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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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네

예배의 부름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묵상기도 할렐루야!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영광과 존귀를 받으소서. 죽음에 대하여 어찌할 수 없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주로 오셔서 희생제물이 되어 주신 주님, 그 은혜와 사랑을 무엇으로 갚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영원토록 주님 앞에 영광과 찬송을 드리오니 받아주옵소서.
아직도 살아나지 못한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부활하게 하시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셔서 만방에 주님의 부활을 증명하게 하옵소서. 감사가 되살아나게 하시고, 끊어졌던 찬송이 다시 살아나게 하시며, 판단과 비판의 칼날을 거두고 품어주고 수용하고 이해하는 마음의 부활이 있게 하옵소서. 살아나게 하시고, 살아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본문 말씀 / (요한복음 11:25~26,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는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시니.

예수 다시 사셨네!. 2026년의 부활주일

Approach 부활절(復活節, Easter)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기독교 최고 절기로서, 부활절을 가리키는 헬라어 ‘파스카’(πάσχα)는 히브리어 ‘페사흐’(פֶּסָח)의 음역인데, ‘페사흐’는 유월절을 뜻합니다. 부활절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현재”를 살리는 부활절이요. 교회와 성도들의 “내일”을 여는 은혜의 부활절로 깊은 울림을 주는 절기입니다.

부활절 절기의 성취

히브리서 4장 15절 말씀을 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인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말씀이 가리키고 있는 이 어린양이 우리는 흠 없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믿는 믿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우리와 동일시 하실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님 자신의 생애 내내 사람으로서 모든 유혹을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유혹을 경험하셨고 우리와 공감하실 수 있음을 알기에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가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죄에 굴복하지 않으심으로 우리도 능히 유혹을 이길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것은 유혹을 물리치고 이겨낼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더 닮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혹이 있을 때, 아하 지금은 예수님을 더 닮아 내라고 강권하시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힘없이 나약하기 이를 때 없이 유혹에 무릎을 꿇는 순간 예수님의 온몸에 가시가 박히고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힙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 주님은 다시 이렇게 외치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고린도전서 15 20~23절 말씀을 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어 주신 주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첫 열매가 되신 주님, 그 예수님이 부활절의 주인이십니다.
❶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통해서 자기 백성의 구원자를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❷ 유월절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로, 그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 믿습니다. ❸ 부활절을 통해 유월절을 회상할 뿐만 아니라 유월절의 성취를 누립니다. ❹ 부활절만이 아니라 성찬식을 통해서도 유월절의 성취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맛본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더불어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면서 떡과 잔으로 새 언약을 체결하시면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눅 22:14–23; 고전 11:24~25). ❺ 성찬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모든 죄악과 연약함으로부터 건지신 출애굽의 역사, 유월절의 절기를 환기하면서 벌이는 잔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활절 절기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기쁨이요 최상의 감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마땅히 누려야 하는 기쁨과 감사의 신령한 복은 부활절 절기의 성취, 즉 부활절의 완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계정세와 한국 사회에서 맞게 되는 2026년의 부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와 무력감이 깊이 쌓여 있는 시대입니다. 세계적으로는 갈등과 분열, 경제적 불안, 그리고 관계의 단절이 계속되고 있으며, 한국 사회 역시 경쟁 속에서 지친 마음, 세대 간의 거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한마디로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상태”입니다. 성경은 이런 상태를 이미 오래전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2026년 부활절에 살아나야 할 정서적 영역 무기력에서 소망으로 부활해야 합니다. 삶이 반복되고 의미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그때, 그곳에서 부활해야 합니다. 부활은 보이지 않던 내일이 다시 열리고, 작은 순종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기대하게 하며, 주님 안에서 새로운 소망이 시작됩니다.
두려움에서 신뢰로 부활해야 합니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움츠러든 마음은 부활하신 주님의 살아계심을 바라볼 때 다시 담대해집니다.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자리 잡을 때, 두려움은 평안으로 바뀝니다. 부활을 맞는 마음에 아직도 두려움이 없다면 그의 믿음은 아직도 무덤에 있을 분입니다.
