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_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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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결하게 하신 그리스도와 그 열매
정결하게 하신 그리스도와 그 열매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9장_정결하게 하신 그리스도와 그 열매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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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여호와께서 원하신 일.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권한과 영광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혼을이를 것이 또서 기뻐하시는 을성취하리로다 이사야 53장 10절 이사야 53장 10절의 상반절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많은 인허을 짊어지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원하사 10절 상반절의 요점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즐거를 신짊고 형벌을 당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01:06)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희생을 치르심 구원의 길을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대속의 진가 믿어지게 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적용시키시는 성 하나님과 함께 세세토록 영광과 찬송을 받으셔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위 하나님께서는 함께 일하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으로이 일을 계획하셨고 성자 하나님께서는 죽으심으로이 일을 성취하셨고 성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이 일을 우리에게 적용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성부 하나님의 작정과 성자 하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 하나님의 믿음 주심을 찬송해야 합니다.
(02:03) 이사야 선지자가 말했듯이 대속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질를 당하기를 원하셨던 이유는 아들을 덜 사랑하고 우리를 더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속건 제물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10절에서 유독 눈길를 끄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석권 재물입이라는 표현입니다. 메시아가 그의 영혼을 속권 재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속권 재물은 구약의 속건제를 위하여 받쳐진 재물입니다. 속권제에 대한 규례는 레기 5장 14절부터 시작되어 6장 7절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03:02) 구약의 제사는 각각 그 고유한 목적과 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화목죄는 하나님과의 화목과 그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의 평화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속죄제는 일반적인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였고 번제는 드리는 자의 헌신을 의미하는 제사였습니다. 속권제는 하나님 백성들이 지은 죄 중에서 특별히 소소유권을 침범한 범죄에 대하여 배상과 함께 올리는 제사입니다. 조건제를 드려야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호와의 성물에 대해 범죄하였을 때이고 또 하나는 이웃의 물건이나 소유에 대해 범죄하였을 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03:50) 왜 이사야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십자가의 고난을 속건 재물에 비유하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재물이었다고 말합니다.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재물로 세우셨으니 로마서 3장 25절 상반절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재물이니 우리만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한일서 2장 2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재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10절 절 화목 재물이라고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더 익숙한 속죄 재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는데 왜 유독 이사야 선지자는 비교적 낯선 단어인 속건 재물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을까요? 속죄제와 속건제의 가장 큰
(04:55) 차이는 그 초점에 있습니다. 속죄제의 초점이 헌제자가 죄를 씻고 깨끗하게 하는 정화를 맞춰 정화에 맞춰져 있다면 속건제는 훼손한 물품이나 끼친 피해에 대해 보상하는 배상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범죄한 우리 입장에서는 죄를 씻고 깨끗하게 되는 사건이고 대속을 계속 계획하신 하나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훼손된 거룩함이 회복되는 사건입니다.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께 막대한 손해를 입혔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역함으로써 하나님의 왕권을 훼손하고 훼손했고 비조 세계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으로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하나님의 권인은 실되는 듯했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좌절되는 듯했습니다.
(05:50) 그런데 그 모든 어그러진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권난을 통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아니 처음에 드러났던 영광보다 더 찬란하게 드러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은 인간의 죄를 씻어 주기만 하였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향해 가지셨던 온대한 계획이 처음부터 처음보다 더 찬란하게 실현되도록 하셨습니다.
거룩함을 범한 죄
석물이란 표현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속하신 우리의 죄의 성격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을 범한 죄였습니다. 석건자는 거룩한 물건을 대한 범죄였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에 범죄하였으면 여호와께 속권을 드리되 내가 지정한 가치의를 따라 성소의 세계로 몇 세계은 은혜 상당한 흠없는 순양을 양떼
(06:57) 중에서 끌려다가 속건제로 들려서 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하되 그것은을 더하여 재산해 줄 것이요 제사는 그 속권제의 순양을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한즉 그가 사움을 받으리라. 내기 5장 15, 16절 말씀. 이것은 물건 자체를 거룩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소외하신 하나님께 거룩하심기 때문에 그것들을 범한 것을 엄중히 초발한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범죄가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지만 특별히 성물에 대한 범죄는 그 도전의 방식의 직접적이기 때문에 매우 중차대한 범죄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선악과를 따먹는 사건은 성물을 범하는 것 같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습니다.
