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_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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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10장_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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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제 10장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신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사야 50장 53장 10절 하반절 말씀
부활의 약속
메시아의 고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본격적으로 밝히며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신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사야 53장 10절 하반절 말씀. 그런데 첫 부분부터 의문을 갖게 합니다. “그의 날은 길 것이요.” 여기서 ‘그’는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는 메시아입니다. 그런데 ‘속건 제물’이라는 표현으로 메시아의 죽음을 예언한 선지자가 뒤이어 바로 그의 날은 길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비록 부활의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선지자가 메시아의 부활에 대해 예언하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01:04)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셨고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연대로 그날 길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에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죽음으로 속죄를 이루실 사건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까지 보여줍니다. 메시아가 육신으로 몸을 입고 낮고는 세상에 오셔서 멸시와 천대 속에 사시다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것을 예고하며 마음 아파셨던 선지자는이 부분을 기록할 때에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날은 그는 그의 나를 길 것이요.
(01:50) 나는이 말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영전하시는 하나님으로 사실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메시아의이 영광스러운 부활은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구원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가 해서 진흙을 르는 인생이 각자의 꽃길만 걷게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소의 교리를 믿어 죄의 실에서 벗어나도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잔의 내적 부패성과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산다는 것은 이처럼 구원받은 사람들의 고다는고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합니다.이 고단한 인생의 끝은 무엇일까?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무엇일까? 모든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소망은 부활입니다.
(02:39)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은 어떤 영광스러운 부활이야 말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이 부활이 소망 때문에에 고난도 이기고 핍박도 견디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능력은 단지 먼 미래에만 경험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자의 마음속에 경험되는 것입니다. 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우리를 그리스도인 닿게 살게 합니다. 생명과 사랑으로 살다운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동족의 고수를 받아 세상 법정에 서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부활의 소망을 가진 것이 유였습니다.
(03:30) 그 소망 때문에 그는 동조에게 버림을 받고 신물을 당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3장 6절.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참여할 소망 때문에 자신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밝힙니다. 그들이 기다린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의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한과 같으리다. 아하미이다. 이것으로 말로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의 끓리낌 없기를 힘쓰나이다. 사도행전 24장 15 16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은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영화롭게 만드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부활의 사건에 담겨져 있습니다.
(04:25) 그러므로 부활을 소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온 세계의 구원될 그날을 기다리며 잠시 겪은 고난의 때를 견디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었을 때 큰 비비는 부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의 아랫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은 다윗의 혈통이 나셨고 성결로의 영혼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니라. 로마서 1장 3, 4절 말씀. 사도 바울은 그 누구도 치열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고자 했습니다. 그 가운데 그가 이룬 진보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곧 부활의 권능을 아는 것이라고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었 것이 것이었습니다.
(05:14) 내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립보서 3장 10 11절 말씀 여러분은 무엇을 소망하고 사십니까? 무엇이 여러분을이 죄악된 가득 땅 땅에서 고난 고단한 성화의 길을 걸어가게 만듭니까?이 이 땅에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 그분과 같이 영광이 참여할 것이요. 주님과 함께 죽으면 그분과 더불어 다시 살리라는 부활의 소망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로 하여금 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 십자가에 대한 >> 네. 네. 목사님 읽어 주세요. 네. >> 아이고. 예.
(06:06)
십자가에 대한 현재적 경험과 소망.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과거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에 대한 현재적인 믿음이고 또 하나는 미래에 누리게 될 부활의 영광에 대한 현재적인 소망입니다.이 두 가지는 사실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이는 우리의 영적 경험 속에서도 입증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죄속의 은혜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부활의 소망을 가질 수 없으며 미래에 있을 부활에 대한 현재적인 소망 없이는 자기의 십자가를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신 길을 따를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기 죽음을 경험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부활을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06:54)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생 넘어 기다리고 있는 죽음은 단지 영광스러운 부활에 이르기 위한 문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죽음 앞에서 의연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잠시 있다 사라질 것들이 아니라 영원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자기의 욕심을 따라 탐욕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가는이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 못지 않게 탐욕스럽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보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모두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현세에 집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한 뒤에 숨겨진 부활의 약속을 읽지 못할 수 있습니다.
