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부5(3.31)
26년 소망부 1학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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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150장
찬양/150장
묵상기도
묵상기도
신앙고백
신앙고백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 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151장
찬송가/151장
말씀(구.1033쪽)
말씀(구.1033쪽)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서론
서론
사랑하는 소망부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의 아침입니다.
매년 이맘때 고난주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칩니다.
"예수님 얼마나 아프셨을까 고통스러우셨을까. 나같이 부족한 사람 때문에 저 험한 십자가를 지시고 매를 맞으셨구나..." 하며 묵상을 합니다.
이 기간에는 왠지 맛있는 것을 먹어도 죄송하고, 편하게 누워 자는 것조차 송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매년 흘리는 이 익숙한 눈물의 진짜 의미를 정직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우리는 예수님을 그저 '불쌍한 분'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2천 년 전 억울하게 피 흘리고 죽어간 선량한 청년, 나를 위해 대신 매를 맞아주신 고마운 분을 향한 단순한 동정심이나 인간적인 미안함,
그것만으로 이 자리에 있지는 않았는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3년 동안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간절하게 외치셨던 말씀은
"내가 네 병을 고쳐주겠다, 네 가난을 해결해 주겠다"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유일한 관심은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다시 열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저 당장 내 굶주린 육신의 배를 채워줄 떡이 필요했고,
내 고단한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세상적인 능력만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죄가 없으신, 흠 없고 완전하신 주님의 빛이 우리 삶에 비쳐들자,
우리는 내 영혼 밑바닥에 꽁꽁 숨겨두었던 이기심과 교만, 그리고 내 초라한 질고들을 고스란히 들어납니다.
어쩌면 그렇습니다.
축복만 주시면 좋겠는데 자꾸만 내 부끄러운 죄악을 예리하게 찌르시니, 우리는 그 완전하신 빛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하며 엎드리는 대신, 내 죄인 됨을 덮어버리려고 그 거룩한 빛을 아예 꺼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저 갈보리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는 단순히 로마 군병들의 잔인함과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비극이 아닙니다.
나의 초라함을 들키기 싫어서 완전하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밀어낸, 우리 내면의 분노와 교만이 세워놓은 사형틀입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는 더 이상 구경꾼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동정할 수 없음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왜 그토록 의인이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했는지, 그리고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는지,
그 피 묻은 십자가의 진짜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해 보고자 합니다.
[대지 1] 완전한 의인을 향한 죄인들의 '분노와 거부'
[대지 1] 완전한 의인을 향한 죄인들의 '분노와 거부'
오늘 우리가 이 거룩한 고난주간에 가슴을 찢으며 묵상할 첫 번째 이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완전하신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분노했으며, 결국 그분을 십자가로 거부해 버렸다"는 끔찍한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 기간 동안 이 땅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간절하게 전하신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다시 열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되어 버린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그 거룩한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완전한 죄인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너무나 깊이 병들고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우리 곁에 다가오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그분이 누구신지조차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 기적' 직후의 사건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 수많은 무리가 열광하며 예수님을 억지로 붙잡아 자신들의 세상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영적 무지함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한복음 6장 26절)
그렇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은 생명의 떡이요 하나님 나라의 참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당장 내 굶주린 육신의 배를 채워줄 사람, 내 가난과 질병의 팍팍한 문제를 해결해 줄 세상적인 '기적의 자판기'로만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 영적으로 눈이 먼 죄인들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것이 어디 2천 년 전 무지한 군중들만의 이야기입니까?
가만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도 이들과 똑같을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는 내 삶에 좋은 것이 채워지고, 기도가 척척 응답되어 넉넉하게 부어지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에 이렇게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곤 합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사무엘상 2장 7절)
사랑하는 어르신들, 내 삶에 찾아오는 뼈아픈 고난은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까?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가난과 낫지 않는 질병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없습니까?