고립에서 공동체로 부활해야 합니다. 혼자 견디려는 마음은 점점 더 깊은 외로움으로 이어지지만, 부활은 우리를 서로 연결된 몸으로 부르시는 사건입니다.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살아 있음을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냉소에서 감사로 부활해야 합니다. 상처와 반복된 실망은 마음을 굳게 만들지만, 부활은 은혜를 다시 보게 하는 눈을 열어줍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하루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할 때 감사가 회복된다.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 서 있을 때가 많습니다.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요? 부활의 아침에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부활은 끝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묻어 놓고 다시 시작하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죽어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부활입니다. 쓰러진 정의를 세우고, 무너진 공의를 세우는 것이 부활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렇습니다. 부활은 죽은 다음에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살아나는 실제적인 이야기’입니다.
성도의 삶에서 내일을 위해 반드시 부활해야 할 부분은? 부활은 어떤 특정 종교의 진리를 바로 세우며, 어떤 개인의 삶을 살아내는 과정이 아니라, 또한 전통을 만들어가는 교리가 아닙니다. 삶을 다듬고, 삶으로 이루어내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여러 가지 습관들이 부활해야 합니다.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말이 사라진 기도는 형식이 되지만,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기도는 살아 있는 호흡이 됩니다. 짧은 한마디라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의 영혼은 다시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말씀 묵상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는 것이 습관이 아니라 만남이 될 때, 하나님의 음성이 오늘을 향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지식으로 지나가던 말씀이 삶에 머물 때, 우리의 생각과 선택이 확실히 변화됩니다.
예배의 감격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익숙함은 단순히 “자주 드린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감각이 무뎌진 상태를 말합니다. 겉으로는 예배드리지만, 마음은 움직이지 않고 기대도 없이 반복되는 상태입니다. 익숙함 속에 흐려진 예배는 마음을 깨우지 못하지만, 부활의 주님을 바라볼 때 다시 감격이 살아납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거룩한 의식이 회복될 때, 예배는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보다 순서가 먼저 떠오르는 상태의 익숙함. 찬양, 기도, 설교의 흐름은 익숙한데 정작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라는 의식은 희미해진 상태입니다. 예배가 만남이 아니라 “알고 있는 진행”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감격이 사라지고 판단만 남는 상태의 익숙함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받기보다 “오늘 설교는 어떠한가?”를 평가하게 됩니다. 예배에 참여해야 하는데, 관람이 되는 순간입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드리는 예배의 익숙함 “오늘도 비슷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예배에 들어올 때,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배는 매 순간이 새롭고, 매번 드릴 때마다 새로움이 넘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 못 하는 신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기대가 사라진 예배는 점점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마태복음 15장 8절 말씀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그렇습니다. 익숙함의 본질은 행동은 남아 있지만 마음이 떠난 상태를 말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 중에 마음을 지키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어떤 예물보다 마음을 모은 예물이 귀하고 존귀합니다.
익숙함은 죄라기보다 은혜를 잃어버린 신호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은혜는 굳어진 마음도 다시 뛰게 하십니다. 예배는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감격도, 눈물도, 하나님을 향한 떨림도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나는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가?” 이 갈망이 살아나는 순간 예배는 이미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반드시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 대부분의 성도가 겸손을 앞세워 믿음이 적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믿음이 적거나 신앙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관계가 부활해야 합니다. 가족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오랜 시간 쌓인 익숙함 속에서 사랑의 표현이 줄어들고 마음의 거리가 생기기 쉽지만, 부활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부터 사랑을 다시 시작하게 합니다.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 먼저 다가가는 용기가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가정에 다시 생명의 기운을 흐르게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용서의 회복입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상처와 오해는 피할 수 없지만, 부활의 은혜는 정죄보다 용서를 선택할 힘을 줍니다. 서로를 판단하기보다 품어주고 이해하려 할 때, 공동체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몸이 됩니다.
