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를 보내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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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청소년부>
요한복음 16:5-15
“보혜사를 보내시는 예수님”
2026. 3. 29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도 이 아침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이곳에 모인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오늘 본문을 놓고 “보혜사를 보내시는 예수님”이라는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과 나누시는 마지막 대화의 내용이에요. 16장이 마지막 대화 내용이고, 17장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18장에서 예수님이 잡혀가셔요.
그러니까 16장이 정말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마지막 말씀인 거죠. 과연 예수님은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지금 제자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거든요. 3년 동안 함께하셨던 스승님이 이제 곧 자신들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신다고 말씀하셨단 말이에요. 그들은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설마 예수님이 진짜 떠나실까, 하는 의심도 있었겠죠. 두려움과 의심, 여러가지 불안한 마음으로 가득했을 겁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봐 볼까요? 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내가 너희엑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아멘.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야만 너희에게 좋다는 거죠. ‘내가 계속 있으면 좋을 것이 없다. 내가 떠나야 돼. 그래야만 나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완성되기 때문에. 내가 안 죽고 계속 있으면 완성이 안 되니까, 내가 떠나야 한다.’ 이런 말씀이에요.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한 가지 소망을 주시는데요. 그것은 내가 떠나더라도, 보혜사가 너희와 함께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떠나면 보혜사가 올 것이다.
여러분, 보혜사가 누구죠? 보혜사라는 말 들어봤죠? 보혜사.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라는 이름이에요. 파라클레토스. 이 말은 ‘위로자, 돕는 자’ 이런 의미를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파라클레토스는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고,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우리말 성경은 파라클레토스의 여러 사역과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서 ‘보혜사’ 라고 번역을 했어요. 보, 보호하시고. 혜, 은혜 주시고. 사, 스승 사 자죠. 우리를 가르치신다. 보호하시고, 은혜 주시고, 가르치시는 분. 그래서 보, 혜, 사라고 이름을 붙인 겁니다.
영어성경은 버전에 따라 ‘카운슬러, 상담자’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컴포터, 위로자’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또는 ‘헬퍼, 돕는 자’라고 번역하기도 해요.
어쨌거나 파라클레토스는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도 하고, 우리를 위로해주시기도 하고, 우리를 인도해주시기도 해요.
본래는 그 일을 예수님이 하셨죠. 하나님이 직접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태어나 제자들 곁에서 가르치시고, 인도해주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첫번째 보혜삽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이 떠나시면, 또다른 보혜사를 보내시는 거예요. 그 또다른 보혜사가 바로 성령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떠나고, 보혜사 성령이 오시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라고 말씀하셔요. 왜 그럴까요? 왜 성령이 오셔야 우리들에게 유익할까요?
그 이유는 성령이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과 함께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계시기 때문에, 시공간의 제약을 받으셔요. 그래서 동시에 여러 장소에 계시지 못해요. 갈릴리에 계신데 동시에 예루살렘에도 계시고 사마리아에도 계시고, 이렇게 할 수가 없다는 거죠.
하지만 성령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런 제약이 없어요. 얼마든지 수백만, 수천만, 수억 명의 사람에게 동시에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 거하시면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하셔요.
성령님은 첫번째 보혜사였던 예수님이 지상에서 하셨던 일들을, 계승해서 그대로 이어가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떠나가시더라도, 그것은 제자들을 버려두신 게 아니에요. 또다른 보혜사를 통해서 여전히 제자들을 돌보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8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셔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내가 떠나가지만, 너희를 버려두지 않고, 돌아오신다는 약속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돌아오신 건 아니죠. 하지만 보혜사 성령님이 오셨거든요. 예수님과 성령님은 한 분이시니까, 성령이 오시면, 그게 곧 예수님이 오신 거예요. 그래서 정말로 예수님은 약속을 지키신 겁니다. 제자들을 버려두지 않으셨어요.
