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말대로의 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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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성도는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위선과 허망한 명예욕을 버리고, 마음과 입술을 지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진실하고 거룩한 예물’로 드려야 한다.

본문: 사도행전 5장 1-11절
[인사]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 좌우에 있는 지체들과 이렇게 힘차게 인사하며 나아갑시다. “부활의 기쁨으로 삽시다!”

[도입: 영적 쇼윈도에 갇힌 우리들의 자화상]

여러분들 소셜미디어(SNS) 잘하고 계신가요? 사실 저는 소셜미디어를 잘 안 합니다. 하고는 싶은데, 무진장 귀찮습니다. ‘아, 어디다 올려야지’ 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사진은 찍어 두지만, 막상 찍어놓고 1년이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요즘 10대 아이들이나 SNS를 활발히 하는 청년들을 보면,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의 진짜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 보면 다들 예쁜 사진, 즐거운 일상만 가득합니다. 분위기 좋은 식당, 예쁜 카페, 해외여행에서 찍은 수십 장의 사진 중 가장 완벽한 사진 한 장을 골라 필터를 씌우고 한껏 꾸며서 올립니다. 그러니 나도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 아닌가? 하며, 열심히 남들 보여주는 대로 나도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은 것처럼 여깁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것에 얶매여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그렇지만도 않은데, 자꾸 우리는 겉으로 보여지는게 전부인것처럼 살아가니 무언가 답답합니다.
이처럼 화려하게 꾸며진 일상과 남의 시선에 갇힌 심리를 묘사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쇼윈도(Show Window)’입니다.
쇼윈도 부부아시죠? 겉은 정말 잉꼬부부처럼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속은 그렇지 못한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쇼윈도의 문화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깊이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바로 ‘영적 쇼윈도’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이 좋은 청년’, ‘헌신적인 리더’로 보이기 위해, 속으로는 상처받고 영혼이 곪아 터져가면서도 겉으로는 완벽한 척 연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바로 이런 영적 쇼윈도에 갇힌 우리의 위선적인 모습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전개 1: 거룩한 공동체를 위협하는 바이러스, 위선]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성령 충만함과 사도들이 전하는 부활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기적을 통해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큰 은혜 속에서 성도들이 서로 유무 상통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형성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부활의 소망과 기쁨이 영혼에 가득 넘치니, 나의 소유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나누고 베푸는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밭과 집이 있는 자는 그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고, 바나바와 같은 이들이 모범적으로 구제에 힘쓰며 교회에 큰 덕을 세웠습니다.
그런 칭찬받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역시 그 소유를 팔아 헌금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유의 얼마를 은밀히 감추고서, 마치 ‘전부’를 드리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했던 베드로는 그 사실을 즉각 알게 되었고, 속임과 거짓이 들통난 이 부부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아 그 자리에서 차례로 즉사하고 맙니다.
솔직히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며 마음이 몹시 불편해집니다. 심판이 너무 과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다가 조금 아까워서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 않나? 조금 남겨둔 것이 그렇게 큰 죄인가?" 사실 너무 황당한 처사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용서하시는 분인데, 헌금 좀 속였다고 그 자리에서 죽이시는 건 너무 무섭고 잔인한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이 쏟아질 수 있는 사건입니다.

[전개 2: 왜 그렇게 가혹한 심판이 임했는가?]

