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오후예배 설교 [누가복음 2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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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천년 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오늘 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 (그가 바라본 예수님을 어떻게 기록했는가) / 향품(시체 부패를 막기 위한 도구)
2~3천년 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오늘 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 (그가 바라본 예수님을 어떻게 기록했는가) / 향품(시체 부패를 막기 위한 도구)
광고입니다.
오늘 함께 볼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24장 1절에서 12절 말씀입니다.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서 론
할렐루야 오늘 말씀 “사망권세를 이기고 살아나심”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평화의 성도님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을 누가복음 24장은 그 새벽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 책을 쓴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의사는 꼼꼼하게 사실을 확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직접 목격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확인하고 기록했습니다. 오늘 그 기록을 통해 부활절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1장면 죽음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새벽 — 1~3절
1절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3절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사흘째 되는 날 새벽이었습니다. 날도 채 밝기 전에 여인들이 무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향품이 들려 있었습니다.
★ 어린이·청소년에게
향품이 뭔지 아는 친구 있나요?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빨리 썩지 않도록 특별한 약품을 발랐어요. 그게 향품이에요. 여인들이 그것을 들고 무덤에 간 거예요.
이 향품이 중요합니다. 여인들이 향품을 준비했다는 것은 그들 마음속에 이미 결정이 내려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끝나셨다. 죽으셨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예를 갖추는 것뿐이다.
이 여인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다 도망쳤는데, 이 여인들은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 손에 들려있는 것이 향품입니다. 사랑하지만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죽음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그런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달라지지 않아서 이제는 기대하지 않겠다고 포기해버린 것들. 이미 끝났다고 마음속에서 결론 내린 것들. 그것이 바로 향품입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여인들과 함께 무덤 앞으로 가봅니다. 그런데 무덤에 도착했더니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습니다. 들어가니 예수님의 시체가 없었습니다. 누가는 설명을 붙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더라." 사실만 기록합니다. 여인들은 당황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것이 빈 무덤 앞에서의 첫 반응이었습니다. 기쁨이 아니라 혼란이었습니다.
2장면 죽음이 지고, 예수님이 이기셨다 — 4~8절
4~5절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서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7절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8절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혼란에 빠진 여인들 앞에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천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 누가복음 24:6
"살아나셨느니라." 이것이 오늘 우리가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습니다.
★ 어린이·청소년에게
여기서 잠깐 생각해볼게요. 예수님이 왜 죽으셨을까요? 그리고 왜 다시 살아나셨을까요? 이걸 알아야 부활이 나랑 무슨 상관인지 알 수 있거든요.
천사가 7절에서 기억하라고 한 것이 있습니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죽음과 부활, 이 두 가지를 함께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왜 함께입니까. 이 두 가지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왜 죽으셔야 했는가입니다. 성경은 로마서 6장 2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것들, 그 잘못의 값은 죽음입니다. 그 값을 우리가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값을 우리 대신 치르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 어린이·청소년에게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친구 물건을 실수로 망가뜨렸어요. 그 물건값을 배상해야 해요. 그런데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내가 대신 내줄게" 하고 자기 용돈으로 갚아줬어요. 그것과 비슷한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 대신 값을 치르신 거예요.
그렇다면 왜 다시 살아나셔야 했는가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예수님이 우리 죗값을 실제로 다 치르셨는지를 부활이 증명합니다. 죄의 값을 다 치렀다면, 죽음이 더 이상 예수님을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덤이 비어있는 것입니다.
★ 어린이·청소년에게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어떤 사람이 잘못을 해서 감옥에 갇혔어요. 누군가 그 사람 대신 형벌을 다 받았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감옥 문이 열리고 나올 수 있어요. 예수님이 우리 죗값을 다 치르셨으니까 죽음의 문이 열렸어요. 그것이 빈 무덤이에요.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부릅니다. 첫 열매가 무엇입니까. 사과나무에서 첫 번째 사과가 열리면 그 사과는 앞으로 더 많은 사과가 열릴 것을 약속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도 언젠가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약속하고 보장한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이 이것을 이렇게 씁니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 히브리서 2:14–15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 자체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며 그 두려움에 평생 묶여 살던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망권세를 이기고 살아나심의 의미입니다.
이제 8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여인들이 달라진 것이 바로 이 순간입니다. 예수님이 미리 하신 말씀이 지금 이 빈 무덤에서 이루어졌구나. 그 깨달음이 그들을 바꾸었습니다. 향품을 들고 무덤을 향해 걸어가던 발걸음이, 이 기쁜 소식을 들고 사람들에게로 달려가는 발걸음으로 바뀌었습니다.
