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를 내려놓은 사람
Notes
Transcript
삼상 20:1-16
삼상 20:1-16
여러분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우리 옆에 있는 지체와 이렇게 인사할까요. 새벽을 깨웁시다! 이번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해서, 단순히 참여하는 것도 좋겠지만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 볼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예수님과 더 가까워 지고, 그분의 모습이 나의 삶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더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고난이 무엇입니까. 고난은 힘든거에요. 하기 싫은거에요. 그런데 하기 싫은 걸 해보는게 믿음에요. 힘든데, 그거 예수님 때문에 해보는게 믿음이에요. 새벽에 일어나는게 얼마나 힘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요 평소보다 일찍 자야되고요, 이게 생활패턴이 안맞는 사람은 하루내내 피곤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보는거, 힘들어도 깨워서 더 주님과 가까이 지내려고 애쓰는거 그게 참 귀한 모습 아닐까요. 사실 우리의 삶도 그렇잖아요, 하기 싫어도, 힘들어도, 내가 주님 말씀에 순종해보는거, 그게 믿음이잖아요. 특별히 이 고난주간을 통해, 우리의 삶 가운데 그러한 믿음, 삶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사는 곳이 아파트입니다. 요즘 어느 아파트나 대부분 이슈가 뭐냐면, 바로 주차자리에요. 요즘 가정당 차가 너무 많으니, 주차 공간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진짜 차가많은 아파트들은 대부분 이중주차를 해놓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곳은 그래도, 주차공간이 그렇게 빡빡하지 않아요. 그런데 주차 자리를 보면요, 누구나 대고 싶은 자리가 있습니다. 그건 현관 바로 장애인칸 옆에 있는 칸들이에요. 거기에 대면요, 현관하고도 가깝지요. 그리고 옆이 장애인 칸이여서, 대부분 비어있는데, 내리고 타기도 엄청 편합니다. 장을 봐도 짐을 조금만 가지고 들어가도 되고요, 아파트마다 이런 자리가 꼭 하나씩 있지요.
집에 도착하면 항상 그 자리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있으면 막 기분이 좋은거죠. 집에 들어가는데 뿌듯합니다. 언제나 그 자리가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어느날 이런적이 있어요. 거기에 대놓고 이제 볼일이 있어서 금방 애들만 태우러 다녀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뭐 애들 델러 가면 5-10분 걸릴라나요. 대부분 잘 안차있는데, 별거 아닌데 조마조마하지요 그 자리가 비어있으면 좋겠다. 비어있는 날도 있고, 어느날은 금방 왔는데 다녀온 사이에 금방 그 자리를 대놓는거죠.
생각해보면 참 별것 아니잖아요. 그런데 사람이라는게 그래요, 한번 내 자리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요. 그거 늘 지키고 싶고, 안놓고 싶은게 사람마음이라는거에요.
여러분 이것은 사실 주차 자리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마다 사람들은요, 이 자기 자리를 찾아 헤맵니다. 그리고 자기 자리가 괜찮으자리면요, 당연히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싶어하지요. 요즘 선거철인데, 사람들이 불철주야,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뭐 그리 당선되려고 애를 쓸까요. 그 자리가 누구나 갖고 싶은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좋은 자리이기 때문이에요. 이전에 했던 사람들은 그 자리를 유지하고 싶고요, 새로 도전하는 사람은 그 자리가 내 자리였으면 싶은거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이런 자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직장에서 오래 지켜온 자리, 나의 삶에 재정적인 유익을 주는 자리,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자리, 내가 그 자리에 가면 나에게 돌아올 큰 유익이 있을 것 같은 그 자리. 이 자리를 차지하고 싶고요, 그 자리가 내꺼라면 지키고 싶고요, 위협 받으면 불안해지고요,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미련이 남는 자리들이 있어요. 여러분 자기 자리를 내려놓는다는거,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해본 사람은 압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요나단입니다. 그는 왕의 아들입니다. 이 말은 그는 이스라엘의 왕위를 받을 사람이에요. 아버지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입니다. 왕의 자리는 누가와도 차지하고 싶은 자리이지요. 모든 부귀와 권세와 영광을 가진 그 자리가 왕의 자리입니다. 그는 탁월한 용맹스러운 장군이었고요 백성들 사이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왕이될 충분한 자격과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이대로만 간다면 그는 반드시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20장 전체인데요. "오늘 본문 20장을 보면, 사울이 요나단에게 아주 냉정하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을 선택하면 네 왕국은 없다고요. 여러분들이 요나단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의 자리를 내어주실래요? 정말로요? 그 좋은 자리를요?
