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찾는 최고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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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24:1-49
주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잘 알고 기도하며 선한 결과를 기대해야 한다.
제목: 배우자를 찾는 최고의 방법
[서론]
매년 신학교 신입생 입학 시즌이 되면 묘한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예쁜 자매가 입학하면 좀 지나서 남자 신학생이 찾아와 이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자매님, 제가 기도해봤는데 하나님이 자매님을 제 짝으로 응답해주셨습니다.”
문제는 이런 말을 하는 신학생이 한 두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여러 명에게 동일한 응답을 주셨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예외없이 살면서 정말 중요한 선택을 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가게 자리를 보기 위해 목사님을 모셔가서 이곳이 잘될지 안될지를 묻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영적 대리자를 통해 알려고 하시는 분도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토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갈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밑바닥에는 두가지 마음이 공존합니다.
첫째는 내 판단대로 했다가 실패할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만큼 확실한 성공의 보증수표는 없다는 기대감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단순히 실패없는 인생을 위한 마법이 아닙니다.
가는 곳마다 모든 길을 지시해주시는 네비게이션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가는 신앙의 긴 여정입니다.
이 학교에 또는 이 회사에 들어가는게 맞을까?
이 사람과 사귀는게 맞을까? 결혼하는게 맞을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할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에는 배우자를 찾는 인생의 중대사 앞에서 가장 완벽한 인도하심을 경험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방법을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본론1]
현재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살이 되었습니다.
이제 거의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귀한 아들 이삭도 어느덧 마흔살의 노총각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대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도 깨지게 됩니다.
이런 위기감 속에서 아브라함은 일생의 마지막 과업으로 아들의 신부를 찾는 일을 시작합니다.
왜 이렇게 늦게서야 아들의 신부를 찾아주려 한 것일까요?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고있는 가나안 땅에서 이방인 며느리를 얻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이삭과 결혼할 신부인 리브가를 만나기 위한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 노총각, 노처녀인 분들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과정일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막중한 임무를 맡은 사람은 아브라함 집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하던 늙은 종입니다.
희한하게도 이 종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종의 이름이 엘리에셀이라고 여깁니다.
이 종은 단순한 심부름꾼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을 가장 잘 읽는 충성된 청지기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두가지 절대적인 조건을 제시합니다.
첫째, 며느리는 가나안 사람이 아닌 자기 고향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둘째, 무조건 신부를 데려와야 하고, 이삭이 그곳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절대 떠나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 조건은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굉장히 어려운 미션입니다.
800킬로가 넘는 먼 길을 한 달 넘게 가고 와야 합니다.
또한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가나안으로 이주할 여인을 찾아야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당장 미국이나 아프리카로 이민가겠다는 여자를 찾아오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지만 종은 토를 달지 않고 순종합니다.
낙타 10마리에 선물을 가득 싣고 먼 길을 떠납니다.
그가 이토록 무모해 보이는 명령에 순종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오랜 세월 아브라함의 삶에 개입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이를 낳은 기적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이 길도 주님이 예비하실 것이라 믿은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길 원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오해합니다.
상황이 잘 풀리면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쉽게 믿어 버립니다.
또는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쉽게 단정해 버립니다.
하지만 상황과 감정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은 하나님의 약속, 즉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너무 뻔한 말인가요?
물론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며 임의로 성경을 펼쳐서 눈에 띄는 구절을 붙들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유다가 가서 목을 매달았다”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당황해서 두번째 다시 폈습니다.
그랬더니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겁이 나서 세번째 다시 폈습니다.
그랬더니 “뭘하고 있느냐? 어서 서둘러라”는 말씀이 나왔다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동네로 이사가야 할지,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어야할지 직접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살아야 할 인생의 모든 원리를 말해줍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 절이 증거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런 성경적 원리를 따라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꾸준한 묵상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묵상을 통해 내 안에 쌓인 말씀의 원리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등불이 되어 우리의 앞길을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본론2]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데 있어 말씀이 지도라면, 이제 방향을 잡아주는 ‘기도’라는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결코 깨달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떤 기도를 드리느냐’ 하는 점입니다.
기도라고해서 다 하나님이 들으시는게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 아브라함의 종은 어떻게 하나요?
자신이 만날 여인이 자신 뿐만 아니라 10마리의 낙타들에게도 물을 먹이면 이삭의 신부감으로 알겠다고 기도합니다.
언뜻보면 일종의 징조를 구하는 주술적인 기도처럼 보입니다.
그럼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도 될까요?
“하나님, 오늘 제가 소개팅하는 남자가 흰옷을 입고 나오면 하나님의 뜻으로 알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주차장에 자리가 바로 나면 이 사업을 허락하신 것으로 믿겠습니다.”
