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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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오해하는 사람들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3장_그리스도를 오해하는 사람들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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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 제 3장 그리스도를 오해하는 사람들.
그는 실로 우리의 질을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사야서 53장 4절 말씀.
우리를 위한 고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분을 사람들은 핍박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그들이 가졌던 기대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를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00:53) 이사야서 53장 4절. 선지자가 말하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의 질을 대신지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당한 고난이었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 고난이 메시아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당하는 증벌이라고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바르게 알지 못하면 그분의 고난의 의미도 바르게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흠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것이 오히려 그분에게 욕이 되었고 목숨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한 하신 것이 오히려 그분에게 수치가 되었습니다.
(01:37)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한 참된 이해가 없기에 그분이 행하신 일들에 대해서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아는 것과 그분이 하신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아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분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앎으로써 그분의 행하신 일과 말씀하신 교훈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 때 우리는 그분의 병고침이이 세상 의사의 고침과 어떻게 다른지 깨닫게 됩니다. 그분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 때 파도를 명하여 잔장케 하신 능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이 세상에 행하신 일들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이 세상에 오신 유일한 구주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02:27) 예수 그리스도께로께서는 메시아로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이 땅에서 그분은 고난으로 점철된 생애를 사셨습니다. 죄로 물든 세상을 다시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이 땅에 오셨는데 세상은 그분을 환영하지도 존귀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분을 오해하고 멸시하였습니다. 태어나시던 날 별이 빛나는 그밤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땅에 어둠이 가지 했던 운명하시던 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탄원하시며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까지 그분에게 휴식이란 없었습니다. 주님 자신의 고백처럼 그분은 머리꽃 없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03:11) 그러나 그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분을 칭송하고 환하는 대신 끊임없이 핍박하였습니다. 한 때는 수천 명이나 되는 청중들에게 둘러싸여 주목을 받으시던 때도 있었지만 그들은 곧 그리스도께 실망을 느끼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못박으라라고 고함치는 무리들로 변하였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모두 그들의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죄인임을 몰랐고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죄의 사슬에서 풀려나는 것임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왜이 세상에 오셨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대신하여 즐거와 슬픔을 당하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04:01)
희망은 바른 이해로부터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철저히 오해를 받고 무시를 당하셨습니다. 그분의 생애는 권난에 쌓여 있었고 그래서 그분을 아는 것은 곧 그분의 고난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해 핍박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거룩한 삶을 따라가기 위해 슬픔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수 있도록받을수록 그분이 누구신지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04:5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권한으로 얼룩진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그분의 권난에 대해 우리의 질을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한 것이라 선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메시아 자신의 죄와 허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즐거와 슬픔을 대신 짊어지신 것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여기서 마주하게 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은 하나님을 떠난 채 자기의 죄로 인하여 즐거를지고 슬픔을 당하는 모습입니다. 비록 성경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라도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인생의 참모습이 즐거와 슬픔임을 압니다.
(05:45)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타락한 이로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 없이 행복해지기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없이 맛보는 보람과 기쁨은 잠시만 효력이 있는 어 취제에 불과했습니다. 인간은 행복해주고자 자신의 방식대로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깊은 즐거와 슬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희망은 즐거한 슬픔 속에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깨달았을 때 우리는 인간의 모든 육체는 다만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잠시 피었다치는들의 꽃과 같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06:48) 누구신지 안 사람은 즐거와 슬픔을 가득찬 세상에서 살면서도 저 너에 있는 흔들리지 아니하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통하서 우리가 누리게 될 참된 기쁨과 영원한 희락을 사모합니다.이 이 모든 행복과 안식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분의 생애를 우리의 질를지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당하신 생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 시대의 대제상은 백성들에게 얼마나 후한 대접을 받았습니까? 그 시대 율법사와 사기관들은 백성들에게 얼마나 유흥성한 대접을 받았습니까? 그 시대의 왕들은 또 어떻습니까? 그러나 대사장 중에 어 대제사장이요
(07:51) 선지자 중에 선지자여 모든 왕 중에 뛰어난 왕이신 그분은 즐거와 슬픔을 당하는 생애를 사셔야 했습니다. 그리고이는 우리 모두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때문이었습니다. 평관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메인 삶을 살았던 것은 십자가에 이런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십자가의 의미를 알자 거기에 깊이 사로잡혔고 자신을 그 십자가에 함께 못박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앞에 우리의 입을 담물지 못하며 감격하게 되는 것은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시 안다는 것은 십자가에 대해서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08:49)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 없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우리를 위하여서 당신이 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용서에 받은 죄인과 불 죄인에 불과한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긍휼에 어 강격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새롭게 열린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재를 누리며 우리에게 영원히 갚아도 갚지 못할 사랑의 빛을 있음을 기억하는 신령한 부채 의식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우리를 위해 우리의 질고 대신 슬픔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할 때 하나님 없이 살아가며 즐거와 슬픔으로 시험한이 세상에서 하나님 사이에 화목을 가져 가져오는 존재로서 살 수 있습니다.