(07:52) 죄가 들어오기 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거룩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마무 인간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불한 불순종함으로 죄가 들어왔고 온 창조 세계가 세계에 죄가 법남했습니다. 세상은이 순간에 거룩함은 빛을 잃게 되었으며 만물은 하나님을 드러내던 찬한 영광의 힘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체를 창조하신 기록들을 살펴보면 사실상 인간 이전의 창조는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늘에 빛나는 해와 달 별들을 만드셨고 바다와 육지를 만드셨으며 그것을 모두 아름다운 피조물을 채우셨습니다. 아무것도 부처한 것이 없이 만드시고 인간을 하여금 그것들을 창조주 하나님의 대신하여 다스리고 돌보게
(08:56) 하셨습니다. 사실상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면류관이 있고 화령 정점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끝없는 광대한 우주도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는 장면은 인간과 다른 피조물과의 차별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되니라. 창세기 2장 7절 말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창조의 광대하신 피조 세계가 인간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구분과 교재할 수 있게 되었던 있도록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피조 세계를 가득 가꾸고 다스리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09:53) 처음 창조된 인간의 복됨을 우리가 어디에다 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만드시고 기뻐하셨고 마무리 인간의 다을 받는 것이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하고 선악를 따먹었습니다. 인간의 범죄한즉 즉시 창조시의 아름다움을지를 잃었고 자신의 다스리를 받던 피조 세계와의 목숨을 건 갈등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어 자연을 두려워하고 자연 앞에 외소해져서 인간의 힘을 굴복하는 초라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속건제물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소을 범죄한 것임을 분명히 보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알아야 했습니다.
(10:50) 아름다 피조 세계는 물론 창조 세계 창조된 자신까지도 하나님의 거룩한 소유물임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 거룩한 것들을 아담과 하와는 불순적으로 망가뜨렸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자신을 속건 재물로 드리게 한 우리의 죄는 단순한 악 이상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피조 세계를 불순적으로 더럽혔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바된 우리의 영혼을 죄의 부패성을 물들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지르신 고통의 이생은 인간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한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대사을 입었는데 그 대속은 우리에게 다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계를 열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11:50) 그러므로 대속의 은혜는 우리에게 거룩해질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한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 육과 영의 온과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린도후서 7장 1절 말씀. 이제 우리는 우리 내면의 세계 부패성을 거룩한 성령의 은혜로여 이기며 타락한 세상의 부패 환경에서 싸워야 합니다. 그러한 싸움은 종족 우리에게 죽음 각오한 결단을 촉구합니다. 피 열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 상황에 데려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려도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12:49)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속건 재물로 드리심은 거룩함을 범한 우리에게 다시 하나님의 소유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남의 소유를 훔친 죄
속건제는 성물을 범했을 때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이 이웃에게 재산상의 손를 입혔을 때에도 드려졌습니다. 이 구든지 이웃이건을속이거나 취하고실을 부인하거나의 물건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하는 사람이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하여면이는 죄를 범하였고 있는 자니 그훔친 것이한 그거한든건을더여것니는 것이는 또을지니한대로중흠없는을
(14:13) 것이요 장은에서 그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라기 6장 1절부터절 예수님을난의 고백은 서주께 주여 보시옵서의 절반을앗은 일이 있으면 19장절기를 소유의 절반을한 사람에게 이웃에게 상하겠다고 한 것은 그런 경우을 상하도록 한건제의 규정을 초과하여 배상하겠다는 타격적인 결심이었습니다.이는 이는 그리스도를 만난 사교 안에서 일어난 가치관의 놀라운 변화를 보여줍니다. 속건제에 관한 규례는 두 대상을 향해
(15:18) 이웃의 재산을 훔친 죄에 대한 보상을 하라고 명합니다. 먼저 재산상의 손해를 입은 이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하나님입니다. 이웃에게 재산상의 소를 입힌 범죄에 대해 하나님께도 상의 제사를 올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첫제는 이웃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입혔을 때 이웃에게 그 손해를 보상하고 하나님께 그 잘못을 사하며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한 속건제의 재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인간의 범죄가 무엇인지를게 합니다.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의 소유인 인이스를 더럽힌 것입니다.
