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황제 스펄전의 목사론 03
스펄전의 목사론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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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 1 목회자와 소명
파트 1 목회자와 소명
02 목회자의 소명 점검
02 목회자의 소명 점검
1. 목회자는 소명이 있어야 한다.
1. 목회자는 소명이 있어야 한다.
2. 목회에 소명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2. 목회에 소명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1)목회 소명의 첫 번째 표지는 사역에 대한 강력한 소원이다.
1)목회 소명의 첫 번째 표지는 사역에 대한 강력한 소원이다.
2) 목회 소명의 두 번째 표지는 가르치는 은사다.
2) 목회 소명의 두 번째 표지는 가르치는 은사다.
목회자는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야 한다.
목회자는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야 한다.
목회 황제 스펄전의 목사론03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rrJgxQHQKHA
Transcript:
(00:00) 두 번째로, 목회자가 되려는 진지한 소망과 함께 공적으로 가르치는 일에 필요한 가르치는 재능과 어느 정도 재본적인 자질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소명을 입증하려면이 건물 성공적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만년의 로버트 홀 목사 수준에 설교 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이 위대한 목사님 처음 했던 설교보다 글이 나쁘지 않은 정도면 무난합니다. 로버트 홀 목사님도 세 번이나 완전 자들해서 일로 겸손해지지 않으면 그 무엇으로 검세 수 없을 것이다라고 탄석했다는 일화를 다들 아실 것입니다. 탁월한 음경가들 모두 처음부터 청산 뉴스였던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키케로도 처음에는 성량이 작고 발성을 잘 못해서 애를 먹었습니다.
(00:48) 그래도 말한데 소질이 있음을 입증하기 전에는 설교에 소명이 있다고 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분명 거대한 동물을 날아다니도록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고래가 동스처럼 날 날아오르고 싶어도 날개가 없기 때문에 어운 꿈에 불과합니다. 설교에 부르심 받은 사람은 어느 정도 말씀시는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계속 갈고 닦아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언어의 은사가 없으면 앞으로도 생겨날 가망은 없습니다.
목회자가 될 사람은 가르치는 은사의 능력을 충분히 검증해 보아야 한다.
목회자가 될 사람은 가르치는 은사의 능력을 충분히 검증해 보아야 한다.
어떤 분은 설교가 하고 싶어서 담임 목사님께 끈질기게 간청해서 결국 시험삼아 설교할 기회를 얻었다고 합니다.
(01:37) 그런데 그 기회를 끝으로 더 이상 조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설교 본문을 읽고 나자 머리가 텅 빈듯이 아무 생각이 안 나 마음속에 떠오른 한 마디 말만 전하고 바로 강단을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설교하는 것을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 있으시면 여기 한번 올라와 보십시오. 모든 교만이 싹 사라질 것입니다. 필요한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십시오. 자신의 결함을 아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이 문제를 놓고 충분히 시험해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는지 분명히 알 길이 없습니다. 시험에 보는 동안 우리는 대체적으로 그 정도 설교로 남들을 감화시키리라고 기대해도 될지 자주 자문해야 합니다.
교회에서의 공적인 설교 기회를 통해 점검받아야 한다.
교회에서의 공적인 설교 기회를 통해 점검받아야 한다.
(02:31) 그러나 그 문제를 자신의 양심과 판단에만 맡기면 안 됩니다. 잘못 판단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제들은 스스로 웅변에 놀라운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스스름 없이 주장합니다. 그것이 근거 있는 말이라 해도 저는 그들의 무분별함과 자기 만족이 차라리 부럽기까지 합니다. 애석하게도 저는 설교자로서의 무능함과 결점을 수없이 한탄해야 할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견해는 별로 믿을 것이지만 사력 있고 영적인 분들에게는 배울 것이 많습니다. 목회를 소망하는 소년에게 청년에게 교회에서 설교할 기회를 주는 것은 결코 모든 이에게 적용해야 할 법칙은 아니지만 이것은 여전히 우리나라 여러 교회의 훌륭하고 오랜 전통입니다.