대부분 사람들은 여기서 한 발 물러섭니다. 나도 어쩔 수 없다. 이걸 지키려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돌던질만한 일도 아니다. 다윗도 중요하지만, 그게 과연 이것보다 중요할까. 내가 이렇게 해도 다윗도 나를 이해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모습 아닐까요? 그런데 요나단은 이 아버지의 말을 정확하게 앎에도, 아버지가 던진 창을 보면서도, 사랑하는 친구를 향하여, 어서 도망가라. 다윗을 놓아주는 선택을 합니다. 이것은 자기 손에 쥐고 있는 왕좌를 내려놓는 행위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입니다. 요나단이 이 선택을 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요나단이 자기 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아니요 그는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있으면 자기가 왕이 되지 못할 사실을 말이에요.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요나단은 어떻게 두렵지 않았을까요? 도대체 어떻게 그 자리를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요? 도대체 그렇게 할 수 있는 그 결단은, 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우리는 지금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고난주간을 통하여, 우리는 이 비밀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늘 이 한 분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은 그분, 요나단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그것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요나단은 왜 자신의 왕좌를 내려놓았을까요? 어떻게 그 자리를 포기할 수 있었을까요?
지난주까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제 다윗을 질투했던 사울 왕을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수금을 타던 다윗을 몇번이나 창을 던져 죽이려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울 왕은 자신의 왕좌를 내려놓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다윗이 차지할 것만 같아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를 없애기로 작정합니다. 몇번이나 창을 던져 그를 죽이려 했고요, 그의 집에 군사를 보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번번히 그 계획은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요나단과 미갈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다윗을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은 집에서 도망가, 라마나욧, 즉 사무엘 선지자의 집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도요. 군사를 보내어 그를 죽이려 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다윗을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마음은 너무나 답답한거지요. 힘든거지요. 그래서 라마나욧에서 자신의 사랑하는 친구인 요나단을 다시 찾아갑니다. 도대체 왜 요나단의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하는지 듣고 싶은거에요 알고 싶은거에요. 사울 왕에게 차마 가지 못하고, 친구이자 왕의 아들이었던 요나단을 찾아간거에요.
그래서 본문 1절에 보면 묻는거죠. 도대체 내가 무엇을 했냐, 뭘 잘못했냐, 왜 너희 아버지가 자꾸 나를 죽이려하냐 묻는거에요. 너는 알고 있냐는거죠. 2절에 요나단이 그래요. 그는 이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아니다. 아버지가 정말로 그랬으면 나한테 이야기했을건데, 그럴리가 없다 그러는거에요. 이 대답을 듣자 3절에 다윗이 그래요. “너희 아버지가 일부러 나 도와줄까봐 이야기 안한거다. 내가 결단코 맹세하는데, 나와 죽음 사이는 한 걸음뿐이다”
다윗은 확신하는거죠. 자신을 향해 던졌던 그 창을 보았고요, 자신을 죽이려고 몇번이나 군사들을 보냈던 것을 알고 피했고, 숨었어요. 요나단과 다윗은 같은 상황을 두고요 완전히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설마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하겠나 그런거고. 다윗은 자신이 겪은거니깐 모를 수가 없는거죠.
그때 요나단이 4절에 그래요.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요나단은 지금 상황이 그래요. 아버지가 다윗을 진짜 죽이려 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그게 체험이고 확실하지만 요나단의 입장에서는 아닐 수 있지요. 그런데도 요나단은 네가 원하는대로 하겠다라는거에요. 그 뒤에 쭉 내용이 나오지만 핵심은 이거에요. 8절에 보면, 다윗이 요나단에게 그래요.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다윗이 요나단과의 관계를 뭐라고 하냐면, 여호와 앞에서 맺은 언약관계라 부릅니다. 여러분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는요, 단순히 인간적 의리나 우정의 관계가 아니고요.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의 관계입니다.
이 언약은요 앞에 18장에서 요나단과 다윗이 맺은 언약입니다. 그 언약의 장면에서 요나단이 그랬어요, 자기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입힙니다. 자기 갑옷과 칼과 활과 허리띠를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이 모습은 무엇을 상징한다고 했지요? 자신의 왕권을 상징하는 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었다라는거죠. 그러니깐 오늘 본문 4절에서 그가 네가 원하는대로 해주겠다라는 그 말은, 이미 앞에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해서 다윗에게 그렇게 대한겁니다.