(16:14) 그렇게함으로써 인간은 하나님께 손해를 입혔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시편 24편 1절 50편 12절 다만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것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소유게 살아갈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전서 2장 9절. 구원을 받은 인간이나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그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상이 있습니다. 비록 범죄함으로써의 지배 아 살 되었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의 교재 속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은 새로운 선택이 아니라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17:14) 그런데 불행이도 인간들은 마치 자신이 자기의 거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과 사랑과 건강과 시간을 마치 자기의 것인방탕하게 써버립니다. 그 사는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 자체로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소유를 훔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은 몰라서 그렇게 산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이미 구원받은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소유답게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보낸 시간 중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여러분의 삶의 주인은 정말 하나님이십니까? 오늘날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던 때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것을
(18:18)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삶을 종식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의 소유된 삶을 살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속건제물로 자기를 치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사사로운 욕심을 만족시키는데 우리의 열정과 시간과 건강을 소비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을 축내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권한당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런 죄를 위하여 속건제물로 죽으셨습니다. 둘째로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의 소유인 세상을 더럽힌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범죄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범죄입니다. 인간의 어떤 악행으로 눈에 보이는 사물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시다.
(19:09) 하나님의 소유인 세상이 더럽혀진 것입니다. 사람에게 폭력을 가했다고 시다. 누군가 다쳤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이 일의 피해자가 망가진 물건의 주인이나 다친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생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악의적인 피해자입니다. 그 악행의 일차적인 피해자는 인간을 창조하셨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지정된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 채 비참하게 살아갈 때 제일 마음 아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에게 지정된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때 제일 기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에게 지정된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돌아가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충만하게 공급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20:09) 그러므로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고 구원을 받아 번질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인간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고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십자가의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자신의 부패성과 날마다 싸워날마다 더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이 세상이 거룩함을 회복하도록 힘쓰며 살아야 합니다.
거룩함을 추구하라.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았으니까 이제 다른 인생의 길은 없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거룩함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함을 통하여 자신과이 세상 안에 다시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21:05) 거룩함이란 원래 하나님의 존재적 초월선과 도덕적 완전성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또한이 말은 구별의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배타적으로 하나님께 봉원되었거나 선점되었기에 다른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네기 22장 3절. 거룩함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죄된 행위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성별된 존재가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됨으로써 죄 가운데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영적으로 구별되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삶의 최고 가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그 가치를고 구고 구현하는 길 길은 거룩함의 회복입니다.
(21:58)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 핵심이 거룩함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에 온전히 복종하고 그 통치에 기뻐함으로써 그 나라는 세상 나라와 구별되고 세상 속에 거룩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를 어디로 부르고 있는지를 안다면 우리의 삶의 목표가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속건 재물로 드리실 때 마음에 품으셨던 목표와 동일하다면 우리는 거룩함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직한 복음은 우리를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현대인들은 복음 안에서 십자가의 핏자국을 지우고 성공과 번역의 약속 약속을 덧입히려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죽으심에 대한 모독입니다.
