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서 사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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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21:1-15
삼상 21:1-15
여러분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그런데 세상을 보면 참 평안과는 거리가 먼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되는 전쟁 소식에 참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와 이란이 저 먼데서 전쟁하는데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 할줄 모르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지요. 세계의 모든 경제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의 전쟁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어있습니다.
요즘 차에 기름을 넣으러 주유소에 가면 어떠세요? 주유구 열고 넣기 시작하는데, 숫자가 올라가는거 보면 우리의 마음 역시 올라갑니다. 넣으면서 계속 숫자를 보고요, 얼마까지 올라가려나 합니다. 심지어 중간에 멈추는 경우도 있지요. 기름값이 정말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이 오른 것을 우리는 채감합니다.
사실 기름값이 오르면 물가 전체가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통하는게 모든 물품이 다 유가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운송업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힘들지요. 기름값이 감당이 안되는거에요. 우리 역시 물가가 오르니깐요. 마트에 가서 뭐 이거저거 담으면 별로 안산 것 같은데, 돈이 너무나 많이 나오는거죠. 뉴스를 보면 참 미국이 어떻다, 이란이 어떻다, 환율이 어떻다, 경기가 어떻다, 좋은 소식, 따뜻한 소식보다는 불안한 소식들에 계속 들려옵니다. 오늘 오전에는 북한에서,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쐈다고 합니다. 올해만 들어서 벌서 5-6번 정도 미사일을 쐈다고 합니다. 이처럼 많은 소식들은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두려움에 빠지게 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어떠신가요?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살기 때문에요. 이런 영향들을 수도 없이 받습니다. 두려움이지요.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두려움 부터 때로는 눈 앞에 문제 때문에 큰 두려움 가운데 빠지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두려울 때 우리의 눈이 향해야 하는 곳이 있어요. 사람이 두려우면요 그것에만 시선이 꽂힙니다.
어제 아이들 건강검진 때문에, 치과를 갔습니다. 저도 치과가 좋지 않아요. 그런데 스케일링 할 때가 되어서 같이 갔습니다. 유찬이는 이미 치과 간다는 순간 표정이 굳어지더라구요, 치과에 가면 그 특유의 냄새, 소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 치과 특유의 약냄새, 윙윙 거리는 기계 소리, 들어선 순간부터 두려움에 떨더라고요.
사실 치료를 하러 간게 아닙니다. 아이들 영유아 검진을 하면요, 치아 상태를 체크하는거에요. 치과 선생님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침대에 누우라고 한건데, 울기 시작합니다. 검진만 한다고 하는데도 유찬이 눈에는 뭐가 들어오는거에요? 그 무섭게 생긴 기구들, 천장에 매달린 것들, 윙윙 거리는 소리, 아무 것도 시작 안해도 울기 시작하는거죠.
두려움이라는건 이런건에요. 두려움이 생기면요, 우리의 시야는 그것에 고정됩니다. 다른 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지, 옆에 엄마가 있는 것도, 잠간이면 끝난다는 그 사실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무서운 것만 보이는거에요. 이것은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지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와 어려움, 눈 앞에 닥친 일들이 두려울 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눈이 거기에 고정됩니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두려움이 우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 두려움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회복시키는지 함께 살펴보며, 이 은혜를 우리의 삶에서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상 21장인데요. 지난 주에 이어서, 다윗은 이제 사울 왕을 피해 왕궁에서 도망하게 됩니다. 다윗을 살려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바로 사울 왕의 아들인 요나단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위를 포기할 지언정, 다윗과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을 지켰습니다. 인애, 헤세드를 다윗에게 베풀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요나단과 뜨거운 작별 인사를 한 후 다윗은 도망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도착했던 장소는 1절에 보면 바로 놉땅이었습니다. 그가 놉땅으로 피했던 이유는 여러가지 계획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일단 그곳은 사울의 왕궁이 있었던 기브아에서, 남쪽으로 약 3-4km 떨어진 가까운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놉땅에는 당시에 뭐가 있었냐면 성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제사장이 있었고요 급하게 챙길 음식도 있었고요 심지어는 무기도 있었습니다.