하나님께서 이토록 단호하게 심판하신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의 날카로운 질문 속에 그 명확한 답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는 먼저 온 남편 아나니아에게 가장 처음 이렇게 묻습니다.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3절 상반절)
성경에서 사탄은 언제나 성령을 대적하는 초자연적인 악의 세력입니다. 베드로의 이 질문은 ‘동기’를 찌르고 있습니다. "너의 영혼을 움직인 동기가 성령이냐, 아니면 사탄이 네 마음을 채우도록 네가 허용했느냐?"
처음 이 부부의 마음은 그저 ‘내가 이렇게 희생했다는 것을 보여주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겠지?’라는 허영심이었을 것입니다. 헌금 액수가 크면 공동체 안에서 명예와 특권과 영향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계산했습니다. 다분히 위선적인 생각이 영혼에 틈탄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돈을 감추는 것은, 결국 사탄이 그의 마음을 채운 참혹한 결과로 나타난 행위였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외부의 핍박에 실패한 사탄이 교회 내부의 부패를 타겟으로 삼은 교묘한 영적 반격이었습니다. 그 반격이 바로 영적인 위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두 번째로 묻습니다. "어찌하여 성령을 속였느냐?" (3절 하반절)
사도들과 공동체를 속이는 것은, 곧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 성령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의 자리에도 삼위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영혼의 모든 마음과 생각을 통달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내가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무서운 교만입니다.
뒤이은 4절을 보면 베드로는 땅값을 얼마 감추었는지, 어찌하여 네 소유를 네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사탄에 넘어가게 두었는지 그 책임을 묻습니다. 결국 아나니아는 죽음을 맞고, 3시간 뒤 아내 삽비라 역시 끝까지 성령을 속이다가 동일한 죽음을 당합니다. 이 결과를 듣고 온 교회 공동체는 크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근본적인 죄는 단순히 ‘헌금을 덜 낸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재산을 챙기려는 탐욕으로, 하나님께 전부 바쳤다고 위장한 영적인 기만행위요, 횡령이었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속이고 조롱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명확히 가르쳐 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그에 따른 진실한 말과 행동을 보십니다. 우리의 중심이 성령의 동기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순결함으로 행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뒤로는 나의 이기심을 채우면서 겉으로만 헌신하는 척, 하며 성령을 속이고 거짓과 속임수로 채우는 사탄의 동기로 행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상 16:7)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2:4)
둘째, 영적인 위선은 성령을 기만하며 공동체의 하나 됨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독약입니다. 만약 모든 죄에 이토록 즉각적인 심판이 임한다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아주 예외적이고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새롭게 탄생한 거룩한 성령 공동체가 첫걸음을 뗄 때, 사탄이 심어놓은 '위선'이라는 바이러스를 방치하면 교회는 전진할 수 없었습니다. 구약의 여호수아 공동체가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하는데 여리고성에서 아간의 범죄(헤렘)를 철저히 진멸해야만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성령을 기만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이 치명적인 죄를 단호히 끊어내셔야만 했습니다. 이 즉각적인 심판은 공동체에 거룩한 두려움과 순결을 회복시켰고, 곧 불어닥칠 거대한 외부적 핍박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영적 채비를 갖추게 한 것입니다.

[전개 3: 십자가, 우리의 모든 위선이 폭로되고 용납되는 곳]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이런 위선의 늪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개혁주의 신학자 존 칼빈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철저한 타락과 죄악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알량한 선행이나 종교적인 행위로 거룩해 보이려는 허영심은 심판자 되신 하나님 앞에서 결국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행위'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위선을 극복하는 참된 해결책은, 들키지 않으려고 더 완벽한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나를 위해 살 찢고 피 흘리신 십자가 대속의 은혜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장 8절과 9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위선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형제자매들 앞에서 "주님, 저는 여전히 탐욕스럽고 연약한 죄인입니다"라고 나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내 영혼의 파산 상태를 정직하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내 죄를 인정하는 십자가 앞에서는 우리가 더 이상 완벽한 척 쇼윈도를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은 우리의 모든 위선이 낱낱이 폭로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보혈로 온전히 용납되고 덮어지는 은혜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은혜로 다시 태어납니다! 부활의 은혜로 우리는 새로워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정직한 영으로 우리를 새롭게 해주십니다.

[결론: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성령 앞에서의 투명한 삶]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던 창녀나 세리보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했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며 가장 강하게 분노하셨습니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비유하신 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깨끗해 보였지만, 그들의 영적 상태를 드러내신 것으로 내면은 영적으로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혹시 내가 그런 회칠한 무덤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우리 청년회 안에 만연한 ‘영적으로 완벽해 보여야 한다’는 그 억압적인 가식으로 신앙생활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오늘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읍시다. 내가 이만큼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허망한 그런 명예욕을 버리십시오. 그로인해 상처받고 흔들리고 가식적인 신앙생활로 사는 모습을 포기하고, 내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꺼내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의 연약함을 보듬으며 눈물로 기도해 주는 진짜 코이노니아(Koinonia) 교회를 회복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과 신앙을 깊이 돌아보십시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숨기고 포장했던 영적인 쇼윈도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사람들의 얄팍한 갈채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미소를 구하십시오. 다윗은 자신의 끔찍한 죄악과 위선이 폭로되었을 때, 더 이상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시편 51편 16-1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그 중심으로 나오는 진실한 예물을 받으십니다! 겉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나오는 자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제부터 나의 마음과 입술을 거룩하게 지켜, 나 자신을 온전히 ‘진실한 예물’로 주님께 드리는 참된 신앙인(Authentic Christian), 사람 앞이 아닌 오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코람 데오(Coram Deo)’의 청년들이 다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찬양 - 말씀 앞에서(피아 워십)
[합심 기도 제목] “나의 마음과 입술을 거룩하게 지켜, 나 자신을 온전히 ‘진실한 예물’로 주님께 드리는 참된 믿음으로 사는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의 삶으로 인도하소서.” [마무리 기도]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위선, 영적인 가식들을 모두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갑니다. 말씀을 따라 마음과 입술을 지켜 나를 ‘진실하고 거룩한 예물’로 드립니다! 주여! 받아주옵소서!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거룩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함께 해주실 것을 믿사오며, 우리를 구원하신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오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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