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와 부르심(마태복음 4:12~25)

고빛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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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예배 설교]_고빛 전도사
※설교문
I. 서론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우리 왕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우리 인생 전반이 이 놀라우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일에 쓰이길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가끔은 마음 가운데, 다양한 일들로 무거움이 있지만, 우리의 왕 앞에 모든 걸 내려놓고 그분의 사역에 동참하며 매일 매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갑시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그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왔다는 사실이 선포될 때는 당연하게도, 이 사역에 ‘동참하라’라는 부르심이 동반됩니다. 이 곳에서 예배하는 우리 모두는 그 주의 부르심에 초대된 자들로서 지금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르심이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것들에 바쁘고 피곤하고 지쳐있기 때문입니다. 휴가를 가도 피곤하고, 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라는 요청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오늘 본문과 함께 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에 대하여 나눠 보려고 합니다.
II. 본론
4:12-16 예수 그리스도의 이동.
오늘 본문 마태복음 4장 12절부터 16절까지의 내용을 함께 읽겠습니다.
방금 읽은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격적으로 천국복음을 선포하시기에 앞서서 어느 지역에 머무르셨는지, 그리고 이것이 어떤 말씀의 성취였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에 계셨다가, 가버나움에 머무셨는데 이는 이사야서에 예언된 것이었고, 이 예언된 말씀에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큰 빛. 즉 이 큰 빛이 어두움에 있는 백성들에게 비추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대한 이해가 있으시다면 이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에 보면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 큰 빛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반응은 두 가지이였고, 앞으로도 두 가지일것입니다.그 분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
다음 절에서 빛으로 오신 왕께서는 이렇게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4장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4:17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보통 이 말씀을 들으면, ‘천국이 가까이 왔다’를 마지막날이 가까이 왔으니 빨리 예수믿어서 빨리홰개해서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권리를 얻어라! 이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즉 나중에 갈 그 나라에 대한 강조점이 큽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이해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더 깊게 생각해보아야합니다.
 현재 읽고 있는 복음서는 마태복음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 천국, 원어로 직역하면 ‘그 하늘들의 왕국’이라는 표현은 마태복음에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이 쓰일 때의 이 성경은 주로 유대인들을 향하여 쓰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부르기 두려워하여 ‘여호와’라고 감히 부르지않고 나의 주님, 아도나이라고 불렀던 유대인들을 생각하면 이 하늘들의 왕국은 ‘하나님의 왕국’를 대체하는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증거로 다른 복음서들에는 이 동일한 본문들이 다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라고 기록되어있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천국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 왕국, 즉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다스리시는 나라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즉 그 나라에는 왕이 있음을 생각해야하고, 그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그 왕이 가까이 오셨다는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누구인지 기억하십시오.
그러니 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다 라는 선포는 우리가 기다리던 그 왕, 예수그리스도께서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여 그의 지배권 내에 들어오라. 그 분을 왕으로 모셔라 이미 통치하시는 그 은혜의 왕국에 드러오라. 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나중에 들어갈 나라임과 동시에 지금 이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 들어오라는 초청으로도 들립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전반에 그 왕의 통치에 참여하시는 성도님들 되길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 왕의 오심은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임과 동시에 우리 마음가운데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왕의 통치내역에 들어가 다른 주인들은 다 내려놓고 그 분만 섬긴다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을 모두 내려놓는다는 것은 우리 마음을 어렵게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마음가운데, 라헬처럼 드라빔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왕 예수그리스도께서 오늘 이 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통치에, 그 하나님 나라 사역에 동참시키는 내용이 다음 본문에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비슷한 이야기를 두 번 말함으로써 명확한 메세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4:18-20 베드로 안드레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천국복음, 이 왕의 통치에 참여하라! 라는 선포를 하신 후에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를 봅니다. 근데 이 베드로와 안드레의 직업은? 어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들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치열한 작업의 현장에 있습니다. 가족들을 먹여살려야 하기에 정말 열심히 피곤해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겁니다. 지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고 다양한 고민들을 하며 일하는 현장입니다. 우리교회에 가장님들이 생각이 납니다. 피곤해도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감내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 생계활동이 가족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인식할때 다음에 이어지는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무거운 행동이었음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습니다. 
 자 근데 그곳에서 예수님이 이 형제들을 부릅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하리라. 근데 이 형제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그들이 곧,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들은 분명히 가장이면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심지어 이들의 직업은 어부라고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물을 버리다뇨! 그들의 정체성 자체, 그들의 생계수단 제일 소중한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이죠.
또 예수님은 더 가셔서 옆 동네 어부들을 부르십니다, 이들은 더합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4:21-22 야고보 요한 함께 읽겠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이야기와 비슷한 단어들의 배열이 있습니다. 다른점은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물을 깁고 있습니다. 그물을 깁는다는 것은 어업활동을 마치고 새벽부터 이제 다음에 이어질 일을 위해, 그물을 수리하는 겁니다. 이것도 정말 오래걸리는 반나절걸리는 일이었다고 해요. 고기잡는 일만큼이나 바쁘고 지치는 일이죠. 그들의 생계를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만 했었던 일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예수께서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십니다. 근데 이들은 더합니다. 무엇을 버립니까? 22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들도 곧, 즉시 배,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릅니다. 심지어 배, 어떻게 보면 배는 그물보다 더 귀한 것 아닙니까? 심지어 가족, 아버지마저 버립니다.  