놉땅에 성소에 다윗이 도착하자 제사장이었던 아히멜렉이라는 사람이 그를 맞아줍니다. 그런데 1절에 보면요, 아히멜렉이 어떻게 했대요? 떨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왜 그가 떨었겠습니까. 지금 다윗이 여기에 온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왕의 사위이면서 군대의 장수인 다윗이 혼자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뒤에 나오겠지만, 지금 이곳에는 사울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도엑이라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러니깐 이 상황자체가 두려움인거에요. 아히멜렉만 두려웠던게 아니라,
다윗은 지금 두려움 가운데 빠져있습니다. 극심한 두려움이 영어로 패닉이라고 하는데요. 패닉에 빠져있어요. 그러니깐 다윗은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아히멜렉에게 이야기 합니다. 2절에 보세요. 다윗이 거짓말을 시작합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왕이 나를 보내서이다. 그리고 이 작전은 비밀작전이니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달라. 이제 곧 부하들이 이리로 올것이라고 거짓말을 해요. 다윗은요 지금 도망자 신세에요.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오고 있는 상황이지요. 지금 그에게는 어떤 비밀작전도 없습니다. 부하도 없습니다.
그가 거짓말을 했던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언제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러 이곳에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 자리에 도엑이라는 사람이 함께 있다는 두려움, 두려움은 다윗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요? 계산하는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 인간적 방법을 택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내용은 이 뒤에도 등장합니다. 그는 이제 앞으로 먹을 식량인 빵을 그곳에서 챙깁니다. 성소에는 진설병이라는 떡이 항상 준비되어 있거든요, 아히멜렉에게 그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8절 9절을 보세요.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요청합니다. 혹시 여기에 칼이나 창이 있습니까? 내가 작전이 급해서 못챙겼다는거에요. 그러니깐 제사장이 그럽니다.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다 그러니 그것을 가져가려거든 가져라가 내어줍니다.
이 말씀에서는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는 에봇입니다. 에봇은 뭐하는 물건입니까? 제사장이 의복 위에 입는 또 다른 옷입니다. 에봇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의상입니다. 에봇에는 판결 흉패를 넣는 주머니가 달려있고요,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에 이 에봇을 입고 물었습니다. 거기에 뭐가 들어있어요? 우리가 잘아는 ‘우림’과 ‘둠밈’이 들어있습니다.
거기에 또 뭐가 있어요? 골리앗의 칼입니다. 이 칼은 에봇 바로 뒤에 함께 있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에봇과 이 골리앗의 칼이 나란히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무엇을 집어듭니까? 바로 골리앗의 칼을 집어듭니다.
이게 주는 메시지가 있는거지요. 이 칼은요 보통칼이 아니라 골리앗의 칼입니다. 골리앗은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이 무찔렀던 블레셋 장수입니다. 다윗은 이 골리앗을 어떻게 이겼습니까? 다윗이 골리앗에게 외쳤던 정확한 워딩이 뭐에요.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외쳤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찔렀던 이유는 칼 때문이 아니었어요.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를 신뢰하는 그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는 골리앗을 무찔렀습니다. 이 전투에서요, 골리앗의 칼은 오히려 패배와 수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칼을 취해 놉 성소에 보관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성소에서 다시 그 칼을 집어들려고 합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예전에는 여호와를 의지했던 다윗이 그것을 외치며 골리앗에게 나아갔던 다윗이, 지금은 그 골리앗의 칼을 쥐고 자신의 생명을 구원하겠다고 살아남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9절 후반절에 보십시오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이 말이 무엇입니까? 그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은요, 이 칼이 최고라는거에요. 이것만 있으면 된다라는거에요. 지금 다윗의 눈에는 그 칼이 자기를 살려줄 것처럼 보이는거에요. 정말로 그럴까요? 정말로 그 칼이 다윗을 지켜줄까요? 골리앗 앞에서 다윗을 살렸던게 칼이었습니까? 아니에요 여호와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다윗을 이리 바꿔놓았습니까? 두려움이 다윗을 바꿔놓았던 겁니다. 여러분 이게 두려움이 우리에게 하는 일입니다.