상처가 치유되는 부활입니다. 지나온 삶 속에서 받은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만지시며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히 아픔을 내어놓고 은혜를 구할 때, 상처는 더 이상 나를 묶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살리는 통로가 됩니다.
골로새서 3장 13~14절 말씀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부활의 다시 살아남의 관계는 사람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사명의 부활입니다.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해야 할 일보다 내려놓아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은 우리의 인생을 끝으로 향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더 깊은 부르심으로 끌어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이 말씀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멀리 나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복음을 살아내는 것이 사명의 시작입니다. 사명 감당은 거창하거나 화려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어 이상 할 수 없을 정도의 힘과 정열을 쏟아 헌신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어렵다고요. 아닙니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노랫말이 있듯이, 나이가 들수록 사명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젊을 때는 행동으로 감당하는 사명이 크다면, 인생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기도와 지혜, 그리고 삶의 본으로 감당하는 사명이 커진다는 말입니다. 경험과 연륜 속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의 이야기,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모습은 다음 세대에게 가장 강력한 복음의 증거이며 놓아서는 안 될 가장 중한 사명입니다.
사명이 부활함으로 인하여 회복된 모습은 어떨까요? 말로 전하는 사명이었다면, 이제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앞에 서는 사명이 아니라 귀에서 세워주는 사명을 기뻐합니다. 많이 하기보다는 깊이 있게 감당하는 사명을 즐거워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 말씀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우리는 모든 것을 이루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에 참여하는 자에 불과합니다. 부활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얻게 하는 은혜입니다. 부활이 가져다주는 사명은 빠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의미를 간직하고 그것을 회복하도록 기회와 힘을 주시는 은혜입니다.

2026년의 부활은 교회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2026년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비난을 받는 핵심적인 이유는 ‘말과 삶의 불일치’ 때문입니다. 세상은 속과 겉이 다른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가까이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교회가 말과 삶이 불일치할 때 누가 교회를 교회로 인정하며 교회에 다니고 싶겠습니까?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판은 저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의 잘못입니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입니다.
교회의 본질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프로그램 중심에서 복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교회가 다양한 사역과 활동으로 분주해질수록, 어느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가?’는 남지만 ‘왜 하는가?’는 흐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능력은 활동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에 다시 중심을 둘 때 나타납니다. 초대교회는 화려한 시스템이 아니라, 분명한 복음 하나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도 사람을 모으는 데 집중하기보다, 한 영혼이 복음으로 살아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출 때 진정한 부흥이 시작됩니다. 본질의 회복은 많이 하는 교회가 아니라, 복음을 분명히 붙드는 교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 35절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신앙은 판단이 아니라 품음입니다. 배척이 아니라 수용입니다. 머리하는 그것이 아니라 가까이하는 것이며, 모르는 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분별력은 생기지만, 동시에 사람을 판단하는 마음도 커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연약한 제자들을 책망하기보다 다시 찾아오셔서 품으셨습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입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연약함을 덮어주는 공동체가 될 때 세상은 그 안에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사랑의 회복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사람을 먼저 살리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거룩의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준이 흐려지고, 신앙이 생활에 묻혀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은 우리를 세상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다르게 살아가도록 부르십니다. 마태복음 5장 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성도들은 세상의 빛으로 숨겨질 수 없습니다. 믿는 자의 삶은 은둔의 삶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해 주님은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은 숨어 있을 때 의미가 없고, 어둠 속에서 드러날 때 가치가 있습니다. 정직함, 순결함, 진실함,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삶 속에서 드러날 때, 그 자체가 세상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가 됩니다. 거룩의 회복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제 2026년의 부활절을 통해 권위주의적인 신앙의 무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섬김의 빛을 삶의 전반에 비추어야 합니다. 어두운 삶이 드리워질 때 그때가 더욱 빛을 발할 때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의 웅덩이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실제적인 삶의 중심에 믿음이 작용하고 성령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인도하는 삶으로 신앙을 드러내야 합니다.
