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_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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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
침묵 속에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6장_침묵 속에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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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제 6장 침묵속에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
그가 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 마치 도수장으로 려가는 어린양과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이사야 53장 7절
고난과 침묵
이사야 53장 6절이 대속의 계획이 하나님에 의해 수립되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면 7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은 그 대속을 성취하기 위해이 땅에 오셔서 고난당하실 메시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곤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00:57) 이사야 53장 7절. 먼저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고난과 침묵을 언급합니다. 사실 대속을 위하여 메시아가 고난을 받게 될 것임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고난을 거론하는 것은 고난 자체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고난을 메시아가 어떤 방식으로 감당하시는지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권욕을 당하여가 메시아의 육체적 고통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괴로울 때에도는 그분의 내면적인 고통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도 고난을 받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01:46) 그것은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인류의 죄를 되기 위하여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림을 당하시고 우리의 악을 인하여 상함을 받으신 분은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을 대신하여 형벌을 당하실 때에는 그분의 신성을 인성 아래 감추셨습니다. 그분은 연약한 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죄를 위해 하나님의 증벌을 받으셨습니다. 사실 없으신 그분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고난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부터가 그분에게는 고통이고 모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신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계셨고 당신이 무슨 일을 하셔야 할지도 아셨습니다.
(02:40) 기꺼이 사람의 모양으로 타나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폭는 근본 하나님의 하나님과을 취할 것으로지 아니고 오려기를 종의 체를 가지 사람들과 같이 모양으로 타나 자기를 낮추고죽기까지 복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서 2장 6절부터 8절 말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신을 당하고 채찍에 막고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그분도 슬프고 아프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동시에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의 마지막 주간에 당하셨던 극심한 고난 즉 체포와 신문과 처형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대로 그분에게도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이었습니다.
(03:37) 예수님의 고난의 절정은 겟세마에서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셔서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시면서 시작됩니다. 그분이제장의에서 인들에게 신문을 당하신 것은심한 일입니다. 26장 57절. 대제사장이 예표하였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당하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직무가 무엇입니까?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아파하고 그들의 죄의 용서를 위하여 하나님께 타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제사장의 뜰에 진짜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서셨습니다. 한 사람의 죄인으로서 말입니다. 가야바의에서 빌라도에게로 빌라도에게서 헤롯에게로 다시 헤롯에게서 빌라도의 법종으로 끌려가 재판을 받으시기까지 예수님께서는 수없이 신문을 당하셨습니다.
(04:40) 복음서는 여러 지면을 하래하여 그분이 체포되고 신분당하시는 과정을 보도합니다. >> 그리고 그 보도 가운데에서 우리는 메시아가 고난을 침묵으로 견딜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대제사장의에서 어처군이 없는 종교 재판을 받으실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대 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마가복음 14장 60절부터 61절 예수님의 침묵은 대제사장들이나 장로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많이 아니었습니다.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실 때에도 그분은 침묵하셨습니다.
(05:32) 예수께서 종독 앞에 섰으 종독이 물어 이르되 내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말이 옳다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장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도 아니하시는지라 이에 빌라도가이 그들이 너를 서마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하되 한마디도 아니하시니 크게 놀라워하더라마태복음 27장 장 11절부터 14절 말씀 헤롯에게 신문을 당하실 때에도 그리스도의 침묵은 이어졌습니다.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연구로라 여러 말로 모르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누가복음 23장 8절부터 9절 말씀 왜 그러셨을까요
(06:34) 왜 가장 결정적으로 자기를 밝히셔야 할 시간에 침묵으로 일관하셨을까요을만하 하시면 진리의 말씀을 폭포수처럼 쏟아내시던 분이 왜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을까요?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최고의 섬김은 진리를 가르쳐 자유케 하시는 일이었는데 왜이 순간에는 침묵하셨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굳게 담으셨던 이유를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침묵의 이유 1. :하나님의 지혜를 아심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침묵하신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07:31) 그 지혜는 바로 당신이 죽으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진리로 사람들을 가르치셨어도 그것으로 인류를 위한 구원의 계획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생애는 자기를 아낌없이내어 주신 생애였습니다. 그러나 약하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줄인 자들을 먹이셔도 그것으로 인간의 대속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목자 이른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섬기셨지만 그분은 결코 그것으로서 인간을 구원할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오직 당신이 그들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만 인간의 구원을 위한 길은 열릴 수 있었습니다. 인간들을 대신하여 당신이 형벌받으심으로써 인간들에게 구원이 주어짐이 하나님의 지혜임을 알고 계셨기에 그분은 하나님의 경을 따라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08:26) 오히려 기쁨으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침묵하셨습니다. >>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한 자들의 사악한 꾀에 의하여 모을 죽으신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사람들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하여 선택된 도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신하였고 모함하였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그 배신과 모함까지 도구로 사용하여 대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지혜를 아셨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고요히 침묵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고난 그 자체는 선한 것도 아니며 아름다운 것도 아닙니다.
