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에서 만난 사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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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린도에서 만난 사람 2
제목: 고린도에서 만난 사람 2
본문: 사도행전 18:1-4
본문: 사도행전 18:1-4
찬송: 221장 주 믿는 형제들
찬송: 221장 주 믿는 형제들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지난 시간, 사도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덴에서의 사역이 겉보기에는 큰 성과가 없어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아가야의 첫 열매'인 스데바나를 만나게 하셨고 그를 통해 바울의 발걸음을 고린도로 인도하셨습니다. 홀로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에게 아굴라 부부와의 만남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지친 사도 바울의 영혼을 일으키시고 고린도 복음화의 기초를 닦으시려는 하나님의 정교한 섭리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만남이 어떻게 깊은 동역의 관계로 발전했는지, 그리고 이 부부의 헌신이 어떻게 로마 제국 전체로 확장되었는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아굴라 부부는 처음에는 바울의 생계를 돕는 조력자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바울의 심장과 같은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아름다운 동역이 가능했던 비결은 무엇이며, 그들의 헌신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지 함께 나누며 은혜를 구하겠습니다.
일터와 일상이 사역의 현장이 되는 신비
일터와 일상이 사역의 현장이 되는 신비
바울과 아굴라 부부가 함께 천막을 기웠던 그 작업대는 단순히 생계를 꾸려가는 자리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 마음을 모으고 기도를 쌓았던 거룩한 성소였습니다. 본문 3절은 바울이 생업이 같으므로 그들과 함께 살며 일을 했다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흔히 일터와 교회를 분리해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아굴라 부부에게 천막을 만드는 작업대는 고린도 사역의 전략 회의실이자 중보기도의 제단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죽을 꿰매고 피륙을 자르는 고단한 노동 속에서 끊임없이 대화했을 것입니다. 이번 안식일에는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지, 새로 믿게 된 성도의 영적 성장을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나누며 영적인 사귐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이 사도 바울과 이토록 마음을 합해 깊은 동역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바울이 내세운 직분의 권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곁에서 함께 땀 흘리며 목격한 바울이 품은 '예수님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5-7절 의 말씀처럼,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신 그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복음을 전하거나 사도의 직위를 이용하지 않고, 오직 죄인 된 자신을 구원하신 은혜에 감격하여 스스로를 비워 종이 된 바울의 겸손과 진정성을 아굴라 부부는 작업대 곁에서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또한 바울의 권위는 그가 통과해온 회심의 역사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 그 곁에서 죽음을 마땅히 여겼던 박해자였으나, 사도행전 9장의 다메섹 도상에서 강력한 빛으로 임하신 주님을 만나 완전히 거꾸러졌던 사람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맹인이 되어 제자 아나니아의 기도를 통해 비로소 눈을 뜨고 다시 태어난 바울은, 자신의 실력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로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가시와 과거의 허물을 안고도 오직 예수만 증거하는 바울의 비워진 심령을 보았을 때, 아굴라 부부는 그를 돕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일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가 밭을 갈고, 가게를 운영하고, 가사 노동을 하는 그 모든 자리는 결코 세속적인 자리가 아닙니다. 작은 바느질 하나, 호미질 한 번이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의 뒤를 받쳐주는 귀한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굴라 부부가 바울을 위해 드린 간절한 중보기도가 바울로 하여금 음란한 도시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듯이, 우리의 소박한 일상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도구가 됨을 믿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확장되는 은혜의 선순환
하나님의 동역자로 확장되는 은혜의 선순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바울을 돕는 조력자의 자리를 넘어 한 지역의 복음을 책임지는 주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평신도 부부가 한 지역의 복음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성장할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위대한 정체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훗날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고전 3:9)라고 선포했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자신들이 단순히 바울의 조수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쉬네르고이', 즉 파트너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합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귀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잠자던 열정을 깨우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동양의 오랜 역사 속에는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뜻입니다. 중국 삼국시대의 제갈공명이 유비의 삼고초려, 즉 자신을 알아준 그 진심 어린 인정에 감복하여 평생을 다해 충성을 바치고 결국 전장에서 숨을 거둔 것이나,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이 대구 공산 전투에서 왕건이 후백제에 쫓기게 되자 자신을 알아준 왕건을 위해 왕의 옷을 대신 입고 적진에서 장렬히 전사한 것은 모두 '인정받음'이 가져오는 위대한 헌신의 힘을 보여줍니다.
하물며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인정받고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다는 확신이 들자, 그들의 헌신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부의 헌신은 고린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따라 에베소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가르치는 영적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또한 로마로 돌아가서는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놓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빌립보의 루디아처럼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삶의 터전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 공동체로 봉헌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영혼 구원의 소중함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통해 아볼로가 변화되고, 낯선 땅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며 그들은 세상이 줄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은혜의 선순환'을 발견합니다. 주님의 일을 돕는 기쁨을 맛보니 더 큰 감사가 넘치고, 그 감사가 다시 목숨까지 내놓는 헌신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 4절 에서 이 부부를 향해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손해와 위험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한 영혼이 믿음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내 생명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역시 누군가를 돕고 세우는 기쁨 속에서 이러한 은혜의 선순환을 경험하며, 주님의 역사를 함께 일구어가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바울과 아굴라 부부의 아름다운 동역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만남은 천막을 만드는 작업대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끝은 로마 제국 전체를 복음으로 물들이는 위대한 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바울이 품었던 예수님의 마음이 아굴라 부부에게 전수되었고, 그 부부가 누린 영혼 구원의 기쁨이 다시 수많은 교회로 흘러갔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작은 중보기도, 우리가 일터에서 쏟는 성실한 땀방울, 그리고 영혼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모일 때 우리 중앙교회는 이 시대를 밝히는 살아있는 예배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은혜의 선순환 속에 거하며, 주님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는 복된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하여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 모두가 주님의 '신실한 동역자'라 칭찬받는 주인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거룩한 동역의 길에 기쁨으로 동참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사도 바울과 아굴라 부부의 만남을 통해 동역의 신비와 헌신의 기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터와 가정이 단순히 생계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일하는 거룩한 성소임을 고백합니다. 빌립보서의 말씀처럼 자신을 비워 종이 되신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도 품게 하시고, 박해자였던 바울을 불러 눈을 뜨게 하신 그 전적인 은혜를 우리도 신뢰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중앙교회 성도들이 누군가를 돕는 조력자를 넘어 주님의 역사를 책임지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자신을 알아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역사 속 충신들처럼, 우리를 알아주시고 존귀하게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의 삶과 가정을 예배의 처소로 내어놓는 결단이 있게 하옵소서.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고 성장하는 것을 보며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았던 그 뜨거운 열정이 우리 가슴 속에도 불타오르게 하옵소서.
지금도 전쟁과 갈등으로 고통받는 이 세상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평화가 속히 임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서 있는 모든 곳에서 주님의 통로로 쓰임 받기를 소망하며, 우리를 동역자로 불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