우리는 내 입맛에 맞는 달콤한 축복만 원합니다,
고난과 결핍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도무지 인정하기가 싫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내 배를 불려줄 떡만 원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지독한 이기심과 영적인 맹인 됨 한가운데로, 완전하신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단 한 점도 없으신, 그 모습으로 '완전하고 흠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서셨습니다.
그런데 그 거룩하고 완전하신 빛이 우리를 비추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영혼 깊숙한 곳에 꽁꽁 감추어져 있던 추악함이 적나라하게 폭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 내 속이 얼마나 썩어 문드러져 있는지, 내가 얼마나 탐욕스럽고 초라한 죄인인지가 그 빛 앞에서 숨김없이 드러났습니다.
우리의 원래의 모습을 하는 그 거룩하고 완전한 모습을 예수님을 통해 보게 되었을 때, 타락한 인간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 완전하신 빛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가슴을 치고 회개했어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망가진 피조물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완전하신 예수님을 보며 극심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왜 화를 냈습니까? 나의 진짜 모습, 나의 초라함과 끔찍한 모습, 내 영혼 밑바닥에 깔린 죄인 됨을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그 거룩한 진리의 빛을 아예 꺼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내 추악한 몰골을 비추는 그 거울을 산산조각 내버리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침을 뱉고, 채찍을 휘두르며, 마침내 그 끔찍한 십자가 형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저 거룩한 예수를 죽여서라도 내 죄인 됨을 덮어버리겠다! " 이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에 담긴 우리 인간의 민낯이요,
완전한 의인을 향한 죄인들의 거부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2천 년 전 로마 군병들과 유대인들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내 자존심을 꺾지 않으려 하고, 나의 죄인 됨을 교묘하게 숨기려 했던 나의 그 지독한 교만과 분노가 바로 예수님의 손과 발에 대못을 박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소망부 어르신 여러분, 우리는 이 고난주간에 십자가 앞에서 가장 먼저 우리의 이 무서운 영적 교만을 철저히 깨뜨려야 합니다.
한평생을 살아오시면서 남들에게 얕보이지 않으려고,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내 마음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부끄러운 죄악들, 억눌린 분노, 영적인 질고들을 이제는 십자가의 빛 앞에 정직하게 다 드러내야 합니다. 나의 죄인 됨을 더 이상 숨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다가오신 그 유일한 의인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 완전하신 사랑을 거부하며 오히려 십자가로 밀어내 버렸던 장본인이 바로 '나'였음을 뼈저리게 고백이 되어야만 합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혜는 바로 이 처절한 자기 고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교만과 죄악이 있음을 정직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나를 살리신 저 피 묻은 십자가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대지 2] 내가 당했어야 할 고통을 대신 지신 예수님
[대지 2] 내가 당했어야 할 고통을 대신 지신 예수님
두 번째 위대한 대속의 은혜 봅시다
앞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빛이 비치자,
우리의 교만과 추악함을 숨기기 위해 의인이신 예수님을 십자가로 거부해 버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기독교 복음의 가장 위대하고 가슴 시린 역설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인 됨을 들키기 싫어서 예수님을 향해 돌을 던지고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는데,
정작 그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은 자기를 찌르는 우리를 향해 저주를 퍼붓지 않으셨습니다. "
오히려 그 십자가 위에서 양팔을 벌린 채, 끝까지 우리를 품어 안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본문 53장 4절과 5절에서 이 기가 막힌 은혜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함께 읽어보십시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장 4~5절)
어르신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지신 질고는 육신의 처절한 고통이요, '슬픔'은 내면의 극심한 불안과 영혼의 고뇌를 뜻합니다.
주님은 저 높은 하늘 보좌에 앉아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그저 구경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생토록 짊어지고 가야 할 그 무거운 삶의 고통과 영혼의 비참함을, 저 십자가 위에서 살갗으로 고스란히 다 겪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뾰족한 가시 면류관에 머리가 깊이 찔리시고, 로마 군병의 무자비한 채찍에 등이 갈기갈기 파이며, 양손과 양발에 굵은 대못이 박히는 그 참혹한 육신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처참하게 피 흘리고 찔리셔야만 했습니까?