(22:5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번영과 성공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룩함을 회복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거룩함을 범했고 그 죄를 대속하기 위해 메시아는 자기를 속권 재물로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공로로 우리는 다시 거룩한 존재로서 거룩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고도 거룩함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세상에 속한 것들에 집착하며 우울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두 가지로 집약됩니다. 하나는 그들이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삶의 목표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되어서도 그 목표를 따라 살아갈 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23:39)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속건 속건제로 대속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악계나 거룩함을 생각하며 거룩함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거룩한 사임 속에서 그분의 거룩하심에 영향을 받으며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어 나아가야 하고 매일의 삶 속에서 거룩함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부패성과 분토하며 싸워야 합니다. 빌립보서 빌립보서 1장 29절에서 30절 십자가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는 세상에 있는 것들과는 작별를 작별한 사람들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 죄악된 세상 속에서 불결한 인간들과 함께 섞여살아가지만 그들과는 전혀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24:30) 세상 사람들은 번영과 성공의 목을 맺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함에 목말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경고함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은 거룩함을 열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이란 분명한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은 잠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갑니다. 그러나 거룩함을 열망하지 않는 사람은 잠시 영혼의 회복을 경험해도 또다시 주저한기 일수입니다. 회복과 침체의 반복 속에서 진전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거룩함을 사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은 우리의 눈물겨운 희생이나 화려한 사역의 결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25:18) 따라서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고 단지 일에 미쳐서 섬기는 것은 그저 저 좋아서 하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존재입니다. 거룩한 사람이 하면 길거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일도 거룩한 일이지만 거룩하지 않는 사람이 하면 설교 사역도 저 좋아서 하는 사람의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섬김의 자리를 감당하면서도 개인적으로 거룩해져 가고자 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사람들은 모두 거룩함에 대하여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26:01) 우리의 마음속에 진리와 성령을 주셔서 다시 거룩함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게 누구든지 정직한 복음으로 십자가를 경험하면 즉각적으로 거룩함에 대한 갈망을 갖습니다. 물론 거룩함이라는 용어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불결함을 슬퍼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를 소망하는 그 마음은 모를 리 없습니다. 십자가의 경험이 거룩함의 열망을 불러온다는 사실에는 그 어떤 외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의 열망이 없다면 그의 십자가의 경험은 복음적인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거룩하게 살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6:47) 인간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동안에만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첫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기를 금하신 실과를 보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했다면 결코 하나님의 거룩한 피조 세계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되기를 사모하고 또 거룩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의 것에 대하여 탁월한 인식과 존중감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독특성
메시아에 대한이 위대한 예수를 기술하고 있는 이스라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체험 때문에 거룩한 선지자를 살게 된 사람입니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대면하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고 자기와 그 시대의 백성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았습니다.
(27:39) 이사야에서는 거룩함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통탄이 시작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 내가 자식을 양할 거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손은 그 인자를 알고 나기는 그 주인의 구위를 알 것만은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도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이사야 1장 2, 3절 말씀. 선지자가 탄핵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과 범죄 자신들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우상을 숭배하며 방탕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소유에 있었다는 것은 거룩함을 잃어버렸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거했다는 것입니다.
