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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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 옆 사람들과 함께 인사하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한번 더 인사합니다. 우리 승리합시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전쟁을 앞두고 있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병력을 모을 것입니다. 가능하면 더 많이, 더 강하게 준비하려고 할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쌓아갑니다. 능력을 쌓고, 조건을 만들고, 더 준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입니다.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줄이십니다. 병력을 줄이십니다. 심지어 계속 줄이십니다. 이기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불리해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왜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실까요? 왜 우리가 붙들고 싶어하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하실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이유를 함께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기 위해서 제거하시는 첫번째는 무엇일까요?

1대지. 승리의 근거를 제거하신다.

(1) 이래저래 불리한 기드온의 군대
지금 기드온의 군대는 군사적인 관점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있습니다. 먼저 지형적으로 불리했습니다.
적인 미디안은 북쪽의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약 해발 515m 정도 되는 산입니다. 그리고 그 산 아래로 하롯 샘 곁 평지에 기드온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습니다.
지도 중앙 약간 오른 쪽에 모레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로 밑에 하롯샘이 있어요.
여러분 전쟁할 때 고지대가 저지대보다 훨씬 유리한 것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식입니다. 여러분 스타할 때 고지대에 시즈탱크 자리잡고 있으면 그것만큼 뚫기 어려운게 없습니다. 공감하시는 분들은 최소 90년대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심지어 공격을 해야하는게 기드온 군대입니다. 전쟁에서 방어가 공격보다 또 훨씬 쉽거든요.
지금 기드온의 군대는 지형적으로 불리하고, 공격을 해야해서 불리하고, 아주 이런 저런 이유로 불리합니다.
(2) 그 와중에 군대의 수를 줄이시는 하나님
여러분 우리 상식에서 이렇게 불리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서 여러가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합니다. 그러면 군인의 수를 늘려야겠습니까, 늘려야겠습니까? 늘려야죠. 그게 상식입니다. 어떻게든 병력을 동원해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이상합니다.
[삿7: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하나님은 지금 군인들 중 두려워 떠는 사람들을 돌려보내십니다. 오히려 군인 숫자를 줄이시는 겁니다. 3만 2천명의 군인이 있었는데 2만 2천명이 떠나고 만명만 남습니다. 2/3이 떠난거에요. 엄청난 수가 떠나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더 떠나보내십니다. 하나님이 군인들을 물 가로 인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이 한 가지 시험을 하시고, 그 시험에 통과한 자들만을 남기십니다.
그렇게 남은 수가 몇 명일까요? 300명입니다.
여러분 처음 인원의 1/100 보다 더 적게 남았습니다. 중요한 전투 전에 하나님은 “줄이기”를 시작하십니다.
(3) 줄이신 이유 : 의지할 근거를 제거하심
왜 그러셨을까요? 군인이 더 필요한 불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왜 숫잘르 줄이실까요?
본문 안에서 명시적으로 이유가 드러납니다.
[삿7:2]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스라엘이 자기 스스로 승리하였다, 자기 스스로 구원하였다라고 할까봐 하나님이 숫자를 줄이신다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충분한 숫자로 싸워서 승리했다면, 그들의 충분한 군대 수가 그들을 승리했다고 생각하게 할 겁니다. 전쟁에서 군사력은 이스라엘이 의지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건드리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불리하게 만드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붙들고 있던 승리의 근거를 제거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승리의 이유는 군대 수가 충분하고, 군사력이 뛰어나서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기 위해서 의지할 수 있는 다른 근거들 그 중 가장 강력한 근거를 완전히 제거해버리십니다.
(4) 두려운 자를 내보내신 이유
여러분 하나님께서 먼저 군대의 수를 줄이실 때 어떻게 명령하셨나요?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두려워서 돌아간 2만 2천명은 사실 감정적으로 무서워서,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쇼. 두려운 자들은 돌아가라고 합니다. 처음에 몇몇 적은 자들이 눈치 슬금슬금 보면서 돌아갈 겁니다. 그런데 2만 2천명이 전부 그렇게 눈치보면서 돌아가진 않았을 겁니다.
