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31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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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의 실패와 회복

오늘의 본문은 모두 잘 아시다시피 이번 특새 주제 본문이 들어있는 말씀인데요, 오늘은 특별히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함께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겟세마네의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고난주간 중에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말씀 시작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겟세마네라는 곳에 이릅니다. 겟세마네라는 이름은 ‘기름 짜는 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실 이 명칭부터가 예수님께서 이 곳에서 어떠한 기도를 하실지가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예수님은 그 뜻대로 기름을 짜내듯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아마 담임목사님 말씀을 통해서 들으셨겠지만, 할 만하시거든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계획에 이 고통을 지나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허락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겪으셔야 했던 고통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컸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죠.
그 고통은 당연히 예수님의 육신적 고통도 있었을 것입니다. 채찍에 맞고 매를 맞고 아무런 힘도 없는 상황에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절대적으로 피하고자 하셨을 고통은 그러한 육신적 고통보다도 다른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관계의 끊어짐이라는 고통이죠.
예수님은 너무나도 사랑하는 자신의 피조물들이 자신을 향해 조롱하고 증오하며 핍박하는 순간들을 견디셔야 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반대로 자신을 증오할 때, 얼마나 큰 고통이 있을지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사랑하고, 그렇기에 그들의 모든 죄까지 짊어지는 이 순간에도,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그 감정들, 너무나도 고통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에는 우리가 차마 짐작하지도 못할 고통이 있습니다. 바로 삼위 하나님의 교제가 끊어지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죽으신 그때, 하늘과 땅이 요동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삼위 하나님의 온전한 관계가 끊어지는 그 아픔이 얼마나 크신지를 볼 수 있는 장면이죠. 창조의 때에도, 모든 순간 함께하며 교제하셨던 그 관계에 단절이 생긴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너무나도 큰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그 고통을 앞두고 너무나도 아픈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계셨던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의 그 엄청난 고통 속 기도의 순간,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지난 담임목사님 설교 때 들으신 것처럼 예수님은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우신 순간이었기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더욱 함께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넘치는 사랑의 마음으로 제자들을 타이르십니다.
마태복음 26:40–41 NKRV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그리고 다시 돌아가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 모든 고통을 이기시고 순종의 기도를 행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신 예수님의 눈앞에 제자들은 다시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다시 돌아가 세번째 기도를 하신 후 때가 왔음을 아시고 제자들을 불러 대제사장들에게 나아가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겟세마네의 기도의 순간입니다.
저는 사실 이 본문을 볼때 다른 것 보다도 제자들의 모습에 많이 오버랩이 됩니다. 제자들이 피곤해 잠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모습이 마치 제가 새벽기도때 잠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들과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혼자 제자들도 다르지 않구나 하며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이 본문은 그저 그정도의 감상으로 마무리가 될 수 있는 본문은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기에 더욱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는 본문이 바로 이 본문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보자구요. 예수님은 자신의 눈앞에 온 고난과 고통의 순간을 아시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고난과 고통의 순간이 눈앞에 온 것은 예수님 뿐만이 아니었죠. 깨닫지 못했지만, 제자들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곧 자신들과 함께했던, 영원할 것 같았던, 승리할 것 같았던 예수님과의 모든 순간들이 사라지기 직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위기 앞의 순간, 제자들은 육신에 지고 맙니다. 잠을 이기지 못한 것이죠.
어쩌면 우리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은 비록 몰랐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가까이로는 우리의 살아가는 삶에 고통의 순간들이 다가옵니다. 조금더 확장하면, 우리 교회 공동체에도 청빙의 일정이 다시 새롭게 돌아가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죠. 더 크게 가면 어떨까요? 나라도 살기 어렵고, 국제적으로도 전쟁이 넘쳐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의 순간. 우리는 그러면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되나요? 어쩌면 제자들과 같이 우리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그저 무너져버리고 말았는지도 모릅니다.
나름대로 많은 노력으로 일어서보려고도 하고, 아니면 또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해보았지만, 그런 시도들을 할 수록 우리 스스로의 부족함만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책과 자괴감에 빠지고 맙니다. 나는 왜 계속 무너지고 마는 것일까. 왜 깨어 기도하지 못할까.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처음 제자들을 향해 깨어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이니 나름의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지 못했고, 예수님이 가장 제자들을 필요로 했을 그 순간 함께있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러한 실패는 이후 예수님이 잡히시는 순간 뿔뿔히 흩어져 도망하는 결론으로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두번째, 세번째 다시 오셨을 때 제자들에게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제는 자고 쉬라 말씀하십니다.
아마 예수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셨을 것입니다. 이들이 깨어 기도할 수 없음을, 그리고 이후에 잡히실 때에도 뿔뿔히 흩어질 것을 모두 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홀로 기도하시고 맡겨진 십자가의 길을 홀로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스스로 왜 깨어있지 못하는지, 왜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는지를 자책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미 우리가 못할 것을 아십니다. 왜요? 우리가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이죠. 우리 안의 죄성을 온전한 성공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들을 시도해도 결국 무너져 잠에 빠지고 마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패하고 무너진 우리 앞에 주님이 기도하고 계십니다. 고난에 지쳐 쓰러져서, 무너져서 잠에 빠진 우리를 위해서도 주님이 기도를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가장 예수님 곁에 있어야 할 순간 뿔뿔히 흩어졌고, 그나마 붙어있던 베드로는 아예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는 부인의 죄까지 저지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모든 제자들을 회복시키십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도망치는 순간, 부인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다시 주님 앞에 설 수 없어.
그러나 모든 사망과 고통을 이기시고 다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은 그 모든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사용하십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부인했던 그 순간의 숯불로 부르시며, 세번 똑같이 물으시면서 주님의 사랑을 회복시키시고, 다른 제자들 역시 성령을 보내셔서 맡겨진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 주님이 우리 역시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우리 눈 앞에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여러 고난들, 너무나도 두렵고 피하고 싶은 그 고난들로부터 우리를 회복시키고 건져내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기도에 보탬이 되고 더 많은 것을 드릴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주님은 그저 아무런 도움 안되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함께하고 싶어하시는 것 뿐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잠시 무너져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다시 우리를 그 기도의 자리로 함께하자 부르실 것입니다.
우리 이번 주제와 같이 주님이 부르십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그 부르심을 따라, 우리의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 교회의 문제까지도 회복을 이루실 주님과 함께하며 사랑을 나누는 우리 귀한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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