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마음 가운데 피어나는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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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지금 예루살렘은 열광의 도가니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렸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연호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환호성 뒤에 가려진 **'동상이몽'**을 보십시오. 군중들이 기대한 것은 로마를 짓밟을 '정복자 메시아'였지만, 주님이 준비하신 것은 죽으러 가는 '희생의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환호 속에 섞여 있던 헬라인들의 질문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영광과 주님이 말씀하시는 영광의 간극을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이 축제의 현장에 섞여 있던 이방인 헬라인들, 그들은 철저한 경계 밖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의 나라가 세워지면, 우리 같은 이방인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여전히 소외된 존재일까?' 이 실존적인 질문을 안고 그들은 빌립을 찾아옵니다.
“헬라인들이 예수를 찾았다는 것은, 이제 구원이 유대인을 넘어 열방으로 확장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때가 왔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언어와 문화권에 있어서 헬라식 이름을 가진 빌립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빌립이 안드레에게 상의한 후에 예수님께 가서 여쭙니다. 저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이 질문을 들으신 예수님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이 말씀은 단순히 유대인만을 위한 승리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와 이방의 담을 허무는 방법, 즉 '한 알의 밀알로 죽으심'을 통해 모든 열방을 품으시겠다는 우주적인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영광을 얻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곧바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죽으러 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으로써 영광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로마 군인들과 싸워서 승리함으로써 나라를 세우실 것을 기대했는데, 바로 그 메시아의 입에서 지러 왔다. 죽으러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5:8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과연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죄 없이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힘이 없어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내어준 것이었습니다. 누구의 강요나 억압이나 위협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능과 자유로운 의지로서 자신을 죽음으로 내어주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6–8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고, 그것을 놀라운 일을 성취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으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것도 영광을 얻는 것에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죽는 것, 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영광이라고 말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다시 살아나는 일, 그것만을 영광을 얻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죽음, 지는 일, 이것조차 예수님은 당하신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으로 그 길을 가셨습니다.
요한복음 12:24–25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여기서 이 한 알의 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이 구절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이 구절을 그 제자된 우리들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먼저 이해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다음에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먼저 그 길을 걸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는 일, 죽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닌가요?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는데, 져주는 것이 쉬운 일이던가요? 불쾌한 일입니다. 그것을 이유없이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심히 괴로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핍박과 죽음의 길을 선택하시고 그 길을 걸어가시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말할 수 없을만큼 마음이 괴롭다고 하십니다. 거기에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고난의 길을 가지 않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인간이신 예수님의 처절한 고백입니다.
히브리서 5:7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의 기도는 그 고난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에 대해서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분의 기도는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로 마칩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누가복음 22:42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피하고 싶을만큼 엄청난 그 고난을 피하지 않고, 그 고난을 선택하여 그길을 걸어가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고난이 그에게 영광이 됩니다. 단지 그분이 부활승천하셔서 사망권세를 이긴 것만이 영광이 아니라, 바로 이 고난 받으심 또한 그분의 영광이 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육신과 고난과 부활과 승천,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영광이 됩니다.
주의 뜻대로 당하는 고난이 그러므로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피할 것이 아니라 주와 함께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 한 알의 썩어지는 밀이 되는 것, 불편하고 불쾌하여 보통 사람이라면 가지 않은 그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이 그 길을 걸으시며 하나님의 사랑과 높으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부활과 승천이라는 세상으로서는 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심으로 더욱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하시는 말씀과 기도는 그 헬라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주시는 위대한 답변입니다.
내가 이 고난을 통해서 이룰 나라는 세상 나라와 같이 누군가 권력을 잡고 힘있는 자가 통제하는 차별하는 세상이 아니라, 뒤집어진 세상이다. 높은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높은 자가 되는 세상과 전혀 가치관이 다른 참 평안의 세상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놀라운 사랑과 섬김의 나라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지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나라를 여는 사건이었습니다.”
더 이상 누가 높고 낮은지 누가 힘이 있고 힘이 없는지로 다투고 나누어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룰 세상은 모두가 평등하며 모두가 화목하며 함께 어울리는 세상이라고 답변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14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갈라디아서 3:28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지혜로운 헬라인이었다면, 이 답변에 할렐루야를 외쳤을 것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유대인과 차별이 없다는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사야에서 예언된 평화의 나라입니다.
이사야 11:6–8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사자가 어린양과 뛰놀고, 장난처도 물지 않는, 참 사랑과 기쁨의 그나라. 예수님께서는 그 나라를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놓으시고 죽임을 당하시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죽음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우리들에게 그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시고 믿고 따라가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 주님은 육신의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하시며, 또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사망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보여주신 영광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자발적인 복종'이었습니다. 세상은 밟고 올라서는 것을 영광이라 말하지만, 십자가는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임을 증명합니다.
이번 고난 주간, 단순히 주님의 아픔을 슬퍼하는 데 머물지 마십시오.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대신 죽으신 그 사랑으로 인해, 이제 유대인도 헬라인도 없는 **'뒤집어진 나라'**의 시민이 되었음을 선포하십시오. 내가 썩어지는 한 알의 밀이 될 때, 우리 가정과 공동체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죽음으로 생명을 잉태하신 그 영광스러운 길에, 기꺼이 동행하는 복된 한 주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빌립보서 1:20–21 (NKRV)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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