그런데 이 언약이 얼마나 값비싼 것이었는지 뒤에가서 분명히 등장합니다. 31절에 보면, 초하루 잔칫날 요나단이 다윗의 행방을 숨겨준 직후에 사울이 요나단에게 한 말이에요.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해주는거죠. 네가 다윗을 선택하면, 네 왕국은 없을 것이다. 다윗이 살아있으면 네가 왕은 되지 못할 것이라는거에요.
여러분 이 말을 들었을 때, 그가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4절에 자기가 한말이, 18장에 자기가 다윗과 여호와 앞에서 한 언약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말이었는지, 비로소 실감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나단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34절에 보면요, 요나단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식탁에서 나와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너무나 슬펐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정말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돌아서지 않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들에 나가 다윗에게 화살을 쏩니다. 도망가라는 신호였어요. 아버지가 정말로 너를 죽이려하는게 사실이니깐 당장 도망가라는거에요.
여러분 이 요나단의 모습은요, 그는 어떤 대가를 치뤄야 하는지 알면서도 언약을 지킨겁니다. 손해가 얼마나 큰지 분명히 알면서도 언약 위에 선겁니다. 자기가 치뤄야 되는 대가는 왕좌입니다. 그가 손해보아야 할 것은 왕의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것을 포기하고 왕위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품이 좋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의 감정이 커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맺언 언약이 그를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은 요나단에게 있어서 왕좌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언약에 붙들려, 우리의 왕좌를 내려놓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정말로 이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가치 있게 여겨지고 계십니까?
이번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사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요, 그냥 구원받고 천국가고 영생을 얻고 이게 끝이 아니에요.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이에요. 이 말이 뭐냐, 이제 우리는 구원을 받았는데요. 구원받은 자처럼,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 백성답게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해요. 이 책임은, 세상의 것을 탐하는 삶이나,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사는 삶이 아닌거죠. 우리 이번 베트남 선교팀의 주제가 뭐냐면, 나는 선교사에요. 여러분 선교사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기 해외에서 선교사역만 하는 사람만 선교사가 아니에요. 우리가 다 이 땅에 선교사에요. 하나님께 보냄 받은 자에요.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목적에 맞게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사로 이 땅 가운데 살고 계십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요, 끊임없이 우리한테 더 좋은 자리를 보여줍니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위치, 더 많은 사람들의 인정, 더 안정적인 미래, 이것들이 손에 잡힐 듯이 눈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달려 가는 인생을 향하여, 그래 그게 맞아, 그래 너 잘하고 있어, 그래 거기에 진짜 행복이 있어라고 우리에게 외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슬그머니 뒤로 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명,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자리, 이 땅 가운데 예수의 증인으로 사는 삶, 선교사의 삶 그것에는 관심이 점점 멀어집니다.
우리가 대놓고 언약을 깨는거 아니잖아요. 그냥 조금씩 뒤로 밀려납니다. 언약 백성의 삶보다는 내 자리와 세상의 자리가 더 눈에 들어오고요,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계획이 조금 더 중요해지고요, 주님의 말씀과 성경의 가치보다는, 사람들의 눈치나 인정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이게 티도 잘안나요. 그냥 살다보니 그렇게 되어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조금씩 밀리다보면요, 어느 순간 내 삶의 중심에는 언약이 아니라, 내 자리가 중심이 되어 있는거죠. 오늘 우리의 삶에, 이 하나님의 언약이 제일 중요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임을 기억하십시오. 요나단에게 그 언약은요 결코 추상적인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누려야 할 왕좌와 맞바꿀 수 있을만큼 실제적인 것이었습니다. 손해가 확인된 후에도 돌아서지 않을 만큼 무겁고 책임 있는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에게 언약과 왕좌는 한손에 쥘 수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결국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어요. 언약을 택하면 왕좌를 내려놓아야 했고, 왕좌를 택하면 언약을 저버려야 했습니다. 여러분 이 둘이 충돌하는 순간은 반드시 옵니다. 그 순간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반드시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그게 이 땅에 왕의 자리라 할지라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내려놓을 수 있는 믿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삶이 우리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 살펴볼 부분은 무엇이냐면, 그렇다면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맺었던 언약의 핵심은 무엇이었냐는겁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맹세했던 것은요,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헤치려 한다면, 그것을 반드시 내가 알려주어서 도망가도록 돕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이거 그냥 다윗에게 인간적으로 약속한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서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약의 내용은 12절부터 16절까지 나오는데요, 요나단이 다윗에게 그렇게 하도록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요나단이 그래요. 14절부터 보면요,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 달라, 그리고 네 대적들을 다 끊어버리신 그 때에도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지 말아달라” 요청합니다. 여기서 다윗이 요나단에게 지켜야 했던 언약의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 핵심은 바로 인자하심, 히브리말로 ‘헤세드’라는 단어입니다.