(09:47)
메시아에 대한 오해.
이어서 이어서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구속 사역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언급합니다. 메시아는 우리를 위해서 질고를지고 슬픔을 당하셨는데 우리는 우리는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대체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이런 오해를 하게 되었을까요? 성경은이 끔찍한 오해의 주체를 우리의 생각으로 규정합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이 말 속에서 우리는이 판단이 하나님 말씀과 약속의 근거한 출론이 아니라 자신의 편견과 집착에 기초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연구한 일에 열심히 있었습니다.
(10:34) 그러나 그들은 메시아에 관하여서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들려 주신 수많은 내용보다 자신들의 생각을 더 신뢰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그 시대의 정신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 시대 안에는 항상 그 시대에 정신이 흐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시대에 태어나면 특별히 그 시대의 정신을 거스러두고자 예쓰지 않는 한 그 시대의 아들이 되어 살아갑니다. 메시아가 오신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의 정치적인 압지 살아가던 시기였습니다. 로마의 포각과 경제적인 착취에 시달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열망은 죄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정치적인 압제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11:20)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도 자신들의 생각과 열망에 부흥해야 한다는 부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말 구유에서 나시고 나사렛 나사렛에서 자라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이 마음에 그리는이 그리고 있는 메시아 상관은 도저히 어울릴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구원에 관한 그들의 이러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상황과 시대가 그 시대가 나은 정신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자신들의 희망을 투영한 그림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대속재물로서의 어메시아 대신 자신들이 꿈꾸는 강력한 능력을 가진 초인적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12:14) 만약 그들이 당시의 치대 정신보다 구약 성경이 증거하는 메시아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분을 메시아로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증언보다는 시대의 정신에 더 충실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이기보다는 시대의 아들에 훨씬 더 가까웠습니다. 물론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메시아 대망 사상은 단순히 그 시대 정신만의 3월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메시아 신앙에는 역사적인 근거가 있었는데 그것은 후이 유대교회 메시아 대망 사상이었습니다. 이 사상은 구약의 외경인 “솔로몬의 시편” 등에 기초한 것으로 그 핵심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강력한 왕으로 등장하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13:08)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이 메시아를 기대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단숨에 멸망시키는 것이 메시아가 수행할 과라믿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오시면 당연히 로마인을 비롯해 이방인들을 예루살렘에서 깨끗이 쓸어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꿈꾸었던 메시아는 이방인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로 굳게 세우실 뿐이었습니다. 시대 이후로 흩어진 유대인들은손에 손을잡고 영광을 복한 그 나라로 돌아올 것이며 그 나라에서 메시아는 공평하고 지혜로우며 강한 통치를펼쳐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꾸었던 메시아 대망사상 곧 다왕국의 재건이었습니다.