(03:20) 그것은 젊은 후보생에게도 부담스러운 시험이며 그들의 설교를 통해 성도들도 크게 은혜받는 일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 그렇더라도 매우 유익한 훈련의 기회가 되고 적어도 회중이 형편 없는 목회자를 접하는 일만은 면하게 할 것입니다. 아른스비 교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로버트 홀 2세의 소명에 대한 짧은 소견서
로버트 홀 2세의 소명에 대한 짧은 소견서
1780년 8월 13일 아른스비 교회 상기 로버트홀은 1764년 5월 2일 아른스비에서 출생. 어린 시절 말도 제대로 하기 전부터 어 이걸 읽어야 되겠죠? 이걸 읽어야 되는 거죠? 네. 네. 예. 죄송합니다. 예. 예. 어린 시절 말도 제대로 하기 전부터 진지하고 은밀한 기도에 열심이었고 늘
(04:24) 목회 사역을 사모해옴 7세가 되기 전에 찬송가를 듣기 시작했으며 그 속에 경건함과 깊은 생각과 천재성이 없어 보임 8구세 사이에 지은 찬송과 몇곡은 많은 사람을 탐복하게 했으며 그중 한국은 당시 가스펠 메거진지의 실리기도 한 여러 신앙적 주제에 대한 견해를 기록하고 하고 관련 선구를 인용했으며 학문에도 강한 흥미를 보여이 지역에서 더 배울 만한 스승이 없을만큼 큰 발전을이 그 후샘프턴 기수학교에 진학해 존까요? >> 예. 그 노심프트스 기수학교에 진학해 준 라인랜드 목사 밑에서 1년 반 동안 수학하며 라틴어와 헬라와 공부에 물투함 1778년 10월 보리스톨 대학에 진학하여 에버스 목사 밑에서 수학 1780년 8월 13일 만 16세 3개월의 나이로 본 교회의 목사로 초대받음 본 교회에서 그런이 이런 그가 이런 큰 사역을 할 만한
(05:30) 능력이 갖추었다고 보는 근거로는 교회 총회에서 그가 여러 성경 구절을 들어 자신의 피력한 일과 4년 전부터 기도로 사역을 준비해 온 고양의 머물 때 성도들이 부탁하 자주 주일 오전 설교를 해서 매우 만족스러운 반응을 얻은 사실 등이 있습니다. 그 결과 성도들이 진지하게 만장일치로 그를 정식으로 공증사에게 성별해 세울 것을 요청함. 이에 따라 상계 일자의 교회 성도 앞에서 목회와 관련한 관련된 의향, 동기 목적에 대해서 아버지께 엄격한 심사를 받고 본인의 신앙고별을 밝히도록 함. 본서를 진행한 뒤 전 교인이 만족한 가운데 오른손을 들고 엄숙히 기도로 그를 성별해 세움.
(06:05) 다음으로 그의 아버지가 디모데후서 2장 1절. 내 아들아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는 말씀으로 그에게 강론함 이와 같이 임직한 뒤 우의 데살후서 1장 78절로 설교함 주께서 그를 그에게 복 주시고 그게 성공시키기를
가르치는 은사에 대해 경건한 성도들의 판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가르치는 은사에 대해 경건한 성도들의 판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며 사는 성도들의 판단에는 상당한 무게를 실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판단은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도 최종적이거나 오류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도들의 판단은 지식과 경건의 비례해서 평가해야 합니다.
(06:49) 누구 못지 않게 경건했던 한 부인이 제게 설교하지 말라고 진지하게 권유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분의 견해의 비중을 솔직하고 끈기 있게 판단해 보기 했었지만 결국 더 경험 많은 분의 판단에 무게를 두게 되었습니다. 목회 소명을 의심해 보는 젊은이라면 시골 교회나 마을 회관에 가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생길 때 제일 현명한 친구들을 데리고 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와 제 훌륭한 동료 로저스가 함께 관찰한 바에 따르면 여러분 신학생 모두가 각자에게 일치되게 내리는 평가는 거의 틀리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영제에 대한 전체 신학생들의 일반적인 의견이 틀렸던 경우는 온 학교를 통틀어 거의 한 번도 없었습니다.
(07:35) 사람들이 때때로 한 사람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기가 어려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교실에서나 기도회에서나 대화 중에나 기타 여러 신앙 모임에서 여러분은 서로를 평가합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전체 신학생들의 판단을 무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회자에게는 가르치는 은사 외에 다른 은사들도 더 필요하다.
목회자에게는 가르치는 은사 외에 다른 은사들도 더 필요하다.
이 대목을 마무리 짓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단지 성도들을 감화시키거나 가르치는데 소질이 있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목회자적 소양을 갖추는 데는 다른 재능도 필요합니다. 건절한 판단력과 충분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온유한 태도와 상냥한 마음도 갖춰야 합니다.
(08:18) 굳세 의지와 용기도 있어야 합니다. 부드러움과 긍휼도 있어야 합니다. 잘 다스리는 은사도 잘 가르치는 은사만큼이나 필수 조건입니다. 남들을 이끌기에 적합하고 인내할 준비가 되 있으며 끝까지 이루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은혜 안에서 성도들의 머리와 어깨가 되어 그들의 아버지와 좋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2절에서 7절과 디도서 1장 6절에서 9절에 있는 감독의 자격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네. >> 그러한 은사가 풍성하게 있지 않으면 여러분은 복음 전도자로서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목회자로는 부적절합니다. >>
3) 목회 소명의 세 번째 표준은 사역의 열매다.
3) 목회 소명의 세 번째 표준은 사역의 열매다.
(09:04)
지금까지 자신의 수고로 회심의 열매가 있는지 보라.
지금까지 자신의 수고로 회심의 열매가 있는지 보라.