교회 중심 하나님 나라 중심의 믿음 생활이 펼쳐져야 합니다. 세상은 광활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칠고 험하고 광활하다 할지라도 교회가 삶의 중심이 되고 하나님을 향한 삶이 우선순위가 된다면, 그가 가는 길은 골짜기가 평탄해지며, 논밭이 기름지고, 물댄동산같이 마름이 없을 줄 믿습니다.
부활이 가져오는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기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실제적인 영적 유익을 가져다주는 핵심 진리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 말씀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함으로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첫째, 죄 사함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확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죄를 위한 대속이었다면, 부활은 그 희생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부활에 대하여 의심할 여지를 전혀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부활을 통하여 더욱 확실하게 성취될 것을 확신합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부활을 통해 죄 용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확신을 얻습니다.
새 생명과 변화된 삶입니다. 신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영적으로 새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과거의 죄 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향한 삶으로 변화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로마서 6장 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미래 부활과 영생의 소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자들도 장차 부활할 것이라는 보증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은 고난 가운데서도 견디게 하는 힘이 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1:25)
마지막으로, 현재 삶 속에서의 담대함과 위로입니다. 부활 신앙은 신자에게 죽음과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를 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삶을 견고하게 합니다.
미래 부활과 영생의 소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자들도 장차 부활에 대한 보증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은 고난 가운데서도 견디게 하는 힘이 됩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현재 삶 속에서의 담대함과 위로입니다. 부활 신앙은 신자에게 죽음과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를 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삶을 견고하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부활의 신항으로 살아날 때 하나님이 취하실 영광은 무엇인가? 부활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중요한 방식입니다.
첫째, 하나님 능력의 영광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절대적 권능이며,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생명의 주권자이심을 나타내십니다. 에베소서 1:19~20절 말씀입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둘째,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메시아의 부활을 예언하셨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임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13장 32:33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우리 자녀들에게 이루사 예수를 살리셨다”
셋째, 하나님의 구원 계획 완성의 영광입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계획을 완성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과 57절 말씀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의 영광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그 결과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집니다. 부활은 선교와 교회의 시작점이 됩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부활은 2천여 년 전의 사건으로 묻히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일어나야 할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지만, 우리의 마음이 오늘도 비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어렵고 상황은 변하지 않아도, 오늘 우리의 마음이 부활하여 다시 살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부활의 역사가 일어난 자리입니다.
로마제국의 억압과 유대인의 절망 속에서 기록된 복음서의 증언처럼, 십자가 이후 공동체의 두려움과 회복을 경험한 초대교회가 증언하듯,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절망과 시대의 무너짐 속에서 하나님께서 생명을 다시 일으키시는 구속의 역사이며, 오늘 우리의 무기력과 관계의 깨어짐, 교회의 신뢰 상실 속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여 우리를 새롭게 하고 세상을 향해 소망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물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부활이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부활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끝없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합당한 대답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부활하고 계십니까?
목회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부활의 아침을 맞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육체의 부활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담아내도록 부활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감정을 믿음의 기쁨으로 다시 살리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시어, 우리 교회를 다시 세우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일생토록 넘치게 돌려드리는 삶을 노래하게 하옵소서. 시간마다 부활 된 우리의 모습을 보고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의 은총을 입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몸소 보여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마무리 적용 질문? Q1. 나는 지금 어떤 영역에서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가? Q2. 내 삶에서 부활이 실제로 일어나기 우해 오늘 회복해야 할 신앙의 습관은 무엇인가? Q3. 우리 교회가 이 시대 속에서 다시 살아나기 위해 반드시 회복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인가?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죄와 죽음을 이기신 부활하심의 은총과 독생하신 외아들을 죽이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과 이 모든 것들을 생명의 진리로 받아 믿게 하시고 천국까지 인도해 가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부활 중리을 맞아 육체의 부활만이 아니라 삶이 살아나기를 결단하고 돌아가는 모든 성도의 머리 위에 자녀들의 일생 위에 이 나라와 민족과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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