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 그들의 호산나, 예수님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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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 누가복음 19:38 / 요한복음 12:13

서론
사랑하는 청소년부 여러분! 사자성어 중에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침대에 누워서 서로 완전히 딴생각을 한다는 뜻이죠.
이게 어떤 건지 제가 학창 시절에 직접 뼈저리게 겪은 완벽한 예시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생 때, 시험 기간만 되면 공부한답시고 비장하게 독서실을 끊고 집을 나섰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독서실로 향하는 제 뒷모습을 보며 저희 어머니는 속으로 어떤 꿈을 꾸셨을까요? "아이고, 우리 아들이 드디어 철이 들었나 보네. 이번 시험은 아주 잘 보겠네~ 우리 아들 인서울 명문대 가려나?"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어머니의 꿈: 성적 대박, 명문대)
그런데 정작 집을 나선 저는 무슨 꿈을 꾸고 있었을까요? 독서실 책상에 앉아서 펜을 잡는 대신, 가방만 자리에 툭 던져놓고 곧바로 근처 PC방으로 직행해서 친구들과 롤(LOL) 랭크전을 돌렸습니다. 아니면 독서실 앞 복도나 휴게실에 애들이랑 모여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도록 수다를 떨며 놀았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아주 간절히 기도했죠. '아, 제발 오늘 길가다가 엄마 마주치지 마라, 제발!'
어머니는 '명문대 입학'을 꿈꾸고, 저는 'PC방에서 게임과 친구들 간의 즐거운 수다'를 꿈꾸는 것! 이게 바로 완벽한 동상이몽이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제가 독서실에 없다는 사실을 어머니께 들키고 나서야, 등짝 스매싱과 함께 그 헛된 동상이몽이 와장창 깨져버렸죠.
그런데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제 학창 시절 이야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끔찍한 '동상이몽'이 벌어졌습니다.

[본론 1: 그들이 꿈꿨던 '호산나', 로마를 무찌를 영웅]

그렇다면, 2천 년 전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벌어진 그 끔찍한 '동상이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예수님은 30살 즈음까지 평범한 목수로 지내시다가, 이후 약 3년 동안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하나님께서 맡기신 위대한 사역, 즉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3년의 기간 동안 이스라엘 곳곳을 다니시며 수많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엄청난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3년 사역의 가장 마지막 절정이자 종착지인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마침내 예루살렘 앞 감람산 근처 '벳바게'라는 곳에 도착하셨을 때, 예수님은 제자 둘을 맞은편 마을로 보내십니다. 미션은 바로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풀어서 끌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끌고 온 그 작고 초라한 나귀 새끼 위에 올라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십니다. 이것은 구약성경 스가랴 9장 9절에 나오는 "보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겸손하시어 나귀 새끼를 타신다"라는 예언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이루시며 입성하시는 역사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루살렘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온 도시가 난리가 났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보면 사람들은 자기들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예수님이 가시는 길바닥에 쫙 깔았습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뜻입니까? 오늘날 아주 대단히 유명하고 존경받는 VIP를 환영할 때 까는 '레드카펫'을 깔아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보면,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마구 흔들며 열광했습니다. 당시 문화에서 종려나무 가지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영웅이나, 나라를 구한 구원자를 환영할 때 흔드는 승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호산나! 호산나!"이 '호산나'는 구약성경 시편 118편 25절에 나오는 단어로,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렇게 겉옷까지 벗어 던지며 예수님께 미친 듯이 열광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고 깨달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완벽한 착각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잔인하고 나쁜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끔찍한 고통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시골에서 온 예수라는 청년이 병든 자를 고치고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들은 겁니다. 사람들의 눈이 뒤집혔습니다. "와! 저 예수가 드디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저 나쁜 로마 군대를 다 박살 내버릴 거야! 우리를 이 지긋지긋한 억압과 가난에서 구원해 줄 거야!"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의 죄를 씻어주실 영적인 구원자가 아니라, 내 앞을 가로막는 현실의 문제를 단숨에 부수고 나를 성공시켜 줄 '힘센 정치적 영웅'으로 생각하고 "호산나"를 외쳤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강도사님이 여기서 한 가지 묻겠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기대했던 것처럼, 로마를 무찌르고 내 통장 잔고를 불려주려는 그런 목적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그런 세상적인 영웅이 되기 위해 오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진짜 목적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 말씀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아멘!