제가 지금까지 언급한 것처럼 목회 은사를 시험해 본 뒤에 소명을 더 확실히 입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수고로 어느 정도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최선의 진로를 모색한 편이 났습니다. 한 번에 아니 한 수부분까지는 강단에 섰다고 바로 열매를 거두기를 그대하는 것은 무입니다. 심지어 소멸을 받았다고 느낀다면 평생 설교를 시험해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목회 사역에 그별된 사람이 영혼들을 구원하며 예수님 알게 하는 도운데 도구로 쓰임받기 전에는 아직 자신의 소명을 확징받지 못한 것입니다.
(09:43) 일꾼으로서는 성공 여부에 관계 없이 열심히 일해하지만 목회자로서는 결과가 보이기 전에는 자신의 소명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확심한 영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회이 가득 차고 친구들이 온갖 칭찬을 해도 그처럼 혹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참여하는 영혼에게서 가슴이 찢어지고 눈물이 향없이 흘렸다는 말을 듣기를 소원했습니다. 어느 가난한 노동자의 아내가 제 후 설교를 듣고 죄를 깨닫고 구주를 발견했다고 고백하는 말을 듣고 사람이 많은 살물을 얻은 것처럼 어찌나 기뻤는지요. 그분이 살았던 오두막집이 지금도 눈에 하분께서 교회에서 교회 나오시고 눈 감으면서 하늘나라로 가시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10:33) 그분은 제 사역의 첫 확증이었고 다 단다는 건데 참으로 귀한 확증이었 그때 저는 동종여 마리아의 찬송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저의 비천함을 돌아보시고 만세 저를 복이 있다 일컬을 만한 큰 일을 행할 영광을 주신데 대해 제 영혼은 하나님 찬양했습니다. 한 영혼의 핵심이 그렇게 귀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자신의 천직으로 이길 수 있으려면 여러분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이 이 말씀은 모든 열매 없는 설교자들에게 경고하는 매우 적절한 말씀입니다.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했어도 담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했어도 해은즉 그들이 만일 나의 회위에 참여했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11:32) 예레미야 23장 21절 20 말씀네 >> 어떻게 사람들이 회심자도 없이 태연하게 매년 설교를 계속 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들은 다른 영혼들에게 일말의 측은 지심도 없습니까? 일말의 책임감도 없습니까? 감히 하나님의 주권을 사칭하고도 그 책임을 주님께 돌립니까? 아니면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는데 하나님은 자하게 하지 않으신다고 믿는 것입니까? 그들의 재능, 철학, 말솜시, 심지어 정통신학도 신앙도 그의 뒤따르는 열매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아무도 인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입니까? 말에 능력이 없는 선지자 씨앗을 다 말려 죽이는 농부 아무 고기도 못 잡는 어부 적에게 상처도 입히지 못하는 군인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열매없는 나무처럼 목회하느니 차라리 미장이나 굴뚝 청소부가 되는 것이 낫습니다.
(12:33) 아무리 천한 직업도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데 영혼들을 회심시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진 못할 망정 강담만 차지하고 있는 가련한 인생은 무익한 오점이요 눈에 거슬리는 해악일 뿐입니다. 그런 위인은 자기가 먹는 소금만 못하고 빵만 못합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의 수입이 너무 적다고 신문에 투고라도 한다면 아마 자기 양심마저도 있기나 하다면 너는 그만한 돈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다 보면 감뭄이 들 때도 있고 연급 후흉년이 들어 이전 풍년 때의 소출을 다 축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열매는 있을 것이고 그동안은 일시적인 매마음으로 영혼에 말할 수 없는 탄식이 가득할 것입니다.
(13:24) 여러분 하나님이 영혼에 대한 열심을 주지 않으시면 차라리 구두수선을 하고 삽으로 땅을 파는 한이 있어도 마음의 평안과 미래의 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강단만은 피하십시오.
4) 목회 소명의 네 번째 표지는 교회의 공적인 판단이다.
4) 목회 소명의 네 번째 표지는 교회의 공적인 판단이다.
목회자로서 확실히 부름받은 사람은 목회할 사역지를 주신다.
목회자로서 확실히 부름받은 사람은 목회할 사역지를 주신다.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것에 필요한 절차가 하나 더 있습니다. 목회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교회가 기도로 더불어내린 결정을 통해 나타납니다. 소명의 증거로서 여러분의 설교가 하나님의 백성이 받을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통 당신의 이름으로 전하도록 부르신 자들에게 말씀 증거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14:11) 성급한 자는 그 문을 억지로 열거나 부수고 하겠지만 믿음 있는 자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러면 때가 되어 기회가 찾아옵니다. 기회가 오면 시험해 볼 때가 온 것입니다. 설교할 때 회중은 우리 영혼을 판단합니다. 부적합하다고 평가되거나 대체로 교회에 은혜를 주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보냄받지 못했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교회 지침이 될 만한 참된 감독의 징표와 표지가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런 지침에 따라 성도들이 우리를 부적격하다고 판단하고 목회직을 수락하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잘 전해도 목회직을 맡기는 어렵다고 보기에 충분합니다. 교회 성도들이 모두 지혜롭거나 성령의 능력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들 다수가 육신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15:06) 그러나 저라면 자신의 은사와 재능 같은 극히 사사로운 문제에 대해서는 제 자신보다는 주님의 백성의 견해를 존중하겠습니다. 어쨌든 여러분의 교회의 판단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아무도 양떼의 애정어린 동의없이 목회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주님이 부르신 것이 확실하다면 오래 잠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때를 원하는 것처럼 때도 분명 사람을 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늘 살아 있는 목회자가 절박하게 필요했습니다. 교회는 늘 오비의 금보다 사람이 더 귀합니다. 이름뿐인 사역자는 결핍과 배고픔을 겪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는 결코 양떼가 없을 수 없습니다.
