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고백 (요한복음 21:15–17)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4 views
Notes
Transcript

베드로의 고백 (요한복음 21:15–17)

한국 예능을 보면 연예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그 일을 한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됩니다. 배가 고파도 연기가 좋아서 연기를 한다는 말이 정답으로 들렸던 때가 있었는데, 긴 무명 생활을 거치고 나면 잘사는 사람들이 부럽고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건 인지상정일 겁니다.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도 아쉽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예능과 예술이 그저 좋아서 그 일을 시작했던 그 초심을 지켜내고자 하는 치열함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현실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타락과 변질을 합리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요즘 부쩍 늘었습니다. 현대인들의 문제는 돈을 너무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돈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라는 말에 점점 동의가 됩니다. 돈의 유혹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경계하지 않아서 자신도 모르게 유혹에 빠져들어, 서서히 돈이 궁극적인 것이 되어가는 것조차 모르게 된다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목회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생활이 안정되고 큰 교회 목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성공했다 여기면 안 됩니다. 그렇게 주어진 것들을 누리면서도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이 세 번째 나타나신 장면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부활의 실체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면, 세 번째는 제자들과 아침 식사까지 함께 하실 만큼 제법 긴 시간을 함께 보내셨습니다. 저는 그 식탁에서 제자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몹시 궁금합니다. 유월절 저녁 식사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는데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주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으니,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도 못할 만큼 혼란스러운 상태였을 것입니다.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는, 압도적인 임재 앞에서의 경건한 침묵이었을 것입니다.
식사를 마치신 후, 주님이 마침내 베드로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에게는 정곡을 찌르는, 너무 가슴 아픈 질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주님을 떠나도 자기는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베드로가 공공연히 주님을 모른다고 했으니까요.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고, 용서받았다는 확신도 없는데 어떻게 감히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불륜을 행한 사람에게 배우자가 "당신 나 사랑해?"라고 물으면 "그럼, 사랑하지"라는 말을 어떻게 감히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이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가혹한 책망으로 들릴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주님이 완전한 무조건적 사랑인 아가페로 물으시고, 자신이 없었던 베드로는 인간적 우정인 필레오로 답했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에는 주님도 필레오로 낮추어 물으시며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씀하신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사실 이런 해석이 저에게는 너무 위로가 됩니다. 주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사랑할 수 없는 저에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의미로 본다면 너무나 필요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씀을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싶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이 질문이 제게는 우리의 사랑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의 확인으로 들립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니?" "내가 너를 위해 죽었다." "내가 너를 위해 살았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고개도 들 수 없는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 나는 끝까지 너를 사랑할 거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랑을 알았기에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필레오였든 아가페였든, 그의 고백은 자신의 결단과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반응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결국 주님의 사랑을 안다는 고백이고, 의지한다는 고백이고, 그 사랑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네가 나를 이 모든 사람보다 더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은 "네가 최고로 나를 사랑한다면"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네가 여기 있는 누구보다 확신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 는 말씀입니다. 헌신의 근거는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이 아니라, 나를 향한 주의 사랑입니다.
허물 많은 죄인인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질문은 '내가 주를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입니다. 믿음으로 치열하게 살수록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잘 압니다. 조그마한 시련에도 흔들리고, 사람들에 대한 실망은 순식간에 무력감을 가져다줍니다. 몸이 아프면 우울해지고, 열매가 없으면 위축됩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사랑한다는 고백이 위선으로 들릴 만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젊었을 때는 "주님을 사랑하세요"라는 말에 "제가 아골 골짜기까지 가겠나이다, 헌신하겠습니다!" 하고 반응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말하는 저 자신에게서 위선의 냄새가 납니다.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위축이 됩니다.
이런 저와 여러분들을 다시 일으키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주님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십니까?" 제가 오늘도 이 자리에 있음은, 세 번, 아니 열 번 주님을 부인했어도 주님이 저를 버리지 않고 찾아오셔서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그 사랑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치셨습니까? 실망하셨습니까? 화가 나십니까? 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주일에 VIP 안와서 실망) 저는 여러분에게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는데 도대체 왜 아직도 그것밖에 사랑하지 못하느냐"라고 묻기 이전에, 혹시 주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으신 건 아닌지를 먼저 묻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찾아오신 주님 앞에 몸 둘 바를 몰랐던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을 묵상하십시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으로 관계를 회복하시고,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해 주신 그 아름다운 모습을 묵상하십시오. 반복된 실패와 좌절에도 다시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와 물으십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의 대답은 더 이상 자신감과 의욕이 가득 찬 자기 사랑이 아니라,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에 대한 겸손하고 진실한 반응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대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를 일으키고 여러분을 일으키는 것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입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