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_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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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속의 비밀, 하나님의 지혜
대속의 비밀, 하나님의 지혜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7장_대속의 비밀, 하나님의 지혜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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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 감춰진 대속의 비밀.
이제 이사야 선지자는 대속의 신비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이사야 53장 8절 말씀.
선지자의 이 외침은 사실 예언이라기보다는 벅찬 감격으로 토해 놓는 감탄에 가깝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대속을 설명한 선지자는 이사야 53장 8절 에서 대속은 이 세상 사람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임을 강조합니다.
(01:06) 이 구절은 대속의 비밀과 진리가 감추어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이성을 통하여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대속의 지혜를 추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속의 지혜는 인간보다 훨씬 영리한 마귀도 알 수 없었던 비밀이었습니다. 만약 마귀가 이러한 비밀을 알았더라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쾌재를 부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이러한 대속의 지혜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대신 고난을 받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이 위대한 장의 선언을 그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위대한 장을 읽을 때 ‘그가’라고 기록된 부분을 ‘우리가’로 바꿔 읽습니다. (02:06) 메시아의 고난을 그들이 당한 민족적인 고난으로 바꿔 해석하는 것입니다. https://youtu.be/0PvcZQFLBCE?si=sRim3RAytOx1kKOE
대속의 지혜를 알지 못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도 복음서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대속의 지혜에 대하여 가장 명징하게 밝히신 것은 다음의 말씀일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장 45절 말씀.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이처럼 명백한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한 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조차 이러한 대소구 진리에 대하여 잘 못 올랐다는 것입니다.
(02:59)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많은 진리를 깨달았지만 여전히 그 시대의 정신 곧 후기 유대의 메시아 사상의 지배를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 그들의 그 무지는 성령 강림 사건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사라집니다. 심지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태복음 16장 15절 하는 예수님의 물음에 주는 그리스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함으로써 칭찬을 받은 베드로조차도 인간의 구원을 위한 대속의 지혜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 고백 직후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의 고난을 예고하실 때 드러납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04:03) 제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내니 드로가 예수를 별하여 이주여 그리마옵소서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태복음 16장 21절부터 22절.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이러했으니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대속의 교리를 몰랐던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들은 오히려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메시아임을믿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05:00) 마가복음 15장 31절부터 32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지상생애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당신이 고난을 통하여 이루실 대속의 구원에 대하여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상징과 비유로서 때로는 명백한 언어로서 당신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이 비유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 하나가 바로 하의 미랄 비유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하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장 24절. 그러나 제자들 중 누구도이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상세하게 가르치셨는데 말입니다.
(05:59) 열심으로 충만하던 베드로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품에 기대어 그분의 심장소리를 들었던 요한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였기에 십자가를 지시고 어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주님을 통곡과 눈물로 따라가던 여인들조차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곤과 심판을 당하고 끌려갔으나이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의이 예언은 적절합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오셔서 대속을 성취하신지 2천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이 예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이 이 무지한 세상에는 여전히 그분의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06:58)
대속이 믿어지게 하는 성령.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이 무지한 세상의 대속의 의미를 알리기 위하여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고 그 복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떠나 진노 아래 있는이 세상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범죄로 인한 상벌을 메시아가 우리 대신 담당하시고 그 공로로 우리를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은 얼마나 은혜로운 사건입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리 말해 주어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속의 은혜가 믿어진다면 그것은 구원만큼이나 놀랍고 은혜로운 사건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믿어지지 않는 대속의 지혜 지혜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는 믿어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07:52) 복음을 전해 전해 본 사람들은 대속의 지혜가 믿어지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지를 압니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복음을 전할 뿐입니다. 그 전도로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라고 고백하였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요아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이를 너에게 알게 한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 말씀. 하나님을 떠나 절망적인 상태가 된 인간들은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정직하게 선포되어도 자신의 힘으로는 그것을 믿지 못합니다.