(15:52) 목자의 음성을 알아들을 귀와 목자를 반갑게 맞아들일 마음을 가진 양떼가 분명 있게 마련입니다. 사역에 합당한 사람이 되면 사역을 못 하게 될 일은 결코 없습니다. 여기저기 설교할 곳을 찾아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기회보다는 능력을 더 염려하십시오. 그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십시오. 양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목자를 압니다. 우리의 문이 열리면 양떼는 여러분의 음성을 알아들을 것입니다.
존 뉴턴이 친구에게 제시한 목회 소명 확인 방법
존 뉴턴이 친구에게 제시한 목회 소명 확인 방법
이 강의 첫 시간에 저는이 문제에 대해 존뉴턴이 친구에게 보낸 훌륭한 편지 읽어 드리지 않는 거 같습니다. (16:39) 내용이 제 생각과 참으로 일치해서 남의 글을 그대로 벗긴다는 빈을 감사하고서라도 어 읽어 편지 읽어 드리겠습니다.
자네 경우를 자네 경우를 보니 내 경우가 생각나네. 나도 처음 목회를 꿈 때 불안감과 어려움이 많았지. 친구들까지 이런저런 반대 의견을 내놓으니 마음이 더욱 착잡했네. 내가 할 수 있는 친구는 다 내 고통스러운 경험과 실제 선물이라네. 그러니 아마 받아들리기 어렵지는 않을 거야. 은혜로운 주님이 도움 주시길 기도하네. 나도 전에처럼 무엇이 참된 축복 소명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지. 이제는이 문제가 조금 쉽게 풀린 것 같아. 하지만 아마도 자네에게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 주님이 자네 경우에 맞게 분명히 깨닫게 해주시기 전에는 말세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는 없고 간단히 세 가지만 말하겠네.
(17:27) 첫째 이 사역에 쓰임받고자 하는 뜨겁고 간절한 소망 있어요. 일단이 사역에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은 할 수만 있다면 천만금보다이 일을 더 사모할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래서 때로 자신의 부족함에 비해이 사역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지를 느끼면 겁이 나더라도 하나 결코 하나님 참으라 이런 소망을 주셨다면 겸손하게 자기를 낮춘 자세가 반드시 따르기 마련했으세 결코 포기할 수는 없네 가장 활기 있고 영적인 상태에서 주 앞에 가장 침체되어 있을 때나 설교하고자 하는 책망이 늘 간절한가 하는 점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네. 많이 그렇다면 좋은 징조 안 해. 하지만 때때로 그렇듯이 영원히 은혜에 대해 별다른 주님과 목마음도 없으면서 설교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면 그런 열심은 성령보다는 이기적인 나온 것을 의심해야 할 것.
(18:29) 둘째, 설교에 대한 강한 소망과 자원하는 마음 외에도 때가 되면 재능이나 지식이나 엄변에 있어서 충분한 능력이 보여야 하네. 하나님이 남들을 가르칠 사람을 보내실 때는 능력도 함께 주시기 마련이라네. 설교자로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 자신의 소명에 비춰볼 때 지나치거나 모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네. 목회자와 평신도에 주된 차이는 그런 목회적 은사에 있는데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도들을 양육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지. 하지만 이런 은사들은 때가 되어야다네.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방편을 사용하는 중에 서서히 나타난다네. 또 은사는 목회 사역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목회에 대한 소망을 보중하는 전제 조건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네.
(19:24) 자는 아직 젊고 시간도 있지 않나? 그러니 자신에게 이런 은사가 있는지 벌써부터 고민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 같네. 소망이 확고하고 기도와 열심으로 기꺼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인도를 기다린다면 그것으로 족하네. 지금 당장 은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나? 적합한 소명의 마지막 증거는 실제 사역을 시작할 시작할 수단과 때와 장소 등에 환경이 차츰 갖춰지면서 섭리 가운데 사역의 길이 열리는 것일세. 이렇게 환경이 조성되기 전에는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순 없네.이 대목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기미가 조금 보인다고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이네. 자네가 사역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미 그분께서 자네의 사역지와 사역의 종류를 정하셨을 테니 지금 당장은 몰라도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세.