‘헤세드’는요, 성경에서 인자하심, 자비하심, 은혜, 사랑 이런 말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이 헤세드라는 단어는 보통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향하여, 특별히 사람들을 향하여, 자신의 백성들을 향하여, 언약 관계 안에서 신실하게 베푸는 사랑을 뜻합니다. 이 헤세드는요, 상대방이 받을 자격이 있어어가 아니라,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끝까지 베푸는 사랑입니다. 조건이 없어요.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약해져도, 힘을 잃어도, 심지어 내게 돌아오는 유익이나 이득이 없어도, 언약 때문에 베푸는 사랑이 바로 헤세드입니다.
이 헤세드를 다윗에게 요나단은 요구하고 있어요. 사실 둘의 언약 관계는, 이 헤세드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향하여 헤세드를 베푼 것이죠. 심지어 자신이 누려야 할 왕의 자리까지 포기할 정도로 그는 다윗에게 헤세드를 베풉니다. 다윗 역시 요나단에게 베푸는 헤세드 역시 동일합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요, 일단 요나단은 자신의 왕좌를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윗이 왕이 될 것도 알고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헤세드를 베풀며 그의 생명을 구원해줍니다. 여러분 정치라는건 그런거에요. 우리가 왕조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지만요, 다윗이 왕이 되면 요나단은 왕위를 빼앗긴 집안입니다. 이건 정치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집안이에요. 새 왕조가 들어서면요, 보통 이전 왕가의 씨를 말려버립니다. 왜냐면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게 당연하기 때문에, 자신의 왕의 자리를 순순히 내주는 집안은 없는거에요.
그런데 훗날 정말로 다윗이 왕이 되지요. 사울의 집안은 거의 몰락하게 됩니다. 다윗은 그 때에 어찌했을까요? 사무엘하 9:1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다윗은 사울의 집안에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을 찾아냅니다. 그는 성경에 보면 발을 저는자였다. 그러나 사울 집안의 사람인거죠. 그런데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며 므비보셋에게 헤세드를 베풉니다.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 사람을 향하여, 그를 평생 왕의 상에서 먹도록 왕자처럼 대접해줍니다.
사실 이 다윗과 요나단의 모습이나, 므비보셋의 이야기는 우리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헤세드, 언약의 사랑은 이런거에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족속을요 사랑할만해서 사랑하신게 결코 아닙니다. 헤세드라는게 이런거다. 사랑이라는게 이런거라는 것을 그들의 역사를 통하여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게 하고 싶으셨던거에요.
아브라함을 택하십니다. 이유가 없어요. 조건이 없습니다. 그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신거에요. 그와 언약을 맺으시지요. 내가 너를 택했다. 네 씨가 모든 족속의 복이 될것이다. 아브라함은 대단한 인물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평생 자기 자식의 문제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며, 때로는 불신하며 인간적인 선택을 했던 인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붙드십니다. 그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통하여 자신의 구원역사를 이 땅 가운데 이루어가십니다.
모세와 출애굽 백성을 보십시오. 구원해놓으면 뭐합니까. 온갖불평을 쏟아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붙드십니다. 약속의 땅에 어찌됐건 넣어주셔요. 이게 하나님의 헤세드입니다. 이스라엘 역시 마찬가지이죠. 약속의 땅에 들여보내놓으면 뭐합니까 온갖 죄악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여전히 붙드세요.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러지 말아라, 다시 은혜를 베푸시고, 또 회복시키고, 그들은 나라가 망해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헤세드를 베푸십니다. 포로에서 귀환케 하시고요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세요. 그 헤세드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나단이 왕위를 내려놓았다면,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내려놓으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피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요? 우리와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헤세드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자기 친구 다윗을 살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원수였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요나단 같은 사람이었습니까. 헤세드를 받을 만한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므비보셋보다 더 형편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을 지키신 겁니다. 헤세드를 베푸신 겁니다.
