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13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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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407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이 새벽 저희를 깨워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먼저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시간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온전히 드립니다. 복잡했던 생각들을 내려놓게 하시고, 주님 앞에서 우리의 중심이 바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새벽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의 시선이 세상이 아니라 주님께로 향하게 하여 주옵소서. 무거웠던 마음은 주님께 맡기게 하시고 흔들리던 마음은 주님 안에서 다시 서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이 자리에 나온 한사람 한사람은 기억하여 주시고 각자의 삶속에 필요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지친 마음에는 쉼을 주시고, 연약한 마음에는 새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을 드리는 손길들이 있습니다. 이 예물 위에 담긴 각자의 기도와 소망을 기억하여 주시고, 주님의 때에 가장 선하게 응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 Corinthians 6:1–2 NKRV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5장 마지막부분에서 바울은 화목의 직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화목하셨다고 선포합니다. 그래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선포합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은혜입니다.
바울은 이 크고 놀라운 은혜를 말한 뒤에, 오늘 본문에서 곧바로 이렇게 권면 합니다. 6장 1절에 고린도후서 6:1
2 Corinthians 6:1 NKRV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바울이 가장 먼저 한 말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은혜를 들었으면, 그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헛되이’로 번역된 원어 의미는 ‘텅 비어 있다' 는 뜻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는 것은, 은혜를 받았는데, 그 은혜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텅 빈 채로 남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말해 받은 은혜가 삶 속에서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 은혜를 알면서도 그 은혜에 응답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바울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한 것은 우리가 억지로 노력해서 은혜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는 마땅히 일어나야 할 변화가 분명히 있고 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 은혜가 텅 빈채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변한 사람과, 은혜를 받고도 변하지 않은 사람. 성경에서 이 두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 청년과 삭개오입니다.
먼저 부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19장 입니다. 한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묻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청년은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율법도 잘 지켰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올 만큼 영적인 갈망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예수님이 이 청년에게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은 곧 은혜의 초청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청년의 행동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청년은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은혜가 바로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갔습니다. 자기가 쥐고 있는 것을 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몰라서도 아니고 은혜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이 청년은 은혜 앞에서 반응하지 않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삭개오가 등장합니다. 당시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세리는 로마를 위해 같은 유대인에게서 세금을 걷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삭개오는 세금을 걷으면서 자기 몫을 더 챙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돈은 많았지만, 사람들에게는 죄인이라고 불리던 사람입니다.
그런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의 키가 작아서 뽕나무에 올라갑니다. 예수님이 그 나무 아래를 지나가시다가 올려다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던 삭개로를 예수님이 만나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삭개오는 이 은혜 앞에서 급히 내려와 기꺼이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말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나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재산을 나눠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은혜를 만나니 삶이 바뀐 것입니다. 돈에 붙잡혀 살던 사람이 돈을 놓았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던 사람이 네 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은혜가 삭개오의 마음을 바꾸었고, 마음이 바뀌니까 삶이 바뀐 것입니다.
부자 청년과 삭개오 두 사람 모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은혜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부자 청년은 은혜가 바로 앞에 있었는데 돌아갔습니다. 자기가 붙들고 있는 것을 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삭개오는 은혜 앞에서 자기가 붙들고 있던 것을 기꺼이 놓았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누군가가 더 착해서도, 더 많이 알아서도 아닙니다. 은혜 앞에서 지금 반응했느냐, 미뤘느냐입니다.
바울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할 때, 부자 청년의 모습이 바로 은혜를 헛되이 받는 모습입니다. 은혜가 왔는데 그 은혜에 응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삭개오는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은혜가 그의 안에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텅 빈 채로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삭개오가 재산을 나눈 것이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다시말해 삭개오가 자기 재산을 나누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순서가 반대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먼저 삭개오를 찾아왔고, 그 은혜를 만난 삭개오의 삶이 바뀐 것입니다. 은혜가 먼저이고, 변화는 그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본문 2절에서는. 바울은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2 Corinthians 6:2 NKRV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말씀은 이사야 49장 8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49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던 시기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나라를 잃고, 성전을 잃고, 낯선 땅에서 절망 가운데 있던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너희에게 응답하겠다. 구원의 날에 너희를 도우겠다.” 이 약속은 당장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바라보며 주신 희망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약속을 다시 꺼내 들며 선언합니다. 이사야가 기다리던 그 시간이 지금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바울은 여기서 “보라”를 두 번, “지금”을 두 번 반복합니다. 그만큼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지금”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오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새롭게 열린 시대를 가리킵니다.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은 포로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사야가 먼 미래를 바라보며 예언했던 그 은혜의 시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울은 이 그리스도 안에서 열린 시대가 얼마나 놀라운 때인지를 힘 있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말을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복음을 받아 믿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의미는 분명합니다. 지금이 은혜의 때이니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은혜의 때는 한 번으로 끝나는 순간이 아닙니다. 처음 믿는 순간만이 은혜의 시간이 아니라, 믿은 이후의 모든 날이 계속해서 은혜의 때입니다.
오늘도 은혜의 날이고, 내일도 은혜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반응하며 살아갈 기회는 매일 새롭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삭개오에게 '지금'은 예수님이 뽕나무 아래를 지나가시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부자 청년에게도 '지금'은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하신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삭개오는 그 '지금'에 반응했고, 부자 청년은 그 '지금'을 지나쳐 버렸습니다.
우리도 고린도 성도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복음을 듣고 믿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실제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감동이 있습니다. 은혜롭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멈출 때가 있습니다. 예배당을 나서면 삶은 그대로일 때가 있습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을 여전히 붙들고 있고, 용서해야 할 사람을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으며, 바꿔야 할 습관을 여전히 그대로 두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부자 청년처럼 은혜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자기가 붙든 것을 놓지 못해 그 자리를 떠나는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변화를 자주 미룹니다. ‘조금 더 준비가 되면’, ‘환경이 나아지면’, ‘여유가 생기면’ 그때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지금”입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고, 나중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충분히 주어져 있습니다. 부족한 것은 은혜가 아니라, 그 은혜 앞에서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입니다.
삭개오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가 한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셨을 때 나무에서 내려온 것이 전부였습니다. 급히 내려와 예수님을 맞이한 그 한 걸음이 시작이었습니다. 그 작은 순종이 그의 삶 전체를 바꾸었습니다.
신앙의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은혜 앞에서 내딛는 작은 한 걸음입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지금 내려놓는 것, 시작해야 할 기도가 있다면 지금 시작하는 것,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 용서하는 것, 이것이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 새벽, 어둠을 뚫고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은 이미 은혜에 응답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른 새벽 하나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이 시간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겠다는 실제적인 응답의 자리입니다.
오늘 하루도 은혜의 날입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오늘 해야 할 일들 속에서 받은 은혜가 텅 빈 채로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자 청년처럼 돌아서는 하루가 아니라, 삭개오처럼 은혜 앞에서 한 걸음 내딛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새벽에 주의 말씀 앞에 나온 우리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열어주신 은혜가 우리의 삶 속에서 헛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이 은혜 앞에서 더 이상 미루지 않고 한 걸음 내딛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을 내려놓게 하시고, 받은 은혜가 오늘의 말과 행동과 관계를 바꾸어 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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