남으려 했던 자들은 점점 더 줄어드는 숫자를 볼 것입니다. 숫자가 줄면서 어떤 두려움이 그들을 지배할까요? ’이 숫자로는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안 그래도 불리했는데, 군사력까지 줄어들면 이길 수가 없다’
이 두려움이 그들을 지배했기 때문에 돌아갔습니다. 두려워했던 자들은 왜 두려워하는 겁니까? 승리의 근거를 군사력에 두었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자들에게 숫자를 근거로 삼는 구조 자체를 해체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기들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 헛된 신화를 깨부수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신화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이 승리케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십니다.
적용 여러분 승리하고 싶으시죠? 대답 안 하시는거 보니까 승리 안 하고 싶으신가봅니다. 자 우리 옆에 분들과 함께 세상 가운데 패배합시다.(유머)
네 농담이죠. 여러분 다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가운데 승리하고 싶으실 겁니다. 패배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승리하고 싶다, 이겨내고 싶다 하는 마음이 우리를 함정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 함정은 아주 그럴듯하고, 잘 숨겨진 함정입니다. 눈에 보이는 “승리의 근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승리의 근거를 찾거나, 혹은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예화 : 반지의 제왕의 반지의 속성 여러분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 아시나요? 원래 소설이 원작이고, j.r.r.톨킨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이죠. 이게 영화화 되기도 했고요.
거기서 보면 이 절대반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절대 반지를 끼면 낀 사람은 수명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을 얻기도 하고요. 절대 권력을 얻게 해주는 반지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절대 권력을 가지면 무조건 승리하고, 다 이겨낼 것 같지 않습니까? 전쟁에서도, 인생에서도 절대 반지를 가진 사람은 승리를 항상 해야하지 않습니까? 특별한 능력과, 절대 권력을 주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절대 반지를 가진 사람들은 그 삶이 피폐해져 갑니다. 점점 절대 반지를 잃을까봐 두려워하고, 그 삶을 고립시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조차 의심하고, 인간성이 파괴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외형마저도 괴물처럼 변해버립니다.
톨킨이 말하고 싶은 것은 뭐냐면, 세상 속에서 절대 권력, 힘이라고 말하는 그 보이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눈에 보이는 것을 향한 욕망이 인간을 괴물처럼 만들어버립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반지와 같이 세상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근거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이스라엘에게는 무엇이었습니까? 군사의 수, 군사력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가 가진 능력, 스펙, 물질? 세상이 말하는 승리의 도구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 눈에 보이는 승리의 근거들을 제거하십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모든 능력, 스펙, 물질, 인간 관계 그 모든 것들 있죠. 그것들 다 제거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뭐에요? 세상이 말하는 승리 신화가 있습니다. 그 눈에 보이는 근거들이 갖춰지면 승리할 것이다! 라고 말하는 승리 신화요.
그런데 그 승리 신화가 다 거짓된 헛된 신화라는 겁니다. 다 거짓말이라는거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거에요. 진정한 승리 신화, 세상 가운데 승리하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승리의 근거입니다.
여러분 혹시나 여러분들 가운데 승리하게 할만한 근거들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차곡차곡 내 것으로 쌓아가던 분들 계십니까? 혹은 그렇게 살아가다가 그 근거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 하신적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승리할 것이다, 내가 능력을 충분히 가지면 승리할 것이다, 내가 좋은 인간관계를 많이 맺으면 승리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것들을 가지고도 승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삶이 무너져내리는 경험 하신적 있으십니까?
그 근거들을 쌓아가시던 분들, 그것을 쌓고도 패배를 맛보신 분들. 누구 앞에 갈 때입니까? 하나님 앞에 가야할 때입니다.
세상 가운데 승리를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헛된 근거들들 다 버리십쇼. 제거하십쇼. 그리고 유일한 승리의 근거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기 위해서 무엇을 제거하시는지 볼까요? 다음 두번째 교훈 한번 읽겠습니다.