(09:12)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고난으로 가득찬 생애였던 것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셨기 때문이지 고난을 찾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쓸데없는 고난을 취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박해하면 피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20장 23절. 그런데 그랬던 그분이 십자가 죽음 앞에서는 더 이상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비난과 고소에 대하여 조금도 변명하지 않으시고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십자가의 고난을 조용히 기다리셨습니다.
(09:58) 사실 예수님의 생애의 모든 준비는 바로이 시간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어 자신의 생명을 화목재물로 드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맡은 죄의 담을 허시는 것이 그분이이 땅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부터 15절. 이제 그 목적을 이룰 시간이 다가왔음을 아셨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위해 변론하지 않으셨습니다. >>
침묵의 이유 2.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만족
메시아가 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굳게 담으셨던 번째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완전한 만족을 누리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10:49)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마지막 주간 그분의 고난도 절정에 달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 가운데 보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는 지극히 평화롭습니다. 그 평화의 비밀은 그분의 내면 세계 가득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완전한 만족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입을 열지 않으신 것은 입을 열 필요가 없을 정도의 만족이 그분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평화가 가져다 준 선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죽게 하심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대속의 결과를 기뻐하셨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재물로 들여 자기의 백성들을 위하여 구원의 길을 여시려는 그리스도를 기뻐하셨습니다.
(11:36) 하나님과 누리는 완전한 평화가 가져다준 내면의 평정은 죽음의 고난을 앞에 두고서도 동요하지 않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재 가운데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지금 당신이 직면하고 있는 죽음은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이며 당신은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오신 것임을 말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 비록 지금 모진 신문과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그런 악행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의원의 시련을 위한 도구임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기보다는 자신의 고란을 사용하여 대속의 길을 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셨습니다.
(12:22)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시고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범죄자 중한 사람으로 취급 당하시면서도 자신을 변호하기 위하여 입을 열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며 우리는 이러한 도전을 받습니다. 바로 신자의 행복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완전한 만족이 있느냐에 달린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우리가 권난의 길을 걸어가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열와 조롱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 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고 내가 그 길을 걸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이 즐겁다면 우리는 묵묵히 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때 누리는 신령한 만족을 통하여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침에 빠지지 아니하고 침묵과 인종의 길을 걸어가셨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13:11)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언제나 문제는 고난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 고난은 우리의 발목을 잡는 인생의 무덤이 되기도 하고 우리를 달련해 전공과 같이 빛나게 하는 인생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내면에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완전한 만족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고난이 왔을 때 사람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알리려고 예를 씁니다. 자신이 그러한 고난을 당해야 할만큼 잘못한 것이 없음을 사람들에게 입증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에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만족이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정이나 인정에 연하지 않습니다.
(13:56)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가 당하는 고난을 아시고 자기를 인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을 다들려 주님을 섬기는 비결을 배워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완전한 만족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일꾼과 신자됨은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어느 하나를 위해 버려져서는 안 됩니다. 사명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릅니다. 따라서 고난이 올 때 사람들의 평판을 걱정하고 요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이루며 살 수 없습니다. 고난의 직면에도 묵묵히 자기가 가야 할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사명을이 살 수 있 그러려면 하나님과의 평화로 말미암는 만족이 필요합니다.