예수님이 무슨 큰 죄를 지어서요? 아닙니다. 말씀이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선악과를 따먹고 내 마음대로, 내 고집대로 살려 했던 나의 교만한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또 말씀합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우리 속에 있는 온갖 미움과 욕심, 시기와 원망으로 가득 찬, 나의 추악한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고난주간에 저 피 묻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 보십시오.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진짜로 죽었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접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들입니다.
저주받은 그 무서운 십자가에 매달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채찍질을 당하며 피를 흘려야 했던 진짜 죄인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 자리에 매달려 세상의 조롱과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다 당해야만 했습니다.
저 십자가의 고난은 사실 나의 고난이었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장 6절)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대속(代贖)'입니다.
이기적이고 고집불통인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맹렬한 진노와 심판의 채찍을, 십자가에 매달리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몽땅 쏟아부으셨습니다.
우리는 나 살겠다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어둠 속으로 내몰았는데,
예수님은 죽어가는 나를 살리시려고 기꺼이 그 죽음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그 질고와 평생 쌓아온 인생의 슬픔, 그리고 내가 영원히 받아야 할 지옥의 형벌까지 온몸으로 다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우리 주님의 피 묻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소망부 여러분, 우리는 이 참뜻을 깊이 알고 영원토록 기억해야 합니다.
저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의 고난은 원래 내 것이었어야 할 고난이요,
내가 매달렸어야 할 내 몫이었습니다.
이 거룩한 고난주간, 나를 대신하여 온몸이 찢기신 그 십자가의 대속 은혜 앞에, 오직 가슴을 치며 눈물로 엎드리는 우리 소망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언합니다.
[대지 3] 핏값으로 우리를 사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
[대지 3] 핏값으로 우리를 사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엄청난 핏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사셨다"는 위대한 선포를 기억합시다.
앞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내내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지만 영적으로 눈먼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갈 자격조차 없는 완전한 죄인들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채, 내 죄악의 무게에 짓눌려 영원한 멸망과 지옥의 형벌을 향해 끌려가던 사형수들이 바로 우리의 비참한 영적 현주소였습니다.
죄인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룩한 빛이 다가오자 내 초라함을 들키기 싫어 오히려 분노하며, 유일한 의인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버린 완악한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그 참혹한 십자가의 정점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며 무엇이라고 외치셨습니까?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겠습니까.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한복음 19장 30절)
"다 이루었다!"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우리들, 죄악의 빚더미에 눌려 영원히 죽어야만 하는 우리를 살려내시기 위해, 당신의 생명이라는 가장 값비싼 대가를 남김없이 다 지불하셨다는 승리의 외침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로 예수님을 밀어내고 거부했을 때,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는 능력, 곧 대속의 피를 쏟으심으로 우리를 완전히 덮어주셨습니다.
사망과 어둠의 권세 아래 있던 우리를 주님의 십자가 핏값으로 정당하게 사서 '하나님 나라'의 소유로 옮겨주신 구원의 완성입니다.
이 십자가의 대속과 사랑이 얼마나 처절하고 생생한 것인지, 유대인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엘리 위젤의 자전적 소설 『밤(Night)』에 나오는 아주 가슴 아픈 장면을 하나 나누고자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끔찍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맑고 어린 소년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수대에 매달려 처형을 당합니다.
어른들과 달리 소년은 몸무게가 가벼워서 밧줄에 매달린 채로 단번에 숨이 끊어지지 않았고, 무려 반시간이 넘도록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포로들은 그 처참한 광경을 강제로 지켜보며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때 엘리 위젤의 곁에 서 있던 누군가가 참다못해 절망에 빠져 절규하듯 소리칩니다.
"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도대체 지금 어디에 숨어 계신단 말인가!"