정말 이 네명의 어부들은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의 정체성을 버리고, 가지고 있던 재산도 버리고 심지어 가족까지 버리고 예수를 따라갑니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않으신가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듣다보면 왠지 내가 가진 것을 다 버리고, 가족마저 버리고 내 직업도 버려야할 것 같은 마음에, 아 왜 나는 그렇게 하지못할까하는  부끄러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사실 이 네 사람은 예수님을 처음만난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은 아까 읽었던 12절에 보면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즉 세례요한이 잡히신 이후의 사건입니다. 그 이전에 이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를 만나는 내용이 분명히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5-42절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드리면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베드로 동생 안드레와 요한이 먼저 예수님을 따라갔고, 그 다음에 베드로를 전도하고 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같은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야 메시아가 왔는데, 그렇게 우리 조상때부터 온다했던 메시야! 어떻게 해야할까? 그런데 그들은 무슨일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뱃일을 하고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따라야겠다고 결단하지 못하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해볼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예수님이 이들에게 때가 아니니 다시 돌아가라고 하셨을 수 도 있습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민할 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왕이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분명한 반응은 두가지 뿐입니다.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셨을 떄 그들은 반응했습니다. 그 왕의 오심에 따라갔습니다. 우리 삶의 적용해보면 그물을 던지고, 그물을 깁는 일 - 매우 오래걸리고 바쁜 일,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는 우리의 가정을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 나의 성과와 인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버렸습니다.
그물과 배 – 나를 지탱해주는 수입원, 그리고 지극히 일상적인, 나의 가족을 위한 나의 도구!
‘아버지’ 아버지 – 편하고 안락한 곳, 안정과 편안의 장소입니다.
근데 집중해보십시오, 우리는 천국이 왔다는 것은 왕이 오셨다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 그물과 배, 그리고 아버지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왕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분명히 천국이, 그리고 왕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면, 그 왕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불편하다는 것은 우리 마음가운데 어떤 다른 왕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자녀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안정적인 수입, 삶, 성과, 확정적인 삶, 등 다양한 것들이 우리의 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불편함을 직면해야합니다. 그것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도대체 무엇이 주인인지 ㅜ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혹시 이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이 나의 왕권을 침탈하려고 하는 어떤 공격으로 여기지는 않는가? 스스로 돌아봐야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흑암에 빛이 비추었을때,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둠이 빛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그 빛을 모르지 않길 바랍니다. 부르심에 대한 반응은 오로지 두가지입니다.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만의 왕국을 무너뜨리십시오, 회개하여, 마음을 돌이켜 그의 왕국에 귀의하십시오.
여러분의 직업을 버리고 다 목사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그의 직업을 사용하여 예수그리스도가 죽으신 이후의 그를 장사했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왕권을 내려놓고, 그 바쁜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그분께 달려가 그 분을 섬기라는 메세지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오면 언제나 부르심은 동반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에게 하나님은 본토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으로 갈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버려야할 때가 분명히 옵니다. 우리의 그물과 배를 버려야 할 때가 옵니다.
오늘본문의 어부들도 어디로 가는 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편안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평안을 선택했습니다. 왕을 섬기기로 결단했습니다. 앞으로 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여러분은 전부 아십니다.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떠났던 베드로 안드레, 그리고 요한 야고보는  자기 자신을 지탱해주는 그물과 배가 아니라, 주님만을 왕으로 모시고 이제는 자기자신이 그물과 배가되어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잡는 도구가 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우리 안에 있던 다른 왕을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주를 한걸음 한걸음. 따라갑시다. 그리고 이 작은 자리에서 작게 하나님의 일을 해냅시다. 그 일은 절대 작지 않습니다.
III. 결론
결론으로 23-25절을 읽겠습니다.
4:23-25 예수그리스도의 사역과 수많은 무리들의 따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파하시며, 고치시니.. 여러분, 이 모든 것들은 예수를 따라가는 무리들이 눈으로 보게될 일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현장,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모든 일들에서 말이죠. 오늘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이야기를 했으니, 마지막으로 예수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에 대해 집중해보려고합니다.
우리는 그 수많은 무리 중 하나로서 감사하게 하나님 나라 사역을 눈으로 볼 것이고, 그것에 참여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분명히 자기의 배도 들고오고, 그물도 들고, 자기 자녀, 아버지 모든 것을 다 끌고와서 주를 따르다가, 자기 마음에 안들면 떠나 버릴 이들이 많습니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예수그리스도가 계실 자리가 없는 자들입니다. 나를 돌아봅시다.
성도님들 회개하십시오 천국이 가까이왔습니다.
큰 빛이 오늘도 우리에게 비추입니다. 왕이 오셨습니다. 그 천국복음이 오늘도 선포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따뜻한 빛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부르심의 반응은 한가지 입니다.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 저는 여러분이 꼭 예수 따르는 제자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전의 왕이었던 것들을 내려놓고..이제는 내가 주의 도구가되어 살아가겠다 결심하는 성도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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