(14:01) 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기대에 맞춰 구약의 여러 구절들을 확대 해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기대 속에 그려진 메시아적 왕은 때때로 온갖 종류의 예언적 특징과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고기와 버리떡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을 행하실 때 혹시 이분이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그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라는 마음으로 그분을 주목하였던 것은 바로 이러한 그들의 메시아 사상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메시아 대망 사상은 보다 현세적이고 민족적이며 정치적인 희망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메시아를 기다렸기에 그들에게 메시아의 고난을 받아도 그것을 이기고 승리하신 분이지 고난당하고 죽으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15:05)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위성하시던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나귀와 나귀를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 옷을 그 위에 얹지며 예수께서 그 위에 다시 무리의 대사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라오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오산나 하더라 마태복음 21장 7에서 8절 9절. 이때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바로 자신이 기대하는 구원자 정치적인 메시아이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예수께 보여신 열광적인 환영은 그들의 그러한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16:0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힘없이 체포되어 빌라도의 사자 사게 되자 그들의 태도는 돌변했습니다. 그들은 소리질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누가복음 23장 21절. 그들이 그렇게 외친 것은 메시아에 대한 자신들의 기대를 져버린 예수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유대인들이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을 구원할지어다. 누가복음 23장 35절라고 말한 것과 내가 만일 하나 유대인의 왕이면 내가 너를 구원하라. 누가복음 23장 37절라고 외친 것도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자신의 신앙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7:01) 아니 이해할 수 없었기보다는 그들이 메시아 신앙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죽으신 자체가 그분의 메시아가 아님을 입증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현세인 희망이 메시아에게 투영한 나머지 구약 성경에 계시되 맹백하고도 분명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바르게 보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이 자기들의 시대라는 정황에 충실한 나머지 성경을 바르게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어리석음은 하나님의 백성 안에 일반화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오해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자기들이 기대한 구원 방법과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너무나 달랐기에 그분을 메시아로 믿을 수 없었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과학을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신념 때문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18:04) 심지어 교회 안에도 인간의 자유과 미래 세계에 나타날 과학의 진보를 낙반한 나머지 죄인된 인간의 절망적인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그려 했듯이 지금도 사람들은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의 증언보다는 시대의 상황과 시대의 정신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을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차 버리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화가 타락한 이후로부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당신의 백성들을 다시 거룩하게 회복하실 경륜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신뢰합니다.
(18:58)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대신 자신의 편견을 따라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합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가르치는 성경의 증언에 길을 기울이는 대신 자기의 평년과 오해로 주님을 펼쳐가고 있습니까? 이제는 교회 안에서 안에서 안에서조차 이런 갈망을 가지고 나아오는 성도를 만나기가 힘이 듭니다. 부디 나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가르쳐 주십시오. 내게 그분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내 영혼에 참된 위로와 평안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누구신지를 알기 원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난한 마음 대신에 우리는 저마다 자기의 아집으로 살아갑니다.
(19:45)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빛 가운데 살지 못하고 메시아가 즐거와 슬픔을 대신 당하셨는데도 여전히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은 우리 영혼을 끊임없이 어둠 속에서 방황하게 만듭니다. 이 모두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기의 생각을 의지한 결과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의 생각은 철저히 어둠의 세력들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부패한 인간의 생각은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하고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게 합니다. 그러므로 죄인의 유일한 희망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메시아에 대한 성경의 증언에 그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20:37)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우리를 구원하려고이 땅에 내려오셨을 때에 천사들보다 먼저 달려나가 노래하고 나팔을 불고 그분의 오심을 환영했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분을 몰라본 것은 우리는 생각하기를이라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자기의 생대로 메시아를 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생각하되 말씀을 의지하고 성령을 의존하여 생각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약속을 붙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가르쳐줄 사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 메시아에 대한 유에 속한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성경의 칭어을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21:33)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구입니까? 그들은 바로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안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한때는 시대의 정신과 자기의 생각에 눈 멀어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맹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보다는 희미한 자신의 선입견을 신뢰하여 자신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이생에 오신 좋으신 메시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눈 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의 증언보다 신뢰함으로 메시아를 보지 못하는 예전의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의 사람들을 눈뜨게 하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22:28) 죄로 말미암아 고통받은이 세상의 궁정인 희망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일 뿐이십니다. 아직도 자기의 생각에 매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그들의 감은 눈을 뜨게 할 것이며 어두운 어 귀를 돌리게 하여 들리게 하여 우리와 함께 구원에 이르게 할 것입니까? 세상으로 하여금 자기 생각을 벗어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알게 할 사람 우리가 나무에 달라 달아죽인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주이심을 증명할 사람은 먼저 그것을 깨달은 바로 당신입니다. 아멘. >> 아멘.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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