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14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70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이 새벽에 저희를 깨워 주님의 전에 나오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 하루의 삶을 돌아 볼 때 주님보다 앞서갔던 순간들,
주님의 뜻보다 내 생각을 더 따랐던 시간들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로 다시 시작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새벽에 드리는 기도가 형식이 아니라 진실한 고백이 되게 하시고,
습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찾는 심령마다 응답하여 주시고, 지친 영혼들에게 새 힘을 부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께서 붙들어 주시고,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드려지는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각자의 삶과 가정 가운데 필요한 은혜로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우리는 고린도후서 6장 1-2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용서하고, 나누고, 사랑하는 것이 은혜받은 사람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세상은 알아봐 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처럼, 손해 보는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가 그랬습니다. 고린도는 말을 잘하는 사람, 외모가 뛰어난 사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도시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여기는 문화였습니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바울은 볼품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가난했습니다. 바울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것들을 가지고 바울을 깎아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러한 것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드러냅니다.
그 내용이 바로 본문 4절과 5절에 나옵니다.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바울이 말한 환난, 궁핍, 고난, 매 맞음, 갇힘, 난동, 수고, 잠 못 잠, 먹지 못한 이모든 것들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자랑이 아니라 수치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내세울 것이 없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서 3:5을 보면 바울은 자신의 배경을 이렇게 말합니다.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이라는 것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엘리트 집단에 속했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바울은 로마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은 법적인 보호를 받는 매우 큰 특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유대 사회에서도, 로마 사회에서도 충분히 내세울 것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누구보다 자랑할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서 3장 7-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바울에게는 내세울 것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세상이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자신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것들을 재설물로 여긴다고까지 말하였습니다.
이 변화가 있었기에 오늘 본문의 고백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8절 후반부터 10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바울은 여기서 “~같으나, 그러나”라는 구조를 반복합니다. 원문에서 ‘호스(ὡς)’는 “~처럼 보이는”이라는 뜻이고, ‘데(δέ)’는 “그러나”라는 뜻입니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된 자요.
무명한 자 같으나 알려진 자요.
죽는 자 같으나 살아 있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세상이 보는 모습은 한결같이 부정적입니다. 속이는 자처럼 보이고, 이름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죽어가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근심에 잠긴 사람처럼 보이고,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실제는 전혀 다릅니다. 참된 자이며, 하나님께서 아시는 자이며, 살아 있는 자입니다. 상황과 상관없이 기뻐하는 자이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이 보는 모습과 하나님이 보시는 모습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에게서 이끌어내라는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반응을 보면 자신감이 전혀 없습니다.
출애굽기 3장 11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또 출애굽기 4장 10 절에서는
“본래 말에 능하지 못한 사람이고,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사람” 이라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표현합니다.
모세가 거짓말로 겸손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한때 애굽의 왕자였지만, 살인을 저지른 후 도망자가 되었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이제 모세의 나이는 80세가 되었기에 아무런 힘도, 군대도, 지위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모세가 애굽의 바로 왕 앞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놓으라고 말한다는 것은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출애굽기 3장 12절에서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더 뛰어난 말솜씨를 주시거나, 더 큰 군대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단 하나, “내가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모세가 누구인지는 그의 능력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모세는 그 부족한 모습 그대로 바로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냈습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이루게 됩니다. 결국 모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말슴 아펭서 각자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자신을 설명할 때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자녀가 어디에 다니는지, 또 건강한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 이런것들로 자신을 소개하고 또, 그렇게 자신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이 그렇게 보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그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고까지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이러한 것들은 세상의 방식일뿐, 그리스도인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에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입니다.
이 사실은 내 조건이 변한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시말해서 건강이 나빠져도, 가진 것이 줄어들어도, 세상에서 잊혀져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가진 "모든 것"은 재산이나 지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바울에게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은 당시 가장 흔하고 값싼 그릇이었습니다. 깨지기 쉽고, 볼품없는 그릇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 질그릇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보배가 담겨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 보배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그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셨기에 바로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환난 속에서도 인내할 수 있었던 것, 근심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가졌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의 의지력이 대단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질그릇 같은 바울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붙들고 계신 분은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이것은 바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은혜가 아닙니다.
같은 성령께서 오늘 우리 안에도 계십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바울 안에 계셨던 그 성령께서 지금 우리 안에도 계십니다.
우리도 똑같은 질그릇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하며 깨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질그릇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의 기준을 이겨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세상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근심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고, 부족함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이 인정하는 조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그것으로 자신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바울이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세상의 조건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 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 되길 원합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내가 무엇을 가졌든 또, 무엇을 잃었든 그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지금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이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다시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조건과 상황에 따라 흔들릴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정체성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연약한 질그릇 같은 우리이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 처럼, 오늘 우리와도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세상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하셔서
어떤 상황속에서도 기뻐하며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