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31 고난주간 별밤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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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 3월 31일(화) — 두 렙돈의 흔적본문: 마가복음 12:41-44 | 키워드: 과부의 헌금, 전부를 드림
1. 인트로 (1분)
사순절 묵상 '흔적', 5주 차 둘째 날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를 위해 '전부'를 내어놓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전부를 드린다는 것은 무섭고 불안한 일입니다. 내 손에 쥔 것을 다 놓아버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고난주간의 화요일,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종교 지도자들과 치열하게 논쟁하셨습니다. 그 긴 하루의 끝자락, 예수님은 성전 헌금함 맞은편에 조용히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헌금을 지켜보시던 예수님의 눈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 가난한 과부의 아주 작은 동전 두 닢이 들어옵니다. 그 보잘것없는 두 렙돈이 남긴 흔적을 묵상하며, 오늘 우리의 헌신을 돌아보겠습니다.
2. 본문 읽기 (1분 30초)
마가복음 12장 41절에서 44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개역개정)
Mark 12:41–44 NKRV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3. 배경 설명 (4분)
이 장면의 무대는 예루살렘 성전의 '여인의 뜰'입니다. 이곳에는 나팔 모양으로 생긴 헌금함 열세 개가 벽을 따라 일렬로 놓여 있었습니다. 각 헌금함에는 성전세, 향 헌금, 번제 헌금 등 용도가 적혀 있었고,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헌금함에 돈을 넣었습니다. 금속 동전이 나팔 모양의 입구를 타고 떨어질 때 쨍그랑 소리가 났기 때문에, 많은 돈을 넣을수록 소리가 크고 길었습니다. 부자들이 두둑한 돈주머니를 쏟아넣으면 성전 뜰에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주변 사람들의 감탄 어린 시선이 자연스럽게 쏠렸습니다.
예수님은 이 헌금함 맞은편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41절에서 '보시는데(ἐθεώρει, 에테오레이)'라는 단어는 그냥 흘깃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관찰하고 살펴보시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헌금함에 떨어지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그 돈을 넣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계셨습니다.
42절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 당시 유대 사회에서 과부는 가장 힘없고 취약한 존재였습니다. 남편을 잃은 여성은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없었고, 마땅한 생계 수단도 없었습니다. 바로 직전 본문인 마가복음 12장 40절에서 예수님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이 과부의 가난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부패한 종교 체제가 만들어낸 구조적 착취의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이 과부가 넣은 돈은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였습니다. 렙돈(λεπτόν, 렙톤)은 당시 유대 화폐 중 가장 작은 단위로, 얇은 구리 조각에 불과했습니다. 로마 화폐로 환산하면 한 고드란트, 즉 당시 노동자 하루 임금의 64분의 1에 해당합니다. 부자들이 쏟아낸 요란한 동전 소리 속에서, 이 작은 구리 동전 두 닢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4. 본문 해설 (7분)
43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특별히 불러 모으십니다. 그리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엄숙한 선언으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진실로(ἀμήν, 아멘)'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서에서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진리를 선포할 때만 사용됩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이 작은 사건에 대해 예수님이 이토록 엄숙하게 선언하신다는 것 자체가, 이 과부의 헌금이 하나님 나라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선언은 놀랍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도다."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부자들이 넣은 금화 수십 닢보다 구리 동전 두 닢이 더 많다니.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회계 장부는 세상의 장부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액수가 아니라 비율을 보시고, 손에서 나간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 것을 헤아리십니다.
44절에서 예수님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의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풍족한 중에서(ἐκ τοῦ περισσεύοντος, 에크 투 페리세우온토스)'라는 표현은 넘쳐서 남는 것, 쓰고도 충분히 남는 여유분에서 드렸다는 뜻입니다. 부자들의 헌금은 아무리 액수가 커도 자기 삶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는, 안전한 범위 안에서의 드림이었습니다. 내일 먹을 밥이 걱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드린 것입니다.
반면 '생활비 전부(ὅλον τὸν βίον, 홀론 톤 비온)'라는 표현에서 '비오스(βίος)'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삶 그 자체, 생존 수단 전부를 뜻합니다. 이 과부는 오늘 저녁 끼니를 해결할 마지막 동전 두 닢을 넣은 것입니다. 내일 어떻게 살아갈지 전혀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생존의 마지막 보루까지 하나님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한 닢만 넣고 한 닢은 남겨둘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충분히 큰 헌신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두 닢 모두를 넣었습니다. 절반이 아니라 전부였습니다.