(07:44) 그러면 부활의 소망을 둔 삶을 살아갈 수 없고 부활의 소망을 두지 않으면 십자가를지는 삶을 살아갈 필요를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위해서만 애쓰고 수고할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쌓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 말씀. 그러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부활에 대한 소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것만 예고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다시 사실 것도 예고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권난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 것이라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08:35) 따라서 우리는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을뿐 아니라 그분과 함께 우리도 다시 살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는 가운데 우리의 부활을 소망하는 열망에 불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부활의 소망으로 불탈 때 우리는이 세상에서 아니라고 안락한 삶에 대한 추구를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이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날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거룩한 삶을 위한 몸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09:19) 스스로 죽지 않으면 살 소망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인생은 유한하고 더덥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 베드로전서 1장 24절 말씀 인생이 가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분을 통해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서 대체 언제까지 사라질 것들에 연연하며 사시겠습니까?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듯 우리의 육체는 나날이 시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후패에 가는 육신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10:09) 우리에게는 쇠악해지는 육체를 벗어버리고 영원히 시들지 않을 모습으로 그리스도를 배울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이어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것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생애에 관한 총론적 요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처음 신앙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며 수많은 의문을 갖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온갖 오해가모하게 동정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는 방식으로 태어나신 걸까? 초라하게 말구에 누시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우볼 수 있게 탄생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러나 다른 신비한 방법으로 오실 수도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압도되어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을
(11:12) 수 없게 영광스럽게이 땅에 내려오실 수도 있었으나 그분은 가난한 목수의 집안에 태어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 탄생이 인간이되 죄는 없는 존재로이 땅에 오시기 위한 방법이었다면 초라한 출생은 그분이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실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분은 모욕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며 머리둘 곳 없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어 심지어 우리를 위해 자기를 버리시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그분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완전한 낮아짐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섬김을 받는 왕으로이 세상에서 굴림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2:08)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기의 양떼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고 환호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지 못하셨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틀린 견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에 들어서기 이전에도 자신이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 6장 38절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려는 목표 하나에 집중된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은 바로 자기를 화목재물로 드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구원의 길을 이시는 것이었습니다.
(12:5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는이 말씀을 단 한 번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애 가운데 많은 것을 이루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고 베세다 광야에서 다섯 개의 보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셨고 수많은 인파가 열광하는 가운데 예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분의 생애에 기념비적인 사건이 많았으나 어떤 때에도 결코 다 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범죄자 중 한 사람으로 취급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비로소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44)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던 그때이 말씀을 남기신 것은 그분의 생애가 전적으로 십자가 죽음을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온전히 우리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받는 도전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그러야 합니다.
목표 없는 삶의 비극.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고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사람은 결코 처점이 없는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실 때 기대하셨던 그런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도 결코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14:45) 우리 인생에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까? 은혜를 받았을 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리다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간격스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런 마음이 다 잃어버리고 일상의 삶에 매몰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이 필요한 것은 바로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참사을 알고 하나님께 속한 것들과 세상에 속한들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격차를 뼈드리게 깨닫게 될 때 영광스러운 부활의 소망이 현실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분명해집니다.