(08:45)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떤 사람들은 어느한 말로 전한 복음을 단번에 받아들이며 믿기도 합니다. 우리가 대속의 지혜를 전할 때 왜 어떤 사람들은 믿고 또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이 이것은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죄인을 사랑하는 불붙는 마음과 지혜로운 입술이 있어도 우리의 열심과 엄변만으로는이 대속의 지혜를 가르쳐 줄 가르쳐이 대속의 지혜를 가르쳐 사람들을 설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믿어지게 하시는 분이 오직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세상의 불신앙과 당신 안에 거하는 신자들이 받을 박해에 대하여 말씀하시다가 성령의 오심을 이야기하신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09:37)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회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할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요한복음 15장 26절 27절 말씀. 그렇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대속의 지혜를 믿어지게 하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십니다. 인간들의 증거를 사용하시지만 그 증거를 통하여 믿어지게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원래는이 대속의 지혜를 모르는 채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로 인간의 지혜로는 믿을 수 없는 대속의 지혜가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10:23)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메시아의 대속하시는 은혜의 감격 속에 살면서도 우리의 믿음을 인하여 스스로 자랑할 것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속을 위한 대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르시고 믿는 마음은 성령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의 기초, 대속의 진리
이제 하나님을 거스르고 반역하던 우리의 예차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자 하는 새 자아가 부활하신 그분과 함께 다시 살았습니다.이 대속의 은혜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적용되었는데 이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11:22)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알면 알수록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자기를 대속하신 십자가의 진리에 깊이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그 십자가 때문에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그 대속의 은혜를 힘어 이미 우리 안에 이루신 하나님과의 화목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 삶이 놀라운 대속을 주관하신 하나님을 위한 소형이 되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어린양 예수의 피로 속죄함을 얻은 용서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남아 있는 날 동안이 고백이 우리의 가슴에 지워질 수 없이 찍힌 불도장처럼 아로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12:16) 그래서 우리는 아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니고 다만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의 것임을 우리의 온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영적 체험의 핵심은 대속의 진리에 대한 체험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로마서 5장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로마서 5장에서 한 사람 아담을 통한 죄의 지배와 한 사람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통치를 대조하면서 대속의 교리를 논증합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 서신서들 중속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밝혔던 것은 대속의 지혜를 경험한 데서 비롯된 신적인 강제력이 그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영적 생활의 중심에는 항상 십자가의 진리가서 있었습니다.
(13:13)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신학적인 의미를 탐구하는 가운데 대속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대속의 의미를 발견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도 장음하게 다가왔습니다.즉수가 수가 하나님께 저주를 십가에서 그렇게 저주받고 죽어야 했던 이유가 예수의 라인의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에게 있어스야말로 인류의 구원을 위해이 땅에 내려오신 참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이 대속의 비밀에 눈뜨며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시며 온 우주의 통치자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교회를 다니기만 할뿐 대속의 비밀에 눈뜨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14:11)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라면 십자가의 신학적인 의미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하고 부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이 대속의 진리가 영적 생활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진리가 중심이 되지 않은 영성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속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삶.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런 대속의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십자가의 사랑 앞에서 펑펑 우는 감격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흐려집니다. 그러므로 눈물이나 감동만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거룩한 삶을 이어가게 하는 것은 우리가 받은 사랑에 대한 부채 의식입니다.
(15:05) 대속은 반역가는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대한 부채 의식이 우리의 전 존재를 지배하며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칠 때 비로소 우리는 대속의 은혜를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쉽게 믿어지지 않는 대속의 지혜를 우리는 믿게 되었고 선물처럼 주어진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영원히 갚아도 갚지 못할 빛을 하나님께 졌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불사르는 불사르는 삶을 산다 해도 그것으로 대속의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거룩한 부채 의식 속에서 어떻게든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6:01)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우리가 행위로 갚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무엇으로도 그 사랑을 갚을 수 없음을 알지만 달리 그 사랑을 갚으며 살 방법도 모르기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를이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이 세상에서 일생 빚진 자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안 사람들의 부채 의식은 결코 노예적인 부채 의식이 아닙니다. 그 사랑에 빚진 자들은 그 그리스도를 위하여 노예처럼 살고 싶어하지만 이것은 강요된 삶이 아니라 자원하는 삶입니다.
(16:51) 계속 지혜를 사람들이 그렇게 비친 자로 살아가는 것은 그것이 즐겁고 그렇게 살아감으로만 영혼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범하게 살아서는 안 되며 적당히 자기를 위하여 살아서도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몰라서 그렇게 살지만 우리는 알았기에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것을 본받아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며 사는 일에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내 눈물로 정한수 삼아
찢기신 주님의 이마에 핏자옥을 닦아드리고
내 머리카락을 잘라 신발 삼아 벗으신 그 발에 신겨드리고
내 살가죽을 벗겨고 홍포를 지어 벗으신 몸에 덮어들이고
점점이 살을 에어
못박혀 뚫어진 손바닥
창으로 구멍난 옆구리를 메워 드리리리이다.
남은 살과 피가 있다 하여도
그것도 내 것은 아니나이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거기서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던 날에 모든 정과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받고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내 안에 사시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분의 기쁨을 우리의 인생의 보람으로 여기면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