(20:20) 자에게 천사의 능력이 있다 해도 그분께서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 자네를 통해 복 주시기로 정하신 백성에게 자네를 인도하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네. 열심히 뜨거울 때는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신중하게 처신하기가 참 어렵지. 심령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불쌍한 죄인들을 향한 긍휼이 넘치게 되면 하루빨리 사역에 뛰어들고 시키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는 법이네. 나도 5년이나 그렇게 기다렸네. 때로는 거리에서라도 설교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럴듯한 모든 말없는 말까지 귀가 솔기됐지. 하지만 주께서 은혜롭게도 말하자면 은밀하게 가시로 내 길을 막으셨다네.
(21:05) 그렇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다면 내가 주님께서 적절한 때에 쓰시기로 원하신 그런 사역에 인도받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네. 지금 와서 분명히 깨달은 점은 처음 사역에 뛰어들고 싶을 때는 의도가 대체로 좋았을지 모르지만 자신을 너무 과대에 평가했고 이렇게 큰 사역의 필수적인 영적인 판단력이나 경험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네.
목회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마다 모두 신학교 받아주면 안 된다.
목회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마다 모두 신학교 받아주면 안 된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지만 같은 죄로 제가 직접 목회자 지망생들부터 본 경험을 좀 더 말씀드리지요. 제가 늘 해야 할 일은 크로멜의 심사관들이 했던 일과 비슷합니다.
(21:52) 저는 목사가 되는 무원들에게 오키가 적합한지 남들을 판단 내려야 합니다. 이것은 큰 책임이 다른 일이고 여간 주일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웃기하지 말지를 제가 결정할 위치는 아니지만 제가 검토하는 일은 단지이 학교가 당사자에게도 도움을 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부될 것인가에 대해 답을 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후가들은 우리가 목사 양성소로 세웠다고 우리를 비난하지만 그런 비난은 사실 무건입니다. 우린 결코 목사를 만들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실패했겠죠. 우린 자신의 이미 목회자로 밝힌 본 외에는 아무도이 학교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2:31) 오히려 사람들이 저를 목사킬러라고 부른다면 그 편이 진실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심생들이 제가 최후의 일격을 받았으니까요. 제가 한 일을 되들어 본 때 저 양심에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이 학교에 지원한 갑필 창창 젊은 형제를 낙심케 한다는 것은 제게 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마음을 마음은 늘 자상하게 대하고 싶었지만 교회에 대한 책임 때문에 가치 없이 분별해 내야 했습니다.
세상적인 야망으로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은 적합하지 않다.
세상적인 야망으로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은 적합하지 않다.
지원자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추천장을 읽고 질문에 답하는 것을 다 들어본 뒤에 주님께 소명을 받지 못했다는 확신이 들면 본인에게 그렇게 말해 줘야 했습니다.
(23:18) 전형적인 몇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목회를 간절히 원해서 지원한 젊은 형제 중에는 안타깝게도 그 주된 동기가 사람들 앞에 잘 보이려는 야망인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는 그런 뜻을 품은 것만도 가상하지만 강단은 결코 야망의 사다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군대에 가면 최고 계급에 오를 때까지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최대한 올라가기로 작정했을 테니 말입니다. 그 정도까지는 훌륭하고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회에 뛰어들면 대단한 유명 인사가 되리라고 착각합니다. 자신의 천재성이 싹 트고 있다고 느끼고 스스로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여긴 나머지 목회를 자기가 상상하는 능력을 펼쳐 보일 무대쯤으로 간조합니다.
(24:10)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스코틀랜드 사투리로 마음대로 해 보소 하고 내버려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사역에 뛰어들어봤자 실패할 것이 뻔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혹 있어도 자랑을 늘어놓기에 가장 안 어울리는 것이 강단일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매일 자신이 무가치하고 아무것도 아님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
회심한 이후 너무 쉽게 잘못된 교리나 행동에 빠진 사람은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다.
회심한 이후 너무 쉽게 잘못된 교리나 행동에 빠진 사람은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다.
회심만으로 믿음이 너무 약하고 이상한 교리를 쉽게 믿거나 나쁜 친구들이나 심각한 죄에 잘 빠지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어떤 신앙 고백을 하든 목회에 뛰어들라고 권하고 싶은 생각은 추어도 없습니다.
(25:01) 참으로 회개했다면 그냥 평신도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물의 끓음 같았은즉 탁월치 못할 것입니다.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겉만든 사람들도 다른 일이나 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군사나 열심 있는 일꾼을 원하지 멋쟁이나 점잠 빼는 신사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학교에 지원할 때까지 지금껏 아무 일도 안 해본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기사 자기를 받기 전에 무궁부터 세워야 합니다. 영혼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은 훈련을 다 받을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열심은 뛰어나지만 지력이 부족한 사람은 목회자에 적합하지 않다.