2대지. 승리의 자격을 제거하신다.

(1) 물 가 시험의 의미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봅시다. 여러분 하나님이 먼저 두려워하는 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래서 만 명 남죠.
그런데 한번 더 수를 줄이시죠. 그렇게 남은게 300명입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라고 하면 보통 용감하고 기개 넘치는 사람들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을 볼 때 남은 용사 300명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면 하나님의 뜻이 흐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 함정을 한번 뛰어넘을 필요가 있죠.
여러분 300명이 특별해서 남았을까요?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용기가 있고, 시험도 통과해서 남은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특히 하나님이 주신 시험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되게 독특한 시험을 주시죠. 물 가에서 만 명 모두에게 물을 마시라고 합니다.
[삿7:5-6]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무릎을 꿇고 마신 자들, 꿇지 않고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신 자들. 이렇게 분류합니다. 그리고 무릎 꿇고 마신 자들은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걸 어떤 이들은 무릎 꿇지 않고 물을 마신 어떤 준비된 사람들 혹은 언제나 경계태세를 갖춘 준비된 군사들만 선별하신 것이다 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렇게 해석하는 내용을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 안에서 이 사람들을 준비되어서 군사로 남게 하셨다라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사실 본문은 왜 하나님이 무릎 꿇지 않고 물을 마신 사람들을 뽑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집중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시험은 더 준비되고, 더 뛰어난 사람을 뽑는 테스트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우리 첫번째 교훈에서 계속 봐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승리의 근거를 제거하십니다. 하나님이 승리의 하나님이심을 보이십니다.
지금 이 방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은 통과한 자격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험은 누가 더 뛰어난지, 누가 더 자격이 합당한지를 보여주는 테스트가 아닙니다. 이건 하나님이 사람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과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나은 사람을 고르신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가 남아도 상관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준비하지 말라,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편에서 승리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준비됨이 의미 없게 되는 순간을 만드십니다. 그 준비된 모습, 그것이 자격이 될 때 승리의 이유가 다시 인간의 자격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으십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의 자격이 의미 없게 되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꺼이 쓰실 때는 내가 자격을 갖춰야지 하나님께 쓰임받겠다는 생각조차 제거하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제거하시는 것 : ‘내가 할 수 있다’는 자격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최선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준비됨이 승리자의 자격이 될 때, 우리는 그 승리의 이유가 내가 준비해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절대로 허용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서 우리가 준비된 것들, 우리의 자격들을 쓸모없게 만드는 경우를 만드시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내가 준비되면, 성장하면, 충분해지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고, 쓰실 것이다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반대로 일하시는거죠. 하나님은 우리를 쓸 만하게 만들어서 쓰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쓸 만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격을 제거하십니다. 그리고 도리어 승리를 거두게 하시는데, 이것은 우리를 허무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준비되고, 내가 자격을 갖췄던 것보다 높은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 승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과정입니다.
군사력, 군사 수가 줄어듭니다. 심지어 우리의 자격조차 무의미해집니다.
그때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 했던 승리의 근거와 승리의 자격을 제거하시고,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적용 :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자격을 갖추는가?
여러분 아마도 승리하기 위해서 자격을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입시를 준비할 수도 있고, 취업을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대학 생활을 하며 학점 취득을 위해 열심히 공부중이실 수도 있고요. 어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영어 점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혹은 직장인 분들 조차도 자신이 갖춰야하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실 겁니다.
여러분 자신의 자격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끝없이 성취하고, 자신의 능력을 갖추고 준비하는 모습들이 너무너무 멋져요.
그리고 요즘 청년들이 그런 열심이 더 있는 것 같아요. 예전보다도 더 지금 청년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모습은 무엇입니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현대의 청년층이 다른 층에 비해서 우울, 불안, 스트레스가 월등히 높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분석하면 취업 압박, 경제 불안, 지속적 경쟁 등을 요인으로 꼽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멋지게 살아가는 사회 이면에는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열심히 살아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시대, 그래서 더 불안한 시대”입니다.
