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설교문] 일터, 나의 거룩한 예배 공간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
Notes
Transcript
본문: 골로새서 3:23-24 / 로마서 12:1
본문: 골로새서 3:23-24

[서론: 우리의 월요일을 아시는 주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 5부 한가족 예배를 통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릴 수 있음이 참 감사이자 기쁨입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우리 성도님들께서 어떤 마음으로 이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셨을까 참 많이 고민해 보았습니다. 주일임에도 일터에 나가 일하다가 늦은 시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오신 분도 계실 것 같고, 이른 아침부터 여러 모양으로 봉사하다가 5부 예배에 나온 성도님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5부 예배는 유독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와 위로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성도님들, 그런데 이런 간절한 마음과는 별개로 나도 모르게 자꾸 시계에 눈이 가시지는 않나요? “아, 이제 예배 끝나고 집에 가면 9시가 넘고, 씻고 잠들면 바로 월요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실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려서 “아니 목사님, 잊고 있었는데 왜 이야기하셔서 갑자기 생각나게 하세요!”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웃음)
우리에게 ‘월요일’은 그냥 7일 중 하루가 아니라 전쟁의 시작이자, 때로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내일부터 감당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고, 상사 눈치도 봐야 하고, 거래처 만날 생각에 벌써 마음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직장인만 힘든 게 아니죠. 가정에서는 아이들 학교 보낼 준비에 집안일이 늘어나고, 우리 아이들도 숙제와 학업 때문에 월요일이 오지 않길 바랍니다.
주일과 월요일, 딱 하루 차이인데 왜 이렇게 온도 차이가 극심할까요? 어쩌면 우리가 교회에서는 ‘성도’, 직장에서는 ‘직장인’이라는 다른 존재로 분리되어 살아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말씀은 월요일이 되어도 우리의 존재와 근원은 여전히 동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주일 예배당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직장과 가정, 학교 어디에나 계시는 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려운 월요일이 세상으로 파송받는 월요일로 변화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대지] 먼저, 우리가 가져야 할 첫 번째 마음가짐은 일터에서의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 말씀을 다 함께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성을 다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이를 '코람 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라고 부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런데 솔직히 이 말씀이 정말 가슴에 와닿으십니까? 내일부터 당장 기쁘게 순종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드시나요? 아마 이런 생각이 먼저 드실 거예요. “목사님, 그게 말처럼 쉽습니까? 당장 내일 출근해서 저를 괴롭히는 상사를 봐야 하고요, 말이 안 통하는 거래처를 상대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 사람들을 예수님 대하듯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사실 저 같아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내 노력이 무시당하는 현장에서 “주께 하듯 하라”는 말은요, 때로는 너무 가혹한 요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께 하듯 하라’는 말은 그 사람 상사가 예뻐서 잘해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 너머에 계시는 주님을 보라는 뜻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의 수신자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비참한 처지에 있던 ‘노예들’이었습니다. 당시 노예들에게 주인은 생사여탈권을 가진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주인에게 그들은 이름조차 없는 ‘말하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가혹한 현장에 있는 노예들에게 “주께 하듯 하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태도’를 바꾸라고 권면합니다. 그저 매를 피하기 위해 주인의 눈치를 보는 ‘노예의 태도’를 버리고, 이 일이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드리는 소중한 예물이라는 ‘사명자의 태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힘듭니다. 그러나 마음의 중심을 바꾸면, 그 지옥 같던 노동의 현장은 주님을 만나는 예배의 처소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내일 작성할 보고서의 최종 결재자가 부장님이 아니라 예수님이시라면 어떨까요? 내가 내일 맞이할 까다로운 손님이 주님께서 내게 보내신 귀한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태도는 분명히 달라질 것입니다. "주님! 저 상사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주님! 이 성적이 내 가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늘 나를 이 자리에 보내신 주님 앞에서 예배자로 살아가겠습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을 가장 영광스러운 예배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될 줄 믿습니다.

[2대지] 둘째, 나의 ‘진짜 주인’과 ‘영원한 상급’을 확인하십시오. (24절)

우리가 일터에서 태도를 바꾸기로 결단하지만, 사실 그 결심이 월요일 점심만 지나도 무너질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노력한 만큼 보상이 없다고 느껴지거나, 아무도 내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서운함이 몰려올 때 찾아오는 ‘허무함’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오늘 본문 24절의 약속을 반드시 붙들어야 합니다. 24절을 다 함께 읽어봅시다.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당시 노예들에게 ‘기업(상속)’이라는 단어는 꿈도 꿀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법적으로 상속권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선포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을 진짜 ‘상속자’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이 왜 우리에게 복음이 됩니까? 내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 내 인생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꾸만 우리를 속이려 합니다. 나를 평가하고 내 생계를 책임지는 주인이 세상의 시스템이나 통장의 잔고인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너희는 결국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이다.”
여러분을 그 자리에 세우신 분도 주님이시고, 여러분의 성실함을 최종적으로 결산하고 보상해주실 분도 오직 주님이십니다. 세상 상사는 내 공로를 가로채거나 잊어버릴지 몰라도, 우리의 진짜 주인이신 주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짧은 칭찬이나 눈에 보이는 보상이 내 수고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으십시오. 주님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정직하게 감당한 시간들, 가족을 위해 묵묵히 견뎌낸 그 헌신을 단 하나도 잊지 않고 계십니다. 장차 영원하고 가장 좋은 ‘기업의 상’으로 반드시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아침 각자의 자리로 나아갈 때 이 ‘상속자의 당당함’을 가지고 나아갑시다. 우리는 그곳에 고용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유산을 약속받은 ‘영광스러운 상속자’입니다. 세상의 가혹한 평가에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진짜 주인이신 주님께서 내일 여러분과 함께 그 자리로 출근하고 계십니다. 이번 한 주간도 그 주님을 바라보며 사명의 자리에서 기쁘게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삶의 자리에 계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노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오래전 대학교 동기가 제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치열하게 살다가 주일에 교회에 왔는데, 강단에서 들려오는 메시지가 너무 아프고 상처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내지 못하느냐”라는 외침이, 지친 몸을 이끌고 온 자신에게는 현실과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는 나중에 목회자가 될 제 손을 잡으며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민석아, 네가 나중에 목사가 된다면, 제발 우리 성도들의 삶을 정말로 이해해 주는 목회자가 되어줘.”
성도 여러분, 저도 잘 압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뜨겁게 찬양하고 은혜를 받지만, 막상 월요일의 삶으로 돌아가면 현실은 여전히 막막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태도를 바꾸자, 상급을 바라보자 말씀드렸지만, 당장 내일 아침 거친 현장에서 이 말씀이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은 우리를 책망하거나 억압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시선에 짓눌린 우리에게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너의 수고를 내가 다 안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게 무언가를 해내기 때문에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부당한 대우를 견디며 눈물을 삼킬 때, 이름도 없이 가정에서 헌신할 때, 그 고단한 자리에서 주님을 한 번 부르는 그 마음을 예배로 받아주시는 분입니다. 즉, 오늘 말씀은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숙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예배자’임을 깨닫게 해주는 복음입니다.
이제 이 믿음의 고백을 담아 함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내일 마주할 자리는 여전히 고단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서 있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한 주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 마음을 다해 함께 찬양합시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