(14:48) 십자가는 명목적인 열정으로지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가는 자신을 기뻐하는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하며 사는 것이 열렬한 헌신의 삶의 진정한 토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옳게 여기신다는 믿음에서 오는 쪽 만족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고난의 길도 기쁘게 걷게 하는 자원입니다. 그리고 고난의 길을 걷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정수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권난받는 삶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빛 안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면서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권난도 많이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5:37) 그러나 그들은 고난에 개의치 않고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진정한 만족에 즐거워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완전한 만족이 있기에 하나님을 위하여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고난과 맞닥들리면서도 굴복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너무나 안일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난 없이 편안하게 사는 삶만을 꿈꾼다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곤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16:26) 이사야 53장 7절. 이것은 그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감당하신 태도인 동시에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갈 때 견지해야 할 태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메시아라고 고백하는 것은 세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떠하든지 우리는 그들과 달리 그리스도를 위하여 난받는 것을 가장치 있는 일로 여기겠다는 서약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만족이 그분으로 하여금 침묵 속에서 십자가를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지는 지사충성의 삶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만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완전하고 신령한 만족보다는 세상에서 오는 불완전하고 속된 만족에 길들려져 있습니다.
(17:20) 우리에게는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활훨 날아가야 할 우리들이 땅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먹다 몸이 살쪄 날지 못하게 된 새들처럼 바닥을 걸어다니며 살고 있습니다. 주여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아무것도 자기의 것 없이 사신 그분의 생애를 보십시오. 무리의 허물과 죄를 죄악을 인하여 찔리고 상하면서도 어 자기를 고난으로 부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완전한 만족 속에서 십자가를 감당하신 그분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분의 침묵은 우리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18:11)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완전한 만족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침묵과 인종으로 사명을 따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침묵의 이유 3. : 목표에 대한 인식.
메시아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굳게 담으셨던 세 번째 이유는 목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목표의 시선을 집중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위의 시선이나 판단에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에 들어서 처음 하신 일은 죄인인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아무 죄도 없고 흠도 없는 분이시기에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모든 죄인들이 세례를 받는 그 자리에서 다른 죄인들과 섞여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19:07) 심지어 세례 요한도 자신이 그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고 생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마태복음 3장 13절부터 14절 말씀. 세례 요한의 말의 요지는 죄인인 자신이 어떻게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에게 세례를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마태복음 3장 15절. 우리가 이 구절을 읽으며 확인하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당신이 성취하셔야 했던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아셨다는 사실입니다.
(20:0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영광과 권세와 존귀를 누리게 하시려고 당신을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오히려 죄인들과 함께이 땅에 거하며 그들과 한 가족이 되게 하셔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보내신 것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는 당신의 낮아지심으로 성취하여야 할 목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었고이 때문에 고난 중에도 침묵하실 수 있었습니다. 비록 당신은 무죄하시고 순결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의 허물과 죄악을 대신 짊어져야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음을 아셨기에 그분은 부당한 비난과 고통스러운 핍박 가운데서도 침묵하실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와 그 십자가를 통해서 성취될 하나님의 계획을 예수님께서는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20:57) 따라서 우리가 그분의 생애의 마지막을 기록한 복음서 속에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는 순간에도 자기의 고통에 마음을 쓰지 아니하고 안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마음을 쓰시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배하였던 것은 당신의 고난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을 위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산 것과 세상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며 산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이 기하였을 때만 같이 있습니다. 성경은 고난 자체를 고상하게 보지 않습니다. 무엇을 위해 고난을 받느냐를 중요하게 봅니다.
(21:46) 히브리서 11장 2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의 고난보다는 그 고난을 통하여 이루어질 하나님의 뜻에 시선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이러한 일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고난을 통하여 갑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큰 사랑에 비하면 우리가 그분을 위해 산 것은 티끌만큼도 안 되는데 그마저도 우리의 고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기보다는 우리의 아픔에만 집착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을 십자가의 정신에 잠기게 하는 일은 얼마나 힘든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하는 구체적인 삶의 목표가 없는 사람에게는 고난도 없습니다.
