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시작, 함께 틔우는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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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불안과 효능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 도입 | 서툰 것 같은 오늘 — 이 불안이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맘톡톡 어머니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아이 챙기고, 어린이집·유치원 보내고,
그 짧은 틈에 여기까지 달려오신 분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대단하신 거예요.
육아 참… 쉽지 않죠…?
육아 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드신가요?
(물어본다)
우리 아내가 기여하는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육아에 최선을 다해본 결과.
예상했던 힘듦은 있었어요.
나도 사람인지라 진짜 피곤한 날에
나도 한계점에 도달한 날에
도저히 육아를 할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것.
당연히 예상했었습니다.
당연하게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건
나 왜 이거밖에 안 되지?
나는 괜찮은 아빠인가…?
한 번은 제가
완전 쪼그만한 아이에게
화를 낸 적이 있었어요.
아이가 막 이제 뒤집기를 할 때였어요.
그날은 제가 너무 피곤해서
기저귀 갈이대에서 악어가 먹이 물은 것 마냥
막 돌고 있는 아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었어요.
아! 가만히 쫌!
또 어떨때는
아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내 입에 들어온 음식이 궁금하기도 하고
먹기 싫기도 하고 해서 푸우우우우 하면서
음식을 뱉을 때였어요.
그때도 이은아!
너무 화가나서 소리를 질렀어요.
그리고 나서 아이를 재우고 그 날 밤
저는 불편한 마음을 지우지 못했어요.
난 왜 마음의 그릇이 이거밖에 안 되는거지?
다른 엄마 아빠들은 잘 기다려주고
이해해주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그러지?
어떻게 이런 핏덩이에게 내가 소리를 질렀지? 미친건가…?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아빠인 나도 이렇게 부족함을 느끼면 괴로운데,
아이들과 붙어 있는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더 많은 우리 엄마들은
이런 마음을 얼마나 더 깊게 얼마나 더 자주 느낄까?
다들 경험해보셨죠?
우리 아이에게서 잘못된 무언가를 발견했을때,
혹은 나도 모르는 이 아이가 불편하고 힘들어했던 마음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을때,
그 원인이 나라고 생각이 들때,
우리의 마음은 바닥으로 주저앉고 맙니다.
내가 뭘 놓쳤지? 내가 뭘 잘못한거지?
아… 쫌 더 잘해줄걸...
다른 엄마들은 잘만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 너무너무 미안하다…
내가 쫌만 더 지혜로웠더라면…
내가 쫌 더 마음의 그릇이 넓은 엄마였다면…
💡 통찰 ① | 이상한 게 아니에요 — 육아 효능감 이야기
이런 마음을 심리학에서는
"육아 효능감의 하락”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이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어, 내가 하는 돌봄이 꽤 괜찮아"
라고 느끼는 그 내적인 확신,
그 확신이 굉장히 심하게 요동칠 때가 있죠.
이렇게 효능감이 떨어질때면
불안함도 찾아오죠.
내가 이렇게 못해줘서 애가 잘못크면 어떻게 하지?
내가 쫌 더 괜찮은 엄마가 아니어서
아이가 부족하게 크면 어떻게해...?
그런데요. 마음이 이렇게 요동치는 건
당연한겁니다.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고요,
온몸으로 치열하게 이 육아라는 전쟁터를
통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 통찰 ② | 충분히 좋은 엄마 — 위니콧 이야기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였던
도널드 위니콧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수많은 엄마들을 상담하고,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이 사람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다."
아이한테 좋은 것만 해주고 싶잖아요?
완벽하게 다 해주고 싶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우리의
상황이나 형편, 내지는 나의 부족한 성품을
마주하게 되었을때 우리의 마음은 무너지죠.
그러나 엄마의 사소한 실수와 불완전함이
오히려 아이에게 "세상이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해주는 가장 안전한 교실이 된다는 겁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훈육하다 목소리가 높아진 날도 있고,
상한 음식을 주는 날도 있고,
나도 모르게 던진 말 때문에
우리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순간도
분명 있을거에요.
그렇지만
실수 한 번 안 하는 100점짜리 완벽한 엄마보다,
서툴고 실수가 많아도
아이와 다시 눈을 맞추고 꼭 안아주며
마음을 내어 주는 엄마가
아이에게 훨씬 더 안전한 둥지가 됩니다.
서툴고 지친 엄마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 속에서도 이 광야를 먼저 걸어간 여인이 있었어요.
다음날 아침에 일찍, 아브라함은 먹거리 얼마와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에게 주었다. 그는 먹거리와 마실 물을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서, 그를 아이와 함께 내보냈다. 하갈은 길을 나서서, 브엘세바 빈 들에서 정처없이 헤매고 다녔다.
하갈과 그의 아들은 쫓겨났습니다.
엄마의 성품이 부족해서 주인에게 건방지게 대하다가
졸지에 아들까지 피해를 보게 된 안타까운 상황이었어요.
빈 들에서 정처없이 헤매고 다녔어요.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고
뭘 해야할 지도 모르고
참 무능한 엄마죠.
성품도 부족해. 능력도 없어.
그런데 하갈의 무능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가죽부대에 담아 온 물이 다 떨어지니, 하갈은 아이를 덤불 아래에 뉘어 놓고서
“아이가 죽어 가는 꼴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하면서, 화살 한 바탕 거리만큼 떨어져서, 주저앉았다. 그 여인은 아이 쪽을 바라보고 앉아서, 소리를 내어 울었다.