열심은 뛰어나지만 지력이 부족한 사람은 목회자에 적합하지 않다.
(25:47) 제게 간청하시는 어떤 분들은 아주 열정적이고 열심은 뛰어나지만 지력이 뛰 뛰기 모자합니다. 별 것도 아닌 말을 하면서 성경책을 손으로 쿵쿵치며 끝없이 떠두는데 알맹이는 전혀 없고 하다 못해 주새끼 한 마리도 못건 건집니다. 다섯 가지도 열속해서 생각하거나 말할 줄 모르면서 열심히 가득한가 열심히만 가득한 사람들이 널려 있습니다.이 능력은 부적가 없으면서 교만한 교만 가득합니다. 이들은 강대상 두들기고 호정치고 구치르고 눈물 흘리고 큰 소리 치는 데에는 능하지만 그 모든 소음은 다 빈강둥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이런 형제들은 교육을 받으나 안 받으나 똑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사람이 지나면 되게 거절했습니다.
(26:35) >>
이유 없이 무조건 목회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적합하지 않다.
이유 없이 무조건 목회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적합하지 않다.
또한 까닭돌없이 강단에 서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르치지도 못하고 배우려 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목회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파르나소스산 어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신 시와 음악의 향연을 버렸다는 산에서 하룻밤 잤다고 시인이 된 걸로 착각하는 사람처럼 그들은 설교 한번 했다고 이제 설교 아니면 할 것이 없다는 식으로 건방을 뜹니다. 옷괴매는 일다위는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자기 챙기려고 다니는 교회를 세내려는 심산입니다. 계산대 앞에 앉기는 싫고 강단 의자 위에는 안고 싶은 것입니다.
(27:24) 저울도 저울추도 다 지긋지긋하고 성전 저울에나 손대 봐야겠다는 속셈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뽑는 바다에 거친 물결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언제든 기꺼이 돌려보냅니다. >>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은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다.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은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다.
어떤 훌륭한 분들은 육체적인 약점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저는 유수데네스처럼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체격은 사소한 기준이 아닙니다. 가슴이 좁은 사람은 공적인 연설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슴이 좁아서 어깨 사이에 간격이 없는 사람은 전지하신 창조주께서 계속 설교하도록 하신 사람은 아니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28:14) 하나님이 그에게 설교를 하게 하실 생각이셨다면 어느 정도 가슴 너비가 있어 충분한 심패 능력을 갖추게 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뛰어다니게 할 동물에게는 민첩한 다리를 주시고 설교할 사람들에게는 그의 알맞은 패를 주십니다. 말을 하다 중간에 멈춰서 숨을들이 쉬어야 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더 적합한 다른 직업은 없는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말 한마디로 한 번에 다 하기가 힘든 사람이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리가 있습니까? 예외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규칙에 더 무게가 있는 것 아닙니까? 입에 장애가 있거나 발음이 부적 부정확한 사람은 대게 설교에 소명이 없습니다.
(29:04) 입천장이 없거나 온전치 못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에 보는 사람이 안스러울 정도로 말할 때 턱이 돌아가는 어느 청년의 지원서를 받았습니다. 청년의 담임 목사님은 그가 매우 경건한 청년이며 몇몇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데 쓰임받았다고 추천하면서 제가 받아주길 희망했지만 저는 적절치 않다고 여겼습니다. 바시스의 금을 다 준다해도 그가 설교하는 모습만 보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틀림없이 듣는 이들 중에 10중팔구는 저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입니다. 혀가이 가득 찰 정도로 커서 발음이 세는 사람, 이빨 없는 사람, 말 더 넣는 사람, 알파벳을 다 발음하지 못하는 사람 등 하나님이 신체적으로 적합한 조건, 어느 기도서에서도 표현했듯이 일반적으로 필요한 조건을 주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돌려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 있었습니다.
(30:03) >>
모든 일에 무능한 사람은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다.
모든 일에 무능한 사람은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다.
제가 만난 형제는 아 제가 항상 한 영자라고 했나요? 저는 자기가 목회 부르심 받은 것이 너무나 확실하다고 때를 쓰는 형제들을 명의 100명도 넘게 만나봤습니다. 그들이 확 그렇게 확신한 이유는 다른 모든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형정 예는 목사님 저는 법률 사무소에이 답답하게 갇혀치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어요. 법률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고 하나님 분명 섭리로 세기를 막으시 막으셨어요. 일자 잃었으니까요. 그다음에 뭘 하셨죠? 아 목사님 구목하기 하나 잃었죠. 잘되셨나요? 아니요. 목사님 저는 장사할 사람 못해요.