두려움이 커지면요 우리의 눈이 바뀝니다. 우리의 시선이 바뀝니다. 그전까지는 하나님이 내게 가장 실제적인 능력이요 힘이었는데, 두려움이 커질수록 하나님보다는요 내 손에 잡히는 것이 더 실제적으로 느껴집니다. 기도보다요 내 계획을 세우고 수행하는게 더 급해 보입니다. 에봇과 칼이 함께 놓여있음에도 칼이 더 든든해 보입니다.
다윗은 실은 이미 마음이 정해진 상태로 놉 땅에 온거에요. 그 이후에 보겠지만 블레셋으로 망명할 계획이 있었고, 그 가는 여정에 골리앗의 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 에봇이 눈 앞에 있어도 그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할 생각이 없었던 거에요. 왜냐하면 내 계획은 이미 다 세워져 있으니깐 말이지요.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바로 이런 순간이 늘 찾아옵니다. 에봇과 칼이 나란이 있는거에요.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어야 하는 자리임에도, 이미 내 결론이, 내 계획이 치밀하게 계획되어져 있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문제, 염려, 미래에 대한 불안, 두려움이 커질수록 우리는 무엇이 더 크게 보일까요? 에봇이 아니라 칼이 더 크게 보입니다. 그것을 내 손에 쥐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내 방법이 세상의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더 급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칼을 들고 이렇게 생각해요. “그 같은 것이 내게 없다” 이게 나를 살려줄 것이라 착각합니다.
여러분 두려울 수록 칼이 아니라, 에봇을 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앞날이, 눈 앞의 문제가, 염려하는 일이 클 수록 우리는 내 계획을 먼저 앞세우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전에, 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토록 처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했겠습니까. 두려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분이, 하나님과 떨어질 생각을 하니, 그 진노의 잔을 마실 생각을 하니,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가 빼들었던 그 칼을 의지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어떻게 이 십자가를 피할지 살궁리를 하지 않으십니다. 얼마든지 다른 것들을 붙들고 나아갈 수 있는 그분께서, 기도하세요.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세요. 그리고 그 가운데 내가 선택해야 할 일을 선택하세요.
여러분 생각보다 그 큰 두려움 앞에서, 급박한 상황 앞에서 기도하는 것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칼보다 에봇,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분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우리에게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과연 다윗이 그 칼을 택했기 때문에, 그는 그 두려움 가운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 때문에 정말로 자기 생명을 구원할 수 있었을까요?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이제 놉땅을 떠나게됩니다. 거기서 나름 자신의 계획대로 많은 것을 챙겼습니다. 진설병도 챙겼고요, 골리앗의 칼도 손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계획은 무엇이었냐면, 바로 블레셋 땅, 가드로 망명하는 것을 계획했습니다. 다윗은 나름대로 계획적으로 움직인거에요. 사울 왕이 두렵잖아요. 그러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사울 왕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가면 되는거에요. 사울의 적이었던 블레셋으로 가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는거에요.
