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부(4.7)
26년 소망부 1학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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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살아계신
찬양/살아계신
묵상기도
묵상기도
신앙고백
신앙고백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 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301장
찬송가/301장
말씀(신.283쪽)
말씀(신.283쪽)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1페이지: 성경 속의 문제 - 피할 수 없는 사망이라는 절대 권세]
어르신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살아온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은 '죽음'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사람에게는 본래 죽음이 없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 영원히 교제하며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는 참으로 복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교만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그 순간, 이 땅에 가장 끔찍한 저주가 찾아왔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준엄하게 선고합니다.
이 죽음은 참으로 무자비합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도, 부귀영화를 누리던 제국의 왕들도 그 앞에서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습니다.
불로초를 구하려던 진시황제도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갔고, 현대의 그 어떤 첨단 의학도 이 죽음의 행진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6절은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사망은 단지 육신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영혼을 영원한 형벌과 하나님과의 단절의 장소인 스올로 끌고 내려가는 가장 절대적인 원수입니다.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 죽음 앞에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2페이지: 오늘날 우리 세상의 문제 - 죽음의 두려움과 행위 구원의 강박]
그렇다면 어르신들, 이 끔찍한 죽음의 문제는 2천 년 전 성경책 속 옛날이야기로 끝나는 것입니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 차가운 그림자는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는 우리 턱밑까지 아주 서늘하게 다가와 있습니다.
이 시간, 정직하게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십시다.
평생 주일을 성수하고 직분을 받아 헌신하며 살아왔어도,
막상 내 육신이 쇠약해지고 죽음의 문턱이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하면 두려움이 밀려오지 않으십니까?
잠 못 이루는 깊은 밤, 홀로 병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면 그 생각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왜 수십 년을 믿어온 성도가, 수십 년을 예배드리고 봉사하며 살아온 우리가, 죽음 앞에서 이토록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믿음이 부족해서입니까? 기도가 모자라서입니까?
아닙니다. 그 두려움의 정체를 정확히 진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처방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이토록 죽음 앞에서 두려워할까요?
그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뿌리 박힌 '행위 구원의 강박' 때문입니다.
"내가 천국에 갈 만큼 충분히 선하게 살았는가? 내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라는 율법의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심리적 불안이 아닙니다.
구원의 근거를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닌 '나의 행위'에 두려는 신학적 오류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복음이 아닌 율법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자리에 서는 순간, 인간은 반드시 두렵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의롭다 선언하지 않고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20절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구원이 필요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조차 로마서 7장 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며 절규했습니다.
이사야 64장 6절은 우리의 실상을 이렇게 고발합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으며."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내 영혼의 밑바닥을 정직하게 비추어보면 부끄럽습니다.
남을 시기하고 미워했던 마음, 욱하는 혈기로 자식들에게 상처 주었던 말들, 이기적인 탐욕들...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내세울 만한 '선함'이라고는 단 한 줌도 없고 온통 죄투성이뿐임을 내 양심이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 앞에서 떱니다.
"하나님이 내 행위를 달아보시면 어쩌나." 이 행위의 굴레에 갇혀 있는 한, 우리는 사망 앞에서 두려워 떠는 가련한 사형수일 뿐입니다.
[3페이지: 성경 속의 은혜 - 부활의 첫 열매와 십자가 한편의 강도]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사망 앞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우리를 결코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어떠한 선행과 종교적인 노력으로도 도무지 깰 수 없었던 그 견고한 죽음의 철문을, 마침내 산산조각 내신 위대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제일 먼저 살아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첫 열매'라는 표현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구약의 '초실절'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보리 추수가 시작될 때, 첫 번째로 익은 이삭 한 단을 베어 하나님 앞에 흔들어 드렸습니다.
이것이 '첫 열매 제사'입니다. 그런데 이 의식에는 깊은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단순히 감사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맺힐 모든 열매가 하나님의 것"임을 법적으로 선언하는 행위였습니다.
첫 열매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순간, 그 밭의 모든 수확은 이미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보증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그 순간, 그분을 믿는 우리의 부활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확정된 것입니다.
