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3 성금요일 청년 기도회
Notes
Transcript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1. 어떤 밤이었는가
바울은 먼저, 이 말씀이 자기 생각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주께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만찬은 사람이 만든 전통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직접 만드시고, "이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잡히시던 밤"입니다. 유다가 이미 예수님을 팔기로 마음먹은 밤입니다. 몇 시간 뒤면 체포되실 것을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모두 도망칠 것도 아셨습니다.
보통 우리는 배신당하면 문을 닫습니다. 혼자 있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였습니다. 배신당하는 바로 그 밤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자기를 버릴 사람들 앞에서 떡을 떼어 주셨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2. 떡 — "너희를 위하는 내 몸"
예수님은 떡을 떼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 식탁은 유월절 식탁이었습니다. 유월절이 뭡니까.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할 때, 하나님이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른 집은 죽음이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양이 대신 죽어서, 사람이 살았습니다. 유월절은 그 밤을 기억하는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유월절 식탁에서 말씀하십니다. "이 떡이 나의 몸이다." 이제 어린 양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대신 죽는 양이 되신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는"이라는 말이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찢어진 것은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여러분을 대신해서 찢어지신 것입니다. 떡이 찢어져야 나눠 먹을 수 있듯이, 예수님의 몸이 찢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이 온 것입니다.
오늘 이 떡을 받을 때, 이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 작은 떡 한 조각이 가리키는 것은, 나를 대신해서 고통당하신 예수님의 몸입니다.
3. 잔 — "내 피로 세운 새 언약"
식사 후에 예수님은 잔을 드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그런데 백성은 그 약속을 계속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언젠가 완전히 새로운 약속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새겨지는 약속, 죄를 완전히 용서하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이 잔이 바로 그 새 약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오래전에 약속하셨던 것이, 지금 이 식탁 위에서, 예수님의 피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이 약속은 우리가 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내가 넘어져도, 실패해도, 하나님이 나와 맺으신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잔을 마실 때, 우리는 그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4. "나를 기념하여" — 기억한다는 것
예수님은 떡을 주실 때도, 잔을 주실 때도,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
여기서 "기념한다"는 말은 단순히 "옛날 일을 떠올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유월절 때 이스라엘 백성은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추억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주셨다. 우리가 바로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과거의 일을 지금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만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천 년 전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이 오늘 나와 상관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지금 나에게도 유효하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2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만찬은 과거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미래도 바라봅니다. 이미 구원받은 감사와, 아직 완성될 소망 사이에서, 우리는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며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가며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잠시 후 우리는 함께 떡과 잔을 나눌 것입니다.
혹시 마음이 무거운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주간 지치고, 내가 이 은혜를 받아도 되는 건지 망설여지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자기를 배반할 제자들과 함께 이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완벽한 사람을 위한 식탁이 아닙니다. 부족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차려주신 식탁입니다.
이 떡을 먹을 때, 나를 대신해 찢어지신 예수님의 몸을 기억하십시오. 이 잔을 마실 때, 나와 하나님 사이를 영원히 이어주는 그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이 성금요일, 감사와 경외함으로 함께 떡과 잔을 나누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금요일에 주님의 식탁 앞에 나아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몸을 내어주시고, 피를 흘려 새 약속을 세워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지금 이 떡과 잔을 나누며,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선포하게 하옵소서. 부족한 우리를 이 식탁에 초대해 주신 사랑 앞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이 은혜 안에 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애찬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방금 우리는 함께 떡을 먹고 잔을 마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같은 밤, 같은 식탁에서 한 가지를 더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의 순서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주시고 잔을 나눠 주셨습니다. 그다음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먼저 사랑을 받은 다음에,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가 먼저이고,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가 그다음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입니다. 방금 성만찬을 통해 확인한 그 사랑, 나를 위해 몸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신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이제 옆에 앉은 사람을 향해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함께 밥을 먹으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초대교회도 이렇게 했습니다. 함께 떡을 떼고,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짐을 나눠 졌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행 2:46)고 했습니다. 식탁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삶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자리였습니다.
지금부터 함께 식사하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한 가지만 나눠 주십시오. 요즘 내 삶에서 기도가 필요한 것 하나면 됩니다. 크고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그 사람을 위해 짧게 기도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함께 떡과 잔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기에, 우리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눈 기도 제목들을 주님께서 기억해 주시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때 주님의 사랑이 함께하게 해 주십시오. 이 성금요일 밤,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안에 깊이 남아 내일도 모레도 서로를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