스위스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인들의 특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 사회는 성공하면 내 공로라고 생각하고, 실패하면 전부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실패의 충격은 훨씬 더 가혹해집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살아서 자격을 갖추면 갖출수록 역설적으로 더 불안해지는 현실을 살아가고 계시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무엇을 제거하십니까? 승리하기 위해서 자격이 필요하다는 그 자격을 제거해버리십니다. 하나님 앞에 승리를 거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자격이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그저 하나님만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승리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자격이 아니에요. 준비됨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준비되어야 한다, 자격이 갖춰져야 한다라고 협박하는 이 현실 속에서 여러분을 구원하십니다. 자격을 갖추고, 준비했는데 도리어 그만큼 더 불안해지는 현실 속에서 여러분을 구원하십니다.
자격을 제거하십니다. 준비됨을 해체시키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남기십니다.
승리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예화 : 대학생 커닝, 신대원 커닝
제가 신대원을 2020년에 입학했는데요. 신대원은 들어가기 전에 헬라어, 히브리어를 미리 공부해야합니다. 그래서 방학 시즌에 입학하기 전에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든요. 먼저 헬라어부터 하는데 정말 충격적이게도, 제가 직접 목격하진 않았지만 컨닝을 한 분이 있다고 들은거에요.
제가 도대체 왜 컨닝을 했을까 생각 생각을 했어요. 그 근본적인 원인이 뭘까? 당장 그 상황에서는 그 시험의 통과가 커보이니까 그러지 않았을까.. 그 시험을 통과해서 얻어지는 자격이 사역을 계속 하게 해줄 것 같은, 나의 사역을 성공으로 이끌어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했었습니다. 승리하기 위해서 필요해보이는 그 헬라어 시험 합격이라는 자격! 이 자격에 매몰된 것 아닐까 하고요.
여러분 그런데요. 우리의 삶이 다를게 없어요. 우리가 승리하려면 준비되어야 한다, 자격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그것에 매몰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불안함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내가 자격을 갖추는 것에 따라서 내가 책임지느냐, 마느냐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것에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격을 보지 않으세요. 준비됨을 해체시키십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어떤 자격과는 상관없이 하나님만 남은 자들에게 승리를 허락하십니다.
여러분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열심히, 준비하며 살아가는 모습 너무 멋집니다. 그러나 그 방향이 자격 그 자체로 가십니까,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이 방향에 따라 여러분들의 승리가 달려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마지막으로 알 수 있는 메시지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대지. 모든 것이 제거된 후 믿음만 남기신다.

(1)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현실 여러분 하나님은 승리의 근거가 되는 군사 수를 제거하십니다. 또 승리의 자격 조건도 제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제목에서처럼 오늘 본문에서는 “미니멀리스트”십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제거되고 난 이후에 남는 것은 사실 “변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삿7:1]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삿7:8]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하나님이 참 가혹하십니다.
1절에서 미디안 진영이 유리한 상황에 있는 것이 묘사됩니다. 그리고 미니멀리스트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승리의 근거, 승리의 자격 다 제거하십니다. 그리고나서 남은 것이 8절에서 똑같이 유리한 상황에 있는 미디안 진영입니다.
이 비극적인 수미상관의 구조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참 가혹하시다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이 절대로 비극적이지 않습니다.
(2) 진짜 남은 것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변함없는 불리한 상황만이 남은 것 같지만, 사실 기드온과 이스라엘에게 진짜 남은 것은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되는 하나님”입니다.
이제 기드온과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볼 수 박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만으로 된 겁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겁니다.
하나님만 볼 수 있으면 이 전쟁의 승리밖에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의지할 것이 인간적인 근거, 자격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지를 남기지 않으시고, 하나님만 남기십니다. 저는 바로 이 상태를 “순전한 믿음의 상태”라고 이름 짓습니다.
