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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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19-31
요한복음 20:19-31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오늘은 ‘살아있는 증거’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어제는 부활주일로, 부활의 아침을 맞으며 함께 그 기쁨을 노래하며 주님을 예배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눈을 뜨셨습니까? 어제 그 주님을 향했던 할렐루야가 오늘 아침에도 살아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참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는 그런 감정을 느낍니다. 어제는 분명 뜨거웠는데, 오늘 아침 현실의 문을 열자마자 그 감격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부활절 다음 날 새벽에 제자들이 겪었던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바로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빈 무덤을 목격했고요, 부활하셨다는 소식까지 제자들은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방문을 잠갔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식은 들었지만 그들이 가졌던 두려움이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잠궜던 문 안으로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갑자기 그들 한 가운데 예수님이 나타나신거에요. 그리고 말씀하셨죠. ‘평강이 있을지어다’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을 기록하면서 마지막에 왜 자신이 이 내용을 기록했는지 31절에 기록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 역시 이 말씀을 통하여, 두려움 가운데 있는 우리의 삶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을 통하여, 두려움이 아니라 참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 1대지 — 닫힌 문을 여시는 증거 (19-23절) "두려움이 있는 곳에 주님이 서신다"
19절을 보겠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날 저녁입니다.
그날 아침, 막달라 마리아는 빈 무덤을 보았고, 베드로와 요한은 달려가 수의가 개어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가 살아나셨다"는 소식이 이미 제자들 사이에 퍼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저녁, 제자들은 문을 잠갔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단 한 마디로 설명합니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부활의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은 여전히 그들 안에 살아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날은 두려움이 더 컸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지면, 유대 지도자들이 자신들을 범인으로 지목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믿음이 있어도 두려움은 옵니다. 들었어도 문을 잠글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본문이 한 가지 놀라운 장면을 보여줍니다.
잠긴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신 것이 아닙니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자 포기하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셨습니다.
문이 잠겨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한가운데 계셨습니다. 요한은 어떻게 들어오셨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몸은 우리의 물리적 한계에 갇히지 않으심을 보여줍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떻게"가 아니라 "어디" 입니다.
문 앞이 아닙니다. 가장자리가 아닙니다. 가운데입니다.
제자들이 모여 두려워 떨고 있는 그 한복판에, 주님이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첫 마디가 이것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책망이 아닙니다. "왜 문을 잠갔느냐"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아직도 두려워하느냐"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은 단순한 인사를 넘어서는 의미이지요. 히브리어로는 **"샬롬"**입니다. 두려움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온전함과 회복을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두려움을 야단치신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있는 그 자리에 평강을 가져오신 겁니다.
20절에 보면 그 다음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손의 못 자국, 옆구리의 상처. 그것이 증거였습니다. 말로 설득하신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바로 그 분이 지금 여기 서 계신다는, 살아있는 증거였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기뻐했습니다.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잠긴 문 안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바깥 상황이 나아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한가운데 서시자,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자 두려움이 기쁨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두려움은 언제 극복될 수 있을까요? 두려움은 언제 사라지게 될까요? 더 나은 환경이 찾아올 때에? 더 많은 재물이 있을 때에? 내가 지금 문제라고 느끼고 있는 그게 해결될때에? 어떤 상황이 바뀔 때에?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볼 때에,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할 때, 그 두려움이 사라지며, 기쁨과 참 평안이 우리의 삶에 임할 줄 믿습니다.
성경은 줄곧, 인간의 삶에 두려움과 염려가 있는 것은 바로 죄와 죽음 때문이라 이야기 합니다. 언제 누구도 모르게 찾아오는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 그 생명의 근원과 떨어져버린 죄인, 예수님은 부활을 통하여, 그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참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부활의 주님이 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 하며 죄 사함의 권세를 주십니다. 두려워하는 세상을 향하여 그들이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영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주님 안에서 참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세상 가운데 당당히 성령과 함께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번째 살펴볼 부분은요, 도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도마는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24절에 보면 그는 함께 있지 않았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는 없었기에 다른 제자들의 말을 듣고 도무지 믿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이야기 했겠지요.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도마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25절에 보십시오. 내가 손의 못자국을 보며, 손가락을 넣어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 이야기 해요.
흔히 도마를 우리는 의심많은 제자라 부르는데요. 사실 어찌보면 도마는 가장 솔직한 제자였는지 모릅니다. 그는 믿어지지 않는데 믿는 척하지 않습니다. 내가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내보였습니다. 그리고 26절에보면 여드레를 지나고 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그러는거죠. 도마야 내 손을 보아라,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아라, 그래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말씀하세요.
예수님은 도마가 의심했던 부분과 그의 마음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향하여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럴 때 도마가 이렇게 고백하지요. 28절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도마는 예수님 때문에, 주님을 향한 완전한 믿음을 고백하며 그 믿음 가운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우리 안에 도마와 같은 의심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정말로 살아계시는가? 주님이 정말로 내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시는가? 사람이 그래요. 내가 감당하지 못할 어려운 상황이 찾아오면요, 의심이 들기 시작해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수 있어요. 사람이 그래요.
그런데 괜찮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흔들려도 의심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도마처럼 솔직하게 의심이 된다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나아갈 때에, 반드시 주님은 그 인생을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찾아올 줄 믿습니다. 의심을 품어도 중요한 모습은, 도마는 그래도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는겁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에, 어쩌면 공동체를 떠나는 것보다, 그 의심을 가지고 그 자리를 지키는게 어쩌면 중요한 줄 모릅니다.
흔들리는 상황 가운데, 이 자리를 지켜, 주님을 만나며, 그분을 향하여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은 오늘 본문 마지막에서, 이런 일들을 세세히 기록한 목적에 대해 분명히 밝힙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요한이 이러한 내용들만을 기록한 목적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31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다.
요한이 이복음서를 기록한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믿음이 생기게 하고, 그 믿음으로 인하여 참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요한의 마음이고요, 그리고 믿음은 생명으로 이어진다는겁니다. 2천년전 제자들이 고백했던 그 부활하신 주님을 우리가 정말로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을 믿어 참 생명을 누리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더 나아가 이 요한의 마음처럼, 우리의 삶을 통하여, 아직도 예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 생명되신 주님을 소개할 수 있는, 주님을 알아 참 생명을 누리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이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참 평강, 기쁨, 생명을 누리며 또 증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문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던 제자들을 향하여, 참평강을 주신 부활의 주님을 기억합니다. 때로는 삶을 살아가다보면 여전히 인생이 참 두렵습니다.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면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참평강과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세상에 참 평안이 있지 않음을 압니다. 때로는 믿음이 흔들릴 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믿음을 허락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오늘 하루 살아가며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수많은 영혼들과 세상을 향하여, 나의 삶을 통하여, 내 입술을 통하여, 이 좋으신 예수님을 전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