지금 이 세상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도와주고 계셔요.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지만. 성령님은 우리 모두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게 아니에요. 믿음의 영역이죠. 성령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거예요. 그러면 인생의 어떤 순간순간에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체험하는 때가 와요. 그때는 그것이 성령이 하신 일인줄 모르고 지나갔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아, 성령이 하셨구나’, 하고 깨닫는 그런 때가 여러분에게 찾아올 거예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신학대학원을 가려고 마음 먹었을 때, 그때 제가 돈이 없었어요. 가진 것 다 헌금하고 기도원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빈털털이였거든요. 그곳에서 이제 신학대학원에 원서를 넣고 등록을 하려고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어떻게 하겠어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죠.
그런데 누군가가 1학기 학비를 저에게 주는 거예요. 제가 아는 집사님 한 분이 제가 신학교에 간다는 것을 아시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학기 학비를 주신 겁니다. 내가 그 분한테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아시고 저에게 주신 거예요. 그래서 무사히 등록을 하고 잘 다닐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일이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일까요? 그 분이 돈이 많아서 그러셨을까요? 저는 성령이 하신 일이라고 믿어요. 성령께서 그 분의 마음을 움직이신 거죠. 그 분의 마음을 조종했다는 것이 아니고, 기도할 때 저를 떠올리게 하시고, 희한하게 그 타이밍에 목돈이 들어오게 하시고, 그리고 제가 신학교에 간다는 소식을 얼마 뒤에 듣게 하시고.
우연처럼 느껴지는 여러 일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본다면, 얼마든지 우연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분명히 성령이 하신 일이라고 믿어요. 그래서 저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어요. 그리고 5년 뒤에 저는 목사가 됐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상황과 환경을 아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의 고민을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성령님의 방식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성령님을 이렇게 비유로 설명하시더라구요. 엄마가 아들을 미국에 유학을 보내기로 했어요. 그래서 아들을 데리고 공항에 갔습니다. 그때 엄마가 아들에게 말하는 거예요. ‘아들아, 이제 곧 우리가 헤어지겠지만, 너는 혼자가 아니야. 미국에 가면 이모가 나와 있을 거야. 내가 너를 돌봤던 것처럼, 이모가 너를 잘 돌봐줄 거야’ 이렇게 말을 하고 아들을 비행기 태워 보냈어요.
여기서 엄마는 예수님이죠. 첫번째 보혜사. 그리고 미국에 있는 이모는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이에요. 미국에 가면 분명히 성령님이 기다리고 계셔요. 하지만 가는 동안에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정말 이모가 나와 있을까? 정말 엄마처럼 나를 잘 돌봐줄까?’ 두렵고 불안해요.
그리고 이제 미국에 도착했어요. 캐리어 끌고 밖에 나왔더니, 이모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이모가 안 보여. 아무리 여기 보고 저기 봐도 없어. ‘어떻게 된 거지? 차가 막혀서 아직 안 왔나?’ 기다려도 안 와.
여러분, 이모가 왜 안 왔을까요? 사실은 안 온 게 아니고, 왔어요.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뿐이죠.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아요. 하지만 분명히 곁에 와 있어요.
그리고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순간마다 도와주십니다.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살아갈 뿐이에요. 성령님은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더욱 활발하게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도해야 돼요. 영적으로 깨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기도이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때이고, 우리가 기도할 때가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땝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성령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호흡이라 그랬어요. 호흡이 끊어면 생명이 끊어지듯이, 기도가 끊어지면 성령과의 연결이 끊어져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돌보심을 받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내일부터 5일 동안 특별새벽기도회가 있는데요. 여러분, 새벽에 함께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강요는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에 감동이 오면, 그 감동대로 새벽을 깨우고 이곳에 나와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런 감동이 온다면, 그것은 성령이 주신 겁니다. 여러분 스스로 새벽에 기도하겠다는 마음을 먹을리는 없으니까. 왠지 모르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건 성령이 주신 마음이에요.
그 마음을 따라, 새벽이든 낮이든 밤이든, 교회에서든 집에서든 어느곳에서든지 기도하여서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우리를 이끄시는 신실하신 주님을 느끼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