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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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몬의 위협과 길르앗 야베스의 위기 (1-3절)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합니다.
야베스 사람들이 조약을 맺자고 청하자, 나하스는 항복의 조건으로 주민들의 **'오른쪽 눈을 모두 빼겠다'**는 잔혹하고 모욕적인 요구를 합니다.
1. 군사력의 완전한 무력화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듦)고대 근동의 전투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보병들은 주로 왼팔에 큰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 칼이나 창 같은 무기를 쥐고 싸웠습니다. 방패를 들어 몸을 방어할 때 자연스럽게 얼굴의 왼쪽 부분(왼쪽 눈 포함)이 방패에 가려지게 됩니다. 따라서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무기를 정확히 휘두르기 위해서는 방패 밖으로 나와 있는 '오른쪽 눈'의 시야가 절대적으로 중요했습니다. 오른쪽 눈을 잃게 되면 전투 시 방패 밖으로 고개를 완전히 내밀어야만 앞을 볼 수 있어 적의 공격에 치명적으로 노출되거나, 아예 시야를 확보하지 못해 사실상 군인으로서의 기능을 영구히 상실하게 됩니다. 나하스는 야베스 사람들이 다시는 암몬에게 무력으로 반항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려 했던 것입니다.
2.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극심한 수치와 모욕성경(사무엘상 11장 2절)에 보면 나하스는 이 조건을 걸며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한 부족의 사람들을 단체로 애꾸눈으로 만드는 것은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 지울 수 없는 수치와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이었습니다. "너희 이스라엘은 우리 암몬에게 이토록 비참하게 당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민족이다"라는 것을 조롱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야베스 장로들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자를 찾기 위해 7일간의 유예 기간을 요청합니다.

2. 사울의 의로운 분노와 군대 소집 (4-8절)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돌아오다가 백성들이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자초지종을 알게 됩니다.
이때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하여 의로운 분노가 일어납니다.
사울이 평시에 전쟁을 준비하거나 싸움을 연마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농부의 일상을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백성의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첫번째는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또 이곳에 임하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우리의 생각과 수준으로 먼저 제단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울이 만약 암몬과 같이 강력한 군대는 싸워도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이들의 모두 눈알이 뽑힌 포로신세를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기력함으로 한쪽 눈이 뽑히는 대가를 감내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사울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일을 시작했고, 그들 모두 외눈박이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분노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일년 내내 이십사 시간 웃고 다녀야 합니까?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화낼 수 있고, 싸울 수 있습니다. 의로운 분노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상인들의 가판을 다 뒤엎으시고 채찍질 하셨습니다. 그 선량하신 분이 얼마나 큰 분노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느껴집니다.
일년내내 웃고 다니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균형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때에 따라 의로운 분노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울은 자신이 끌던 소를 각을 떠서 이스라엘 전역에 보내며,
리더는 이런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입니다. 사울은 소를 몰던 사람입니다. 소는 자신의 생계입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자영업을 하던 사람이 나라의 큰 일을 보고 자신의 가게를 팔아서 전국에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전쟁이 끝나도 사울의 소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전쟁의 승리가 자신에게 주는 유익을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순수한 열정으로 자신의 소를 본보기 삼고, 모든 백성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 결과 그는 왕이 되었습니다. 소를 팔아 사람들의 민심을 얻어 왕이 되려면 소를 100마리 1000마리 각을 떠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나와 사무엘을 따르지 않으면 너희의 소들도 이같이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징집을 명합니다.
이에 이스라엘에서 30만 명, 유다에서 3만 명이 모입니다.

3. 암몬 격파와 야베스 구출 (9-11절)

사울은 길르앗 야베스에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군대를 세 대로 나누어 새벽(아침 파수 때)에 적진으로 기습 침투합니다.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크게 무찌르며 대승을 거두고 야베스 주민들을 구출해 냅니다.

4. 사울의 관용과 왕권의 확립 (12-15절)

극적인 승리 후, 백성들은 과거 사울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며 멸시했던 자들을 끌어내어 처형하자고
사무엘에게 요구합니다.
하지만 사울은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라고 말하며 보복을 금지하고 관용을 베풉니다.
반대파는 밉고, 축출하고 싶은 대상입니다. 그들이 없으면 스트레스도 안받고 일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죠.
하지만 반대세력을 제거하면 또 반대세력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처형하거나 보복하고, 관계를 끊어내는 행동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일상을 살 때에 불편하고 만나기 싫고 나에게 반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으면 끊을수록 나의 삶의 반경과 그릇의 크기 그리고 기회나 가능성도 작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기해도 괜찮을만큼 고통스럽다고 관계를 정리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사람이 또 생깁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가 관용의 정신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무엘의 주도 하에 온 백성이 길갈로 모여 하나님 앞에서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공식 추대하며 크게 기뻐합니다.
길갈로 모여서 거기서 왕을 세운 것은 사무엘의 의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분깃점으로 강서와 강동지역으로 나뉘었습니다. 자연히 이들은 왕래가 적고, 각자도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지파별로 보자면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다른 지파의 전쟁에 자신들이 희생할 만한 용기와 명분도 적습니다.
Joshua 4:5–7 NKRV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전쟁은 길르앗 야베스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사무엘은 사람들을 강 건너 길갈로 불로 모았다.
길갈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전쟁의 시작 시점에 요단강을 건너는 기적을 경험하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돌들을 세운 지역이다.
사무엘은 이 순간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가 가나안에 살 수 있었던 것, 암몬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 사울과 같은 좋은 왕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 모두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어느 새 그들은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렸다.
부활절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번 기억하면 좋겠다.
우리가 이렇게 화목한 것, 평화롭고 부요하게 살 수 있는 것, 사람들이 서로 죽이지 않는 것,
일한 만큼 소득을 가질 수 있는 것,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보호받는 것 등등 수많은
일상이 그냥 거져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고난을 참고 견디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고통당하신 결과로 그리고 이후에 부활하신 그 능력으로 우리가 지금의 일상을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나 판타지가 아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도 여자는 사람취급을 못받았을 것이고,
아이들은 몸이 다 크기 전부터 노동 현장에서 착취당했을 것이며,
우리는 일한만큼 대가를 받지 못했겠고,
가정을 이루는 것도 특별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도
여호와 앞에서 예배하고, 여호와 앞에서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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