3장면 못 믿겠는 사람들과 달려간 베드로 — 9~12절
9~11절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것으로 여겨 믿지 아니하나
12절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여인들이 달려와서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이 냉담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는 이것을 솔직하게 기록합니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는 것을. 만약 부활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라면 왜 이런 불리한 사실을 썼겠습니까. 사실이기 때문에 그대로 쓴 것입니다.
★ 어린이·청소년에게
오늘 이 자리에 "예수님이 정말 살아나셨을까? 잘 모르겠어"라고 생각하는 친구 있나요? 괜찮아요. 제자들도 처음엔 그랬거든요. 믿기 어려운 게 당연해요. 계속 들어보세요.
그런데 그 가운데 베드로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베드로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틀 전,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무섭고 두려워서 그랬습니다. 누가복음 22장 61절에서 예수님이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을 때, 베드로는 밖에 나가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이틀 동안 그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 어린이·청소년에게
여러분도 친한 친구나 부모님한테 잘못하고 너무 부끄럽고 괴로웠던 적 있지요? 베드로가 딱 그런 상태였어요. 그런데 그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서 무덤으로 달려간 거예요.
무덤 안에는 수의만 남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직 완전히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4장 34절이 기록합니다.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부끄럽고 죄책감에 짓눌린 베드로를.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에서 그 베드로가 수천 명 앞에서 당당하게 부활을 선포하는 사람이 됩니다.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일어나 달려간 그 한 걸음을 사용하셨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선포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빈 무덤이 그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 죄가 실제로 용서받았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먼저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왜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우리 죄값을 십자가에서 실제로 다 치르셨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로마서 8:1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죄를 따지지 않으십니다. 값이 이미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 어린이·청소년에게
여러분, 시험에서 0점 맞은 종이가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 종이 위에 빨간 펜으로 크게 100점이라고 쓰시고 도장을 찍어주셨어요. 이제 그 종이는 100점짜리예요. 예수님이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갚아주셨으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보세요. 그게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이것이 오늘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입니까.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큰 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기분이 오르내립니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면 무너지고, 칭찬받으면 우쭐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소중한 존재로 보신다는 것이 최후의 말입니다.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둘째, 죽음이 더 이상 마지막이 아닙니다.
여인들이 향품을 들고 간 것은 죽음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첫 번째로 죽음을 이기신 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훗날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보장해 주십니다.
★ 어린이·청소년에게
여러분 중에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친구가 있을 수 있어요. 그 슬픔은 정말 크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다는 것은, 그 작별이 영원한 작별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에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시 만날 날이 있어요.
여전히 우리의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이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영원히 갈라놓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문이 되며,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이 그것을 보장해 주십니다.
셋째, 이 세상에서 우리를 억누르는 것들이 힘을 잃습니다.
사도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꼼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억누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 성적이나 성과가 좋아야 한다는 불안. 남보다 뒤처질까 봐 두려운 마음. 이것들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 어린이·청소년에게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또는 부모님한테 잘한다는 말 듣고 싶어서 안간힘 쓴 적 있나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면 엄청 힘들지요?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은 그 압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골로새서 2장 14-15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를 억누르고 지배하던 모든 것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고. 예수님이 죽음 자체를 이기셨다면, 그것보다 작은 두려움들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존재의 가치가 성적이나 외모나 남들의 평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님을 예수님의 부활이 선언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 공부하는 이유, 살아가는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어떤 마음으로 오셨든, 오늘 본문이 선포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습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죄책감이 더 이상 최후의 말이 아닙니다. 죽음이 더 이상 최후가 아닙니다. 우리를 억누르던 것들이 더 이상 최후의 힘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못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나 달려갔습니다. 다 이해되지 않아도 달려갔던 그 모습처럼 무덤에 머무르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평화의 성도님들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마 무 리 기 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시며 인자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오늘 이 부활절에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이 자리에 모여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음을 기뻐하는 시간을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향품을 들고 무덤을 향해 걷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미 끝났다고 포기해버린 것들이 있었습니다.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짓눌려 살기도 했던 연약한 모습들을 예수님의 흘리신 보혈의 피로 깨끗이 씻어주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죽음을 이기신 주님이 베드로를 먼저 찾아오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심같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를 소중한 존재로 보신다는 것을 어린 아이부터 노년에 있는 성도님들까지 모두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닌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마음으로 믿어질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죽음 자체를 이기, 그것보다 작은 두려움들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 존재의 가치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자유롭게 살게 하옵소서.
이 예배를 마치고 어린이들과 학생들과 어른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때,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하옵소서. 다 이해되지 않아도 베드로처럼 일어나 달려가게 하옵소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