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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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가 기다리고 있다
잔치가 기다리고 있다
에스더 9장
에스더 9장
도입:
어머니의 팔순잔치, 한 평생 고생 하며 가정을 일구신 어머니, 6남매를 키우시느라 젊음을 불태우신 어머니, 일평생 조연으로 사셨다. 그래서 팔순 잔치에서만큼은 어머님이 주인공 되도록, 6남매, 고모, 삼촌, 친척들이 모여 위로하고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큰 삼촌 어머니를 인정, 고모들도 맏 며느리로 시집와서 시어머니, 시아버지 모시며 살아온 세월에 위로하고 격려하심, 그 날 만큼은 어머니가 주인공이셨다.
우리 모두 자신이 주인공 되는 잔치를 꿈꿉니다. 아이들은 생일 잔치를 열어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을 즐거워 합니다. 사람들은 명절을 기다립니다. 결혼식을 기다립니다. 송년회를,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은 할로윈까지 기다립니다. 형식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모두 잔치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축제와 잔치는 아무 이유 없이 시도 때도 없이 하지는 않습니다. 이 잔치가 있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저희 어머니 처럼 수많은 고생도 하고,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 경우가 많습니다.
에스더 9장에 잔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잔치가 있기까지 엄청난 일들을 겪었고,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야 했습니다.
설명: 에스더서는 잔치로 시작해서 잔치로 끝나는 책입니다.
1장, 아하수에로 왕이 127개 도를 다스리는 대왕으로서 성대한 잔치를 엽니다. 6개월간의 잔치였습니다. 그 화려함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의 주인공이 누구였습니까? 왕과 그 신하들이었습니다. 권력자들의 잔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잔치가 끝날 무렵, 한 유대인 처녀가 왕비의 자리에 오릅니다. 에스더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됐습니다. 잔치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즐기는 잔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9장에 이르러 완전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대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대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도리어." 이 한 단어를 주의 깊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아달월 13일은 모든 유대인이 죽임을 당하기로 정해진 날이었습니다. 달력에 그 날짜가 적히는 순간부터, 유대인들의 모든 집은 초상집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겁니다.
그런데 그 날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심판의 날이 도리어 승리의 날이 됐습니다. 초상집이 도리어, 잔칫집이 됐습니다. 22절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된 고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두 개의 조서 때문입니다.
왕이 처음 내린 조서는 죽음의 조서였습니다. 하만의 계략으로 만들어진 그 조서에는 모든 유대인을 진멸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조서 아래서 유대인들에게는 초상집과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두 번째 조서를 내립니다. 에스더의 간청으로, 에스더의 용기로 만들어진 이 조서는 구원의 조서였습니다. 이 조서의 소식이 귀에 들려오는 순간, 유대인들의 모든 통곡이 환희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잔치의 구경꾼이 아니라 잔치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일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에게 잔치를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상과 복음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승리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부림절까지 만들어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날의 역전을 기억하며 축제를 엽니다. 하지만 완전한 승리를 주거나 완전한 기쁨을 주는 잔치는 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인생에서 작은 역전들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얼마나 갑니까? 기쁜 일이 있어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잔치가 끝나면 허무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 더 근본적인 문제인, 죽음과 상실과 외로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완전한 잔치를 기다립니다. 그 잔치는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을 위해 베푸실 천국 잔치입니다. 그 잔치는 왜 완전한 잔치가 됩니까?
하만이 나무에 달린 것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달랐습니다. 자신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것이었습니다.
왕의 첫 번째 조서를 기억하십니까? 죽음의 조서. 성경은 우리 모두에게 그 조서가 내려져 있다고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성경이 말합니다. 아무도 사망을 피할 수 없고, 아무도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두 번째 조서가 선포되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라는 가장 근본적인 원수가 완전히 깨졌습니다. 에스더의 역전은 한 민족, 한 시대의 역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역전은 온 인류를 향한, 영원한 역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순간, 이 두 번째 조서가 내 삶 안에서 발효됩니다. 첫 번째 조서는 힘을 잃습니다. 심판의 날이 승리의 날로 바뀝니다. 초상집이 잔칫집으로 바뀝니다. 잔치의 구경꾼이 잔치의 주인공으로 바뀝니다. 이런 일들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이런 놀라운 잔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적용:
가족과의 식사 시간은 기쁨을 맛보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잔치의 순간을 만들어 가정에서 긍정적인 대화를 장려하십시오.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의 하루를 나누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인정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려보십시오. 식사 시간은 작은 잔치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초의 공동체, 가정 안에 작은 잔치들이 계속 일어나도록 힘써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기쁨이 회복될 것입니다.
에스더가 잔치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낸 것처럼, 직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매일의 삶 속에서 찾는 것은 중요합니다. 업무의 복잡함 속에서도 하루를 마치고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여러분의 일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지 묵상해 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받은 복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그렇게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다보면, 이 곳에서 일하는 동안 크고 작은 잔치할 일들이 많아 질 것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잔치는 우리끼리만 즐기는 잔치가 아닙니다. 이 기쁨은 담을 넘어 이웃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에스더 9:22 “그 날에 유다 사람이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났으며, 그 날에 유다 사람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고, 초상날이 잔칫날로 바뀌었으므로, 모르드개는 그 이틀 동안을, 잔치를 벌이면서 기뻐하는 명절로 정하고,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로 지키도록 지시하였다.”
우리가 먼저 예수 믿고, 천국 잔치를 미리 맛보았다면 이제 우리가 잔치의 기쁨을 나눌 차례입니다. 우리가 나누어야 할 사람들, 우리가 돕고 섬겨야 할 자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보고 그들에게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천국잔치 초대장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이 땅에서 먼저 그 잔치를 맛보며 살아갑니다. 불완전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고, 여전히 싸워야 하는 날들이 있지만 — 예수 믿는 자들은 이미 두 번째 조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미래의 있을 영광을 미리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는다면, 언젠가, 주님과 함께하는 그 날, 하늘의 최종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것을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부릅니다. 그때, 에스더서가 가리켰던 그 승리의 참 본체가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고 갈망했던 그 어떤 잔치도, 그 날의 잔치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그 날의 잔치에 주인공이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성령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에 천국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자에게 천국 잔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그 잔치의 주인공들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