(15:27) 이러한 사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도 바울의 체험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해심하기 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심각한 박해야 했습니다. 다서의 간 것도 그리스도의 핍박의 권세를 유인 받아갔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6장 10에서 12절. 그러나 긍휼히 풍선하신 하나님께서 핍박자여 폭행자인 사울을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셨고 밝은 빛을 보고 엎드린 엎드려진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내가 어찌하여 내가 나를 박하느냐 가차를 뒷 뒷발질하기가 내가 고생이니라 사울에게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16:17) 자기가 박해하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대상이 부활 바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사오는 그 제사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과 자신의 조상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나사렛에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을 인정하지 않고 쌓아올린 모든 삶의 계획과 성체를 위해 몸무이 모두 헛것이 헛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토록 자신만만하고 확신을 불타던 젊은이가 이제는 신앙과 인생에 대해서 아무것도 붙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믿음 없이 세워진 삶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17:08) 설령 그 목표가 도덕적이고 매우 같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십자가의 진리 위에서 부활의 소망 가운데 정립된 목표가 아니라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주님을 몰랐을 때 그가 추가했던 삶의 목표는 세숙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정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위해서 살겠다고 목표를 정해도 그것은 스스로 생 생각해 낸 목표이지 영원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가 없습니다. 아무리 옳은 신념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 없이 세워진 신념이라면 사람의 생각에 불과합니다. 삶의 목표가 그리스도 없이 세워진 것이라면 결국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18:03) 어 도덕적인 사람이 없고 종교적으로 열심히 있는 사람이었으나 우리의 인생의 참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는 되었던 사울처럼 말입니다.
십자가에서 발견한 인생.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그리스도와 아무 관계 없이 자기가 좋아서 만든 인생의 목표에 충실한 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표를 위해서 사는 것이 곧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경험 없이 세워진 인생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할 때 지풀하기처럼 날아갑니다.
(18:57)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타나실 때 사실은 자기가 아무것도 행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하는 예수라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사도행전 22장 10절 말씀.이 대화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살아온 그의 옛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에게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다시 분명한 인생의 목표를 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너에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사함과
(20:02)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사도행전 26장 16절에서 18절 말씀. 이후 사도 바울은 천막을 만들고 수선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며 힘 닿는 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때가 되면 먹고 밤이 되면 사고 돈이 없으면 일하며 사도 바울은 살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보기에 그의 삶의 양식은 특별한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보편적인 삶의 양식 속에서 그런 보편적이지 않는 목표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전하는 종이자 증인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남는 남은 삶 전부를 어둠 가운데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복음의 빛 가운데로 생명의 나라로 옮기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20:54)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십자가로 구원을 얻고 부활의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동일한 소명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 전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소명과 같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의 사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낯선 땅의 선교사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목회자가 되라는 것도 아닙니다.
(21:39) 그저 무엇을 어떻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든지 우리의 인생을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을 그분에게로 인도하는 도구가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대목표를 중심축으로 하여 다른 소목표들이 선절 설정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나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드리는 삶은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따라 재편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삶의 아주 사소한 영역들에서부터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들에 순종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개인에게 특별히 주신 사명들이 성취되어 가는 것을 보시는 것 못지 않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원하십니다.
(22:29)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입은 자녀들로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며 사는 길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며 사는 것입니다.이 이것이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창조의 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길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다시 살아나 가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분은 마음에이 이끌리는 대로 아무렇게나 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늘 당신의 삶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지를 생각하며 살 사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매순간이 매순간의 삶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해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 이어지기를 사모하셨습니다.
(23:22)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도이 일은 쉬지 않고 생각하고 사모하고 분투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간절히이 일에 매달려야 할까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분명한 인생의 목표가 있습니다. 다만 영적으로 잠들어 있기에 그 놀라운 목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안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놀라운 사랑에 감각하며 펑펑 울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더없이 방황하는 삶을 사는 것은 예전에는 십자가를 만났으나 지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감격이 실제의 삶 속에 지연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4:06) 한 번에 과하로는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내제된 부배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자신의 삶을 정사하고 자신 속에 솟아 나는 수많은 욕망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기 부인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죄의 본성을 이기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십자가에 대한 현재적인 감격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을 때에는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주님과 함께 죽으면 다시 살리라는 부활의 소망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살아야 합니까? 감당할 수 없는 큰 사랑을 입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제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성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25:01) 순간을 살아도 영혼을 향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잠시 있다 사라질 세상에 살지만 사실은 영원한 세상을 위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4절 말씀. 잠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아도 그것은 영원히 다시 살 소망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한 은혜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된 의미를 더 많이 경험하고자 하고 성령의 붙드심을 더 강력하게 체험하고자 합니다. 더 많은 진리를 깨닫고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은혜와 진리를 갈망합니까? 이것은 우리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위해서입니다.