여러분, 이게 무슨 뜻입니까? 눈앞에 보이는 가난이나 성적, 로마의 압제 같은 껍데기 문제가 아니라, 우리를 영원한 지옥으로 끌고 가는 가장 무서운 진짜 적! 바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포로 된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키고 살려내기 위해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얄팍한 세상적 욕심을 채워주러 오신 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중등부 여러분, 여기서 우리의 모습을 한번 정직하게 비추어 봅시다.혹시 2천 년 전 무리들이 꾸었던 이 헛된 동상이몽이,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 와서 흔드는 기도와 너무 똑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일에 나와서 찬양하고 기도할 때, 우리가 마음속으로 부르짖는 '호산나'는 과연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 호산나! 나를 짓누르는 저 끔찍한 로마 군대 같은 '중간고사' 좀 싹 다 날려주세요!" "예수님, 호산나! 내 앞길을 막는 저 짜증 나는 학원 숙제와 입시 스트레스에서 나 좀 영웅처럼 구원해 주세요!"
만약 우리의 신앙이 오직 내 눈앞의 골치 아픈 문제를 치워달라고 조르는 이기적인 환호성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2천 년 전 예수님을 향해 "내 욕심을 채워달라"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던 저 군중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내 영혼을 살리실 '진짜 구원자'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성공과 편리를 위해 이용해 먹으려는 아주 얄팍한 '가짜 신앙'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내 타이밍에 맞춰서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시면 언제든 실망하고 원망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하고 이기적인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2: 화려한 왕좌가 아닌, 처절한 십자가를 향한 걸음]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환호성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이 웅장한 모습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비슷한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열왕기상 1장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진짜 왕이 되기 위해 다윗의 나귀를 타고 들어올 때, 땅이 쩌렁쩌렁 흔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 역시 솔로몬 못지않은 엄청나고 열렬한 환호를 받고 계십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들어간 것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것에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엄청나고 분명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목적'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들어간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왕이 되기 위해서죠. 다윗을 이어 금으로 만든 화려한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호령하고 다스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칭송을 받으며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솔로몬처럼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로마 황제를 쫓아내고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떵떵거리며 다스리기 위해 들어가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사람들에게 온갖 욕을 듣고, 짐승처럼 매를 맞고, 뼛조각이 달린 로마 군병의 채찍에 살점이 뜯겨 나가고, 뾰족한 가시 면류관에 머리가 찔리고, 결국 그 두 손과 두 발에 대못이 박혀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야 할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당신의 온몸으로 다 짊어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시는 가운데 정말 소름돋는 부분, 너무 놀라운 부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내려오시던 곳이 바로 '감람산'입니다. 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면 무엇이 아주 잘 보이는 줄 아십니까? 자신이 억울하게 재판을 받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가야 할 처절한 고난의 길, 즉 '비아 돌로로사'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내려다보입니다.
여러분, 입장을 한번 바꿔서 생각해 보십시오. 저기 내가 맞아 죽고 찢겨 죽을 사형장이 뻔히 보이는데, 그 길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저와 여러분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 나 안 해! 저길 내가 왜 가! 나 살려줘!" 하고 당장 나귀에서 뛰어내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고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끔찍한 매를 맞기 싫고, 그렇게 비참하게 죽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눈앞에서 자기들의 겉옷을 깔아주며 "호산나!" 외치는 저 사람들이, 며칠만에 눈빛이 싹 돌변해서 "저 예수를 당장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하고 자신을 저주하고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완벽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저들의 태도가 완전히 배신자로 바뀔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나를 철저하게 배신할 사람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칠 사람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피비린내 나는 골고다 언덕. 하지만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도망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배신할 그들을 향해 아무런 말씀 없이, 묵묵히, 아주 무거운 걸음으로 죽음의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본론 3: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묵묵히 걸어가신 십자가]

여러분,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자기가 어떻게 될지 다 아시면서도, 저 사람들이 자기를 배신할 것을 뻔히 다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도대체 왜 피하지 않고 그 끔찍한 예루살렘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가셨습니까?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 무자비한 채찍에 맞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지 않으시면 어떻게 됩니까? 영원한 지옥의 형벌과 저주를 내가 다 받아야 하니까! 우리가 죗값으로 영원히 죽어야 하니까!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살려내려면, 죄의 끔찍한 억압과 감옥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주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 죗값을 치르고 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묵묵히 그 고통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저 말처럼 쉬운 일입니까?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7절에서 8절 말씀을 통해 이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기적인지 이렇게 선포합니다.