그 고통스러운 외침의 순간, 엘리 위젤의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그분은 바로 저기, 저 교수대에 저 아이와 함께 매달려 계신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비참하게 죄의 노예로 고통받고 영원한 형벌을 향해 끌려갈 때, 저 멀리 하늘 보좌에 앉아 팔짱 끼고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라는 죄악의 수용소에서, 영원한 사망과 지옥의 교수대에 죽어야만 했던 것은 죄인인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주관자이신 주님이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셔서, 내가 매달려야 할 그 참혹한 십자가의 교수대에 홀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나님, 내 몸이 이렇게 아프고 쇠해져 가는데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내 삶이 이렇게 외롭고 고통스러운데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원망할 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붉은 피를 흘리시며
"내가 너를 살리기 위해, 너를 대신해 바로 여기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십자가 앞에서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의 죄인 됨을 부끄럽다며 교묘하게 숨겨서는 안 됩니다.
"저 십자가의 고난이 사실은 내가 매달려 당했어야 하는 나의 고난이었습니다. 주님, 내가 죽었어야 했습니다!" 이 처절한 고백이 우리 입술에서 터져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십자가의 핏값으로 팔렸습니다.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 권세의 종이 아닙니다. 죽음의 그늘 아래 웅크려 벌벌 떠는 불쌍한 노예가 아닙니다.
몸이 쇠하여 가고, 기억이 흐려지고, 곁에 있던 이들이 하나둘 먼저 세상을 떠나가도—
우리의 이름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영원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그 큰 대가를 치르고 사신 바 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것', 오직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임을 평생토록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십자가의 승리를 가슴에 품고,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담대하게 살아가시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소망부 성도 여러분,
이번 고난주간에는 내 영혼의 부끄러운 죄인 됨을 가리기 위해 예수님을 밀어냈던 교만을 철저히 회개하고 십자가 앞에 온전히 엎드립시다.
저 끔찍한 십자가는 억울한 비극이 아니라, 사형수인 '내가' 매달려 피 흘려야 했던 내 몫의 교수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곳에서 나를 대신해 온몸이 으스러지는 대가를 치르심으로, 사망의 노예였던 우리를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값 주고 사셨습니다.
제는 십자가의 핏값으로 사신 바 된 존귀한 자녀답게, 더 이상 세상의 권세나 죽음의 두려움에 얽매이지 말고 오직 나를 살리신 그 찢어지는 사랑만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영원한 생명을 주신 십자가 대속의 은혜에 감격하며, 남은 평생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소유로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거룩한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십자가의 진짜 의미를 우리 영혼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참으로 영적으로 눈이 먼 죄인들입니다. 한평생 살아오면서 그저 내 육신의 배를 채워줄 떡만 구했고, 내 팍팍한 삶의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고난 앞에서는 하나님을 원망했고, 완전하신 주님의 빛 앞에서 나의 흉측하고 초라한 민낯이 드러날 때는 회개하기는커녕 내 자존심을 지키려고 오히려 주님을 십자가로 밀어내 버린 완악한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 무서운 영적 교만과 죄악을 이 시간 철저히 회개하오니,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주님, 저주받은 그 무서운 십자가 사형틀에 발가벗겨진 채 매달려 피 흘리며 뼈가 으스러져야 했던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눈물로 고백합니다. 내가 매달렸어야 할 그 교수대에,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홀로 올라가셨습니다.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육신의 질고와 가슴 찢어지는 슬픔, 그리고 영원히 받아야 할 지옥의 심판까지 주님이 십자가에서 온몸으로 대신 다 끌어안아 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선언하시며 흘리신 그 엄청난 핏값으로 우리를 사셔서, 이제는 사망의 노예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 삼아주시니 그 은혜에 감격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소망부 어르신들, 남은 평생 살아가는 동안 육신의 연약함과 삶의 고단함이 찾아올지라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고통의 순간마다 "내가 너를 살리기 위해 바로 여기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그 찢어지는 사랑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이제는 이 피 묻은 십자가만을 평생의 유일한 자랑으로 삼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담대하게 승리하는 하나님 나라의 존귀한 백성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참 생명을 주신, 사랑하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