블레셋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스라엘의 최고의 장수인 다윗이 망명해서 같은팀이 된다? 마다할 이유가 없는거죠. 거기다 뭐까지 들고가요? 골리앗의 칼까지 들고갑니다. 다윗 역시 생각했겠죠. 다윗에게 골리앗의 칼은요, 자신의 생명을 구원할 실제적인 무기이자, 망명할 수 있는 명분도 주는 칼인거에요. 골리앗의 칼이 성소에 있다는건 뭐에요? 전리품이지요. 블레셋이 가장 수치스럽게 여기는 그 패배의 상징을 들고 항복해 온다면, 블레셋이 환영할 것이라는 완벽한 계산인거죠.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계획은 사실 철저하게 자신을 더 위험한 사지로 몰아넣었던 것임을 오늘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브아에서 가장 가까웠던 놉땅에 성소에 찾아가는 것, 아주 좋은 계획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기에 누가 있었어요? 7절에 사울의 신하 도엑이라는 사람이 마침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계산에 없었던 일이겠지요. 뒤에 보면 이 일로 인하여 다윗의 행보가 사울 왕의 귓에 세세히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어찌어찌 계획했던 것들을 챙겨서 블레셋 가드로 망명을 시도합니다. 10절에 아기스 왕에게 이르게 됩니다. 다윗의 계산은 무엇이었습니까? 쌍수를 들고 자신을 환영하는 그림을 그렸을 겁니다. 그런데 11절부터 보면 아기스의 신하들이 그럽니다. 이런 표현을 하는데요.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그러면서 그 승전가의 노래를 이야기합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2절에 다윗은 이 말을 듣고 그 아기스 왕을 심히 두려워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아기스의 신하들은요 지금 다우시을 그 땅의 단순히 도망자나 장군이라 하지 않고, 그 땅의 왕 다윗이라고 표현합니다. 사실 진짜 왕은 사울인데요, 적국이었던 블레셋은 다윗을 실질적인 그 땅의 왕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건 전혀 다른 이야기인거에요. 그 나라의 왕으로 다윗을 인식하고 있다면요, 다윗은 받아들여야 할 적군의 장군이 아니라, 제거 대상 1호인 그 나라의 수장인거에요. 근데 그 사람이 지금 제발로 여기에 왔다? 절호의 기회인겁니다.
신하들이 정확히 그 노래를 이야기하죠.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 노래는 뭐냐면요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정말로 수도 없이 죽였을 때 만들었던 승전가에요. 다윗이 만명을 죽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도 없이 죽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노래에요. 이 노래의 장본인인 다윗, 적군의 장수, 블레셋에게 다윗은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와 같은 존재인거죠. 심지어 가드라는 도시는요, 다윗이 죽였던 골리앗의 고향입니다. 심지어 다윗의 손에 뭐가 들려있어요? 골리앗의 칼이 들려있습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그 사람이 다윗이라는 빼박 증거인거에요.
다윗은 지금 눈 앞의 분위기가 전혀 자신이 원했던 방향과는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자신은 사울 왕을 피해서 가드로 숨어들었다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호랑이굴에 제발로 들어간 꼴이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이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합니까?
13절,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 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렸다” 여러분 이보다 비참한 상황이 다윗의 인생 가운데 있을까요? 이스라엘의 그 영웅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그 용맹스러운 장수가, 가장 굴욕적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미친척을 해서, 침을 질질 흘려서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기를 기대하는 이 처절한 자리에 다윗이 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다윗은 나름대로 자기의 두려움을 해결해보고자 애를 썼습니다. 철저하게 계획도 세우고 자신이 살아남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요 그가 의지했던 자신의 계획, 골리앗의 칼, 그것은 오히려 다윗을 더 위험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더 큰 두려움으로 정말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으로 다윗을 몰아넣어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거에요. 바라기는 다윗처럼 우리의 삶에 더 어리석은 선택을 안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 일로 인하여 다윗은 큰 인생의 교훈을 얻게 되지요. 여러분 우리의 삶에 도대체 무엇을 계획하시겠습니까? 더 어떤 견고한 작전과 세상의 것을 채워야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세상의 발달로요, 과학과 의료기술의 발달로요 많은 것들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손에 떠나있는 문제들이 투성이 인것이 사실 우리의 삶의 본질입니다. 여러분 누가 내일 일을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1시간 뒤에 내가 살아남을 것을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내일의 내가 눈을 떠서 아침을 맞이할 줄 확신하겠습니까? 누가 우리의 자녀들의 앞날에 안녕을 장담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그 치밀한 계획이요? 미래를 위한 투자가요? 스펙이요? 통장잔고가요? 여러분들의 앞날을 예언해줄 인공지능이요? 절대요. 그것들을 의지하는 순간, 우리는 더 큰 두려움 가운데 빠지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이 일로 인하여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시편 34편에 보면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34편의 제목이 그래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입니다. 아비멜렉은요, 블레셋 지역의 왕들을 부르는 칭호같은거에요.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그 왕이 바로 아기스이죠. 