이 과부의 행동은 단순한 헌금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의 고백입니다. 내 생존의 마지막 수단마저 주님께 드리고 나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그 빈손으로도 하나님이 나를 먹이시고 살리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나의 안전망을 하나님께 전부 맡겨드리는 행위, 이것이 예수님이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선언하신 이유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건의 위치입니다. 마가복음의 구조 안에서 이 장면은 예수님이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꾸짖으신 직후(12:38-40), 그리고 성전의 멸망을 예고하신 직전(13:1-2)에 놓여 있습니다. 겉으로 화려하지만 속이 썩어가는 종교 체제 한복판에서, 이 이름 없는 과부 한 사람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짜 예배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5. 오늘의 적용 (6분)
청년 여러분, 우리는 솔직히 '전부를 드리는 일'이 두렵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네 안전망을 절대 놓지 마라, 최소한의 보험은 들어놓아라, 몰빵은 어리석은 짓이다. 맞는 말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그렇습니다. 이 과부의 행동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도 이런 세상의 논리에 갇혀 있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되, 내 생활에 타격이 없는 안전한 범위 안에서만 드립니다. 시간을 드리되, 내 스케줄에 여유가 있을 때만 드립니다. 마음을 드리되,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열어놓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늘 '풍족한 중에서' 떼어내는 여유분의 헌신입니다. 쓰고 남은 시간, 쓰고 남은 에너지, 쓰고 남은 관심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나는 충분히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액수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비율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비율보다 더 깊이, 그 마음을 보셨습니다. 나에게 남은 것이 충분한 상태에서 일부를 떼어주는 것과, 이것을 드리면 내일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전부를 내어놓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과부의 두 렙돈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크기를 보여줍니다. 나의 내일을 내가 쥐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하나님이 나를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전적인 신뢰 말입니다.
사실 이 과부의 모습은 며칠 뒤 십자가에서 자기 전부를 내어주실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비추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자기 생명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쏟아부으셨습니다. 절반만 고통받고 적당히 타협하신 것이 아니라, 전부를 내어주셨습니다. 이 과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십자가의 사랑을 먼저 실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큰 액수의 헌금이 아닙니다. 화려한 스펙의 봉사도 아닙니다. 나의 안전망을 내려놓고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마음,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작고 보잘것없을지라도 그것을 아낌없이 주님 앞에 내어놓는 용기,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예배입니다.
오늘 나의 손에 쥐어진 것이 두 렙돈뿐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은 그것을 비웃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 작은 동전 두 닢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소리를 누구보다 크게 들으셨습니다. 고난주간의 둘째 날, 풍족한 중에서 여유분을 떼어내는 안전한 신앙을 내려놓고, 나의 전부를 맡겨드리는 과부의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6. 합심 기도 인도 (2분)
(말씀을 마치고 반주가 잔잔하게 깔리면, 목사님이 기도를 인도합니다)
"청년 여러분, 두 가지 기도제목을 선포하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첫째, 풍족한 중에서 여유분만 떼어 드리며 충분히 헌신했다고 착각했던 우리의 안전한 신앙을 회개합니다. 쓰고 남은 시간, 쓰고 남은 마음만 주님께 드렸던 우리의 인색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둘째, 내일이 보장되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책임져 주실 것이라 믿고 전부를 내어놓는 과부의 믿음을 주옵소서. 비록 내 손에 쥔 것이 두 렙돈뿐일지라도, 그것을 아낌없이 주님 앞에 드리는 담대한 청년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한 번 부르고 뜨겁게 기도합시다!"
(2분간 통성기도 후 마무리 기도)
[마무리 기도]
주님, 그동안 내 삶에 타격이 없는 안전한 범위 안에서만 드리며, 그것을 헌신이라 불렀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풍족한 중에서 남는 것을 떼어 드리면서 충분하다고 착각했습니다. 주님, 이름 없는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을 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주님만은 그 소리를 들으셨고 그 마음을 보셨습니다. 저도 그 과부처럼 나의 안전망을 내려놓고, 내 내일을 주님의 손에 온전히 맡겨드리는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내 손에 쥔 것이 작고 보잘것없을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부를 드리는 거룩한 청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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