(25:55)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며 살기 위하여 우리는 은혜를 구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목표에 대해 신적인 강제력을 느낍니다. 그지 않는 일 없는 강력한 힘이 자신을 주장하는 것을 느낍니다. 사도 바울의 다음 고백은 이한 사실을 잘 입증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로마서 1장 14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장 20절부터 21절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면 내가 부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26:59) 고린도전서 9장 16절 사도가 느꼈던 이한 신적 강제력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신한서 비롯됩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강력한 소명 의식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리려는 불타른 열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단지 입을 열어 전도하는 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삶을 보며 그리스도 예수가 누구신지를 알게 하는 삶,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생각나게 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마치 어두운 밤늘에 찬란한 불꽃 하나가 타오르면 온 세상 어디서든지 그 불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존재를 통해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라고 부름받았습니다.
(27:52) 하나님을 멀리 떠난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알려줄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인생은 결코 다른 사람을 위한 예정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알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지만 그것은이 세상 사람들을 주목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망에 주목할 때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가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28:39) 아무리 허무한 인생의 밑바닥을 가르쳐 주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결코 세상의 허물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시급한 의무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현재적으로 만나며이 세상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일입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라.
그리스도는 하늘의 소망, 하늘의 자원으로 살아갑니다. 기독교 신앙의 놀라운 유익은 썩어질 몸을 가지고 사는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게 해신다는데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의 생명과 사랑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래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이 힘든 사람을 사랑하고 극복할 수 없는 삶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기쁨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29:4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기에 우리가 소망 부활의 소망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하게 생각한 이후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은 안에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에 대한 아무런 간격이 없는 신앙생활 하면서도 적은도 부정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성취해야 할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없으니 분토해야 할 삶 필요가 없고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30:29)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이 자기 욕심을 쫓아 허무한데 굴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부신자들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석한 신우는 멸망을 향해 사는 비참한 삶에서 떠나 영원히 계실 하나님을 향해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고 나면 제일 먼저 깨닫는 것이 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뜻에 나눠질 수 없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매 순간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실인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인생 속에 선명하게 구원해 나가야 합니다.
(31:27) 물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항상 즐겁고 횡보하지만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지는 것 같은 고생일 때가 많을 것이고 평탄길을 버리고 험난 나한 가시바퀴를 택하여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의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에 보다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 안에서 그렇게 살아 어 보지 않는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하는 거룩한 기쁨과 부활의 소망을 경험합니다. 죽음을 모르는데 부활을 삼할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관객처는 십자가를 구경만 하고 있으려 하십니까? 사무처는 부활의 소망은 관객들이 아닙니다. 부활의 소망은 그분을 어 그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도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집니다.
(32:25) 입술을 고백이 쉽지만 그 고백에 따른 삶은 희생의 요구됩니다. 그러나 삶으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세상에 알 수 없는 기쁨을 맛봅니다. 입에 발린 말로는 결코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삶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삶으로 십자가를 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이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한 나머지 이제는 그렇게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며 사는 것 위에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죽으셨음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삶의 모든 이유와 목표가 십자가 때문에 바뀐 사람입니다.
(33:13) 이제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었으나 지금은 그리스도를 주인 삼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자기를 기쁘시게 하는 위에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빛 빚진 자가 되어 하나님을 성취하며 살아가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런 사람을 고난을 가득찬 인생의 길을 걸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매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부활의 소망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