우리의 부활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이지만, 첫 열매이신 예수님의 부활 안에서 이미 성취된 현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런데 여러분, 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생명에 동참하는 조건이 무엇입니까?
앞서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우리의 '선한 행위'입니까?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만약 우리의 선함을 측정해서 구원을 결정하신다면, 골고다 언덕 십자가 옆에서 피 흘리며 죽어갔던 '한편의 강도의 구원'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그 강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평생 악행만 일삼았던 흉악범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행위라곤 단 1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며 죽어가는 그 순간,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공로란 티끌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그 처참한 십자가 위에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강도가 옆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고개를 돌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그 순간,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대답하십니까? "네 지난 삶을 보아라, 먼저 자격을 갖추고 와라" 하며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지체 없이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어르신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십자가 강도의 구원은 오직 단 한 번의 진실한 믿음의 고백으로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얄팍한 선함이나 알량한 공로가 아니라, 나를 대신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는 그 '믿음'만이,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단번에 옮겨놓는 유일한 열쇠가 됩니다!
[4페이지: 오늘날 우리 세상의 은혜 - 두려움 없는 영원한 소망과 믿음의 고백]
사랑하는 소망부 성도 여러분! 이제 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은혜를 우리의 실제적인 삶 한가운데로 가져옵시다.
잠깐 그 강도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는 흔히 그 강도를 '특별한 경우'로 치부하고 싶어 합니다.
"저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운 좋게 예수님 옆에 있었으니까. 나는 다르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강도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방식이다." 그 강도는 예외가 아니라 원칙입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공로가 아닌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 복음의 원리이고, 그것이 십자가 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2천 년 전 강도를 낙원으로 이끄신 그 예수님이,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을 향해서도 동일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믿음의 눈을 들어 그분을 볼 때, 우리 영혼을 무겁게 짓누르던 죽음에 대한 모든 공포는 아침 안개처럼 걷혀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이라는 죄의 대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행위가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내 과거의 죄악이 너무나 크고 부끄럽다고 하여 무서운 스올로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평생 악행만 일삼던 강도의 단 한 번의 고백을 들으시고 그를 낙원으로 인도하신 주님께서,
오늘 예수님을 향해 부르짖는 여러분의 진실한 고백을 반드시 들어주실 줄을 확실히 믿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은 약속하십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는 내 의로움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그 넓고 의로우신 품에 값없이 은혜로 안기는 것입니다.
어르신들, 이제 죽음은 우리 인생의 비참한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부활의 영광스러운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잠시 육신의 눈을 감고 안식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이미 맺혔으니, 우리 육신이 쇠약해져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주님 다시 오시는 그 영광의 날에 찬란하고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그 강도처럼 주님께 단 한 마디를 드리십시오.
화려한 말이 필요 없습니다. 오랜 신앙 경력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여러분만의 말로, 지금 이 자리에서. 그 고백을 들으신 주님은 2천 년 전 그날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대답하십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부활의 벅찬 감격과 생명의 능력이, 남은 평생 동안 어르신들의 삶을 든든히 붙들어 주시기를, 그리하여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영광스러운 천국을 소망하며 담대하게 걸어가시는 소망부 모든 성도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기도
[마무리 기도]
생명이요 부활이신 하나님 아버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사 우리 구원의 첫 열매가 되어주신 예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승리를 온 마음 다해 찬양합니다.
주님, 우리는 어리석게도 내 행위와 선함으로 구원을 얻으려 하는 교만과 강박에 빠져, 다가오는 죽음과 심판의 두려움 앞에서 벌벌 떨던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평생 죄만 짓던 십자가 강도가 오직 주님을 향한 단 한 번의 고백으로 낙원을 허락받는 그 크신 은혜를 보며, 우리의 구원이 철저히 나의 선함이 아닌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음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소망부 성도들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에 대한 모든 공포와 두려움을 이 시간 부활의 빛으로 완전히 씻어내어 주시옵소서. 우리는 결코 스올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주님의 따뜻한 품에 안길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굳게 믿습니다. 이제 남은 평생, 오직 그리스도가 나의 왕이심을,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그리고 다시 오실 심판주요 구원자이심을 담대히 고백하며 부활의 소망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망을 삼키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