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부인, 그리고 더 큰 은혜(고난주간특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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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부인, 그리고 더 큰 은혜
베드로의 부인, 그리고 더 큰 은혜
본문: 요한복음 18:15–18, 25–27
어떤 목사님의 고백인데요. 그 목사님이 싫어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어릴 때는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끊겠다고 그렇게 말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밤에 야식 먹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침에는 정말 진심입니다. “오늘은 안 먹겠다. 오늘은 정말 다르게 살겠다.”
그런데 밤이 되면 또 무너집니다. 마음은 분명했는데 몸이 안 따라오고, 결심은 분명했는데 욕망이 이겨 버립니다.
아마 저와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다시는 화내지 말아야지.” “다시는 그런 생각하지 말아야지.” “다시는 같은 죄 반복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또 넘어집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가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발끈했습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
이건 허세가 아니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정말 그렇게 믿었습니다.
나는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나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으러 군인들이 왔을 때도, 베드로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칼까지 뽑았습니다. 예수님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주님과 함께 죽을 각오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은 붙잡히셨고, 결박당하셨고, 끌려가셨습니다.
베드로는 거기서 끝까지 도망치지 않고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따라 들어갑니다.
저는 이 장면이 참 마음에 남습니다. 베드로가 왜 거기까지 갔을까요? 주님이 너무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무서웠지만, 그래도 주님 곁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여종 하나가 묻습니다.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나는 아니라.”
처음엔 순간적으로 피하려고 한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두려움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사람들이 또 묻습니다. “너도 그 제자 중 하나 아니냐?”
베드로는 또 말합니다. “나는 아니라.”
마지막에는 결정적인 사람이 나섭니다. 감람원에서 베드로를 봤던 사람입니다.
게다가 베드로가 귀를 잘랐던 말고의 친척입니다. 이제는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더 강하게, 더 거칠게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닭이 웁니다.
그제야 베드로는 깨닫습니다. “아… 주님 말씀이 맞았구나. 내가 정말 주님을 부인했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장면을 볼 때 베드로를 쉽게 정죄하지 못하겠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아픕니다. 왜냐하면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배할 때는 결심합니다. 찬양할 때는 뜨거워집니다. 기도할 때는 진심으로 다짐합니다.
“주님, 이제는 잘하겠습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두려운 상황이 오면 흔들립니다. 손해 볼 것 같으면 숨고 싶고, 불편해질 것 같으면 주님과 거리를 두고 싶고, 사람들 앞에서 내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러워집니다.
베드로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 무너진 게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사랑만으로는 안 됐습니다. 열심만으로는 안 됐습니다. 인간의 결심만으로는 시험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핵심은 “너는 베드로처럼 되지 마라”가 아니라
이렇게 무너지는 베드로를 위해서도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모르고 계셨던 게 아닙니다.
이미 아셨습니다. 이미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의 넘어짐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정죄보다 먼저 중보하셨습니다. 실패를 예고하셨지만, 동시에 회복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넘어집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우리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또 무너집니다.
그런데 우리를 붙드는 것은 우리의 결심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가 아닙니다. 우리를 붙드는 것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오래전에 지하철을 탔을 때였습니다.
옆자리에 아주 산만한 아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솔직히 참 불편했습니다. 속으로는 ‘부모가 좀 더 엄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아이에게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제야 부모의 마음이 조금 보였습니다. 아이가 넘어지고 실수해도, 그래도 사람들 속에서 배우고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겁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그 아이의 행동만 보였는데, 그다음에는 그 아이를 품고 있는 부모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도 베드로를 그렇게 보셨을 것입니다.
“그것 봐, 내가 맞았지?” 이렇게 보지 않으셨을 겁니다.
“왜 잘난 척하다가 또 무너졌느냐?” 그렇게만 보지 않으셨을 겁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베드로와 같은 저와 여러분들드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 두려움 많은 누구누구, 무너지는 누구누구, 결심은 크지만 연약한 누구누구, 그 베드구와 같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베드로의 실패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 실패 한가운데서도 끝까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내가 절대 안 넘어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넘어지는 나를 붙드시는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나의 결심보다 주님의 은혜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나의 의지보다 십자가의 사랑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의 부인 속에서 우리의 약함을 보되, 그보다 더 크게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