(28:34) 그런 상태에서 종교의 행위를 유지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진록케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는 무수한 재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순작의 범죄와 살진 짐승의 기름을 배불렀고 나는 수송지 어린 양이나 순염서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오니 이것이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 있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 헛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양은 내가 가증이 여기는 바여 올과 안식일과 대로 모이는 것도 그래하니 성와 올라 악한 것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이사야 1장 11에서 13절. 혹시 우리의 삶이 이러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을 알지 아니함을 거룩함을 대신하여
(29:39) 방정을 쫓고 있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모든 억압을 끝났다. 이제는 해방과 자유로 있을 뿐이다. 이제 나는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외치는 것은 천된 복음을들은 사람들의 정당한 반응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대한 경험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던 삶에서 해방해 주지만 그 위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은 거룩함에 의해 속받는 삶입니다. 오늘날 같이 인간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고 방종하게 살아가도록 부추이는 시대에 거룩함을 말하는 것은 시대에 뒤 뒤떨어진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풍저가 아무리 바뀌어도 하나님의 기준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참유는 은혜와 진리의 지배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30:39) 오늘날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함을 케 먹은 신앙의 유물쯤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비로 우리를 구석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바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마음이화하고 고백하는 화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원래 허무한 것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고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조차 신앙의 열심과 도덕성은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은 범칙 나쁜 고지사가 날아오는 교통 법규 어 벗규 어긴 것만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교회 안에서 거룩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1:30) 하나님의 백성에게 거룩함에 대한 열망이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덕축성이 실제로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으로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이미 맛이든 소금이며 불꺼진 등불입니다. 그들이 모인 것은 아무리 높게 십자가를 낼 걸고 아무리 크게 교회라는 명판을 붙이고 교회에 붙여도 교회일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고 있어야 할 것은 보여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에 또 인도주의 사랑에 지나지 않고 하나님의 왕되심을 선언해도이 군주의 실권는 왕을 모신 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것을 하나님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교만이 빚은 방종입니다.
(32:34)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을 범하는 인간의 죄로부터 당신을 거룩하게 지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 때때로 심판을 불러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수는 불타 범죄한 인간의 보복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의 불리와 도전으로부터 당신의 거룩함을 지키시는 것이 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하며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는 눈물만 뚝뚝 흘리며 오래 참고 기다리신 분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의 교리라는 장사를 가두고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신 견해가 아닙니다.
(33:29) 하박국 선자는 정당한 심판으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하박국 3장 17, 18절. 동족의 안녕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 것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참혹한 것을 보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십자가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조아라고 보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험한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해야 마땅하나 참아 우리에게 그 친노를 쏟아내지 못하시고 독생자를 보내 십자가를 못 받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시인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그의 구원이 그를 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합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는도다.
(34:33) 편 85편 90절 11절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속건 재물로 드리심을 말미암아 속잠을 입은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의 소리로 인정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서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우리 자신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열매를 맺으심
이어서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속건 제물로 드리신 결과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의 영혼을 섞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사야 53장 10절.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과에 대한 예언입니다.
(35:25)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신 분은 한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의 씨는 수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에 이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장 18절부터 19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도이 일에 대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여 이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도다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하의 땅에 떨어져죽지 아니하면 하 그대로 있고 많은를맺니라.
(36:19) 요한복음 12장 23절부터 24절. 이사야 선지자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언으로이 일을 말했지만 지금 우리는이 일이 실현된 것을 보고 있습니다. 2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이단적인 교리를 유포했다는 혐의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의 역사를 바꾸습니다. 사망의 지배 가운데 살아가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거룩한 열매들이 되었습니다. 속건제물로 진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셨으나 그분의 속죄의 피는 같이 흘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인들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철동같이 다쳤던 선교의 빗장이 열리고이 교도들의 가슴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심기는 놀라운 역사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37:19) 이것은 모두 한 사람의 죽음이 가져온 열매들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것은 주님로 하신 일이지만 그씨를 통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는 일은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속재물로 죽으신 것이 마음의 감격으로 다가오십니까? 그렇다면 입을 열어 그 크고 놀라운 사랑을 말하십시오. 전도로 이어지지 않는 감격은 감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하나님을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달린 일이 아니어도 우리는 그것이 마치 우리에게 달린 일인 것처럼 그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38:08)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구원은 하나님께 달린 일이야. 내가 애를 써도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구원 못 받고 내가 옛 태우지 않아도 구원받을 사람은 구원받을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전해져서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고 복음을 모른 채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저들이 아직도 고통 가운데 있다고 자책하는 것이 먼저 대속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거룩함을 범죄한 범한 죄인들에임에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알았습니까? 그렇다면 냉랭한 마음으로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38:59)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무지했으나 이제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하나입니다. 어찌하든지이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는 삶 그 이외의 선택은 우리에게 >> 아멘 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