아이가 죽어가고 있는데
그냥 멀찍이 주저앉아서
어찌할 줄 몰라서 울고만 있어요.
이런 무능한 엄마가 어디 있습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애 살릴 생각해야지....
정말정말 너무 부족하고 미성숙한 엄마, 하갈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무능한 자신이 얼마나 싫었을까요?
얼마나 많이 자책했을까요?
얼마나 많이 자신의 과오를 후회했을까요?
그런데 그때, 모든 마음이 무너져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한 그녀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셨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을 부르며 말하였다. “하갈아, 어찌 된 일이냐?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이가 저기에 누워서 우는 저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아이를 안아 일으키고, 달래어라. 내가 저 아이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
하나님은 하갈에게 말씀하신겁니다.
하갈아 많이 무서웠구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힘들었지?
네가 이스마엘의 삶을 망쳤을까봐
너 때문에 아이가 잘못된 것 같아서
두려웠지? 괜찮아 무서워하지마.
하갈은 홀로 있지 않았어요.
충분히 좋은 부모이신
하나님이 계셨어요.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하갈의 삶의 형편이나
하갈의 능력을 완벽하게
만들어주신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먼저 만져주셨어요.
아이고 무슨 일이야? 괜찮아?
무서워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그렇게 가장 먼저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되어주셨고,
이제는 하갈에게 말씀하시죠.
얼른 가서 네 아들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로써
그 자리를 지켜주렴,
가서 아이를 안아 일으켜줘.
달래줘.
아무리 실수했어도, 아무리 잘못했어도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기다리시면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부모로써
그 자리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질문이 하나 생기죠.
내가 충분히 좋은 엄마로써 있어주더라도
어쨋든 현실적으로
이 아이가 세상을 스스로 살아갈 힘과 능력이
이 아이에게 갖춰져야 하잖아요?
이 생각이 딱 들면
나도 모르게 이 아이에게
해줄 것들을 막 준비합니다.
학원도 보내야하고
공부도 시켜야하고
예체능도 조금은 시켜야하고
옆집 엄마는 이런거 해주니까
나도 해야겠고…
또 다시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되니
불안한 마음과 조급한 마음이 앞섭니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위해서 준비한걸
아이가 충분히 따라오지 못할때 화나죠.
또 분노하게 되죠.
그러면 우리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로써의 모습은
또 사라지게 되고,
다시 완벽을 추구하는 엄마의
모습만 남게 됩니다.
헤어나올 수 없는 굴레에 같힌 것 같은데
그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광야와도 같은 인생에
길을 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네가 길을 찾고,
네가 알아서 길을 만들어주어라! 라고 말씀하지 않으세요.
길은 내가 낼게. 너는 그 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돼.
우리의 육아와 부모로써의 책임을
하나님이 같이 져주시겠다는 거잖아요.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인생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 하나님이 그 아이와 늘 함께 계시면서 돌보셨다….
아이의 앞길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 아이의 인생을
내가 무언가를 잘 해줌으로써
책임지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지 않아도 돼요.
하나님이 이 아이의 인생을
반드시 책임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냥 충분히 좋은 엄마로써 있어주세요.
💜 위로와 결단 | 넌 이미 완벽하게 충분해
[호흡을 깊이 한 번 들이쉬고, 천천히 어머니들을 바라보며]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응팔 이야기
아이를 키우는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아이 앞에서
올바른 엄마로 사는 것도 처음이잖아요.
처음인데 어떻게 능수능란할 수 있겠습니까.
엄마라고 하는 존재는 그런 것 같아요.
아이 앞에서 완벽한 존재로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아이와 함께 수만 번 넘어지고 깨지며 서서히 빚어지는,
흉터투성이의 훈장과도 같은 이름이 엄마입니다.
[3초간 침묵]
하나님은 온 우주의 수십억 인구 중에서
바로 "여러분"이, 이 아이에게 가장 꼭 맞는 엄마이기 때문에
이 귀한 생명을 여러분의 품에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실수 없는 섭리가 있습니다.
오늘, 나를 옥죄던 "완벽한 엄마"라는
무겁고 차가운 갑옷을 하나님 앞에 벗어 던지세요.
그 갑옷은 하나님이 입히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SNS가, 내 안의 비교가 억지로 입혀놓은 것입니다.
[아주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주님은 오늘, 죄책감과 불안으로 얼룩진
여러분의 손을 꽉 잡으시며 이렇게 속삭이십니다.
"내 사랑하는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홀로 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란다.
내가 너와 함께 이 아이를 키우고 있어.
넌 이미 내 눈에 너무도 훌륭한 엄마란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은 씨앗 하나를 품고 오셨습니다.
불안하고 서툴고, 내가 이것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두렵기만 한 그 씨앗.
하지만 씨앗은 완벽한 흙이 아니어도 싹을 틔웁니다.
틈 사이로, 돌 위에서도,
때로는 가장 척박한 자리에서 가장 질긴 뿌리를 내립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서툰 손에 맡기신 이 작은 생명도,
반드시 그렇게 자랄 것입니다.
이 아이는 나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키우고 계시거든요.
하나님이 이 아이 인생 반드시 책임진다고 하셨고,
그 사실은 절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서툰 시작이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그 예쁜 싹을 아름답게 피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