그리고요 변함없이 그 하나님의 본체인 예수님은 이 땅에 헤세드를 베푸십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그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올라가십니다. 오히려 자신을 못박으라 외쳤던,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버렸던 그들을 향하여, 헤세드를 베푸세요. 우리가 사랑받을만해서요? 아니요. 우리와 약속하셨기에, 언약하셨기에, 헤세드를 베푸시는거죠.
오늘 말씀은 우리의 삶에 다시금 도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내려놓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시겠습니까. 요나단은 자신의 왕의 자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요나단은 헤세드로 다윗을 살려냈습니다. 예수님 역시 헤세드로 자기의 원수였던 죄인들을 살려내셨습니다. 오늘이 수요일인데요. 예수님은 2천년전 이 시간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알면서,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뤄야 되는지 알면서도, 걸어가셨습니다. 왜요? 언약 때문에요. 헤세드 때문에요.
우리의 삶이 내 자리 하나 지켜 내려고, 언약 백성의 삶을, 그 헤세드를 포기 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이길 바랍니다.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내가 꽉 쥐고 있는 내 체면일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내 계획일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좋아보이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왕위를 내려놓으신 고난주간에, 우리도 그분 앞에 무언가를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헤세드를 실천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난이 끝이 아닙니다. 내려놓음이 끝이 아닙니다. 요나단이 내려놓은 것을 하나님이 다음 세대에서 갚으신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는 반드시 부활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분 앞에 내려놓는 것들,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그런 한 주를 살아내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아침을 우리 모두가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단 기도 — 말씀 결단 기도
1단 기도 — 말씀 결단 기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요나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왕좌보다 언약을 택했습니다. 헤세드보다 자기 자리가 더 무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요나단의 모습 너머에서, 하늘 보좌를 내려놓으시고 우리를 향해 헤세드를 베푸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이 시간 첫 번째로 기도하실 때,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갑시다. 내 삶에서 언약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들이 무엇인지, 내가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꽉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 앞에 솔직하게 내어놓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도 요나단처럼, 언약이 왕좌보다 더 무거운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내 체면보다, 내 계획보다, 내 자리보다 주님과 맺은 언약이 더 실제적인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나를 위해 하늘 보좌를 내려놓으신 예수님 앞에, 내가 붙들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이 결단의 제목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 크게 한 번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2단 기도 — 교회와 공동체를 위한 기도
2단 기도 — 교회와 공동체를 위한 기도
두 번째로 우리 광혜교회 공동체를 위해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환우들을 위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육신의 연약함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 지체들이 있습니다. 병원 침상에서, 가정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성도들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옵소서. 고난주간, 고통 중에 계신 예수님이 그들의 고통을 아신다는 것을, 그 위로가 실제로 임하게 하옵소서.
고난주간 예배를 위하여: 이번 한 주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해, 단순히 참여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고난에 진정으로 동참하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힘들어도 깨어 나아오는 이 발걸음을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옵소서. 이번 고난주간을 통해 우리 광혜교회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베트남 선교를 위하여: 8월에 있을 베트남 단기선교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하나님께 보냄 받은 선교사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내 자리를 지키는 삶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내신 그 자리에서 헤세드를 베푸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선교팀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시고, 그 땅에 복음의 씨앗이 심기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환우들과 이번 고난주간 예배, 그리고 베트남 선교를 위해 다시 한번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3단 기도 — 개인 기도제목과 마침
3단 기도 — 개인 기도제목과 마침
마지막으로 여러분 각자가 가지고 나온 개인의 기도 제목을 주님 앞에 올려드립니다.
누군가에게는 내려놓기 너무 아까운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직 손이 열리지 않는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의 뜻은 보이는데, 발이 떼어지지 않는 결단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붙들고 씨름해온 삶의 무게가 있을 것입니다.
요나단이 언약 때문에 왕좌를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이 그것을 기억하셨습니다. 므비보셋을 통해 다음 세대에서 갚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들,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헤세드의 하나님은 그것을 절대 잊지 않으십니다.
"주님, 내 손에 있는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내 자리를 주님께 맡깁니다. 언약의 하나님, 헤세드의 하나님, 이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저도 그분을 따라 한 걸음 내딛겠습니다."
각자의 간절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주님 앞에 힘차게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