(30:43) 주님 그 길도 막으신 거 같아요. 가게가 망해서 아주 오래졌군요. 그뒤로 생명보험 회사에서 잠깐 일했고 자집이나 하면서 학교나서 다닐까 했죠. 그런데 길이 다 먹혀 버렸을때 하나님이 그러면서 마음속에 놓게 되었다는 생각이들은 것입니다. 그럼 저는 보통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다른 모든 일이 실패하는 것을 봐서 하나님이 특별 형제에게 목회사를 맡기신 걸로 생각하시는군요. 그런데 목회에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못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뛰어난 인재가 필요하다는 사실 꼭 잊은 건 아니지요. 설교자로 성공하려는 사람은 구멍가의 주인이든 변호사든 다른 무엇이든 다 잘할 것입니다.
(31:25) 정말 훌륭한 목회라면 무엇에 뛰어들 것인지 몇 년씩 괴를 끌고 수백 교속되는 주일마다 성도들 양육하는데 쓰임받을 만한 사람이면 못할 일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온과 능력 있는 사람이 결코 바보나 능력자는 무능력자는 아닐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전한 일은 최고인자들이나 어울리지 무식하거나 무능한 사람은 합당치 않습니다. >>
목회 사역에 자만하고 있는 사람도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다.
목회 사역에 자만하고 있는 사람도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다.
한번은 가치 있는 것만도 영광으로 여겨야 할만큼 특출했던 한 젊은이가 제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의 얼굴은 마치 교만과 기만이라고 쉬어진 책의 거지 같았습니다.
(32:14) 그는 어느 주일 아침 제 목양실로 지금 당장 만나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 당돌함에 놀라 저는 그를 불러드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 앞에서 됐뜸 말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학교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당장 말입니다. 글쎄요. 지금 당장은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일단 형제 일은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아마 전에 저만한 지원자를 한 번도 받아보신 적 없으실 것입니다. 좋습니다. 한번 봅시다. 관사님이 지원서 한 장을 줄 테니 월요일에 한번 보지요. 월요일에 그는 지원서의 질문에 비범만 답변을 써서 왔습니다.
(32:59) 책에 대해서는 고대 현대 문헌을 두루 섭렵했다고 썼고 방대한 목록을 쭉 열거한 뒤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것은 그냥 몇 개만 쓴 것입니다. 사실 모든 방면에 광범하게 책을 읽었습니다. 설교에 대해서도 자신은 최고의 추천장들을 보여 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곧 능력을 입증해 볼 수 보일 수 있을 테니 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형제 저는 형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척잔이 놀랐습니다. 왜 안 됩니까? 목사님 솔직히 말씀드리죠. 형제는 너무 똑똑해서 우리 학교에 받아들인다면 형제를 모독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여긴 평범한 분들밖에 없거든요. 교장도 선생님도 학생도 전부 보통 정도의 학식밖에 없습니다.
(33:50) 형제가 여기 들어오면 너무 자신을 낮추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 형제는 절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점장게 말했습니다. 제가 비범한 천재인데다가 보기듬은 대단한 지성을 갖췄다고이 학교에 못 받아들인다는 말씀이세요? 네. 저는 그의 천재성에 대한 압도적인 경외 경외감마저 느끼며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목사님 제 설교 실력을 테스트할 기회 한번은 주셔야 합니다. 좋으실 대로 아무이나 아무 주제나 골라 주십시오. 제가이 방에서 즉석으로 강론이든 설교든 해 보이겠습니다. 아마 놀라실 것 겁니다. 아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굳이 상가시게 형제 설교를들을 것까진 없을 것 같네요.
(34:40) 상가시다고요, 목사님. 아마 지금껏 들어본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설교일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제 자신이 그런 특권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형제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그 형제를 잘 몰랐는데 이후 그는 명석한 두뇌로 법관이 되었습니다. >>
목회자가 되려면 사람은 중요한 교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목회자가 되려면 사람은 중요한 교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럼 여러분도 놀랄만큼 말도 거침없이 잘하고 자신의 교리적 견해 빼고는 모든 질문에 대답도 잘하는 사람이 지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리적 견해를 물어보면 되게 이렇게 답변합니다. 저는이 학교의 교리가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35:27) 그런 경우에는 우리는 더 볼 것 없이 그 자리에서 퇴자를 놓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지식도 명확한 믿음도 없는 사람은 목회 소명이 없다는 우리 신념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신학에 대한 확고한 견해가 서지 않았다고 말하는 청년은 확한 견해가 설 때까지 주일학교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학교에 대충 들어와서는 어떤 진리든 마음을 열고 있는 척, 아무것이나 대단히 잘 받아들이는 척 안 하면 안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하셨는지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는지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견해가 없는 사람을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36:08) 육한 자도 말지니라고 사도는 말합니다.이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분명한 견해가 없는 사람은 명백히 새로 입구한 자에 불과함으로 복음의 초보적인 진리를 제대로 익힐 때까지 교리문답 공부안에나 내려보내야 합니다. >>
목회자가 된 이후에 목회의 실제적인 증거로 소명을 입증해야 한다.
목회자가 된 이후에 목회의 실제적인 증거로 소명을 입증해야 한다.