물론 이런 일은 간혹 일어날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연약한 우리를 특별히 격려하시기 위해 이런 사인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일반적인 원리는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종의 기도는 어떨까요?
12절입니다.
그는 기도하였다. “주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오늘 일이 잘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여기서 ‘은총’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뜻합니다.
그의 기도는 마냥 운 좋게 예쁜 여자를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니 내 눈 앞에 그것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고백입니다.
주술적인 징조나 사인을 구한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성품에 합당한 결과를 구한 것입니다.
종이 구한 싸인에는 깊은 영적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낙타 한마리가 한번에 마시는 물의 양이 약 100리터입니다.
낙타 열마리면 무려 1톤에 달하는 물을 여인 한명이 길어 올리려면 수십번을 왔다갔다 해야 합니다.
이름도 모르는 나그네를 위해 이런 엄청난 노동을 자처한다는 것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서는 행동입니다.
종은 어떤 여인을 찾은 것일까요?
1톤의 물을 나를 정도로 힘이 세고, 일 잘하는 여인을 찾은 것일까요?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삶에서 실천하는 인자한 여인을 찾은 것입니다.
나그네를 이 정도로 환대할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특별한 싸인을 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성품이 그 과정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또한 리브가가 낙타에게 물을 다 주었을때 종의 반응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는 대신 조용히 그녀를 주목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인지 살핍니다.
우리는 눈 앞에 어떤 유리한 현상이 나타나면 섣불리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단정짓기 쉽습니다.
하지만 종은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 사건 뒤에 흐르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조용히 관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어느 집을 사야할까요 아니면 어느 터에서 장사를 해야 잘될까요”가 아닙니다.
“하나님, 제가 이사를 가든 음식을 팔든 이 곳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타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욕망을 하나님께 설득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대신 하나님의 약속과 성품에 우리의 기도를 맞춰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성품과 맞닿을때,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론3]
그런데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확증되는게 아닙니다.
반드시 한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결코 나 혼자만의 독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의 내면적 확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인격적 동의와 수용이 있어야만 합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신학교의 형제들을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믿었지만 정작 그 여학생은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본인들의 욕심일 뿐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종의 대답을 보십시오.
49절입니다.
이제 어른들께서 저의 주인에게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보여 주시려거든, 저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을 해주시고, 그렇게 하지 못하시겠거든, 못하겠다고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셔야, 저도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우물가에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 리브가의 집까지 왔습니다.
누가 봐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종은 자신의 간증을 들이밀며 강요하지 않습니다.
결정권을 상대방에게 온전히 맡깁니다.
심지어 거절의 권리까지 하나님의 주권 아래 두는 겸손함을 보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는 사람은 결코 서두르거나 압박하지 않습니다.
내가 응답받은 것이 진짜라면, 하나님께서 상대방의 마음도 상황도 만들어주실줄 믿고 기다립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50-51절입니다.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였다. "이 일은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로서는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리브가가 있으니, 데리고 가서, 주님이 지시하신 대로, 주인 아들의 아내로 삼으십시오."
리브가 가족들 역시 주님이 하신 일이라고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수용합니다.
나에게 응답인 것이 상대방에게 강요가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쪽만 밀어붙이지 않으시고, 동시에 일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방법은 의외로 명확합니다.
내 안의 확신이 상대방의 인격적인 수용과 만나는 지점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머뭅니다.
결혼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나만 좋은 게 아니라 배우자가 될 사람의 마음에도 같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사업을 준비하십니까?
그럼 내 배우자도 동일한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확신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려 봐야 합니다.
내 안의 확신이 상대방의 인격적인 수용과 만나는 지점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내 인생을 편하게 해줄 마법이나 모든 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처럼 착각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종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인 말씀과 성품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상대방의 자발적 수용이 있을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것 하나도 질서없이 일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얼마나 믿습니까?
내 능력, 내 노력으로 내 삶을 개척해 나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내 길은 내가 만든다”며 자신만만하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내가 정성껏 다 만들어놓은 음식에 구색을 맞추려고 살짝 뿌리는 소스 정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고 일하신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두려움이 아닌 기쁨과 설레임으로 인도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길을 가장 완벽하게 걸어가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자기 뜻대로 결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이 인도하신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편한 길이 아닌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해서 만사형통하는 길이 되는거 아닙니다.
원수를 만나는 고난과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며 결혼했지만 지금은 많이 싸우시더라구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쪽집게처럼 답을 얻는 과정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숙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해진 길로만 가도록 로보트처럼 조종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스스로 지혜롭게 판단하기를 원하십니다.
혹시 지금 내가 가는 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았고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고 여기십니까?
그렇게 여긴다면 지금부터 인도하심을 받으면 됩니다.
내가 아는 것부터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길을 잃은 양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찾으시는 좋은 목자이십니다.
좋은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발 한발 함께 나아가는 함께걷는교회 모든 식구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