(22:37) 그런 사람들의 고난은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살아가면서 겪는 고생과 동일합니다. 거룩한 고난은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한 삶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극한 고산을 고난을 침묵으로 견디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분에게는 고난을 당하면서라도 꼭 성취해야 할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해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고난이 오더라도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며 견뎌내게 하는 양보할 수 없는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십자가를진다는 것은 단지 정신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모든 삶의 영역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23:23)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장 24절. 그리스도를 따른다라는 것은 단지 인생에 관한 기독교의 견해 한두 가지를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시되는 삶의 방식 전부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전 삶을 포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누구든지 십자가를지고 나를 생각할지니라라고 말씀하지 않고 십자가를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목표 자체가 갱신되지 않으면 고난도 견딜 이유가 없고 자기 부인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24:13) 그러므로 스스로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할지라도 삶에 있어서 실제로 따라가고 있는 거룩한 목표가 없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에게는 열렬한 기도가 있을 리가 없으며 죄악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결정적인 특징인 사랑의 감격과 결단의 용기도 없을 것입니다. 불꽃처럼 길거리는 눈으로 거룩한 목표를 응시하고 다름질하며 사는 신실한 무림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인생을 사는 것은 비참한 재앙입니다. 독생자를 죽음에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 어떻게 그 얼굴을 배우려고 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침묵으로 순종하셨던 것은 당신의 고난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징검다리가 되고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25:04) 그분의 사랑으로 구원을 얻은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 중에 사명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중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것이 사명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그 영혼을 위하여 눈물 흘리기를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화받게 하기 위해서라면 희생도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가족 구원이라는 목표를 갖고 살아갈 때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혼을 맡겨 돌보게 하십니다. 그런 경우 그 영혼이 잘되는 것이 그의 사명입니다.
(25:44) 그러면 그는 그 일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 말고 마치 그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이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인 것처럼 섬겨야 합니다. 십자가는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목표를 붙들고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지고 살아갈 때 우리의 고난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산 날들은 주님을 위하여 산 날들로 기록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진정한 축복은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목표를 발견하고 그 시련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그들도 세상에서 그러한 삶의 포상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26:26) 하나님의 자녀들이 십자가를지고 살아간 삶의 공적인 보상은 이 세상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은
마지막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장 7절 하반절라는 말씀으로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의 덜깎는 자 앞에 선 어린 양의 비유하고 있습니다.이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께서 자신을 어디로 이끄실지 아시는 가운데 권난 중에도 온전히 의뢰함으로 순종하실 것을 나타냅니다.
(27:20) 주님께서 십자가를지고 가시는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주인의 손에 이끌려서 도수장으로 들어가는 어린 양을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주인을 신뢰하며 도수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하나님을 신뢰하며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는 그리스도의 비유한 것은 마나 적절합니까? 날카로운 칼이나 가위를 가지고 자기 몸에 털을 깎는 자에서 가만히서 있는 양을 생해 보십시오. 두려움 속에서도 잠잠히 있을 수 있는 것은 자기의 털깎는 자를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의 권난 받으시는 모습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분의 생애는 자기를 포기한 순종의 생애였습니다.
(28:02)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배우셔야 했던 것은 순종이었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는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히브리서 5장 8절부터 10절 말씀.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생명을 빼앗기신 그리스도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바치신 그리스도를 봅니다. 이러한 순종은 이미 그리스도 자신이 예고하셨습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28:47) 이를 내게서 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버리노라. 요한복음 10장 17절부터 18절 말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한 순종으로 십자가를지고 그분을 따라야 할 우리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치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장 21절.
절대 의존의 마음으로 산다.
우리의 구원은 이렇게 기꺼이 순종하시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자기를 계속 재물로 들리시는 희생에는 고통이 따랐습니다.
(29:34) 그러나 그 극심한 고통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는 방편이 되심을 아셨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온전히 바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당신을 온전히 내어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를지고 죽으셨다는이 사실을 받아들는 것은 인생의 참혹한 현실과 고난 앞에 당당히 맞설 용기를 줍니다. 우리의 고난을 통해 당신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어 가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의존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그것이 전적으로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구원받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답게 살게 하시는 것도 마지막 우리의 종적 구원을 완성하시는 것도 모두 주님께서 은혜로서 하시는 것이니 우리는 생사간에 오직 하나님만을 의존해야 합니다.
(30:35) 우리가 그 의존의 마음으로 어떻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순종해야 할지 이미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온전한 순종으로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을 기억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목표를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람처럼 속히 지나가는 우리의 남은 인생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지고 온전히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 의존의 마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