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첫 열매

주일오전(2026)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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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죽겠다!

한국어에서 어떤 감정이나 상태가 너무 심할 때 쓰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이러 해서 죽겠다!”라고 하는 말입니다. “배고파 죽겠다” “아파 죽겠다”라고 하는 말들이 그런데요.
사실 이러한 표현들은 굉장히 오래된 표현입니다. 18세기 조선시대 학자였던 윤기라고 하는 사람이 자신의 글에 이런 말을 적었는데요.
아파서 죽겠다고 하고 가난해서 죽겠다고 하는데, 아파 죽겠다는 사람은 날아가듯 먼 길을 걸어가고, 가난해 죽겠다는 사람은 음식과 옷이 몹시 사치스럽다. 가난해서 죽겠다고 하는 이에게 “거참 좋은 혼처가 생겼는데 가난하다니 어쩔 수 없구만”했더니 “아니 무슨 말인가! 내가 가난하다고 해도 가족을 굶길 정도는 아니라네”라고 하고, “몸이 이곳저곳 쑤셔서 아주 죽겠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런가? 좋은 벼슬자리가 났는데 아프다고 하니 어쩔 수 없네”라고 말하니 “이런이런! 내가 겉으로는 허약해보여도 속은 튼튼하다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사람들이 하도 죽겠다 죽겠다 하다보니까 오히려 그 죽겠다는 말이 진실성이 와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나중엔 정말로 배고파서 죽을 위기에 있는 사람, 아파서 죽을 위기에 있는 사람에게도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고대 로마에서의 죽음

실제로 오늘날에는 의학도 발달하고 위생, 그러니까 손발 잘 씻고 목욕하고 아이들도 깨끗한 환경에서 지내야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기 때문에 옛날보다는 사람들의 수명이 더 많아져서 “죽음”이라는 개념이 젊은 사람한테는 조금 먼 얘기처럼 들릴 때가 많고, 배고프다고 “배고파 죽겠네~”라고 할 만큼 죽음이라고 하는 단어를 가볍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계시던 시대, 고대 로마의 삶을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언제나 곁에 있던 시대였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의 평균 수명은 30살 정도였다고 합니다. 거의 절반 이상이 5살도 안된 어린 나이 때에 죽게 되고, 젊은 사람들도 노동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30살을 넘기기가 힘들었습니다.
또한 여자들은 출산하다가 죽는 경우도 많고, 남자들은 노동이나 전쟁 때문에 죽는 경우도 많다보니 60대를 넘기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살아남기가 어려웠던 시대인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

그렇게 도처에 죽음과 항상 맞닿아 있는 삶이다보니, 유대인들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죽은자의 부활에 대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역시 이러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고린도전서는요 고린도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 고린도 교회에는 여러가지 문제, 이를 테면 서로 간에 당파를 나눠서 다투는 문제 같은 일들도 있었지만 그 중에 하나로,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 중에서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이 함께 지내면서 생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죽음 이후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특히 다니엘 서를 보시면,
Daniel 12:2 NKRV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라고 이야기합니다. 언젠지는 모르지만 어느 때가 되면 죽은자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거나 영원한 형벌을 받게될 것이라는 믿음이 유대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있는 이방인들은 대체로 이런 죽은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웃긴게 있어요.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도 예수님의 부활은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믿는데 다른 사람들의 부활은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 앞에 있는 12절에 사도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 Corinthians 15:12 NKRV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쉽게 말씀드리면, “아니,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우리가 맨 처음부터 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믿으면서 어째서 죽은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주일인 오늘, 바로 2000년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이 날에 본문말씀을 통해서 함께 예수님의 부활이 어떻게 사람들의 부활, 즉 저희들의 부활과 상관이 있는지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

본문말씀 19절 말씀을 보시면 사도바울은 만약에 우리가 아는 삶이 이 세상의 삶, 그러니까 지금 숨쉬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삶으로 끝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제일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맞는 말이죠? 왜냐하면 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해서 모두가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서 죽음도 불사하고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인데, 부활이 없다고 하면 그것이 다 쓸데없는 일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20절에 이렇게 이야기하는데요, 함께 본문말씀 20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1 Corinthians 15:20 NKRV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는 것, 즉 부활하심을 통해서 모든 죽은 자들의 첫번째 열매가 되셨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인간의 육신으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뜻일까요? 사실 성경을 살펴보면 구약부터 신약까지 죽음에서 살아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습니다.
열왕기에는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도를 통해서 살아난 사람들이 있구요, 예수님께서도 야이로의 딸이라던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을 보이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일까요?
여기엔 다른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예수님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부활이라기 보다는 소생입니다. “지금” 죽음에서 살아돌아왔지만, 결국 나중에 수명이 다하면 다시 그 육신은 죽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일시적인 살아남인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일시적인 삶이 아닙니다. 죽음에서 다시 사신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히 지속되는 삶, 곧 영생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뒤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올라가신 하늘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을 때, 천사들이 그들에게 말한 장면이 있습니다.
Acts 1:11 NKRV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천사는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내려오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의 부활은 다시는 썩지 않을 육체로 부활하신 것이라는 뜻이며, 예수님의 부활은 곧 영원한 생명의 부활임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처음 목격한 제자들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요? 다니엘서에서만 보았던 영생의 부활, 엘리야나 엘리사의 일시적인 부활이 아니라, 정말 다시는 죽지 않는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아! 부활이라는 것은 정말로 있는 것이구나!” “잠깐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정말 영영토록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부활하는 것이 있구나!” “지금의 세상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구나!”라고 하는 것을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통해서 목격한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제자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느꼈을 충격처럼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오늘날에도 많이 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뇌가 완전히 죽어서 다시 깨어날 일이 없는 식물인간들이 다시 깨어난 이야기나, 장례까지 다 치뤘는데 다시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종종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이해하고 믿는 예수님의 부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서의 예수님의 다시 사심은 곧,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부활 주일에 함께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부활의 첫 열매 되시는 예수님의 부활, 진정으로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사람의 삶