여러분 결국 우리는 사후의 목회 실제적인 증거로 우리의 소명을 입증해 할 것입니다. 합당 검토도 없이 우리의 사역을 시작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불명스럽게 사역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게 경험이 가장 확실한 시금석입니다. 하나님마다 우리를 붙으시고 축복해 주신다면 소병을 더 시험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36:57) 우리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영적으로 합당한 죄는 우리가 목회에 기울인 수고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시험 중에 가장 믿을 만한 것입니다. 네. 네.
메튜 윌크스가 선교사 지망생을 시험해 본 방법.
메튜 윌크스가 선교사 지망생을 시험해 본 방법.
어느 분과 대화하는 중에 저는 멜위쿠스라는 분이 한 젊은 선교사 지망자를 시험에 보기 위해 활용했다는 한 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청년은 언도 선교회에 파송을 받아 인도 선교사로 나가기 원했습니다. 쿠스는 그 청년이 그 자리에 앞당한지 살펴보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편지서 다음날 아침 6시에 자기 일을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그 형제는 문고 살았지만 그 집에 6시 전거에 도착했습니다.
(37:46) 그러나 끝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형제가 기다린 방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형제는 어쩔지만 끊기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윌크스가 첫 도착해서 그지온 자에게 예의코 이렇게 말 그렇습니다. 그의 젊은이 성교사 되고 싶다고 예 그랬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 그리스도를 사랑하나 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기운 받았나 예 죽음 받았습니다. 그래 그럼 테스트를 해보지 고양이의 절자를 될 수 있겠나 자면 당황 기세에게 영역했습니다. 이렇게 터문이 없는 질문은 어떻게 별지당감했습니다. 그는 대신 불쾌한과 구욕감이 들었지만이 도벅도벅 대답했습니다. C티켓 입니다. 좋아서 말이었습니다. 그럼 개실제도 될 수 있겠나?에 딱한 젊은이가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38:38) 그래서 그는 짐짓 태어나게 말했습니다. 오 적정말게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네가 다른 단어 철자를 너무 잘 알아서이 단어도 잘 알 거라 생각했네. 난이가 좋음 높인데도 자네 정도면 부러지 않고 분한 답을 맞 답답할 만한 수준이 일하네. 그러자이 젊은 욥이 대답했습니다. 디우지독 그래 맞았어. 철잔 잘하는 것 같네. 그럼 이제 산수를 넘어가지 2 * 2는 얼마인가 이대로 되면 끝스가 네배로 한각품 다지 않은 것만도 놀라운 일입니다만 그 참을 젊은 정답을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다리가요는 그 뒤에 회의 자리에서 이렇게 진수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이 젊은이를 추천합니다.
(39:36) 젊은이의 추천서와 품성을 충분히 검토해 받고 거기다 참아낼 사람이 별로 없을만큼 심인성 테스트도 해 봤습니다. 자기 부인을 시험해봤더니 그는 아침 일찍 와 있었습니다. 기질과 검손도 시험해 봤습니다만 고양이와 개 절제를 대고 2 * 2는 4라고 대답할 정도였습니다. 훌륭하게 감당을 젊은 아 우리도이 연로하신 분이 이렇게 고약하게 시험해 봤다는 것을 자신에게 마땅히 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이 위협과 공감과 비방과 조롱과 고난을 견딜 수 있는지 그리스도를 위해 만물의 짓기처럼 되고 하차는 자로 대접할 수 있는지 시험에 봐야 합니다.
(40:19) 우리가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잠된 종에 합당한 한 귀한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부 요건을 간춘셈입니다. >>
목회 사역을 감당하기 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라.
목회 사역을 감당하기 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라.
엄숙히 묻겠습니다. 우리의 배는 거친 망대에 나갔을 때 자신의 생각처럼 과연 항해 항해하기에 적합니까? 오 형제 여러분 이렇게 정박해 있는 동안 여러분의 배를 확실히 손질해 놓으십시오. 여러분의 높은 사명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여러분은 많은 시험을 겪게 될 것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증거의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하지 않고 출전하면 화를 입습니다. 여러분은 김화 장교로 출전해야 합니다.
(41:03) 사을 준비하는이 훈련병 단디에서 벌써 지쳐서는 안 됩니다. 밖에는 마귀와 그 무리가 잔뜩 널려 있습니다. 자신의 입증에 보이십시오. 주님이 앞으로 맞이할 도관니와 영광로에 여러분을 준비시켜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환난이 모든 면에서 바울과 그 동료들보다는 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똑같은 시련에도 대처할 준비는 돼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해야 할 바울의 말씀을 읽어 드리면서 여러분이 듣는 동안 성령께서 여러분 앞에 놓인 모든 일을 능히 이기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시기를 하시기 당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예. 아, 네. 목사님 읽어 주십시오. 마지막. 네.
(41:49) 우리가이 직책이 회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공핍과 곤란과 매맞음과 갇침과 요란한 것과 수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유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같으나 모든 을가진 자로다.
(42:49) 아멘네. >> 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