(3)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좀 더 나아지면 믿음이 생길 수 있을거야.” ”문제가 해결되면 믿을 수 있을거야.”
그러나 성경은 반대로 말합니다.
믿음은 상황이 좋아질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드러나는 것이라고요. 우리를 포장하고 있던 우리가 승리할만한 근거가 한 꺼풀 벗겨지고, 승리할만한 자격이 한 꺼풀 벗겨졌을 때 그 속에 감쳐줬던 믿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기드온의 믿음은 언제 생깁니까? 32,000명이 있을 때? 10,000명이 있을 때? 아니면 충분한 자격 요건을 갖춘 자들이 남았을 때?
아뇨. 자격 요건이 불분명한 300명이 남았을 때 순전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이제는 하나님 말고는 붙들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화 야후 vs 구글 , 애플 야후 혹시 아십니까? 원조 검색 엔진, 검색 엔진의 처음을 이끌었던 사이트입니다. 야후가 1994년 나왔다가 2014년에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왜 종료했을까요? 어떤 검색 엔진에 밀려서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대부분 사용하시는 구글입니다.
후에 검색엔진을 거의 선점했던 야후가 왜 구글에게 밀렸는가 연구를 하니까 그 주된 원인이 뭔지 아십니까? 아마 이 두 사진을 보시면 이해가 가실 거빈다.
구글이 훨씬 심플한거죠. 밑에 물론 자잘한 아이콘들이 있지만 그 기능인 검색엔진 기능에 초점을 맞춘거죠. 검색엔진으로써의 역할에 충실했고, 그 미니멀함이 구글이 승리하게 만든 요인이었습니다.
제가 또 한 가지 정보를 알려드리자면, 이 모델이 맥북에어 m4 스카이블루입니다. 제가 이 맥북의 유저이기도 합니다. 어떻습니까? 영롱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애플도 비슷한 이유로 성공한 기업 중 하나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직관적인 사용성. 모든 면에서 미니멀한 그 감성. 그것이 애플이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 된 전략이었죠.
미국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 문영미 교수는 “오늘날 소비자들은 넘쳐나는 풍요의 바다 속에서 단순함의 자유를 찾게 되었다”라고 애플의 성공 요인을 진단합니다.
여러분 그 본연의 미니멀함이 이 기업들의 성공을 이끌었습니다.
여러분 성도는 성도 본연의 미니멀함이 승리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승리를 안겨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의지할만한 잡다구리한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하시죠.
승리의 근거가 될만한 것들, 자격이 되는 것들 다 제거하시기도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의지할만한 것들 다 제거하시는 거예요.
그후 빛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글에 다른 것들을 제거하고 검색엔진이라는 미니멀함이 남았습니다. 애플에 다른 것들을 제거하고 애플의 저 로고, 그 미니멀함이 남았습니다.
우리가 의지할만한 것들이 다 제거되고, 하나님이 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미니멀함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적용 여러분 이 장면은 어디를 떠올리게 합니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군중 떠났습니다. 제자 도망갔습니다. 능력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이 제거되었습니다. 힘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가능성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최고의 미니멀리스트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제거하신 자리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서 무언가를 제거하실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을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만 남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고난주간을 지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앞에 서시기까지 그 믿음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하나 제거하셨던 그 길을 같이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특새도 참석하시고, 청년1,2부 각각 진행하는 행사도 잘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제거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앞에서 하나님만 남는 삶으로 인도되길 소망합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죽으신 자리였지만, 그곳에서 완전한 승리가 일어납니다.

결론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전쟁을 앞두고 있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병력을 모을 것입니다. 가능하면 더 많이, 더 강하게 준비하려고 할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쌓아갑니다. 능력을 쌓고, 조건을 만들고, 더 준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입니다.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줄이십니다. 병력을 줄이십니다. 심지어 계속 줄이십니다. 이기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불리해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왜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실까요? 왜 우리가 붙들고 싶어하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하실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이유를 함께 보겠습니다.
결단찬양 - 믿음이 없이는 G
우리 다 같이 일어나서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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