본문말씀으로 돌아와서요, 21절 말씀을 보시면,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이어지는 22절에서 설명하는데요 함께 읽어볼까요?
1 Corinthians 15:22 NKRV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 에덴 동산에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먹게 되면서 인간에게 죽음이 들어왔음을 설명합니다. 그처럼 한 사람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된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부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예수님만 영생해서 잘먹고 잘 사시면, 오늘 우리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아까 설교 초반에 말씀드린 것처럼 정말 죽는것과 다름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이들도 있고, 전쟁과 기근 때문에 항상 죽음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에게, 그냥 먼 옛날에 중동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곳에서 예수라는 사람이 부활한 것이 나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냐는 겁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인 것이 오늘의 우리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냐는 겁니다.
로마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Romans 8:11 NKRV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님의 부활은 그냥 먼 옛날의 어떤 청년 한명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가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지금 2026년 4월에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저희도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의 삶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시고 영원히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게끔 하신 것과 같이 오늘날의 저희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부르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이유입니다. 이전까지는 그냥 죽으면 끝인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끝이 없다, 영원한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여 그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저희들 역시 대충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삶에 결국에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어차피 사람은 죽으니까 내 맘대로 살아야지”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에이씨, 저놈은 내가 앞으로 평생 다시 안볼놈이야. 그냥 없는 사람으로 치고 살아야겠어!”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용서해야하는 겁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을 왜 돕고 살아야해? 내 가족 친척도 아닌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나 하나님앞에 서게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웃과 함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으로 살아야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 부활 주일에,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을 믿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그렇게 영생의 부활을 믿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본문말씀으로 돌아와서요 23절 말씀부터는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라 성도들의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요, 이게 그냥 마구잡이로 되는 것이 아니라 차례대로 된다고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는 저희가 살펴본 예수님의 영생의 부활, 그리고 다음에는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예수님께 속했던 자들의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서 24절로 이어지는데요 이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 Corinthians 15:24 NKRV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사도바울은 이렇게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설명하죠? 마지막 때에는 예수님께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이 멸망하고 모든 나라를 하나님께 바치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그냥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이 다 끝난다고 설명하는 건가요?
이 말씀은 사람만 부활의 새 몸을 입고 영생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들도 죽음을 경험하구요, 식물들도 죽음을 경험합니다.
저는 애완동물을 막 여럿 키워본 것은 아니지만 아주 어렸을 때 길가에서 참새 한 마리를 주웠던게 기억이 납니다. 집 앞에 있는 주차장에서 참새들이 여러마리가 보여있는 것을 보고 장난으로 발을 쿵 하고 굴러서 쫒아내보려고 했는데요. 거기서 딱 한 마리만 날아가지 않더라구요. 보니까 다리가 완전히 부러지고, 사고를 당했는지 날개짓도 못해서 거기에 주저 앉아있었는데요. 그 참새를 교회로 데려가서 친구들과 함께 보고 전도사님이 곡식도 사와서 물이랑 같이 먹이면서 그날 하루종일 그 참새와 시간을 보냈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참새가 저녁 즈음에 돌연히 고개를 픽, 하고 죽어버린 거예요. 그게 저한테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아주 대성통곡을 했었습니다. 결국에 전도사님과 친구들과 함께 교회 앞마당에 묻어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날 만났던 그 참새의 죽음이 너무나도 슬픈 것이었음이 기억납니다. 이처럼 죽음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듯이 영생의 부활 역시 사람의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인간의 통치, 마치 내가 누군가 위에 있어서 이 사람 저사람의 목숨을 맘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처럼 가지고 노는 잘못된 권력은 예수님께서 다 멸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사람이 살고 동물이 살고 식물이 살고 있는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것,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든 생명이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Revelation 21:1–4 NKRV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처럼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사건은 단순히 모든 죽은 이들의 부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 영생의 부활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임을 나타내는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사람에게만 잘 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밝고 다니는 이 땅과 들이마시는 숨, 그리고 마주치는 동물과 식물 역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만나게될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영생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그를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게 될 것임을 믿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늘과 땅의 만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믿으며, 그 믿음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려주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부활은 단순히 몸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곧 저희들이 또한 경험하게될 부활과 영생의 첫 열매가 되심을 기억해야합니다. 그저 2천년 전의 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의 저희들 역시 부활과 영생을 얻게 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시 만나게될 형제자매들에게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대하셨던 것 같이 저희 또한 그렇게 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의 부활 뿐만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한 첫 열매가 되신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사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이 함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 나라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뭃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이 땅에 나타나셨음을 믿으며, 그 부활을 믿는 저희 또한 영생하게 되는 것을 믿고, 또한 만물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가게 될 것을 믿는 믿음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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