그는 이 일을 겪은 후 4절에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8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7절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다윗은 이 일을 통하여 분명히 알게 된거에요. 그는 성소에서 에봇을 통하여 하나님께 구하지 않습니다. 칼을 들었습니다. 내 계획을 먼저 꺼냈습니다. 결과는 미친체하며 자신의 생명을 구걸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실패였고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뼈저리게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모든 두려움 가운데에서 건져주십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손에 무엇이 들려있습니까? 어떤 두려움 가운데 있으십니까? 이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삶의 고백이길 소망합니다. 바뀌지 않는 상황 가운데에서, 앞날의 두려움 가운데에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일은, 계획이 아닙니다. 칼이 아닙니다. 에봇 앞에 서는겁니다. 하나님께 묻는 겁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가 시작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두려움 앞에서 칼을 드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피할 수 있는 복있는 인생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직접 맛보아 알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단 기도 — 말씀 결단 기도
1단 기도 — 말씀 결단 기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에봇보다 칼을 먼저 집어 드는 모습, 하나님의 뜻보다 내 계획이 먼저 나오는 모습,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 아닙니까.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시간 첫 번째로 기도하실 때,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칼이 무엇인지, 내가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하며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 앞에 솔직하게 내려놓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는 두려울수록 에봇보다 칼을 먼저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계획이 먼저였습니다. 이 시간 그 칼을 내려놓겠습니다. 에봇 앞에 서겠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먼저 구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이 결단의 제목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 크게 한번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2단 기도 — 교회와 공동체를 위한 기도
2단 기도 — 교회와 공동체를 위한 기도
두 번째로 우리 광혜교회 공동체를 위해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환우들을 위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두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 지체들이 있습니다. 병원 침상에서, 가정에서 눈물로 버티고 있는 성도들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옵소서. 그 두려움 가운데에서 에봇 앞에 서게 하시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옵소서. 시편 34편의 고백처럼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이 고백이 우리 환우들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베트남 선교를 위하여: 8월에 있을 베트남 단기선교를 위해 기도합니다. 선교의 현장에서도 두려움이 올 때, 칼이 아니라 에봇을 먼저 택하는 선교팀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땅에서, 주님의 뜻을 먼저 묻고 나아가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름값이 오르고, 물가가 오르고, 뉴스마다 불안한 소식이 가득한 이 시대 가운데, 우리 성도들이 세상의 두려움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게 하옵소서. 두려울수록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하시고, "보라 너희를 인도한 나를" 이 음성이 우리 귓가에 들리게 하옵소서.
환우들과 베트남 선교,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을 위해 다시 한번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3단 기도 — 개인 기도제목과 마침
3단 기도 — 개인 기도제목과 마침
마지막으로 여러분 각자가 가지고 나온 개인의 기도 제목을 주님 앞에 올려드립니다.
누군가에게는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는 경제적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자녀 때문에, 건강 때문에, 관계 때문에 두려운 것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칼을 들고 뛰어들었다가 더 큰 두려움을 만난 자리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가장 낮고 굴욕적인 자리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든,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시편 34편의 그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 손에 있는 칼을 내려놓습니다. 제 계획을 내려놓습니다. 주님께 피합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기 원합니다."
각자의 간절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주님 앞에 마지막으로 힘차게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성도들의 기도가 잦아들면 부드럽게 마무리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두려움 앞에서 에봇보다 칼을 먼저 들었던 다윗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낮은 그 자리에서도 다윗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 은혜를 붙듭니다. 두려운 이 시대 가운데, 세상의 칼이 아니라 하나님께 피하는 복있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고백이 우리 삶의 증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