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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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3년 전 종려주일에 오늘과 동일한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나눌 말씀도 그 때에 전한 말씀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리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동일한 말씀이 그 때에는 마음에 와닿지 않았더라도 오늘은 와닿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 생각들이 늘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절기를 지키는 이유는 변화된 삶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다시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기 위함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다시 누리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보여주신 신적 권능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보여주신 가르침과 놀라운 기적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분히 큰 흥분을 불러왔습니다. 그의 가르치심은 보통의 랍비와 같지 않고 참된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시는 것과 같았습니다. 또 그는 병자를 고치시고 굶주리는 이들을 먹이시고, 또 바람도 잔잔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루살렘에 들어오시기 직전에는 베다니에서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시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전해들은 제자들과 군중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칭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소리치는 “호산나, 찬송하리로다”의 뜻은 “지금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당신을 찬송합니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목해야 하고 그 의미를 잘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구원”의 문제입니다.

왜곡된 구원의 의미 (구원을 누가 규정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구원은 정치적인 구원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와 이방인들로부터 구원을 의미한 것이지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의미입니다.
그 정도의 구원으로 이해했으므로, 예수님을 정치적 혹은 군사적 통치자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씁쓸해 합니다. 그를 시기하고 그를 어떻게 죽일까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지켜온 전통을 무시하고, 그 전통의 경계를 무너뜨린 인물인 예수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승리를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윗의 나라가 회복되면 자신들의 종교적인 신념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자신들이 그동안 지켜왔던 종교 전통이었습니다. 그 종교 전통이 목숨보다도 중요했습니다. 그 종교 전통을 지키느라 죽임을 당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중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이나,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신념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들이 믿는다고 고백하고 자신들의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하나님 마저도 자신들의 이익과 신념 아래에 있었습니다.
자기의 뜻을 이루고자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찬송한 것입니다.

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는 예수님

사람들은 자기의 뜻을 이루고자 혹은 자신의 계산을 가지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라고 찬송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 분만이 온전한 순종을 이루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대단한 일을 이루러 가시는 예수님께서 큰 말을 타시거나, 아니면 가마를 타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모두 무시하고 그냥 걸어서 가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가랴 서에서 예언된 대로, 나귀, 그것도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둘어가셨습니다.
이것은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의미를 가질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그분의 뜻에 순종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환호와 칭송에서 그분은 분위기에 휩쓸려 우쭐하지 않았고, 자신의 진짜 왕이 되어서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 상황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실 것인지를 또한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의 의미

오늘 우리의 찬송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의 영혼을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까? 그리하여, 내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복종의 찬양입니까?
우리의 찬양이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굴복하는 찬양이 되지 못한다면, 이어지는 고난 주간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고난 주간이 “우리의 고난을 주님이 경험하셔서 주님은 우리의 고난을 아신다” 위로를 경험하는 주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마음을 둔다면, 고난 주간의 새벽예배와 성금요예배 참여와 때로 금식하기도 하고 무엇인가 절제하기도 하는 모든 행위들은 자기중심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찬양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에 종려가지를 흔들며 온몸으로 춤을 추며 목소리가 터지게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라고 소리쳤던 이스라엘 군중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는 찬양은 하나님이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에게 새로운 신분과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찬양이며, 그러므로, 그분을 믿고 신뢰하여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칭송을 받을 때나 핍박을 받을 때나 한결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고 순종하려고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겠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뜻은 내가 원하는 세상의 성공과 평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지켜오고 만들어 온 전통을 보존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당신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고난 주간 동안 우리가 목적으로 삼았던 것들과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을 말씀에 비춰보시는 기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라면 과감히 십자가에 못박는 한 주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더 미룰 수가 없습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때이고, 지금이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주님과 함께 고난 속으로 던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던지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깨지고 터지고 피가 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해봅시다. 눈물로 씨를 뿌리듯이 한 번 해봅시다.
우리 토랜스 선한목자교회 다시 생명력이 숨쉬는 교회로 함께 세워가 봅시다. 사우스베이 지역에 새바람을 일으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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