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5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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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28:1–10 NKRV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들어가며
금요일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제자들은 흩어졌습니다. 남자 제자들은 문을 닫아 걸고 숨었습니다. 잡혀갈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도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여인이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입니다. 누가복음 23장을 보면 이 여인들은 금요일에 예수님의 장사를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무덤에 시신이 어떻게 놓였는지를 확인한 후, 돌아가서 향품과 향유를 준비했습니다. 주님의 시신에 마지막으로 해드릴 수 있는 일, 향유를 바르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계명을 따라 안식일 동안 쉬었습니다. 준비한 향품을 눈앞에 두고 하루를 기다렸습니다. 그 하루가 얼마나 길었겠습니까.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첫날 새벽에 이 여인들은 향품을 가지고 무덤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무덤에는 로마 경비병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여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고 걱정까지 했습니다. 돌을 자기 힘으로 옮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갔습니다.
향유를 바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돌을 옮겨줄 사람도 없었고, 경비병이 막아설 수도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헛걸음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았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은 갔습니다.
기적을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바란 것도 아닙니다. 죽은 분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는 일은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갔습니다. 그것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일을 하러 간 것이 아닙니다. 향유를 바르는 것, 그 작은 일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고, 이 여인들은 그 최선을 들고 두려움 속에서 새벽길을 나선 것입니다. 이 마음이 참 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마음에 응답하셨습니다. 향유를 바르러 간 여인들에게, 하나님은 향유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을 주셨습니다. 돌을 굴려주시고, 빈 무덤을 보여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1.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무덤에 도착한 여인들 앞에 큰 지진이 일어나고 천사가 나타납니다. 경비병들은 그 앞에서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4절). 그리고 천사가 여인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합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으니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6절).
그런데 8절을 보면, 이 놀라운 소식을 들은 후에도 여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떠납니다. 부활을 들었는데도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두려움이 해소되는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믿음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활 소식을 들은 여인들도 여전히 두려웠습니다. 두려움은 신앙의 실패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2. 두려움에 머무느냐, 두려움 속에서 한 걸음을 떼느냐
본문에는 분명한 대조가 있습니다. 남자 제자들은 두려워서 숨어 있었고, 여인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무덤으로 갔습니다. 둘 다 두려웠습니다. 차이는 두려움의 크기가 아니라, 두려움 앞에서의 선택이었습니다.
여인들에게 특별한 용기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이 향유를 바르는 것이라면, 그 최선을 하러 간 것입니다. 결과를 알 수 없어도,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들고 주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9절을 보면, 예수님은 여인들이 "달음질할새" 만나주셨습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움직이고 있던 사람의 길 위에서 만나주셨습니다.
3. "무서워하지 말라" — 두려움 너머의 음성
이 본문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두 번 나옵니다. 5절에서 천사가 한 번, 10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한 번.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시점은 여인들의 두려움이 다 해소된 후가 아닙니다. 여전히 무서움과 기쁨이 뒤섞여 있는 바로 그 상태에서 만나주시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두려움을 느끼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너의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분이 지금 네 앞에 살아 계시기 때문에, 두려움이 너를 붙잡고 있을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인들은 그분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9절). 두려움이 사라져서 붙잡은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보다 더 확실한 분을 만났기에 붙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10절에서 도망쳤던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며칠 전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이들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형제라고 부르십니다. 부활의 아침은 심판의 아침이 아니라 회복의 아침입니다.
나가며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도 각자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 신앙이 흔들리는 두려움,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가도 되나" 하는 두려움.
여인들의 모습에서 한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여인들은 대단한 것을 가지고 주님께 나간 것이 아닙니다. 향유를 바르는 것, 그것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짧아도, 믿음이 작아도,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그것을 들고 주님 앞에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여인들에게 향유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것,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해주셨던 것처럼.
부활주일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움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 두려움이 우리의 발을 묶게 하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들고 주님 앞에 나갈 때, 부활의 주님은 바로 그 길 위에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발을 붙잡는 순간, 두려움은 더 이상 마지막 말이 아니게 됩니다.
기도
하나님, 부활의 아침에 "무서워하지 말라"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두려움 속에 머물러 있는 저희에게, 한 걸음을 내딛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가진 것이 작아도 그것을 들고 주님 앞에 나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 길 위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두려움보다 더 확실한 주님을 붙잡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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