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More Thorns — 더 이상 가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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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19:1–16 / 제목: No More Thorns — 더 이상 가시가 없다
1부 —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1부 —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오래전 유영철이라는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화가를 꿈꾸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스물한 명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킬링필드, 나치 수용소, 지금도 계속되는 전쟁들. 역사는 반복해서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고.
더 섬뜩한 것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면 자녀를 사랑하는 평범한 아버지였다는 사실입니다. 인간 안에 있는 이기적인 본능은 억제되지 않으면 언제든,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도, 여러분도 예외가 아닙니다.
2부 — 십자가 앞의 잔인함
2부 — 십자가 앞의 잔인함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협상을 시도합니다. 바라바와 맞바꾸려 했지만 실패했고, 이번에는 매질로 끝내려 했습니다.
당시 채찍은 끔찍한 도구였습니다. 쇠붙이와 뼈가 박힌 가죽 채찍으로 군인들이 교대로, 기절하거나 죽을 때까지 때렸습니다. 예수님의 온몸은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박고, 돌아가며 뺨을 때리고 조롱했습니다.
그 처참한 모습의 예수님을 빌라도가 백성 앞에 세웁니다. "이 사람이 여기 있다. 이만하면 됐지 않느냐?"
그러나 백성이 소리칩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성도 여러분,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일주일 전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맞았던 사람들입니다. 병자가 낫는 것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을 보고도 더 죽이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3부 — 그들이 왜 그렇게 외쳤는가
3부 — 그들이 왜 그렇게 외쳤는가
종교 지도자들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으므로 죽어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념의 뿌리는 기득권과 자존심을 지키려는 자기중심성이었습니다.
백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겉으로는 협박과 두려움 때문이었지만 결국 자기의 이익과 안녕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무죄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권력과 자리를 지키기 위해 넘겨주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도, 백성도, 빌라도도 — 결국 모두 자기를 지키기 위해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들과 다릅니까?
4부 — 그들이 바로 우리다
4부 — 그들이 바로 우리다
두 달 후 오순절, 베드로가 외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그 자리에는 그날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외쳤던 바로 그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에 찔려 묻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우리도 그 자리에서 직접 소리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을 부인하는 것, 복음을 외면하고 여전히 자기가 중심이 되어 사는 것은 결국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와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결국 둘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든지, 주님을 부인하든지.
이 고난주간 특새로 모인 이 시간, ‘우리가 어찌할꼬’… 이 질문이 우리 각자의 마음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결론 — No More Thorns
결론 — No More Thorns
오래전에 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겉봉에 "no thorn" 이라고 썼다고 합니다. 슬픈 소식이나 비난하는 내용이 없으니 안심하고 열어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가시관(thorn) 을 쓰셨습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고난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모든 가시를 혼자 담당하신 예수님이 이제 우리에게 복음의 편지를 보내십니다.
그 겉봉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No more thorns."
"나는 이미 가시를 다 받았다. 이제 너희에게는 더 이상 가시가 없다. 너희 죄에 대한 심판과 정죄는 내가 십자가에서 다 담당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외쳤던 그 잔인한 사람들에게조차, 주님은 보복이 아닌 용서를, 정죄가 아닌 은혜를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어야 산다" 라는 주님의 말씀은 독선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해 절망 중에 있는 우리를 향한 사랑의 초청입니다.
혹시 지금도 자기를 지키기 위해 주님을 뒤로 밀어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여전히 내가 중심이 되어, 주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오늘 이 새벽에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네게는 더 이상 가시가 없다. 나에게로 오라." 이 사랑의 초청 앞에 오늘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께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기는 이 새벽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