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7장 5-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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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치 속에 감추어진 섭리

본문: 사무엘상 27장 5-7절

찬송: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오늘은 사무엘상 27장 5-7절 말씀을 가지고 수치 속에 감추어진 섭리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한다.
고난주간 이틀째 새벽, 우리는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망명한 다윗이 원수 왕의 배려로 '시글락'이라는 성읍을 얻게 되는 장면을 마주한다. 기름 부음 받은 이스라엘의 왕이 이방 신의 도시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이 모습은 지독한 수치이자 영적 비하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겪는 인생의 비하와 침묵의 시간 속에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흐르고 있는지 발견하기를 소망한다.
5절은 '왕궁의 안락함보다 사명의 거리를 확보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말한다.
“5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에게 왕도(가드)를 떠나 시골 성읍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겉으로는 왕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겸손한 표현이었으나, 속으로는 아기스의 삼엄한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예비된 자가 이방 왕의 발치에서 "당신의 종"이라 자처하며 거처를 구걸하는 모습은 다윗 인생에서 가장 낮은 바닥이었다. 다윗은 지금 안전을 위해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는 비하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다윗처럼 비참한 자리에 놓일 때가 있다. 사명을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해 세상의 권력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하고, 내 정체성과 상관없는 거친 일터로 내몰려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왔나"라며 탄식하기도 한다.
고난주간에 우리는 이 다윗의 비참함 너머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은 하늘의 영광스러운 왕궁을 버리고, 죄인들의 거처인 이 땅으로 내려오셨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은 단 한 번도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왔나"라고 말씀하시며 탄신하신 적이 없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다윗이 겪은 수치와 비교할 수 없는 철저한 자기 비움(Kenosis)을 선택하셨다. 오늘 하루, 내가 처한 초라한 환경 때문에 낙심하지 말자. 주님이 이미 그 낮은 자리까지 먼저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울고 계시기 때문이다.
6절은 '인간의 실패 너머에서 회복의 터전을 닦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말한다.
“6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다윗의 망명은 분명 불신앙적인 실책이었으나, 하나님은 그 잘못된 선택조차 '수복(Reclamation)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아기스가 준 '시글락'은 원래 여호수아 시대에 유다와 시므온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 지키지 못해 블레셋에 빼앗겼던 땅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도망자가 된 다윗을 통해 이 잃어버린 땅을 다시 찾아오게 하신다. 성경은 이 땅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했다"고 기록하며, 다윗의 도망길이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영토를 확장하는 잠행이었음을 증명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보다 크신 분이다. 우리가 연약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시글락'과 같은 이방의 거처에 머물 때에도, 하나님은 그곳에서조차 다시 시작할 발판을 예비하신다. 내가 겪는 고난의 시간, 돌아가는 것 같은 우회로가 사실은 훗날 승리의 교두보가 될 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세상의 눈에 완전한 패배와 수치였으나, 하나님은 그 나무 위에서 인류 구원의 가장 확실한 터전을 닦으셨다. 오늘 내가 겪는 수치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그것은 반드시 영광의 기념비로 바뀔 것이다.
7절은 '긴 침묵의 시간 속에 잉태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말한다.
“7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다윗은 블레셋에서 1년 4개월(16개월)을 머문다. 놀랍게도 이 기간 동안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했거나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는 기록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길고 답답한 '영적 침묵의 기간'이었다. 마치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방의 용병으로 사는 다윗의 시간은 계수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이 정지된 것 같은 시간 동안 다윗은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았고, 훗날 이스라엘의 왕이 될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우리는 응답이 없고 침묵이 길어질 때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나"라며 불안해한다. 하지만 성경의 역사는 언제나 '침묵 뒤의 폭발적인 은혜'를 보여준다. 무덤 속에서 사흘간 침묵하셨던 예수님의 토요일이 있었기에 찬란한 부활의 아침이 밝았던 것과 같다. 1년 4개월의 시글락 생활은 단순히 사울을 피해 있던 시간이 아니라 다윗이 인간의 힘을 빼고 오직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시는 거룩한 거듭남의 시간이었다. 오늘 마주하는 일상이 지루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낙심하지 말자. 주님은 우리의 침묵 속에서 부활의 생명을 잉태하고 계신다.
다윗은 수치스럽게 시글락을 얻었으나 하나님은 그 땅을 유다의 소유로 확정하셨다. 우리도 오늘 하루, 나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순복하자. 나의 실패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주권을 신뢰하라. 우리를 위해 가장 비천한 자리로 내려오시고 무덤의 침묵을 견디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 주님의 비하가 우리의 높여짐이 되었음을 확신하며, 오늘도 시글락의 어둠을 뚫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고난주간의 두 번째 새벽, 원수의 성읍 시글락에서 눈치를 보며 거처를 구걸했던 다윗의 비참한 모습을 봅니다. 우리도 인생의 흉년과 시련 앞에 당당함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방식과 타협하며 수치스러운 자리에 머물렀던 적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왕의 자녀이면서도 종처럼 비굴하게 굴었던 우리의 나약함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낮은 자리에 처할 때마다 우리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죄인의 땅으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낮아지셨기에 우리가 존귀해졌고, 주님이 침묵하셨기에 우리에게 부활의 노래가 주어졌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조차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시글락을 유다의 땅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열심을 보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가 겪는 수치가 훗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땀 흘려 일구는 성도들의 삶의 현장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남에게 말 못 할 사정으로 속앓이하며 침묵의 골짜기를 지나는 성도들을 주님이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은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음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며 기도의 자리를 지키게 하옵소서. 육신의 연약함으로 신음하는 지체들에게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가 세상의 화려한 성벽이 아닌 주님의 인도하심만을 인생의 유일한 보루로 삼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의 모든 시작과 끝을 주님께 의탁하오며, 우리 인생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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