"의인을 위해 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간혹 선하고 착한 사람을 위해 대신 죽어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간혹 이순신 장군과 같은 위대한 영웅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뭡니까? 자기한테 피해를 주는 나쁜 사람, 죄인을 위해 죽어주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죄를 묻고, 비난하고, 무시하면 무시했지! 그 누구도 남의 죄를 대신 지고 싶어하지 않아요! 심지어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조차도 내가 끔찍한 죄를 짓고 엇나갈 때 무조건적으로 나를 대신해 죽어주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착하게 살고 예배 잘 드릴 때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내 성적 올려달라고, 내 대학 잘 가게 해달라고 예수님을 내 맘대로 이용해 먹으려는 이기적인 '죄인'이었을 때! 내 기대대로 안 되면 언제든 예수님을 배신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칠 수 있는 그 끔찍하고 더러운 상태였을 때! 바로 그때, 겸손의 왕이시자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가장 높으신 예수님께서 자격 없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지셨습니다.
도대체 왜요? 그저 우리를 사랑해서... 바보 같을 정도로 미련하게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청소년부 여러분, 이 엄청난 십자가의 사랑을 들으면서도 아직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 마음에 아무런 뜨거움도, 감동도 생기지 않습니까? 이제 제발, 이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가슴 저리게 느끼시길 바랍니다! 이 사랑을 느끼며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께 눈물로 감사드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살리시려고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신 그 사랑에 완전히 압도되어, 이제는 얄팍한 내 욕심을 버리고 나의 왕이신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가짜 호산나를 버리고, 진짜 호산나를 외치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갓디엘 중등부 여러분.
오늘 종려주일 예배가 끝나고 나면, 당장 내일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여러분, 이번 한 주간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중간고사보다, 내 성적표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무거운 시간입니다. 강도사님이 오늘 이 강단에서 여러분에게 정말 애타는 마음으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번 고난주간 동안, 학원 가고 게임하고 공부하는 그 바쁜 일상 속에서 제발 단 10분만이라도 멈춰 서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서 도대체 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그 끔찍한 고난을 받으셨는지' 단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생각하고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십자가 앞에 엎드려 진실하게 기도해 보십시오.
그렇게 기도할 때, 우리 안에 있던 그 얄팍하고 이기적인 '동상이몽'이 완전히 박살 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내 성적 올려달라고, 내 대학 잘 가고 성공하게 해달라고 예수님을 '요술 램프'나 '힘센 영웅'으로 이용해 먹으려던 그 가짜 호산나를 이제는 과감하게 버립시다. 내 기대대로 안 되면 언제든 "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라고 돌변할 수 있는 우리의 그 무서운 죄성을 철저하게 회개합시다.
그리고 나를 살리기 위해 골고다 언덕에서 살을 찢고 피를 쏟으신 그 거대한 십자가의 사랑을 이번 한 주간 가슴 깊이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에 완전히 압도되어, 이제는 진짜 여러분의 영혼 가장 깊은 곳, 마음속에서 뜨겁게 우러나오는 소리로 이렇게 외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호산나! 예수님! 호산나!"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나의 진짜 왕이시여! 내 욕망을 채워주는 가짜 영웅이 아니라, 나를 살리신 영원한 구원자시여! 이제는 내 욕심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내 인생을 완벽하게 다스려 주시옵소서!" 이 고백으로 가득한 한 주간의 삶, 아니! 평생의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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